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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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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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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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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DUMMY

이렇게 웃어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웃던 벨리안느는 자신의 손에 뭔가 닿는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카니엘이 눈앞에 서있는다는 것과 그가 자신의 손을 살며시 쥐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눈이 휘둥그레질수밖에 없었다.


시원한 호수물 때문에 더욱 또렷하게 느껴지는 카니엘의 온기.

그 따스함에 벨리안느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고, 등을 따라서 강렬한 뭔가가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와 별개로 머리속은 카니엘의 이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온갖 추측과 지난 날의 기억들을 떠올리느라 분주해졌다.


물론 함께한 긴 시간 동안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신체 접촉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칼빈 초원에서 카니엘이 처분한 인형의 일로 울었을 때, 그가 안아준 적이 있었고, 카릿치오스 초입에서 침묵하는 그의 행동을 견디지 못해 자신이 껴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두 일 모두 충동적인 사고라 치부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달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잠시 이렇게 같이 걸어도 되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벨리안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이어진 카니엘의 말.


‘...아!’


그 말에 그가 실수로, 혹은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벨리안느는 생전 처음 느끼는 벅찬 감정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카니엘의 손에 이끌려 물에서 나온 뒤, 호수가를 천천히 걷게 된 두 사람.


별다른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따스한 햇빛,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 그리고 마주잡은 손에서 전달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벅찬 순간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빛을 따라 그림자가 생기듯 검은 과거가 벨리안느의 발목에 서서히 엉켜붙었다.


수 많은 사람에게 상처준 자신이 과연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인형과의 마법연계에 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그리고 대륙의 공적이란 사실을 언제까지 카니엘에게 숨길 것이지?


그 그림자의 음울한 물음에 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긴장하게 된 벨리안느는 저도 모르게 카니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을 느낀 그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그 모습에 되려 숨이 탁 막혀버린 벨리안느였다.


‘...카니엘.. 우리 이대로 도망칠래? 나.. 이자벨 베로에로서 잘 할 테니까..’


그 마음속 외침이 목구멍 끝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잊고 있던자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저기! 뭔가 보이는 것이다!”


검은 머리카락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물귀신처럼 터벅터벅 걸어나온 테일리아는 목표점이 정확하지 않은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큰 탑 같은 것이 보인다니까?”


머리카락을 타고 시야를 방해하는 물줄기 닦고나서야 테일리아가 제대로 된 방향을 가리켰고, 정말로 어떤 건축물 일부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확인한 두사람이었다.


“이자벨.... 저게?”


“..아마 시초 마을의 중심탑 윗부분 같아.”


근 한달 동안 카릿치오스를 헤쳐왔던 지난 여정.

그 끝에서 마침내 눈에 보일 정도로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었다.


“몇 일쯤 걸릴려나?”


카니엘이 호수 반대편에 위치해 거리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그곳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달이 절반 차오를 때쯤이면 도착할 것이다.”


“일주일이라..”


카니엘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붙잡았고, 그 행동에 벨리안느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곳에 도착하면 중요한 일들은 어느 정도 정리되겠지.”


하지만 카니엘은 목적지를 향해 시선을 박아 둔 채였고, 때문에 벨리안느 또한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따르게 되었다.


“그래..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되겠지.”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채, 죄책감 속에서 헤매던 벨리안느에게 이정표처럼 나타난 시초의 마을 중앙탑의 모습.


바로 저곳에서 벨로나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렇게 이자벨 베로에는 대륙의 공적, 벨리안느 이얀이 되어 카니엘 앞에 서게 될 것이었다.


“모든 것이 잘 됐으면.. 정말 모든 것이.....”


그 생각에 벨리안느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문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


그 날밤.

카니엘 일행은 물장난을 쳤던 장소에서 더 이동하지 않은 채, 호수가 인근 숲에서 야영키로 했다.

목적지가 눈에 보인만큼 카니엘은 좀더 이동하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이자벨이 여기서 하루를 머물자고하여 내려진 결정이었다.


덕분에 테일리아는 신나게 헤엄치며 원없이 물고기를 사냥했고, 그렇게 그녀가 잡아온 물고기로 든든히 배를 채운 카니엘과 벨리안느는 어느덧 그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부럽네.”


하루종일 헤엄치느라 지쳤는지 테일리아는 저녁을 먹자마자 잠들어버렸고, 그런 그녀가 살짝 부러워진 카니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탑을 목격한 뒤, 카니엘의 머리속은 온통 앞으로의 일들로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시초의 마을에 도착한다면 테일리아도 이 여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겠지. 오천 명의 흑표부대를 실제로 마주한다면 느끼는 위험의 정도가 다를 테니까.”


“음.. 그럴수도 있겠네.”


“부디 벨로나 단장님이 무사히 도착해 계셨으면.. 우리도 겪었다시피 여기 카릿치오스 지역이 워낙 변덕스러워야지.”


“그녀라면 괜찮을거야.”


“샤즐 사제도 있으니 마법관련 일도 잘 헤쳐나갔을거라 생각하지만... 갑자기 길리아스가 등장한 것도 그렇고, 반역 사제들이 꾸미는 일도 의문스러운 것투성이니.”


“그래..”


스스로도 들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 많아진 카니엘과 달리 상대방은 저녁시간 내내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저.. 이자벨? 무슨일 있어?”


그리고 오늘 하루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 나름의 마음을 전달했던 카니엘로서는 그런 그녀의 표정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


“이자벨! 제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면 안돼?”


“...카니엘, 넌 날 어떻게 생각하길래 손을 잡았던 거야?”


그 말을 기다렸다는듯 이어지는 뜻밖의 질문에 카니엘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앞으로 계속 여정을 함께 하고파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너와 함께 여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데도 괜찮은 거야?”


“.. 그것과 별개로 함께라면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 그럼 앞으로의 일들은 모두 잊은채, 나랑 저 멀리 다른곳으로 떠갈래?”


“.. 떠나다니 어디로?”


“어디든지..이 세상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기어 들어가는 말투로 이해하지 못할 말을 꺼낸 이자벨.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에 카니엘은 그녀가 여태껏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려한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토록 망설이는 걸까?’


수많은 질문과 여러 사건 속에서도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침묵으로만 그 이야기에 반응했던 이자벨의 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변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이자벨.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잘몰라도 무리해서 말할 필요는 없어.”


그 말과 함께 카니엘은 이자벨 옆에 자리한 뒤, 살며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네가 지금 이 순간을 진솔하게 보내고 있다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말에 이자벨의 눈동자가 한번 출렁이는 것은 본 카니엘은 어설프지만 최대한 밝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카니엘의 미소에 벨리안느는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주잡은 두 손에서 느껴지는 카니엘의 진심에서 강한 죄책감이 들었고, 모순적이게도 더할 나위 없는 위안 또한 받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머리속에 떠오른 벨로나와의 첫 만남

정말 죽기 직전까지 쫓긴 끝에서 그녀 또한 자신의 손을 붙잡아 주었었다.


‘아!.. 벨로나와 같은 상흔 가진 카니엘이라면 그녀처럼 날 용서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벨리안느 이얀으로서 카니엘과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만 보낼 수 있다면..’


그 생각과 함께 벨리안느는 짧게 숨을 들여 쉬었다.


“카..카니엘.”


그 첫마디 이후 찾아온 고요한 정적.

풀벌레가 우는 소리와 모닥불이 타닥거리며 타는 소리.

그리고 하제르 호수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물결 소리조차 숨을 멈춘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네 말대로 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진심으로 이 순간을 보내고 있어. 하지만.. 단 한가지.. 한가지뿐이지만 어쩌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것만 빼면..”


벨리안느는 카니엘과 마주보던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이자벨 베로에가 아니라..”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

그럼에도 그 손을 카니엘이 꼭 붙잡고 있었고, 오직 그 힘만 온전히 느끼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의 진짜 이름은... 벨리안느 이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륙의 공적. 그것이여태껏 숨겨왔던 나의 정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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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2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1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2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30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3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1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7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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