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또롱 님의 서재입니다.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라이트노벨

이또롱
작품등록일 :
2020.11.06 08:56
최근연재일 :
2020.12.18 12: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32,831
추천수 :
420
글자수 :
359,540

작성
20.12.11 12:20
조회
270
추천
6
글자
19쪽

38화. 업계 1위로의 도약(1)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졸작이지만 즐겁게 읽어주시길...




DUMMY

8월 둘째 주.

동아리 회원들을 데리고 회의 차 남동공단으로 향했다.

스페인에서 산 기념품들을 나눠주자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누구랑 갔는데???”

“그냥... 나 혼자...”

“말도 없이 혼자? 야, 치사하다!”


은재는 ‘스페인이라면 나도 랩실 가는 거 잠깐 쉬고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었다’며 혼자 간 사실에 분개해했다.


“맞어. 혼자만 가고 너무해ㅠㅠ”

“부럽다! 나도 스페인 가보고 싶다...”


다른 애들도 다들 부러운 모양.


“그렇게 됐다. 갑자기 결정된 거라, 얘기할 틈이 없었어. 대신 기념품 사왔으니까 한 번만 봐줘~”

“이거 가지곤 약한데... 이쁜 스페인 여자 한 명 소개해주면 용서해줄게.”

“은재 오빠 여친 있잖아! 키 크고 핸섬한 남자로 소개해주세요.”

“우, 우리끼리 해외여행가도 괜찮을 텐데.”

“연수 오빠 말이 맞아. 다음엔 형우 오빠 빼고 우리끼리 함 놀러가요.”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지. 형우 오빠 먼저 우리 쏙 빼놓고 간 거잖아! 그러니까 다음엔 형우 오빠 빼고 우리끼리 가야지 공평하지. 수아야, 그렇지?”

“으,응...”


수아도 말은 못하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대충 짐작한 혜나만 수아와 나를 보며 묘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8월 중순이라 남동공단은 찌는 듯이 더웠다.

아스팔트에서 지열이 올라오는 것이 마치 불가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손에 쥐고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데, 강대표의 회사인 신영 F&S는 다른 의미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방문했던 것 중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느낌이었다.

저 앞에 손팀장이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손팀장님, 안녕하세요?”

“아,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손팀장님이 어쩐 일로 밖에까지 나와 계세요?”

“보시다시피 LED 패치 3차 생산분을 트럭에 싣는 걸 도와주고 있습니다. 생산직원들이 바쁜데 저라도 나서서 도와줘야겠다 싶어서요. QC실에 처박혀 있는 것도 답답하구요.”


손팀장은 흐르는 땀을 슥 닦으며 밝게 웃었다.


“2차 생산분이 모두 나갔어요?”

“네. 매진입니다. 밀려오는 주문을 주체 못할 정도예요. 그래서 서둘러 생산량을 확장했구요.”

“그것 참 좋은 소식이네요!”


연휴 이후 첫 방문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되자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우리들은 손팀장에게 인사를 한 후 사무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서 본 영업관리 김팀장은 그새 늙어보였다.


“팀장님, 그새 살이 빠지셨어요.”

“말도 마십시오.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연휴도 반납하고 하루종일 회사 일에 매달려야 했거든요.”

“저런! 김팀장님이 가장 수고해주셨네요.”

“공장 직원들이 애쓴 거에 비하면 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역시 김팀장님 멋지셔!”


혜나가 엄지를 척 올렸다.

“그래, 휴가 동안 다들 잘 쉬었나요?”

“네. 태안의 해수욕장으로 놀러 갔어요.”

“전 그냥 집콕.”

“형우 오빠는 우리 몰래 스페인에 놀러갔대요!”


혜나의 고자질에 쓴웃음이 나왔다.


“스페인이라, 좋으셨겠네요.”

“뭘요.”


나는 어쩐지 열심히 일한 김팀장에게 미안해져서 얼른 화제를 바꿨다.


“자, 그럼 오랜만에 회의를 시작해볼까요?”

“네!”

“오면서 손팀장님께 들었는데 2차 생산분이 모두 판매되었다면서요?”

“네. LED 패치는 2만세트 모두 완판 되어 누적 판매량이 2만 6천 세트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누적 매출은 LED 패치 62억에 LED 마스크 5억으로 도합 67억을 넘어섰습니다.”

“좋군요.”

“TV광고와 네이* 광고를 동시에 진행한 결과 쌍끌이 효과를 불러일으켰고, 그 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광고 및 SNS에서의 마케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출 견인 요인들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셨습니까?”

“네. TV 광고는 광고 실시 전 각 유통 채널별 판매량과 TV 광고 실시 이후의 유통 채널별 판매량의 변화를 파악한 결과, 평균 14%의 매출 기여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이는 각 구매자의 구입 경로를 파악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산출해낸 것입니다. 저번 주에는 최고 약 18%까지 매출 기여도가 올라갔었는데 지난 주 부* 측에서 셀라턴 패치 TV 광고를 시작하면서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네이* 광고는 LED 마스크 때보다 광고 효과가 더욱 늘었습니다. 배너 클릭수 일 평균 2만 4천건이었고, 그 중 실 구매 비율 2.1%로 대략 하루에 500세트가 판매되었습니다. 네이* 광고를 통한 매출은 3주간 약 25억 정도로 LED 패치 총 판매액 62억의 40%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광고게재 기간이 1주간 더 남아있기 때문에 매출 기여도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주 좋네요! 네이* 광고를 더 연장하는 건 어때요?”


준수가 의견을 냈다.


“그건 OLED 패치 출시와 맞물려 있어서 당장 결정하긴 어렵고 이따 OLED 패치에 대해서 논의할 때 얘기해보자. 아무튼 고무적인 결과인 것만은 틀림이 없네. 그럼 매출 기여도 비율 중에서 나머지가 차지하는 것들은요?”

“나머지 경로들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말씀하신 대로 SNS채널에 제품 홍보를 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남친 만나기 십분 전>이라는 컨셉으로 스토리텔링을 한 이미지 컷들을 올린 결과, ‘좋아요’나 팔로우 수 등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패치용으로 증정하는 미니백에 대한 호응이 대단히 좋아서 그 덕도 톡톡히 봤구요. 실제 구매평을 살펴본 결과, 구매평의 30% 정도가 미니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0% 정도는 컬러풀한 색상과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 평이었구요. 그 외에 너튜브 크리에이터 콘텐츠들은 기본은 해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의 셀라턴 패치와 비교해보면 시장 점유율은 어떻습니까?”

“월 판매량 등 아직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아서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50대 50으로 점유율이 비슷하거나 근소하게 우리가 앞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업계 1위인 셀라턴과 판매량이 비슷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니에요?”

“그건 아냐. 셀라턴과 비교를 하려면 LED 패치뿐만 아니라 LED 마스크 판매량과도 비교해봐야 할 거야. 팀장님이 말씀하신 건, LED 패치만을 대상으로 말씀하신 거여서 전체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혜나의 주장에 준수가 한 마디를 했다.


“준수 말이 맞아. 물론 혜나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 업계 하위였던 우리가 LED 패치로 인해 업계 1위와 대등한 위치에 오르게 됐으니까. 하지만 난 사실 그 보다 더 높은 위치를 원해. 장기적으로 신영 F&S가 부*를 제치고 압도적인 업계 1위로 올라서길 원한다고.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거고.”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팀장님, 고객들의 불만사항은 없었나요?”

“발열 문제가 붉어지고 있습니다. 게시판 댓글의 상당수에서 패치가 너무 뜨겁다는 불평을 볼 수 있었습니다. 8월이어서 가장 더운 철이라는 계절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제품 자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거여서...”

“예상한 반응이 나왔군요.”

“그렇습니다.”

“음... 역시 OLED 출시를 서둘러야겠어요.”


순간 준수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2개월 만에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게 너무 시기상조 아닐까요? 지금도 LED 패치가 잘 팔리고 있는데 굳이 OLED 패치를 출시해서 LED 패치 판매량을 깎아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가 돼요.”

“OLED 패치 출시를 늦추자는 거야?”

“응.”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난 오히려 지금 OLED 패치를 출시해야 한다고 봐. 준수 너도 알겠지만 시장에는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해. 시장의 흐름을 살펴서 가장 적당한 시점에 제품을 출시하는 타이밍. 물론 OLED를 6개월 후나 1년 후 등 충분한 텀(term)을 두고 출시할 수도 있어. 그런데 만일 OLED와 유사한 성능을 가진 경쟁제품이 등장해버린다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LED 패치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있어? 게다가 지금은 경쟁제품이 셀라턴 패치 하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L* 프로엘이나 다른 중소기업들 제품들도 쏟아져 나올 거야. 그 제품들도 우리와 비슷한 디자인과 성능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지, 발열 문제 등 기존의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한 신제품들이 나와줄 거야. 하다못해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한 제품들이 나올 거라고. 게다가 LED와 OLED 기술은 한 끗 차이야. LED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금방 따라올 수 있다고. 그러니 그 전에 OLED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을 선점해야 해! 또 한 가지는 우리 회사 제품들끼리 충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반대로 제품 라인업이 다양해지니까 소비자들의 구매성향이 충돌되는 경우가 드물어질 수 있어. 그러니까 고가의 가격에 최고의 효과를 누리고 싶다면 OLED, OLED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저렴한 LED 패치, 집에서만 간단하게 쓰고 싶다면 LED 마스크 이런 식으로. 그래서 OLED 패치의 가격을 LED 패치보다 30% 업한 가격대로 설정하려는 거고.”

“그러니까 OLED 패치, LED 패치, LED 마스크로 각기 제품의 특장점을 살려서 밀자는 말인가요?”

“응. 그렇게 하면 구매성향이 충돌하는 경우도 줄어들고 반면 고객의 선택의 폭은 넓어지는 효과가 생길 거야.”

“그렇구나!”

“음... 듣고 보니 형 말이 맞네요.”


준수가 수긍하며 한 발 물러섰다.

나는 김팀장에게 다시 물었다.


“팀장님, 3차 생산분은 총 몇 세트죠?”

“4만 세트입니다.”

“그전 생산량에 비해 두 배가 늘었네요.”

“네. 야간 근무조를 따로 뽑고, 기존 근무시간 연장을 통해 수량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생산직원분들이 많이 노력해주셨네요. 대표님께 건의해서 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가 나갈 수 있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팀장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웃었다.


“그런데, 패치에 들어가는 미니백과 관련해서 관련 업체들과 미팅을 하다가 좋은 물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김팀장은 쇼핑백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리더니 그 속에서 미니백 하나를 꺼냈다.

새하얀 색상의 원통형 바디에 바디 한 가운데 로고만 들어가서 아주 심플한 백이었다.

원통형 바디 위에는 역시 흰색으로 처리된 가죽 손잡이가 달려 있고, 어깨에 크로스로 멜 수 있는 끈도 있었다.

미니백을 보자마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쁘다!”

“오오, 괜찮네!”

“디자인이 참 고급지게 빠졌네.”

“이야, 여자들은 이 미니백을 갖기 위해서라도 패치를 사겠다!”

“그죠? 여성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도 마음에 쏙 드네요. 팀장님, 단가는요?”

“00000원입니다.”

“음, 너무 비싼데요. 납품가를 더 낮출 수는 없나요?”

“협의해 봐야 알겠지만, 너무 기대는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OLED 패치 예상가격으로 하면 원가율이 어떻게 되죠?


김팀장이 즉석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약 13%를 차지합니다.”

“흐음, OLED 패치가격을 기존 예상가보다 5% 더 올려서 책정하면 그땐요?”

“그 경우에는... 원가율이 6%가 됩니다.”


‘6%면 나쁘지 않은데? OLED 패치 가격을 LED 패치보다 35%를 올려도 현재 판매중인 부지의 LED 패치 가격보다 10% 이상 저렴하다. 그런데도 훨씬 뛰어난 미용효과에 이런 예쁜 미니백까지 받을 수 있다면?’


순간 흥분으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됐어! 이건 먹힌다! 먹히는 상품이야.’


난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려 크게 한 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시 김팀장에게 물었다.


“이 미니백을 OLED 패치 전용 미니백으로 콜라보하면 우리 마진율은 어떻게 됩니까?”

“...약 18%가 되네요.”

“굿! 아주 좋네요. 지금도 반응은 좋으니까 LED 패치에 들어가는 미니백은 그대로 가고, 이 미니백은 OLED 신제품에 넣도록 하죠!”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연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형,형우야, 이거 완전 대박칠 거 같은데...”

“응! 너도 느낌이 오지?”

“맞아요. 이거 SNS에 홍보하면 완전 인싸템이 될 수도 있겠어요!”

“좋아! 나도 OLED 패치 나오면 SNS에 바로 홍보할래!”

“나도!”


동아리 회원들이 앞 다퉈 소리쳤다.


“팀장님, OLED 패치 특허나 생산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시제품이 나오면 최종 컨펌을 받은 후 오케이 되면 생산라인은 다음 주까지 모두 구축을 할 예정입니다. 특허는 선행기술조사를 한 후 우선 심사제도 적용 대상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변리사 말로는 심사위원들에게 특허 취득이 빨리 될 수 있도록 특별히 로비를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잘 됐군요! 그럼 특허 등록 시점인 9월 중순을 디데이로 잡고 그에 맞춰 생산 일정을 잡아 주세요. 그리고 그때 다시 한 번 마케팅이나 광고 등 공격적인 푸쉬(push)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두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달 후라... 좋아! 한 달 후 부*를 누르고 업계 1위로 도약한다.’


나는 그렇게 되뇌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 * *



한 달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다.

9월이 다가오면서 2학기 수강신청 등 새 학기 준비를 해야 했고, 그간 잊고 있었던 반가운 얼굴을 만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진석이 제대한 것.


진석은 예전과 한 치도 다름없이 빼빼 마른 모습에 뿔테 안경을 쓰고 나왔다.

술집에 이미 들어와 있던 은재와 나는 진석을 반갑게 맞았다.


“얌마, 나왔으면 먼저 이 형님들한테 신고해야 할 것 아냐?”

“필승! 신고합니다, 병장 오진석은 2020년 8월 21일부로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오냐! 수고했다!”

“짜식, 벌써 노땅티가 나네.”

“헉! 나 아직 영계라고!!!”

“수염이나 좀 깎고 그런 얘길 해라. 거울도 안 보고 나왔냐?”

“에이, 귀찮게.”

“은재야, 얘 여자 사귀긴 글렀다, 글렀어.”


은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진석은 펄쩍 뛰었다.


“야, 니들 만나는데 무슨 꽃단장이야?”

“얌마, 그게 기본이야! 매너고.”

“너 씻고는 나왔냐?”

“...아니.”

“헐~”


‘역시,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으로 은재를 보자 은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진석은 아직 여자를 사겨본 적도 없는데 어떡하지, 나 진짜 심각해? 라며 고민을 했다.


“랩실에서 밤낮으로 연구하는 우리 연구원팀들도 너처럼은 안 다닌다.”


은재가 쯧쯧 혀를 찼다.


“1학년 여자애 한 명 소개시켜줄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어잉? 누군데???”

“됐다, 이놈아.”


내가 단칼에 거부하자, 진석은 누군데, 아 누구냐고? 사진 있어??? 하며 끈질기게 졸라댔다.


“형우야,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은재도 궁금한지 물어온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난 짧게 말했다.


“혜나.”

“혜나??? 혜나가 확실히 예쁘긴 한데, 얘를 맘에 들어 할까?”


진석을 한 번 슥 본 은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흐음... 어려워.”


진석은 이번에는 은재를 보고 졸랐다.


“누군데? 예뻐? 너도 아는 애야?”

“우리 동아리 회원인데, 늘씬하고 아주 예뻐. 아나운서 되려고 준비하는 애니까 말 안 해도 알 만하지?”

“응응.”


평생 예예, 끄덕이는 것만 할 줄 아는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는데, 헤 웃고 있는 얼굴이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이거 소개시켜 줬다가 나중에 혜나한테 욕 얻어먹는 거 아냐?’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는 법.


‘에이 뭐 진석이도 우리 동아리에 들어올 테니 혜나를 알게 될 테고, 그 다음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너, 내 소원 잊지 않았지?”

“어떤 거?”

“내가 차리는 바이오 회사 직원이 되겠다는 거 말이야. 내가 서울대 들어가면 내 소원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거?”

“서울대 들어왔으니까 약속대로 직원 되는 거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우리 동아리 모임에도 참여하고.”


나는 현재 스타트업 연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고, 동아리의 목적이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되도록 많은 스타트업들을 연구해서 인사이트(Insight ; 통찰력)를 얻어낼 심산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석은 시큰둥했다.


“야, 난 복학하고 자격증도 따야 되고, 토익 준비도 해야 돼. 이제 2학년 올라가니까 학점도 신경 써야 되고.”


말하는 폼이 내 말 따윈 1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런데 은재가 갑자기 지원사격을 해줬다.


“진석아, 나도 형우 따라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거 진짜 괜찮아! 이런 저 저런 거 다 떠나서 너 앞으로 회사생활을 하는데 여기만큼 좋은 경험은 없을 거다. 웬만한 인턴경험보다 백배 나아! 게다가 난 형우 회사에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형우한테는 이런 말 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그러니까 너도 같이 하자!”


은재는 다소 조심스럽던 합류 초기와는 달리 완전히 나를 신임하는 투로 얘기하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뿌듯함이 느껴졌다.

은재는 동아리에서 매주 스타트업을 선정해서 연구하는 것부터 현재 중소기업 하나를 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까지 자세히 얘기했다.


“어때, 괜찮지?”

“허어, 열렬한 신봉자 다 됐네.”

“진짜 괜찮아!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형우 이놈, 아주 크게 될 놈이야! 그러니까 얘랑 같이 회사를 차려보자고.”


‘은재가 나를 이렇게 평가해 줄지는 몰랐는걸? 흐흐.’


나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진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진석의 마음을 이해했다.

고작 스물셋의 나이에 회사를 차리고 그리고 그 회사가 장차 크게 될 거라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취업은 자신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지 않은가!


게다가 진석이 군에 들어가기 전부터 취업 문제로 고민을 해왔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의 권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석을 데려오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한 타협을 시도했다.


“그럼 우선 동아리 모임만이라도 참여해보는 게 어때? 니가 취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말야. 그러다가 나중에 졸업할 때쯤 진로를 결정지으면 되잖아?”

“응, 그러면 나야 좋지만...”


진석은 말을 흐렸다.


“좋아! 그럼 다음 주 회의에 나와. 동아리 회원들도 소개시켜 주고, 우리가 무얼 하는지도 알려줄 테니까.”


진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진석의 떨떠름한 표정이 확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젤 쉬운 게 제약재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사항) 연재 중단에 대하여 20.12.19 114 0 -
공지 (공지사항) 설문조사 이벤트 20.12.17 45 0 -
공지 (공지사항) 연재주기 변경 - 일요일 하루를 쉬려고 합니다. 20.11.19 390 0 -
45 44화. 송일구(4) +2 20.12.18 140 2 14쪽
44 43화. 송일구(3) +2 20.12.17 152 2 15쪽
43 42화. 송일구(2) +3 20.12.16 169 4 18쪽
42 41화. 송일구(1) 20.12.15 195 4 14쪽
41 40화. 업계 1위로의 도약(3) 20.12.14 228 4 18쪽
40 39화. 업계 1위로의 도약(2) 20.12.12 218 5 18쪽
» 38화. 업계 1위로의 도약(1) 20.12.11 271 6 19쪽
38 37화. 세비야에서의 밤(2) 20.12.10 240 4 14쪽
37 36화. 세비야에서의 밤(1) 20.12.09 266 5 18쪽
36 35화. 돌파(6) +2 20.12.08 262 3 13쪽
35 34화. 돌파(5) 20.12.07 258 3 21쪽
34 33화. 돌파(4) 20.12.05 259 4 14쪽
33 32화. 돌파(3) 20.12.04 281 4 15쪽
32 31화. 돌파(2) +1 20.12.03 316 4 20쪽
31 30화. 돌파(1) 20.12.02 350 5 20쪽
30 29화. 오늘부터 1일(2) +2 20.12.01 381 8 11쪽
29 28화. 오늘부터 1일(1) 20.11.30 426 5 19쪽
28 27화. 크리거(5) 20.11.28 371 6 16쪽
27 26화. 크리거(4) 20.11.27 430 4 25쪽
26 25화. 크리거(3) +2 20.11.26 509 5 18쪽
25 24화. 크리거(2) 20.11.25 518 8 18쪽
24 23화. 크리거(1) 20.11.24 536 7 16쪽
23 22화. 투자(5) 20.11.23 592 8 17쪽
22 21화. 투자(4) 20.11.21 552 7 21쪽
21 20화. 투자(3) 20.11.20 592 7 21쪽
20 19화. 투자(2) 20.11.19 648 10 23쪽
19 18화. 투자(1) 20.11.18 782 1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