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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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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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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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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DUMMY

시초의 마을 중앙탑 뒷편에 위치한 월영군 숙영지 중 중앙탑과 가장 가까운 막사 하나.


월영군 규정상 4명이 한 막사에 생활해야하나, 미엔 엘리느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랬듯 혼자서 막사 하나를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짐을 놓을 공간과 병사들의 진료 장소까지 마련하고, 별도 가림막으로 분리된 침소까지 가질 수 있게 된 그 특권은, 그러나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본디 수송부쪽 여군과 함께 배정되는 것을 혼자 쓸수 있게 힘썼다고 주장하는 에스트 미호크가 그 댓가라며 틈만나면 막사에 들러 쉬어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페니탈 사제와 뭔일 있었어?”


따라서 페니탈과의 만남 이후 막사로 돌아온 미엔이 진료용 간이 침대에 누워 있는 에스트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아야하는 것 또한 그 대가의 일부라 할 수 있었다.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를 물어보던데..”


“..그래서?”


“월영시로 돌아가는 것말고 없다고 했지, 뭐.”


퉁명스러운 미엔의 대답에 에스트는 자세를 고쳐 앉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분명 무슨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모습을 보자마자 ‘왜 여자 혼자 머무는 막사에 멋대로 들어오냐’라고 불을 뿜지 않은걸 보면...”


“그래봐야 ‘땀내나는 남자 4명이 머무는 막사에서 편히 쉴수 있겠냐’라고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다음날 또 다시 누워있을게 뻔하니 말해서 뭐해.”


“하하. 이번엔 땡입니다요. 난‘눈씻고 찾아봐도 칸타 사제의 흔적을 찾지 못했는데 어쩌지?’라고 말하기 위해 온건데?”


“··· 정말이야?”


“짜잔. 마법 같이 사라졌죠? 아니... 진짜 마법으로 어떻게 처리를 했나? 그런 치밀함을...”


에스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듯하다 고개를 들어 미엔을 바라보았다.


“혹시나해서 물어보는 건데... 방금전 대화에서 페니탈 사제가 살인 자백을 하진 않았지?”


“잠깐 칸타 사제 이야기가 나오긴 했는데..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일처럼 애매하게 답했어.”


“정말 대단한 작자네. 뭐.. 어짜피 살인 증거가 없다해도 상관은 없다만.”


“그게.. 무슨 말이야?”


“아.. 네 말대로 바카릿 사제가 살해당한 증거를 확보하고 움직이려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럼..?”


“설득 대상은 벨로나 단장님의 오른팔인 피를로니아 부단장.

그냥 월영시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과 벨로나 단장님이 여기로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거라 생각하는데?”


“······”


“그래서 오늘 아침에 찾아뵈려 했지만 아쉽게도 지금 부재중이더라. 어젯밤 급하게 정찰을 떠날 일이 생겼다나 뭐라나..

내일 오후에나 복귀 할 예정이라 하던데, 그 때 맞춰서 미엔 너도 같이...어, 음.. 미엔?”


재빠르게 말을 이어가던 에스트는 갑작스레 어두워지는 미엔의 표정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무슨일이 있었군?”


그 드문 반응에 처음 가졌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에스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미엔을 추궁했다.


“뭐..페니탈 사제가 협박이나 회유라도 했나?”


“아냐.. 그저..”


“그저?”


“흑표 군단을 통해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싶어서..”


“하아.. 분명 오늘 새벽까지만 하더라도 일단 페니탈 사제를 저지하자고 했었잖아?”


칸타 사제의 죽음을 목격하고, 새벽녘의 빛을 받아 지하 수로에서 겨우 빠져나오는 도중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아직 월영시에서 일어난 일을 파악 중인 피를로니아에게 일체주의의 만행을 모두 털어놓고, 반란의 주범이자 칸타 사제를 살해한 페니탈 사제를 제압하자는 의견.


“하지만.. 그렇게 이곳 일을 방해한 다음은? 그렇게 되면 월 연방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건데....

고작 반쪽짜리 군단으로, 그것도 월영시로 돌아갈 보급밖에 남지 않은 군대로 대체 뭘 어쩌겠다고?”


“······”


물론 그 문제를 생각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감당해야할 일은 아니란 생각에 크게 개이치 않는 에스트였다.

때문에 좀더 개인적인 것, 갑작스레 미엔의 각오가 변한 사실에 욱하고 드는 이유모를 짜증에 집중한 그였다.


“그건 흑표 군단을 이끄는 사람들이 고민할 문제고, 우린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만 전달하면 되는거야. 그게 뭐가 어렵다고 이러는거지?”


“그 말로 벌어질 일들이 감당이 안되니까 이러잖아.”


“누가 너더러 감당하래? 누가 들으면 너가 흑표군단 군단장이나 부단장인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우리 행동으로 흑표군단이나 월연방국 전체에 어떤 영향이..”


“월 연방국 전체라고? 바르나프 가(家)가 받을 영향이 아니고?”


결국 건드리고만 민감한 이야기.


이렇게 함께 행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두 사람의 소속은 엄연히 달랐고, 무엇보다 각 소속에서 맡은 일에 대한 마음가짐 또한 첨예하게 달랐다.


“마력의 눈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방해받으면 일체주의의 계획 또한 틀어지고, 결국 일체주의와 함께하는 바르나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갈까봐 이러는거 아냐?”


“······”


“대체..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리 은인인 바르나프의 일이라고 해도 네 모든 가치관까지 무시할만큼 중요한건가?”


“..그러는 에스트, 넌! 이곳에서 일체주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 네 역할이야?”


무엇이 옳은지 혼란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던 미엔은 반대로 언제나 모든 것에 냉소적이며 무관심한 에스트가 이런 행동을 하는 그 이유를 물었다.


“역할?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게. 나는 변화 속에서 한 몫 잡아보려는 바르나프나, 일체주의에 맞서 월연방국을 수복하려는 벨로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

왜냐! 내 스스로가 그럴 깜냥이 안된다는걸 너무나 잘알거든.”


위로 오르고 싶었다고 말했던 페니탈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


“물론 그들의 원대한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동경도 해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과 생각까지 버려가며 그 뒤를 추종할 생각은 죽어도 없어.”


“네 생각이라는게 그럼..?”


“목적을 위해 사람을 가차없이 죽이는 작자들이 더 큰 힘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나서지는 못해도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해보자는 생각.”


머뭇거림 없는 에스트의 말에 미엔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이토록 심란한지를 깨달았다.


바르나프 가(家)를 위한 길 말고는 다른 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지난날.


그렇다고 에스트처럼 어떤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바르나프를 위해 행동한 것도 아니기에, 그 길에 대해 의심이 들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것이었다.


“그래서, 네 결론은 뭔데?”


그렇게 마음속이 복잡한 이유는 알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믿을지 여전히 확신이 없었기에 에스트의 따져 묻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는 미엔이었다.


“···솔직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모르겠어.”


그 말에 문득 에스트의 머리속에 떠오른 어제밤의 대화.


편한 일을 찾아 월영군 사령부에 입대하고, 개인적인 흥미로 이곳까지 오게된 자신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해왔다는 그녀.


“그러니 조금만 시간을 줘. 내일 피를로니아 부단장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마음을 정할테니까.”


“······”


‘과거에 새겨진 상흔의 잔향에서 미엔 또한 벗어날수 없는 것인가?’


그 생각에 또다시 이유모를 짜증이 밀려온 에스트는 평소답지 않게 강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어떤 결정을 하던, 난 내일 피를로니아 부단장님에게 모든걸 말할거야.

최종 결정은 부단장님이 하실테지만... 그의 성품상 아마 이곳에서 페니탈 사제를 저지하려 하시겠지. 그러니 잘 생각해봐.”


어떻게 보면 최후 통첩과 같은 말.

하지만 그 말에도 미엔이 확답을 주지 않자, 마음이 심란해진 에스트는 결국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그렇게 거침없이 막사 입구까지 걸어간 에스트였으나, 이내 그 밖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며 한숨을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실질적인 모든 것은 피를로니아 부단장의 결단에 달려있는 현재 상황.


때문에 미엔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대세에 큰 영향을 없을테지만, 이상하게도 에스트는 그녀가 자신과 같이 행동하길 바라고 있었다.


“네 삶과 전혀 다른 삶은 살아와서 잘 모르긴 하지만..”


그런 바람 때문인지, 에스트의 입밖으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네가 항상 모든 것에 당당히 맞서 왔던 것처럼.. 부디 네 과거의 상흔에서도 벗어날 수 있길 바래.”


자신이 한 말이라곤 전혀 생각 할 수 없는 그 말에 스스로 놀란 에스트는 당황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며, 해질녘 노을을 따라 자신의 막사를 향하 나아갔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 무관심했던 자신이 이토록 미엔의 일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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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0.22 42 0 9쪽
15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4) 21.09.28 29 0 10쪽
15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3) 21.09.16 30 0 11쪽
15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2) 21.09.10 29 0 11쪽
15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 21.09.06 32 0 9쪽
150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5) 21.09.01 36 0 11쪽
149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4) 21.08.27 31 0 8쪽
148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3) 21.08.27 40 0 9쪽
»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2) 21.08.13 33 0 9쪽
146 [3권] 12장 합수(合水) 1화_ 구심력 (1) 21.08.09 31 0 9쪽
14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9) 21.07.30 35 0 15쪽
14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8) 21.07.26 25 0 9쪽
14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7) 21.07.21 28 0 11쪽
14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6) 21.07.16 27 0 8쪽
14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5) 21.07.14 32 0 9쪽
14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4) 21.07.14 26 0 8쪽
13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3) 21.07.07 27 0 9쪽
13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2) 21.07.05 30 0 10쪽
13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3화_ 진실(1) 21.06.30 34 0 10쪽
136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5) 21.06.24 33 0 8쪽
135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4) 21.06.15 30 0 11쪽
134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3) 21.06.11 31 0 8쪽
133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2) 21.06.11 26 0 8쪽
132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2화_ 고해(1) 21.06.10 29 0 7쪽
131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5) 21.06.09 31 0 10쪽
130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4) 21.06.08 32 0 8쪽
129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3) 21.06.07 30 0 9쪽
128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2) 21.06.04 28 1 9쪽
127 [3권] 11장. 시초의 마을_ 1화 과거의 유물 (1) 21.06.02 33 0 11쪽
126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2) 21.05.31 3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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