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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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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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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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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DUMMY

바카릿 사제와는 진월대 일층까지였다.

그 거대한 면적과 더불어 사제들의 집무실이자 주거지가 위치한 13층까지 뻥뚫려 있는 층고 때문에 마치 거대한 동굴에 들어온듯한 착각을 주는 공간.


여기에 도착층이 각기 다른 열 여섯개의 계단과 13층까지 직결되는 중앙 계단, 그리고 그 계단 시작점에 위치한 거대한 분수까지.


광활한 공간과 구조물만으로도 진월대를 방문하는 자들을 압도하기 충분했지만, 진월대 일층의 풍경을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존재들이 더 있었다.


바로 짙은 색의 로브를 눌러쓴 수백명의 사제들이 제각기 갈 곳을 향해 유령처럼 소리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승님은 아마 꼭대기 층에 계실 겁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사실.. 근래 스승님을 직접 봤다는 사람이 없긴하지만... 아무튼 저도 일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진월대 1층에 도착하자 바카릿 사제 또한 마치 명령에 따르는 인형처럼 영혼 없는 발걸음을 옮기며 인파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진월대 꼭대기라...”


잠시동안 그런 바카릿 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바르나프는 이내 상층부로 이어지는 16개의 계단중 꼭대기 층으로 직결되는 계단을 올려보았다.

그러다 진월대 1층 모든 곳을 누비는 사제들이 그 계단 근처에는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르나프는 1층에서 느꼈던 불길함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그 뒤의 말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차오른 숨.

말할 힘이 있었다면 분명 진월대 설계자를 대상으로 좋지 않은 말들을 했으리라.


그렇게 설계자에게 진월대를 높게 지은 이유를 따지고 싶을만큼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 층에 도달한 바르나프였으나 고난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혁명당시 부숴진 꼭대기층은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조명이 제대로 달려있지 않아 어둠에 잠긴 상태였고, 여기에 각종 자재들과 도구들이 함정처럼 널려 있었던 것이었다.


“트리스트 사제! 여기 있습니까?”


무턱대고 옮긴 발걸음이 철근에 걸려 넘어질 뻔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외쳐보았으나, 그에 대답해주는 것은 어둠속 빗소리뿐이었다.


“제길....”


결국 다른 방법이 없던 바르나프는 철근 더미를 기어오르다시피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새삼스레 진월대의 그 방대한 크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트리스트를 찾아 헤메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바닥 곳곳이 패여있어 트리스트를 찾기보단 발 밑을 먼저 살펴야했고, 때문에 저 먼치에서 반짝이는 불빛과 사람 윤곽을 뒤늦게 발견한 그였다.


“트리스터 사제?”


“바르나프로군.”


퉁명스러운 말소리에 어둠속 상대가 트리스트임을 깨달은 바르나프는 그 불빛을 향해 다가서면서 또 다른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그 푸른빛은 단순히 주변을 밝히기 위한 등불이 아니라 바닥에 무언가를 새기는데 쓰이는 강렬한 마법 불꽃이었음을.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겁니까?”


“별 것 아니니 신경 끄도록.”


바르나프가 접근했음에도 트리스트는 그 작업이라 불러야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대화를 나누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는지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대화를 나눌 적당한 장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집무실까지 내려갈 생각은 추호도 없군. 그러니 여기서 바로 확인할 사항을 확인토록 하지. 혹시 연방국민총각성화 계획의 진척도에 대해 들은바 있나?”


“다음달부터 월영시를 시작으로 전 연방국에서 진행될 예정이라 바카릿 사제에게 들었습니다만.”


“그럼 그에 맞춰서 신체향상 구슬 생산을 가능한가?”


“마법 치안부쪽 사제들과 협의 중에 있으나 적어도 생산 시설 문제로 지연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군. 그럼 그 일이 네가 없어도 진행될 수 있는가?”


“그렇긴 합니다만..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요?”


그 말에 순간 사제들로부터 배척되는 것을 넘어,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닌지 극단적인 생각까지하게 된 바르나프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뒤에 이어진 트리스트의 말은 바르나프의 그 모든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잘됐군. 그럼 나와 함께 도시 연합으로 순방을 떠나도록 하지.”


“···네?”


“사제들 중에선 도시 연합과 연락책을 가진 이들이 없어서 말이야. 그대도 넌 도시연합과 거래를 하면서 나름의 인맥이 있지 않나?”


“그렇긴 그렇습니다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니, 일단 도시 연합의 어느 도시로 가실 겁니까?”


“우선 퀠른과 알라한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히 힘의 집결을 위해서지.”


예상대로 구체적인 이유를 듣진 못했으나, 도시의 이름과 그 특징을 떠올리자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한 바르나프였다.


대륙의 곡창지대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농업력을 가진 퀠른.

그리고 철광석과 석탄 수출이 주산업인 아라한.


게다가 두 도시 모두 월연방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과 힘의 집결, 즉, 대륙 통일 전쟁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니 답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미 그곳의 성주들과는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바 있으니 네가 추가적으로 할 일은 없다. 이번 방문은 서면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함이나, 그렇다고 공식적인 행차로 보일 필요는 없다. 이해했나?”


“..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출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글쎄.. 앞으로 몇 분뒤면 끝날 것 같은데?”


바르나프는 그때서야 트리스트의 작업에 대해서 신경을 쓸수 있었다.

하지만 새파란 불꽃으로 바닥에 홈을 만드는 그의 작업을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새긴 마법진이라 잘 작동할지 모르겠군.”


그렇게 마침내 불꽃이 사라지고 바닥에 어둠이 내리자, 트리스트가 툭 뱉은 한 마디.


“지금.. 마법진을 새기신 겁니까?”


하지만 놀라서 되묻는 바르나프의 질문에 트리스트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다음에 할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발 밑에서부터 푸른빛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그가 작업한 홈을 따라서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푸른 빛은 이내 진월대 꼭대기 층을 전체를 뒤덮었다.


그때서야 진월대 한층 면적의 어마무시한 마법진이 새겨졌다는 것을 깨달은 바르나프는 그 진의를 알기 위해 트리스트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트.....트리스트 사제?”


꼭대기 층을 가득 채우는 마법진 따위는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트리스트의 모습.


바닥에서 올라오는 푸른 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뱀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마법진이 그의 뺨과 턱, 그리고 목까지 빽빽히 들어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월영시를 뒤덮고 있는 어둠 그 자체가 된듯한 그의 모습에 놀란 바르나프는 뒷걸음을 치다 마법진의 홈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부끄러움도 잠시, 차라리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참에 지난 몇 달간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부딫쳐보기로 했다.


“..트.. 트리스트 사제...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무슨 질문이 그렇지?”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당신의 정체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작은 단서하나 나오지 않더군요. 마치 월연방국의 사제로 등장하기 그 이전에는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오히려 알아냈다고하면 내가 다 놀랬겠지.”


심각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는 바르나프와 달리 트리스트는 한껏 여유로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난 이 세상 그 어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틀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틀.....?”


“바르나프. 너는 사회가 진화한다고 믿는가? 지금 월연방국은 어제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무희의 발걸음처럼 그저 시작과 끝을 찾지 못해 선회하고 있는가?”


갑작스러운 그 난감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댈 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뿐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장되는 방향으로 조금씩 발달해왔지 않습니까?”


그 대답에 트리스트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태껏 단 한번도 듣지 못한 트리스트의 웃음소리에 그 넓디 넓은 공간에 울려퍼지자 바르나프는 소름이 쫙 돋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네 말은 제정론이 사라져 활개를 치고다니는 지금의 사제들이 들으면 좋아하겠군. 마치 그것이 일체주의를 위한 것인 마냥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미개한 자들 말이야.”


웃음 소리 뒤에 이어진 말 또한 바르나프가 최초로 듣게된 그의 감정이 실린 말이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그 감정이 분노라는 점에서 바르나프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도대체.. 일체주의가 무엇입니까? 아니.. 대체 당신은 이 월연방국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인간이 각자의 틀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라면, 일체주의는 그 틀을 확장하는데 그 진정을 목적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바르나프. 너는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위헤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지?”


마력을 감지하지 못하는 바르나프조차 온몸으로 그 기운을 느낄 정도의 마력이 집중된 상태였다.


때문에 자칫 자신이 월광국의 고위사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단지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마음 뿐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제게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겁니까?”


“너는 변화된 세상에서 꽤 큰틀을 가질 것이며, 그 틀을 어떻게 쓸지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내가 보았던 것, 보는 것, 그리고 보게 될 것, 그 모든 것을 보게 될 테니 그 후에 판단하여라, 개별적 인간이여.”


그 말과 함께 진월대 꼭대기 층과 트리스트는 한몸이나 된 듯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작가의말

동 깊은 상흔의 잔향의 시리즈물인 강림의 잔향 이야기에 맞춰 진행하느라 연재가 너무 늦어졌군요...나태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부디 두 작품 모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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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30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2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3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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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8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30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4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1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8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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