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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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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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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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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DUMMY

"그럼 저흰 출발해 보겠습니다. 테일리아, 나머지를 잘 부탁드립니다.”


동쪽하늘에 한줌의 햇빛이 뿌려지자, 벨로나와 카를 그리고 카니엘은 계획대로 길리아스 진형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검은 갈퀴는 놔두고 가는거냐?”


그에 맞춰 테일리아와 벨리안느 또한 일어나 준비를 돕던 중, 혼자만 ‘검은 갈퀴’라 부르는 현월수를 힐끔 쳐다본 테일리아였다.


“샤즐 사제도 조종 가능하니 벨리안느를 태우고 이동하는데 문제없을 겁니다.”


“그.. 그정도까지 몸상태가 안좋은건..”


“혹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벨리안느.”


그렇게 짧은 몇 마디가 오간 뒤 벨로나 일행은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고, 테일리아와 벨리안느는 뭔가 어색하지만 제대로 배웅을 해주었다.


“무사히 다녀오는 것이다!”


“벨로나, 무슨일 생기면 꼭 마력 신호를 줘! 카니엘도 조심하고!”


그 외침에 카니엘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벨리안느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 숲 사이로 사라지자, 입가의 미소가 지워지더니 입술마저 꾹 깨문 그녀였다.


자신의 뒤를 언제나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카니엘을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걱정속에서, 벨로나와 함께하며 생기는 위험들 앞에 카니엘이 나서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저 내 옆에 있어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


그렇게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에 당황하던 벨리안느는, 이내 그 생각을 접고 임시 거처를 찾아 이동하기 위해 짐을 꾸리는데 집중했다.


“일단 동쪽 구릉을 넘어서 적당한 장소를 찾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준비를 하는 거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시간으로, 근처 하제르 호수에서 밀려온 물안개가 자욱한 상황.


때문에 으슬으슬한 공기가 깔려있어 침낭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다른 두 소녀와 달리 샤즐 노리탄은 그 고역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여기에 머물도록 하지. 어짜피 벨로나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그건 길잡이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어짜피 오늘 이동해야 할 길로 가는거니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상대가 카니엘이나 카를이었다면 분명 더 심한 구박을 했을테리라.

하지만 용케도 꾹 참은 테일리아는 대신 침낭을 덮어쓴 샤즐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상당한 부담을 줬고, 결국 샤즐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흐아암. 정말 벨로나의 말을 잘따르는 길잡이일세. 이러다 카니엘처럼 좀 있으면 그녀를 위해 목숨도 걸겠어?”


샤즐이 기재개를 키며 스쳐지나가듯 한 말.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테지만, 좀전의 불안감 때문인지 그 말은 자욱한 물안개처럼 벨리안느의 마음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밤의 사냥꾼은 오직 자신의 사냥감을 잡기 위해 목숨을 걸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럼 지금 가야할 길이 네 사냥감을 쫓기 위한 길인건가?”


“..내 사냥감은...”


“설마 벨로나의 목표가 네 목표라 말할건 아니겠지?”


“이.. 늙은 잔해가!... 그럼 혼자 남아 있던가!”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제대로 꼬투리가 잡힌 테일리아는 그렇게 소리를 꽥 내지른 뒤, 짐을 들고 쌩하니 내달리기 시작했다.


“테.. 테일리아!”


돌발 행동에 놀라 이름을 불렀으나 이미 그녀는 안개 사이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렇게 벨리안느가 외견과 어울리지 않게 얌전히 앉아 있는 현월수와 다시 잠든듯 누워있는 샤즐 사이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길 수분.


영혼이 빠져 나가는듯한 신음소리와 함께 샤즐 사제가 몸을 일으키며 떠날 채비를 시작했고, 그에 맞춰 현월수 또한 검은 갈기를 한번 털면서 일어났다.


“자, 우리도 가도록하지. 저 쪼그만 녀석보다 나중에 벨로나한테 들을 잔소리가 감당 안되니...”


그 말에 함께 이젠 익숙하게 현월수에 올라탄 벨리안느는 재빨리 마력 감지를 통해 테일리아의 위치를 파악했다.


다행히 그녀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동쪽 구릉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상황.


때문에 그녀 뒤를 쫓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샤즐과 둘이서 동쪽 구릉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잠에서 덜깨서인지 샤즐은 말이 더욱더 없었고, 때문에 이 침묵을 깰 사람은 자신뿐이라 생각한 벨리안느는 문득 마음에 걸렸던 그의 말을 떠올렸다.


“사.. 사제님. 혹시.. 카니엘이 지금처럼 행동한 적이 또 있었나요?”


“음..? 지금 처럼이라니?”


“.. 아까 벨로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뭐...그녀의 명령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해도, 카니엘만큼 특이한 경우는 드물어서 한 말이네만.”


“특이한.. 경우요?”


“월영시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감옥에 갇힌 벨로나를 카니엘이 구해낸 이야기.. 듣지 못했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카빈 초원 위에서의 대화.

그때 카니엘은 그의 형과 벨로나의 동생이라는 공통된 상흔에 동질감을 느껴 벨로나를 구해내어 함께 월영시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정말 그것뿐일까?’


월영시에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금은 굳이 벨로나를 따라나설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또다시 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 카니엘과 벨로나 사이에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죠?”


“음?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아.. 죄송해요. 그 질문.. 그냥 잊어주세요.”


자신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그 자체에 당황한듯한 벨리안느의 표정.

그 표정에서 그녀가 질문을 한 이유와 어떤 감정을 읽어낸 샤즐은 숲이 떠나가라 껄걸 웃었다.


“뭐냐. 무정(無情)의 마법사라 불리는 너가 질투라도 하는거냐?”


“그.. 그럴리가요. 전 그냥 카니엘이 위험을 무릅쓰고 벨로나를 따르는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에요.”


“허허. 네가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건 또 처음인거 같은데? 그만큼 카니엘이 함께 나선 이유가 중요한가 보군?”


벨리안느의 반응이 재밌어 짖궂은 말을 이어가던 샤즐은 어느정도 충분히 즐기자, 미안한 마음에 충고 하나를 해주려 했다.


“뭐.. 아까 쪼그만 녀석에겐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벨로나를 따르는 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 나 또한 월연방국 수복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벨로나에게 맡겨 볼만하다고 생각하니까.”


자존감이 높다 못해 오만하기로 유명한 월연방국 고위 사제가 그렇게까지 말하며 내린 결론.


“그러니 카니엘도 나처럼 자신의 목표를 위해 그녀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일 수있다는 말이다.”


“······”


언젠가 들었던 카니엘의 목표.

인형 파괴자라 불리며 인형에게 복수하는 삶을 목표로하는 카니엘이 같은 목표를 지닌 벨로나와 함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긴했다.


“그러고보니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군.”


그렇게 복잡했던 마음이 어떤 결론 향해 치닿던 찰나 이어진 샤즐의 질문.


“인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죽고사는 녀석들이 네 주변에 투성인데, 넌 아무렇지 않는거냐?”


“저 또한...”


같은 목표를 가졌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자신이 벨로나는 물론 카니엘의 목표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인형에게 복수를..?’

그 말에 불쏙 아르센과의 기억들이 떠올랐고,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복수와는 조금 거리가 먼 복잡한 것이었다.


“뭐냐? 설마 아직도 정리가 안된거냐?”


“아니에요! 다만.. 다만.. 제가 어떤 목표라는 걸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그랬다.

여태껏 살아남는 것만 신경을 썼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고, 때문에 기억속 단편적인 감정에 휘둘렸던 것이었다.


“안타깝구만. 너 정도 마법 실력을 가진자가 그저 시류에 몸을 맡길 뿐이라는게. 물론 그랬기 때문에 자네의 죄에 대해 내가 큰 반감이 없긴 하지만서도...”


“제가 무혼반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닌가? 대륙의 최고의 마법사여? 그대가 정녕 인형들과 함께 인간 세계를 멸하고자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나?”


어느덧 구릉의 정상에 오른 상황.

출발할 때보다 높게 떠오른 선명한 태양은 되려 더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렇게 앞서가던 샤즐의 그림자 뒤에 있던 벨리안느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할때.


“그리고.. 반대로 자네가 무혼반란을 막고자 했다면 역사가 또 어떻게 흘러갔을까?”


샤즐의 그 물음이 벨리안느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원죄를 움켜쥐고, 쥐어짰다.

그렇게 터져나온 알수 없는 액체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눈물이란 이름으로 눈에서 스며나오자 벨리안느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가지기엔 그때 당시 너무나 미숙했던 것을 이해한다, 벨리안느 이얀. 하지만..”


그런 벨리안느 앞으로 뒤돌아선 월연방국 고위 사제.


월연방국을 건국하고, 인형들의 반란과 월연방국 역사 최초의 반란을 겪으며 수많은 삶과 죽음을 지나쳐온 그가 마찬가지로 많은 죽음을 목격한 소녀 앞에 섰다.


현월수의 높이 때문에 같은 눈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된 두사람.


그러다 샤즐은 마치 꼬마아이를 보며 짓는 웃음을 내비친 뒤, 벨리안느의 머리 위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의지대로 발을 내딛을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나? 혼자서 역사를 써내려 갈 소녀여.”


그 말에 눈물을 훔친 벨리안느는 샤즐 노리탄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곤 입술을 꽉 깨문채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니엘 곁에 함께 있을 어엿한 인간으로서 그가 바라보는 방향과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면 된거다. 그보다 모습을 감춘채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데.. 어서 따라가도록 하지.”


샤즐 노리탄이 알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벨리안느가 테일리아의 마력을 다시 감지하려 능력을 확대한 순간.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벨리안느는 자신의 맹세를 시험하는 순간이 곧바로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능선 아래 테일리아의 마력과 마력감지의 동남쪽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벨로나의 마력.


여기까지는 이전과 다를바 없었지만, 문제는 마력감지의 서쪽 끝자락.

즉, 지금 위치의 정반대 쪽에서 무수히 많은 마력들이 남쪽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숫자를 헤아리기 불가능할 정도로 군집을 이룬 마력들과 신체향상만큼 빠른 속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라 생각한 벨리안느는 두번 생각할 것 없이 신체향상을 한 뒤, 능선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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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1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8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29 0 11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1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5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0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38 0 9쪽
147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1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2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0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29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3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1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0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5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0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29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7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2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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