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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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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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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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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DUMMY

카릿치오스로 이동하는 살인적인 일정속에서도 벨로나가 틈틈히 마법을 배운 이유는 하나였다.


다시 떠올려도 소름돋는, 트리스트와 마주했던 그 순간.


시거든의 죽음을 지켜봐야했고, 부상당한 카니엘을 놔둔 채 도망쳤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마력 흐름 정도는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렇게 제정론자인 샤즐을 설득해 기초적인 마법을 익힌 그녀는, 비록 미약한 실력이긴 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마법 능력이 전투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강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마법전(戰)을 겪어보지 못한 자의 안일한 착각이었다.


즉, 실력 없는 마법사는 선봉에 선 기수병처럼 좋은 표적만 될뿐이라는 것을 다가오는 수천의 마력을 통해 깨달은 것이었다.


“카니엘, 카를! 신체향상을! 어서!!”


멍청하게 자신의 위치를 만천하에 알리고 다녔음을 인지한 벨로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한없이 확대된 그녀의 눈동자.

늘 확고했던 그 시선 속에 공포가 어려있는 것을 처음 목격한 카니엘과 카를은 지체없이 신체향상을 한 뒤, 앞서가는 벨로나를 뒤따랐다.


그렇게 달려가길 수분.

왔던 길을 절반가량 돌아오게 되자, 카를은 머리 속에 가득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벨로나? 왠지 후퇴하는 느낌인데... 도대체 뭣 때문이냐?”


“... 두 가지를 간과했습니다. 제 마력이 역으로 감지될 수 있다는 것과 벨리안느의 마법 연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그 말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고, 때문에 카니엘은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인형이군요!”


“다른 존재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족히 수천의 마력이 접근하고 있으니...”


설명을 이어가던 벨로나가 갑자기 말을 뚝 그쳤고, 이어서 숲길 위로 거칠게 미끌지며 질주를 멈춘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릿치오스의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빽빽히 자란 나무들로 가려진 하늘.

그 사이를 뚫고 오느라 뒤늦게 지표면에 도달한 아침 햇살과 그 빛에 반짝거리는 물안개.


겉보기엔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력을 감지하던 벨로나는 그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목을 조르는 살인자의 손아귀처럼 셀수 없는 마력들이 전방위에서 접근했던 것이었다.


“벨로나! 어떻게 된거야?! 포위된 거냐?”


“······”


일말의 희망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최선의 길을 찾아야하는 상황.


“···저들은 제 마력에만 반응할 겁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기척을 숨긴 뒤 기회를 노리십시요.”


두 사람이라도 살아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자신이 주목을 끌어야 했고, 때문에 무의미한 저항임을 알면서 월첨검을 뽑아들었을 때,


“아직 완전히 마음을 굳힌 것은 아닙니다만..”

벨로나와 거의 동시에 월첨검을 내뽑은 카니엘이 그녀 옆에서며 이어가던 말을 끝마쳤다.


“적어도 지금은 단장님과 함께 복수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를의 호탕한 웃음.


“파하! 근데 네 근처에 있어야 오히려 안전한 것 아니냐. 너, 대륙 최고의 검희라 불리는 존재잖아? 안그래?”


그렇게 카를까지 검을 치켜세우며 옆에 서자, 최악의 상황임에도 벨로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최후까지.”


하지만 그 미소도 잠시.

검을 고쳐 잡은 벨로나는 손에서 전달되는 감각에 집중한 채, 눈을 번뜩이며 나무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새카만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나뭇잎이 바스라지는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는 숲 속.

그리고 손에 쥔 칼 끝이 흔들릴 정도로 점차 강해지는 땅의 울림.

거리상 언제든 공격이 이뤄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인형들은 사냥하는 늑대 무리처럼 사냥감 근처를 배회하며 완벽한 기회를 노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길 수 분째.

적들은 공포만 흩뿌릴뿐 식은땀이 식을 동안 그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고, 수 천배의 전력차에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해지던 찰나.


“옵니다!”


카니엘의 외침과 동시에 벨로나 또한 연녹색 군복의 유포레아스 공화국 정예병 수백기가 일제히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돌파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너무나 엉성한 공격 진형.

그에 대한 의문은 뒤로 한 채, 일단 포위망을 뚫는데 집중하려던 벨로나는 적들의 예상밖의 반응에 또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사냥을 시작하는 늑대 무리가 아니라, 사냥 당하는 듯한 순록 떼의 모습.

살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덤벼들긴커녕,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인형들은 벨로나 일행을 무시한 채 숲속 저편으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대체...”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

죽음을 알리는 본능처럼 반사적으로 감지한 압도적인 마력과 동시에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손끝이 얼얼할 정도의 영문 모를 한기가 휘몰아쳤고, 그 심상치 않은 현상을 함께 겪고 있던 카니엘이 갑자기 맞은편 구릉 위를 가리켰다.


“단장님! 저기!”


능선을 넘어오는 흰거품의 파도.

눈사태라도 일어난듯 흰색 무언가가 구릉 전체를 뒤덮으며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고, 그 믿기 힘든 현상을 바라보던 벨로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되뇌였다.


“벨리안느..”


물론 그녀의 도움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주로를 뚫어줄 기폭마법 정도만 기대했을 뿐, 이 정도의 광역 마법을 구현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 미쳤군.”

그 마법이 점차 능선을 타고 다가오자 그 실상을 제대로 보게 된 벨로나는 마음속으로 카를과 똑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파도의 흰거품처럼 보였던 것은 다름 아닌 짙은 물안개.


하지만 평범한 물안개가 아니라 지나가는 길 위의 모든 것을 얼리는 마법을 품고 있었고, 때문에 인형들이 순록 떼마냥 도망쳤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속도까지 지닌 물안개를 벗어날 수 없었던 인형들은 그 속에서 겨울을 만난 곤충처럼 쓰러진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 마법을.. 벨리안느가?”


재해와 같은 마법에 넋을 놓고 있던 카니엘이 뒤늦게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를 또한 그 말에 반응했다.


“정말.. 괜히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게 아니군. 그런데.. 이대로 있다간 우리도 위험한거 아니냐?”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수백기의 인형들이 벨로나 일행 근처를 지나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언제 인형들이 덤벼들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으나, 그보다 인형과 함께 저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더욱 걱정스러운 카를이었다.


“아뇨.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할 듯합니다.”


“어떻게 확신하냐? 저 안개에 눈이 달린것 같진 않은데?”


매서운 냉기를 내포한 옅은 안개가 서서히 밀려왔음에도 벨로나의 단호한 표정은 변함없었다.


“눈은 물론이고 모든 감각을 다 갖춘 듯합니다만. 벨리안느가 직접 저 마법을 통제하면서 여기로 오고 있는듯하니까요.”


“그 아이가?”

“벨리안느가 여기로 오고 있단 말인가요?”

벨리안느의 마력으로 추정되는 마력을 감지하면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놀란 벨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동적인 그녀가, 심지어 전대륙 추격에 쫓길때도 소극적인 방어 마법만 시전했던 그녀가 이토록 대범한 행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인형들의 마력과 뒤섞여 구분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눈으로 직전 확인하자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녀가 제 마력을 마지막으로 감지했을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단장님. 그럼 이 전투지에 벨리안느가 있단 말인데..”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에 수백기의 인형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상황.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일행을 향한 공격은 없었지만, 벨리안느 또한 마찬가지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카니엘이 움직이던 찰나,


“괜찮습니다, 카니엘. 역시.. 대륙 최고의 마법사란 말이 괜히 붙은게 아닌 듯 하니까요.”


카니엘이 뛰쳐나가는 것을 막은 벨로나는 대신 짙은 안개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태풍의 눈에 들어온듯 갑자기 짙은 안개들이 사라지더니, 대신 손이 부들부들 떨릴만큼의 냉기가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렇게 투명한 얼음속에 갇힌듯한 숲속에서 일행들은 곧 겨울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발닿는 지표면을 얼려 부스러뜨리고, 주변 모든 생명체에 성에를 씌우며 질주하는 벨리안느 이얀.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정체불명의 붉은구 수십개를 사방으로 휘날리며, 냉기를 뚫고 악착같이 공격해오는 인형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모든 생명의 끝을 알리는 겨울 그 자체의 모습.


그 광경에 말을 잃었던 카니엘은 벨리안느가 옆구리의 상처에서 스며나온 피로 붉은 구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벨리안느!”


그 외침을 들은 벨리안느는 단번에 벨로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선, 힘껏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가 뭐라할 틈도 없이 카니엘의 품속에 안겼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의 냉기가 사라지더니 공중에 떠있떤 붉은 구들 또한 후두둑 떨어지는 것이었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정말.”


냉기로 새파랗게 변한 얼굴.

그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같은 미소로 반길 수밖에 없는 카니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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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1 0 9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1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5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0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38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1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2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0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29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3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1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0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5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0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29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7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2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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