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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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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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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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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DUMMY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밝아 왔으나, 눈알을 굴릴 때마다 느껴지는 뻑뻑함과 온몸을 휘감는 피로감에 에스트 미호크는 한 마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시초의 마을.

따라서 어디로 출근할 필요는 없어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있었으나, 두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아니.. 진짜 이유는 한 가지인가’


에스트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두 가지 생각.


그 중 피를로니아 부단장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은 큰 고민 거리가 아니었다.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사실대로 보고하는 것은 여태껏 지겹게 해왔던 업무와 다를게 없었고, 따라서 그의 잠을 방해한 팔할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미엔 엘리느가 일체주의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가?’


그 경우, 피를로니아 부단장보다 페니탈 사제가 먼저 움직일테고, 그렇게 일체주의 계획이 현실화 된다면 자신에게 좋을것은 없었다.


‘미엔, 아니.. 바르나프 가(家)와는 적대 관계가 될테고, 어쩌면 일체주의 사제들에게도 찍히겠지.

무엇보다 바르나프가 주기로한 책상이 물건너 가는게 너무 아까운데 말이야..’


그 생각에 몸이 절로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 에스트였다.


이어서 막사안의 다른 월영군들이 깨지 않게 옷을 챙기며 다시 고민을 이어가던 순간, 이상하게 뜬금없는 인물의 이름이 떠올랐다.


‘카니엘 시닉스.’


분명 인형 처분에 목숨을 건 그 친구처럼 미엔이 과거에 얽메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하는 기대 때문이리라.


‘잠깐,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기대를 하고 있는거지?’


자신의 잠을 앗아간 생각의 뿌리들이 또다시 멋대로 뻗어 나가자, 에스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든 뒤 재빨리 막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천막 입구를 걷어낸 뒤 맞이한 시초의 마을의 아침 풍경.


수 백개의 막사 위로 동틀녘의 햇살과 새벽 안개가 전투 중이었고, 때문에 꼼짝않는 막사가 마치 열병된 병사처럼, 그리고 맞은편에 솟은 중앙탑이 공격 깃발처럼 느껴졌다.


“자, 그렇다면 이 취약 시점을 틈타 공격을 해볼까?”


그 말과 함께 에스트는 암살자처럼 소리없이 전투지를 가로질렀고, 그 목적지는 다름 아닌 미엔이 머물고 있는 막사였다.


/////


일말의 불확실성도 제거하기 위한 작전.


만일 미엔이 일체주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면, 다시 설득을 해보고 최악의 경우 페니탈 사제와 만나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중앙탑으로 향하는 계단 정면부에 위치한 미엔의 막사까지 거침없이 돌격한 에스트였지만, 막상 입구 앞에 서자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 머무는 막사를 이 시간에 방문하는건 좀 그런가..’


상대가 불을 뿜는 말싸움 실력과 한주먹 할 것 같은 날렵한 체격으로 무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공격자는 잠시 주저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흐음..! 미엔! 잠시 시간 괜찮아?”


주변이 고요한 탓에 거의 외침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


“어제 일 때문인데, 잠시 들어가도 괜찮지?”


재차 이어진 물음에 대답없자, 뻘쭘해진 에스트는 저도 모르게 중앙탑을 힐끗 올려봤다.


이 시간대에 처음보는 중앙탑의 위용찬 모습.

아침 햇살을 머금은듯 표면이 하얗게 빛나는 그 탑은 어쩐지 외날검의 끝처럼 보였고, 그렇게 당장이라도 무언가 배어낼 것만 같았다.


“분명히 들어간다 그랬다?”


그리고 그 검날이 베어낸 것이 자신의 가슴인듯,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낀 에스트는 최후 통첩 후,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 천막의 입구를 재빨리 걷었다.


그녀의 성격을 반영하듯 가지런히 놓여있는 응급 약품들과 간이 침대.

그렇게 천막 입구쪽 병실 공간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으나, 여태껏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던 침실 쪽 천막은 활짝 열려있었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침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간 그는 침구류가 가지런히 정리된 빈 침대와 꽁지만 타고 있는 촛불외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젠장. 난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자신의 기습이 이뤄지기 전.

아니, 타고 있는 촛불로 판단컨데 미엔은 어제밤에 급히 막사를 떠난듯 했고, 그 사실에 에스트는 인생에 손꼽을 정도로 바쁜 오전을 보낼거라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엔의 막사에서 나온 뒤, 곧장 사령부로 향한 에스트는 바쁜 오전을 보낼거란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달랐는데, 자신이 피를로니아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사령부 인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페니탈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바빠 질거란 추측과 달리 사령부는 이미 소란스러운 상태였고, 이에 에스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일이 생겼나?”


말번 시간이었기에 대부분 자신보다 아래 계급이 당직을 서는 가운데, 그나마 돌아가는 상황에 빠삭할 것 같은 작전과의 야묘급 병사를 붙잡았다.


“저희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정찰 나가셨던 부단장님께서 1개 대대 출동준비 명령을 보내오셔서...”


막사 한켠 간이 책상에 앉아 신속하게 이동 명령서를 쓰는 그 병사의 말에는 기쁨이 섞여 있었다.


필시 식수 확보 계획 따위만을 짜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피 끓는 소식에 흥분한 것이리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일한 그 소식에 에스트는 절망감만 느낄 뿐이었다.


“아직.. 부단장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무슨일이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원래 하자르 호수에 배치된 경계 소대를 방문하고 아침에 돌아오실 계획이었습니다만, 이렇게 출동 명령을 내리신 것을 보니...”


“······”


피를로니아 부단장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설명에 자신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음을 깨달은 에스트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령부 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미엔과 페니탈 사제의 계략일까?’


하지만 부단장의 부재는 어제부터였기에 미엔과 페니탈 사제의 합작품이라 하기엔 시간적으로 맞지 않았다.


게다가 미엔이 페니탈 사제와 손을 잡았다고 판단할 증거는 없었고, 때문에 정말 하제르 호수 근처에서 무슨일이 생겼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일단.. 피를로니아 부단장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 다른 병사들을 설득해서..’


아무리 최고 지휘관의 명령 없이 움직일 수 없는게 군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페니탈 사제에 감시 병력 정도는 붙일수 있으리라.


그렇게 이야기속 주인공이 아닌, 그 주변인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려던 순간.


사령부 입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병사가 헐레벌떡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추가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당혹한 기색이 역력한 그 병사는 진정하기 위해 숨을 크게 골랐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듯했다.


때문에 정황 설명은 포기한 그는 명령이라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장을 꺼내었고, 다행히 그 안에 써진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 시간부로... 모든 전투병력 보름달 태세로 대기할 것.”


그 말에 모든 사령부 인원의 움직임은 물론 에스트의 사고 또한 멈췄다.


전투 준비 최고 단계인 보름달 태세.

즉, 이곳에 주둔한 흑표부대 오천명에게 언제든 전투를 치룰 준비를 하라는 명령.


“그 명령서 줘봐! 정말 제대로 내려온게..”


지난 몇 년간 국경 지역에서조차 큰 전투가 없었던 마당에 다름아닌 이곳, 카릿치오스에서 대규모 전투를 준비하란 명령이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흑표 군단답게 명령서를 확인한 뒤에는 일사분란하게 전투 준비를 시작했고, 그 모습에 에스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차선책도 물건너갔군.’


감시 병력을 붙여달란 말은커녕 자칫 사령부 업무에 차출될 것만 같은 분위기.


물론 지금 일어나는 일이 흥미로운건 사실이었지만, 이미 에스트에겐 페니탈 사제와 마력의 눈물이라는 무거운 짐이 주어진 상태였다.


여기에 자신과 함께 그 짐을 나눠들고 있던 미엔의 행방 또한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일은 월영군에 맡길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사령부 막사를 나오게 되었다.


“난 아침형 인간은 물론이고, 주인공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야..”


그럼에도 이야기속 주인공처럼 혼자서 이 역경을 헤쳐나가야함을 깨달은 그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중앙탑을 올려 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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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2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2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2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30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3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1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7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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