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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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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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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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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DUMMY

테일리아가 ‘벨카샤테’라고 지은 일행의 가명.

하지만 첫 만남 이외 가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적이 없어 모두가 그 이름을 정식으로 인정했는지는 미지수였다.


집요한 테일리아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한 사람씩 붙잡고 동의를 얻어낼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맡은 길잡이 역할에 충실할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사냥 솜씨로 별미를 구해오는 등 어엿한 일원으로 행동했는데, 그 놀라운 변화에 대해 카니엘은 샤즐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길을 헤매지 않고 다닐 수 있다니, 축복 그 자체군!”


여정이 이틀째 되는 밤.

숙영지를 정한 뒤 짐을 풀면서, 샤즐 사제는 또다시 입버릇이 된듯한 말을 그렇게 내뱉었다.


그 순간 흡족한 미소를 짓는 테일리아를 본 카니엘은 자신의 추측이 옳았음, 동시에 샤즐이 과연 테일리아를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의문을 가졌을 때,


“샤즐 사제. 그렇게 매번 그렇게 말씀 안하셔도, 제 길잡이 역할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제 그만하시지요.”


뜬금없이 벨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그러자 카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무릎을 치며 큰 소리로 정답을 외쳤다.


“아아. 그런 것이었냐! 사제 영감도 ‘전설의 행군’에 된통 당했던 모양이군?”


“흠. 그럴듯한 이름까지 있는 것을 보니 나만 당했던 것이 아닌 모양일세?”


“이야.. 벨로나의 ‘전설의 행군’은 이십인장 시절부터 유명했지. 특히 초행길도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 무모함은 상관도 못말렸는데.”


“이런, 이런. 월영군 최고 단장이라는 자리가 만든 고집인줄 알았더니 그냥 지병이었구만?”


“혼자 앓는 지병이면 다행이지. 그건 전염병이요, 사제 영감. 함께 걷는 이들의 체력과 영혼을 갉아먹는 전염병.”


“그렇군... 내가 전염병에 걸렸기 때문에 이토록 피곤한 것이었군.”


“... 온전한 지도 하나 없는 카릿치오스에서 헤멘 것이 그리 큰 잘못입니까?”


샤즐과 카를의 대화를 묵묵히 듣던 벨로나가 그렇게 항변했으나 그에 대한 반응은 격했다.


“물론 헤멜순 있지. 하지만 잘못 들어선 길을 만회하겠다고 무리하게 행군하는 것이 문젠거다. 그랬음에도 카니엘 일행보다 늦게 하제르 호수에 도착한건 뭔가 싶지만.”


“······”


샤즐의 말에 입을 굳게 닫은 벨로나를 보며, 카니엘은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또한 ‘전설의 행군’을 겪어봐서 두 사람의 말에 공감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상관이 공격받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덕분이라하긴 좀 그렇지만, 단장님께서 조금 늦으신 바람에 저와 벨리안느가 목숨을 부지했으니 다행인거죠.

특히 벨리안느에게 무슨일이 생겼더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생길뻔 했겠습니까?”


자칫 벨리안느를 죽일 뻔한 카를의 행동을 언급하며 시작된 카니엘의 공격.


“허어.. 내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는데.. 거기, 조용한 아가씨! 멋도 모르고 공격한 점 다시 사죄를 하고.. 그 대신이라 하긴 뭣하지만 경험에서 비롯된 중요한 사실 하나 알려주지.”


하지만 카를은 그 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회피한 뒤, 후미에서 현월수에 걸터 앉은 채 따라오는 벨리안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네 남자친구의 지금 행동. 저렇게 다른 여자를 편들며 감싸는거.. 꽤 위험한 행동이다?”


그렇게 벨리안느에게로 전투가 확전되자 카니엘은 물론 벨리안느 또한 당황하고 말았다.


“..아.. 전 크게 상관 없긴 한데..”


“오! 그런 대답이 먼저 나오다니! 드디어 남자친구라는 단어에 면역이 생겼나보군?”


“아니.. 그게..”


카니엘과 벨리안느에게 너무나 낯설었던 그 단어.


때문에 두사람 모두 공개적으로 그렇게 불리는 것을 굉장히 민망해했고, 카를은 그 점을 공략하여 단번에 카니엘과 벨리안느를 궁지로 내몰았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군요. 짐 정리가 끝났다면 어서 주변 정찰을 하려 합니다만.”


그렇게 당황하는 두 사람을 위해, 정찰 개시라는 카드로 단숨에 분위기를 바꾼 벨로나.


“에이.. 이제부터 재밌는 대화가 이뤄지려는데, 분위기 파악 좀 하지...”


“저희는 여기 놀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분과 실제로 부상당한 사람도 있으니, 정찰을 빨리 끝낸 뒤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백번 타당한 벨로나의 말에 카를은 두 손을 들었고, 그 모습에 한숨을 짧게 내쉰 벨로나는 이이서 벨리안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선 주변 마력부터...벨리안느?”


“...마력감지 범위내 특이사항 없어.”


“좋습니다. 그럼 이번 정찰은.. 저와 카니엘 그리고 테일리아와 카를이 한조가 되어 이동토록 하지요.”


그 명령에 살짝 놀란 반응들.


벨리안느와 샤즐을 제외한 마법 가용자는 벨로나와 테일리아 두 명인 상황.

때문에 주로 테일리아와 카니엘, 벨로나와 카를이 같은 조를 이뤄왔었는데, 이렇게 변화한 것이 나름 신선했던 것이었다.


“여어. 꼬맹이랑 정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가? 기대되는데?”


“한번만 더 꼬맹이라 부르면 저 어둠속에 버려두고 혼자 올것이다!”


그렇게 티격대는 두사람과 달리 카니엘과 벨로나는 묵묵히 떠날 채비를 했고, 준비가 모두 끝나자 벨로나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샤즐에게 시선을 돌렸다.


“샤즐 사제. 그럼 벨리안느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마라. 제대로 된 길잡이 덕에 벨리안느를 업고 뛸 체력은 남아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마력 신호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잠시 뒤 뵙도록 하지요.”


샤즐의 마지막 도발과 그에 대한 벨로나의 반격을 끝으로, 그렇게 정찰조는 숙영지 인근 정찰을 시작했다.


/////////////


벨로나가 직접 고른 숙영지인만큼 주변 환경은 완벽에 가까웠다.

낮은 구릉이 둘러쌓고 있고, 서쪽 구릉을 넘으면 곧장 하제르 호수를 이용할 수 있는 장소.


때문에 구릉에 가려 숙영지의 빛이 새어나갈 염려가 적었고, 좌측에 위치한 하제르 호수로 식수 확보는 물론 호수 방면에 대한 정찰도 필요없게 되었다.


그렇게 나머지 정찰 구역중 테일리아가 내일 이동로를 살필겸 전방을 맡았고, 자연스레 벨로나와 카니엘은 후방을 담당하게 되어 숙영지 뒷편 구릉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상에서 보게된 넋을 잃게하는 노을 풍경.


호수 끝에 걸려있는 태양으로 붉게 물든 호수와 하늘과 그 위로 하얀 별과 달이 수놓아진 밤의 여신의 치마자락이 살포시 내려앉는 광경.


“이 아름다운 순간을 원칙주의자 상관과 함께하게 되어 안타깝겠습니다?”


그 순간 벨로나가 건넨 말에 크게 당황한 카니엘이었으나, 곧 그녀의 입술에 미소가 베여 있는 것을 보고선 적절히 대응할 방법을 찾아냈다.


“음.. 단장님 말에 틀린점이 두가지 있습니다만.”


“그게 무엇이죠?”


“하나는, 제가 전혀 안타깝게 생각치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8소초 망루에서 단장님과 경계를 섰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어 있었습니다만.”


“흠. 그럼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단장님은 원칙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전설의 행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입니다만?”


“큿..흠. 확실히 저도 단장님께서 주도하시는 작전에서 처음 행군할 때 그렇게 생각했지만...”


벨로나가 그 단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에 자칫 웃음을 터트릴 뻔한 카니엘은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글쎄요.. 과연 세상 어느 원칙주의자가 대륙의 공적이라 낙인찍힌 소녀를 탈옥시키고, 일개 병사의 각인진 문제를 위해 제정론을 어기려 하겠습니까?”


“······”


“그러니 단장님은 옳다고 믿는 이상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실 뿐, 원칙주의자는 아닌셈이지요.”


그 말에 벨로나는 좀처럼 보기 힘든 환한 미소를 카니엘에게 지어보였다.


“말씀 고맙습니다. 항상 당신과 이야기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위안을 받게 되는군요.”


이후 다시 정찰을 재개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벨로나가 바람에 흘려보낸 말.


“분명 그런 점 때문에 벨리안느가 당신께 마음을 연 것이겠지요.”


벨로나의 말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카니엘이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벨로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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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2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1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2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29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3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0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7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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