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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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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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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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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DUMMY

대(對)마법사 전투 교본에서 보병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질문하나.


중무장한 인형과 과도를 든 소녀 중 누가 더 마법사에게 위협적인가?


만일 그 질문에 인형이라 답한다면 아쉽게도 틀린 접근이었다.

마법사에게 모든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인형보다 어디서 과도를 들고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녀가 더 큰 위협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 종족에게 정면 승부밖에 공격 방안이 없다라...’


엘제어 나쉽은 언제가 인간 교전서에서 읽었던 그 질문을 인형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즉, 움직임이 모두 읽히기 때문에 마법사를 상대로 기습, 매복 등의 전술 공격은 불가했고, 힘과 힘을 겨루는 전투만이 일어난다는 결론.


그렇게 깔끔하게 생각을 정리한 엘제어는 그러나,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 질문이 생각난 이유에 대해선 정리하지 못했다.


연녹색 군복 위에 목을 보호하는 철제 금갑(襟甲).

여기에 세 자루의 검이 엮인 혁대를 찬 병사들의 압도적인 움직임.


유포레아스 공화국에선 최정예 병사라 간단히 부르지만, 인간들에게 ‘청녹의 안개’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구릉을 뒤덮으며 소리 없이 전진하는 상황.


‘아아. 그런거군.’


별명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안개처럼 진군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엘제어는 뒤늦게 그 질문을 떠올린 이유를 이해했다.


마법사와 전투시 정면 승부밖에 없다는 결론은, 상대보다 압도적 힘의 우위에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까지 정예병 오천명을 모아왔다. 상대가 벨리안느니까.’


그렇게 대륙 최고의 마법사를 상대로 대규모 병력이 필요함을 충분히 이해하며, 병력을 분산시켜 카릿치오스로 재집결하는 작전을 직접 수행하기까지 한 그였다.


그리고 이어진 카릿치오스 내에서의 추격 작전.

그 추격 방향을 시초의 마을로 잡은 것 또한 벨리안느가 벨로나와 함께할거란 합리적인 판단이 뒷받침했고, 그 결과 지금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마력이 벨리안느의 마력인지 아직 몰랐으나, 그럼에도 공격을 감행하는 것 또한 정면 승부에선 선제 공격이 최선이라는 이성적인 계산이 있었기 때문.


그렇게 눈 앞으로 정예병들이 돌격하는 모든 과정은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고, 그에 어떤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딱 한가지.

하나지만 전부라해도 무방한 그 사실이 너무나 불합리했기에 엘제어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의장님. 그런데 왜 공격 인원을 이천 명으로 제한한 것입니까?”


마치 인물화에 잘못 찍힌 점같이 지금까지의 모든 판단을 망치는 듯한 숫자.

지금 공격하는 대상이 정말 벨리안느이고, 그래서 힘으로 제압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애매한 숫자보단 총 공격을 하는것이 옳을 테였다.


하지만 그 명령을 내린 최종 결정권자는 곧바로 대답할 생각이 없는듯 눈을 감더니, 이내 공격대와 집단동화(集團同化)를 시작했다.


자신의 마력 범위내 인형들과 간단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르센의 고유 능력.


그 능력으로 이천명이 전달하는 정보를 검토했으나 아직 특별한 것은 없었고, 그 틈에 아르센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우리가 렌소 협곡 인근에서 벨리안느를 쫓았을 때 병력이 어느 정도였지?”


인형에게 기억 왜곡은 없다.

따라서 이렇게 확인하는 별도의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엘제어는 그 화법에 맞춰주었다.


“총 오백명이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때 벨리안느가 마력 분신을 만들어 혼선을 줬었고, 그렇게 분산해서 추격 중 진짜 벨리안느를 쫓던 1개 소대가 당했던 것 같은데.. 맞지?”


“정확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실제 투입된 병력 대비 50배나 많은 인원을 투입한 셈인데.. 그럼 충분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 마력이 벨리안느일 가능성은 없어서..”


“.. 일단 병력의 많고 적음은 둘째치고, 벨리안느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라면 지금 이천명의 병사가 접근하는 것을 모를리가 없을테지. 아니, 애초에 우리가 먼저 벨리안느의 마력을 발견할 수조차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 공격 대상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듯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 그녀가 방심해서 마력을 감지 못했을 가능성은..?”


“정말 그럴 확률이 있다고 생각해?”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도 회의적이었던 엘제어는 그렇다면 대륙의 공적 이외 다른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이천명을 동원한 결정이 타당한지를 판단했다.


“상대가 벨리안느가 아니라면.. 굳이 이천명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개 대대를 정찰 병력으로 보내 우선 저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 2천명이 충분할 것 같아. 마법 연계를 생각해야하니까.”


“.. 확실히 마법 연계 때문에 대규모 마법전은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 마법사 하나를 처리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마법전으로 갈 것 없이, 상대가 마법을 쓰지 못하게 마력 응집을 분쇄시키 뒤,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됐기에 솔직히 1개 대대도 과분하다 생각한 엘제어였다.


하지만 아르센은 그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지, 아니면 점차 밝아오는 하늘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인지 인상을 한번 찡그리는 것이었다.


“아아. 집단 동화에 집중하느라 내가 제대로 설명을 못한 것 같네. 일단.. 마법 연계는 곧 있을 일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었어.”


“곧... 있을 일이라니요?”


“물론 벨리안느와의 마법전이지.”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의장님? 처음부터 설명해주시지요.”


자신이 놓친 말이 있었는지 잠시 복기하던 엘제어는 그보다 아직 아르센이 말해주지 않은 정보가 있음을 깨달았다.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저 마력은 아마 벨리안느와 함께하는 어떤 존재의 것일거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네가 오천의 병력을 이끌고 오는동안, 내가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아! 그렇다면...?”


“노빌리스크에서 벨리안느와 헤어진 이후, 난 그녀의 마력 감지 범위 밖에서 나름의 추격을 계속하고 있었어. 그렇게 3일째였나? 우연히 어떤 마력을 감지했는데, 나중에 그 마력 주체가 벨리안느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혹시.. 그 마력이 벨로나 일행일 가능성은요?”


마력 감지 범위 밖에서 추격을 하는 것은 동물의 흔적을 쫓아 사냥하는 것과 같아서 특정 인물을 유추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벨로나 일행 말고, 시초의 마을로 향하는 다른 존재를 생각할 수 없어 그렇게 물어본 엘제어였으나, 아르센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정체를 알고 싶어서 한번 접근을 해보려 했는데.. 네가 위험한 짓을 하지말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나서 말이야.”


“.. 잘하셨습니다.”


“대신 이곳의 지성체.. 지성체라 부르긴 애매하지만, 아무튼 카릿치오스의 힘을 빌려 일종의 실험을 해봤지.”


“다행히 내가 감지한 그 마력 주체는 나보다 마력 감지 범위가 좁더라고. 그래서 이동 경로를 파악하면서 리야키란 이곳 종족을 이용해 덫을 놓았어.”


지성체라기보다 인육을 탐하는 무리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늑대를 닮은 생명체들.


벨리안느가 살아있단 사실에 전대륙으로 정찰병을 보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존재로, 정확한 특정은 엘제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리야키의 존재보다 아르센의 실험이 더욱 신경쓰여 그 목적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총 세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어. 벨로나 일행이 아닐 경우 한 가지, 벨로나 일행이라면 두가지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지.”


아르센은 다시 생각해도 흥미로운 실험이었는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벨로나 일행이 아니라 그냥 여행자라면 마력 감지에 방해되니까 없애는 편이 좋은데, 굳이 내가 손쓸 필요는 없게 되니까 나쁘지 않다 생각했지.”


“그럼 벨로나 일행이었다면..?”


“첫째. 그들이 리야키를 물리쳤을 경우, 시체에 남은 검상으로 어느정도 정체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월첨검의 흔적이 있다면 벨로나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확실히 월첨검을 들고 마법사와 함께 카릿치오스를 횡단하는 존재는 벨로나 밖에 없긴 할 테였다.


“둘째. 그들이 리야키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경우. 그럼, 뭐.. 벨로나 일행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벨리안느의 조력자이자 우리들의 주적이 죽음셈이니 더할나위 없다 생각했지.”


충분히 가치있는 실험이라 생각하던 엘제어는, 그러다 아르센이 벨리안느와 함께하는 어떤 존재라고 애매하게 말한 것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닌 결과가 나왔나보군요.”


“응.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도망쳤더라고. 하지만 이후에 그 마력 존재에 대한 어떤 흔적도 감지할 수 없었고, 되려 벨리안느 쪽에서 인원이 추가된 흔적을 발견했어.”


“그래서 지금 공격 대상이 바로 그 존재일거라 추측한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추격 도중에 다시 집결지로 돌아왔으니 중간에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었을 수도 있어. 정말 벨로나 일행과 조우했을 가능성도 있지."


“벨로나 일행이든 아니든, 어쨌든 저 마력은 벨리안느와 함께 하는 일행이란 말씀이시죠?"


“맞아. 그리고 아직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진짜 벨리안느가 저기 근처에 있을 확률 또한 크다고 보고 있어.”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엘제어는 곧 있을 벨리안느와의 마법전을 위해서 지금 공격이 필요하다는 아르센의 말을 이해했다.


“그렇군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천명이 아니었군요.”


그리고 이어서 그가 마법 연계 또한 언급했단 사실 또한 떠올렸다.


“맞아. 남은 삼천명이 중요하지.”


아르센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하늘을 보던 고개를 돌려 엘제어에게 시선을 주었다.


녹색 빛이 영롱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

투명한 유리알처럼 빛나는 그 눈동자는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너무나 인형다운 눈동자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이천명이란 공격 인원을 결정한 것 또한.


“그러니 한번 지켜보자고. 분명 이 근처에 있을 벨리안느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일행을 구해주는지 말이야!”


이천의 정예 병력을 물리치기 위해선 보통의 마법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었다.

그렇게 벨리안느의 의지와 힘이 담긴 마법으로 마법 연계는 깨질 것이며, 나머지 삼천의 정예병들이 그 새어나온 힘으로 그녀를 압도할테였다.


"더할 나위 없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제 공격이군."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된 것에 만족한 엘제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선제 공격이 시작될 하자르 호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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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2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2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2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30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3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1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8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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