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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5.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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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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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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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글자수 :
418,165

작성
24.03.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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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불사조 방원철 1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DUMMY

며칠 뒤 현태준에게 센강에서 얘기한 서약서에 서명하게 하면서 현태룡은 동생이 ‘합법적’으로 이중 국적을 유지하게 해주는 첫 번째 해외 공작을 마쳤다. 한국에서야 외무부가 알아도 자신이 중정 소속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테고 이제는 프랑스 정부만 모르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형제가 행복하게 지낼 시간만을 생각하면서 현태룡은 꿈에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자꾸 과거의 악몽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방원철 말이었다.


파리로 가기 직전 현태룡은 잠시 귀국한 박성민 대사를 찾아갔다. 가르니에 신부와 함께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분에게 출국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둘이 환담을 하면서도 그 둘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 한 사람에 대해서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대사님께서 생도대장을 계속 지내셨으면 육사하고 군대가 훨씬 더 깨끗해졌을겁니다. 그 사건 때문에 대사님께서...”


“기건 아니라우.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 많을테니. 그러고 보니 지리산 사건이나 그 노래 사건이나 딱 한 놈이 공통으로 얽혀있지. 방원철이.”


“그렇습니다.”


“괴물 같은 자 같으니. 어떻게 소령까지 달았다고 하던데 그 이후로는 조용한 것 같아. 소문으로는 3.15 부정선거에 관여했다가 군사 혁명 일어나고 나서는 조용히 지낸다는 것 같은데.”


“예, 수경사에 있다고 합니다. 운 좋게 그동안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


현태룡은 박성민과의 대화를 떠올리면서 적어도 당분간은, 어쩌면 영원히 방원철 그 자와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이 악독한 인간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드르륵, 드르륵.”


전역 후 고려일보 그룹으로 들어간 이순영은 이 시점에서 군수물자 납품을 하는 계열사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거기에 과거 경력을 살려 이따금 정권의 사설 정보대 활동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보충중대를 방문하였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병사의 안내를 받아 부대로 들어온 그는 중대장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코골이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똑똑!!


이순영이 세게 문을 두들겼는데도 중대장은 자고 있었다.


“이봐, 방 소령.”


이순영이 일부러 문이 벽에 부딪히게끔 세게 열고 들어왔는데도 방원철은 자고 있었다.


“술 냄새가 여기까지 진동하는 구만. 어허 참...”


독실한 개신교 신도인 이순영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술, 담배였다. 그리고 방원철은 근무 시간임에도 술에 빠져 있었다.


꽝꽝꽝.


이순영이 방원철의 책상을 계속 두들겼다.


“방원철 소령! 일어나라우!”


“어, 어, 충성!”


방원철은 겨우 잠에서 깨어나 은인을 알아보고 기립하여 관등성명을 댔다. 갑자기 일어나면 발생하는 어지럼 때문에 그는 순간 중심을 잃고 자빠질 뻔했다.


“사람을 부르고선 정작 본인이 자고 있으면 어떡하나.”


“죄송합네다.”


“소령이나 달고 보충중대장이 뭔가 대체. 전역 앞둔 대위나 중위가 할 보직을..”


이순영이 혀를 찼다. 보충중대는 기본군사훈련과 신병 교육을 마치고 나서 근무지가 지정될 때까지 대기하는 이등병들을 임시로 관리하는 곳이었다. 일이 아주 편하기 때문에 진급에서 밀린 대위나 단기 복부 자원인 중위들이 가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보충 중대장을 대위, 중위가 아닌 소령 계급이나 단 방원철이 하고 있었다.


“최인규나 곽영주처럼 목 매달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합네다.”


방원철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4.19와 5.16 이후 방원철은 일단 생존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 말대로 그의 ‘죄’는 군에 계속 있기는커녕 최인규나 곽영주 꼴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기래, 기래. 자네의 생존술은 기가 막히지. 재작년 혁명 일어났을 때 육사 생도들 시가행진이 사실은 자네 작품이란 걸 알고 소름 끼쳤다우.”


4.19 직후 2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방원철은 부정선거 실무자로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순영과 방석주가 구명해 준 덕에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육군사관학교에 배속되었다.


5.16 때는 박정희의 신임을 받는 전형두에게 줄을 대어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진행하라고 조언했다. 그 덕에 박정희를 비롯한 혁명 주도 세력들 전부가 김창환 특무대라면 이를 박박 가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3.15 부정선거의 주 기획자 중 한 명이었던 박붕근이 정변 다음 날 재산을 챙기고 일본으로 튀어버린 게 그에게는 신의 한 수 였다. 혹시 모를 유력한 증언자가 알아서 사라져 준 것이다. 박붕근과 다르게 곽영주와 최인규, 이정재는 국내에 남았고 그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목숨은 부지했을 지언정 군 내에서 진급은 그냥 물건너갔다. 방 소령 역시 일단 보충 중대에서 편하게 지내며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령님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입네다.”


“근데, 왜 자네는 그 큰 행사를 기획하고서도 이런 데서 썩고 있나? 중정에서 자네한테 연락 안 왔나? 자네가 줄 댄 자가 중정 인사과장이라지 않았어?”


“사실은 중정 창설될 때 김종일 부장이 절 찾아왔었습네다.”


“근데, 왜? 최고위원들이 김창환 특무대에 원한이 많아서 안 된 건가?”


이순영은 재작년 정변 이후 새로운 사업들을 하느라 방원철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지난 2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방원철 소령이 수경사 보충 중대에 있는 것도 우연찮게 알아내 급히 찾아온 것이다.


“아닙네다. 윗선에서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저의 재주를 잘 쓰라고 격려했습네다. 오히려 전형두 같은 또래 육사 놈들이 훼방놨습네다. 전형두나 노태성이 같은 정규 육사 1기 놈들은 자기들은 4년 교육받고 임관했다고 해서 선배 장교들을 무시합네다. 지네 육사 선배들도 무시하는 놈들이 저라고 무시 안 했겠습네까. 거기다가 제가 자기네 후배들을 작살내지 않았었습네까.”


“말세구만. 자네가 특무대 있었을 땐 감히 눈 한번 쳐다보지도 못할 아새끼들이..”


“제 말이 그 말입네다. 전형두가 제게 ‘방 소령, 당신은 살아있는 걸로 감사한 줄 아쇼.’라고 했을 때 어찌나 열 뻗치던지.. 건방진 에미나이. 내 조언 덕에 출세한 놈이 은혜도 모르고.”


전형두는 자신이 방원철보다 한 살 많다면서 방원철을 하급자 대하듯 했었다.


“방원철이 혈기가 많이 죽었다우. 뒤에서 욕만 하는 건 자네 취미가 아니디.”


이미 전형두를 물 먹일 계략을 짰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기렇디요. 예전 같으면 바로 박살낼 것을 이번에는 시간을 많이 들였습네다. 일과시간이던 주일이건 저를 망신 준 놈들 몰래 따라다니며 혹시 박살낼 건덕거리가 없는지 찾아보는게 유일한 낙이자 취미가 돼서 말입네다.”


“기래, 무슨 성과는 있었나?”


“지금 여기서 알려드리면 재미없디요. 하하.”


“일단 자네를 한번 믿어보겠는데 말이야. 내가 한번 줄을 대줄 수 있을 것 같거든.”


“아, 정말이십네까?”


“방석주 회장이 사람을 잘 알아. 나는 이 친구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정식 소개는 방 회장을 통해 받아야 할 것 같아. 기런데...”


“네.”


“자네 혹시 군을 떠날 생각이 있나?”


“네?”


“현역 군인이 아니라 전역 후 민간인 신분으로 중정 들어갈 생각 없냐 이거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방원철이 조금 당황했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현역 장교로 성공한다는게 어불성설이디. 보아하니 자네를 견제하려는 자들이 군 내에서는 너무 많아. 기러고 현역 신분이면 중정에서 있다 한들 파벌 싸움에 휘말리면 잘못하다가 언제 다시 이런 곳으로 좌천될 지도 알 수 없잖아? 민간인 신분이면 중정에 더 오래 있기 쉽다고. 군에서 직접 자네를 건드리지 못하니까.”


“기건 기렇습네다.”


“자네도 어차피 신분이 좀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활동하는 게 좋잖아? 성공을 위해서라면 군이건 어디건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해외도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겠고.”


“...”


“정말 오랜만에 기회가 오는 것 같은데 대담하게 선택하라우. 그래야 나도 방 회장도 그 친구에게 말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방원철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10여년 동안 자신의 그 ‘잔혹함’을 마음껏 뽐낸 군에서 떠난다는 게 약간 마음에 걸렸다. 그렇지만 이순영의 말도 맞았다.


“...알겠습네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입네까?”


“자네도 알거야. 육사 출신이지만 이북 출신이라 족보가 없어 세력을 만들지 못한 사람. 하지만 야망은 누구보다 커서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사람. 그러면서도 성미가 단순하여 스스로는 계책을 짜지 못하고 반드시 뛰어난 책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 그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사람이 하나 있디. 마침 그 사람도 전형두하고 원한이 쌓여 있다우.”


“...김현욱 최고위원이군요.”


“바로 알아맞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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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김백영의 월북 (1964년 11월, 일본 니가타 & 한국 충남 대전) +2 24.05.06 54 3 13쪽
77 아바이 잘가오 (1964년 10월 중순, 프랑스 파리) 24.05.05 20 2 11쪽
76 빨간 마후라 (1964년 가을, 프랑스 파리) 24.05.05 27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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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태권도 연습 (1964년 여름, 프랑스 파리) 24.04.28 23 3 11쪽
72 중정 압수수색 쇼 (1964년 여름, 서울) 24.04.28 34 3 9쪽
71 별들의 순간-검사 윤동석 (1964년 여름, 서울) 24.04.21 242 3 8쪽
70 서울, 1964년 여름(인민혁명당) (1964년 5월, 서울) 24.04.21 26 3 7쪽
69 수상한 사내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1쪽
68 수상한 사내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20 20 2 13쪽
67 팔레 가르니에 연회 4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5 2 10쪽
66 팔레 가르니에 연회 3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4 24 3 14쪽
65 팔레 가르니에 연회 2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3 2 9쪽
64 팔레 가르니에 연회 1 (1964년 2월 15일, 프랑스 파리) 24.04.13 26 2 11쪽
63 싸 이라(Ça ira)-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4.07 35 2 11쪽
62 박사 학위 수여식 (1964년 초겨울, 프랑스 파리) 24.03.31 42 3 12쪽
61 불사조 방원철 2 (1963년 여름, 서울특별시) 24.03.24 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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