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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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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53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4.27 22:53
조회
165
추천
6
글자
9쪽

시마노 부인의 가택사(死)

DUMMY

우선 주재소 순사의 보고는 이랬다.


새벽부터 노인들을 태우고 떠났을 시마노는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이 컴컴한 시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시락이 뜯지도 않고 건드린 흔적도 없이 6인분이나 쌓여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아직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2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경사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는지 뭔지. 시마노 부인이 가택 내에서 실족으로 인해 목이 부러진 모습으로 사망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습을 보아서는 즉사로 추정. 그 외에 달리 이상한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역시나 식탁 위의 6인분의 똑같은 메뉴의 도시락은 어쩐지 찜찜하고 부자연스럽다. 는 보고였다.


‘······.’


무로이는 그 특유의 멍울멍울한 검은 눈망울로 허공을 응시하며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켰다.


노인들의 안내자인 시마노의 핸드폰은 이 시간의 이 날씨에 쓰시마의 남북을 잇는 다리인 만제키바시에서 신호가 잡힌다고 하지. 시마노 부인은 실족으로 추정되는 경추골절 사망이라고 하지. 식탁에는 6인분의 똑같은 도시락이라니까!


무로이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는데도 숨이 턱에 컥컥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붙들고 있던 두 통의 전화를 아주 예의 바르게 끊었다. 그리곤 숨을 헉헉 몰아쉬며 서둘러 책상에 붙여둔 연락망을 훑어 미쓰시마 주재소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받지 않는다. 결국 무로이는 깨알같이 복사된 순사연락망을 뒤져야 했다. 그는 어째서인지 아직 아무에게도 알릴 생각을 못 하고 혼자서 그렇게 끙끙댔다.

그것이 바로 경험 부족으로 인한 삽질이라는 것을 당시의 그때는 몰랐다. 그저 너무 놀라웠고 걱정스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번 사건. <살인>이라던가 <용의자>라는 말이 보고서에 찍힐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지나치게 긴장해 버렸다.


시마노 부인은 과연 단순한 가택 내 실족사일까? 6인분의 도시락은 과연 정상적인 음식일까? 혹, 치명적인 독이라도 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언제부터 준비해 두었던 것인가?


시마노의 핸드폰은 만제키바시에서 신호가 잡힌다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그곳에 가면 지금 시마노가 있을까? 아니면 다리 중턱에 핸드폰만 떨어져 있을까.

하지만 이런 날씨에 핸드폰이 어딘가에 떨어져 있다면 물에 흠뻑 젖어 신호가 잡힐 리가 없을 텐데. 무엇에 싸여 있기라도 한 걸까? 떨어진 것일까? 떨어졌다면 흘린 것인가. 아니라면 일부로 수사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 그곳에 놓아둔 것인가.


아! 무로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작고 빨간 다리. 만제키바시를 떠올렸다. 그것은 러일전쟁을 위해 본래 하나였던 쓰시마를 전함이 다닐 수 있도록 둘로 가른 인공해협에 놓여 쓰시마의 남과 북을 잇고 있었다.

즉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곧장 바다라고. 그런 곳에 시마노의 핸드폰이 왜? 이 날씨에 그곳엔 왜 간 거지?


물론 그곳도 나름의 관광 스포트이니 지나칠 수는 있겠지. 잡담을 나누며 걸어서 건널 수는 있겠지. 이 날씨에?!

그렇다면 노인들은? 혹, 노인들이 그곳에서 몸을 던진 건 아닐까? 그랬다면 과연 노인들은 스스로 몸을 던진 걸까. 혹은 ‘누군가’에 의해 던져진 걸까.

아아! 이 괴악한 날씨는 대체 언제까지 이럴지! 노인들이 정녕 그곳을 인생의 종착지로 삼았다면 시신은 찾을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혼자 패닉에 빠져들던 무로이를 구원해 준 건 형사과의 대선배인 마흔세 살의 오사다였다.


“어이 무로이 관리관. 자네 지금 사람 죽이고 설사 만난 얼굴하고 있어.”

“아!”


혼자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무로이는 사실 순사들의 비상연락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기다가 오사다 선배의 목소리 또한 듣고 있는데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호오? 자네 상태를 보니 정말 뭔가 일이 터지긴 터진 모양이군. 어서 이 선배님께 다 털어내. 자넨 쓰시마의 순사부장이지 경시청 수사1과의 관리관이 아니잖나. 저 못난 친구들이 자네를 두고 관리관이라고 놀리는 탓에 정말 뭐든 혼자 해결하려는 제일 안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오사다는 무로이 본인도 생각지 못했던 정곡을 찔렀다.


“그, 그게 말입니다.”

“그래. 지금의 자네 얼굴만 봐도 알겠어. 이 문제는 이제 지역과나 형사과 문제가 아니라 쓰시마의 문제가 된 것이겠지?”

“그······.”


작은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한 오사다는 아직도 머뭇거리는 무로이의 가슴을 자신의 두툼한 손바닥으로 툭툭. 몇 번 쳐 주었다.

그러자 무로이는 사춘기 소녀가 봉긋하게 오른 제 가슴을 부끄럽게 가리듯 이상한 포즈로 서서 선배 형사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 변태같이 그러고 있을 거냐. 말해. 어서.”


방금까지는 따뜻한 형님 같던 오사다의 표정과 말투가 이젠 아예 무로이를 용의자로 삼고 취조 하는 것처럼 엄하게 변했다.


“앗, 네. 선배. 그게 좀 복잡한데요.”


무로이는 자신의 머리를 터지도록 채운 것들을 다 털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 오사다 선배의 곁에는 하나둘, 형사과의 「미나상」 ―여러분― 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형사들은 모두 끄덕끄덕하며 저마다 여러 의미가 담긴 눈빛을 재빨리 나누었다.


“그렇다면 앉아서 불안해하느니 우선은 움직여야겠군. 어이! 호시노!”


오사다는 여행사에서 보내온 팩스 내용을 카피 중이던 지역과의 호시노를 불렀다.


“자네들, 오늘 ‘날도 좋은데’ 말 좀 타고 신나게 달려봐야겠어?”

“무슨 말씀이신지요?”

“버스 기사 시마노의 핸드폰이 지금 만제키바시에서 신호가 잡힌대.”

“네? 형사과에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오늘 우리 쓰시마의 ‘수사 1과’ 무로이 관리관께서 모든 정보를 추리는 작업 중이시지 않나. 방금 들었지.”

“아, 네.”


대머리 끼가 있는 호시노는 하얗게 뜬 얼굴로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경찰정복의 무로이를 한 번 보더니 끄덕였다.


“우리더러 직접 가보라는 거죠?”

“그렇지. 지금 해당 주재소에는 연락이 안 통해. 그리고 또 큰 문제가 생겼어. 이건 우리 쪽에서 지금부터 우리 서에서 제일 할 일 없는 감식관 머저리들을 데리고 가 볼 참이야.”

“감식관요?”


그러자 대충 건성으로 듣고 있던 호시노도 과연 놀랐는지 눈을 번쩍 떴다.

그 표정에는 ‘쓰시마 경찰서의 행복하신 밥벌레들이 출동하실 정도로 엄청난 일이 생긴 겁니까!’라는 대사가 머금어져 있었다.


“음. 해당 주재소 보고야. 시마노 부인이 가내에서 절명했데.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모양이라는데 그게 좀 느낌이 이상하다나? 아무튼 우리는 확인 차 나가 볼 테니 자네들도 좀 움직여 봐. 원래 등산은 눈이 올 때 하는 거고, 드라이브는 폭풍우에 하는 거지.”


눈 볼 일 없는 쓰시마에서 그건 또 뭔 소리냐.

감식관 출동이라는 문제로 눈이 커진 호시노가 황당한 이야기에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오늘로 네 번째. 용지를 우작우작 잡아먹는 고물 복사기를 신경질적으로 퉁퉁 걷어찼다.


그런 호시노를 보며 오사다는 한 번 씨익 웃더니 옷걸이에서 자신의 외투를 꺼내 입었다. 그러자 곁에 선 형사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부랴부랴. 걸상이나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뭉쳐 둔 제 옷들을 갖춰 입었다.


‘드디어 경찰들이 움직인다.’


혼자 정복 차림으로 굳어 선 무로이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지역과와 형사과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뭘 어째야 하는지 몰라 우두커니 인상만 쓰고 서 있었다. 그러자 오사다가 나가는 길에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한다.


“자네는 지역과와 형사과 과장님께 보고 올리고, 서장님께도 보고를 올려야 할 거야. 또 혹시 수색작업이 있을지 모르니 북서 ―쓰시마 북부 경찰서― 에도 미리 연락 좀 해 두고. 오늘은 아무래도 자네가 데스크에서 좀 바쁘겠지. 계속 들어오는 정보 있으면 우리한테도 그때그때 연락해 줘.”

“네. 선배님.”


무로이는 그렇게 말하며 나가는 오사다 선배에게 똑바른 경례를 붙였다. 그러자 오사다를 선두로 한 키 작은 촌 동네 형사들의 무리가 기분 좋게 웃으며 나갔다.


“이거 원, 정말 드라마처럼 돌아가는구먼! 게다가 우리가 무로이 관리관에게 경례를 받다니. 경시청의 경시정급은 된 기분이야? 기분 최곤데? 하하하!”


그렇게 형사들은 무로이의 마음을 받으며 우중충한 먹구름 아래로 먹구름처럼 사라져 갔다.


“후우······.”

s4022817.jpg


작가의말

인공으로 가른 섬을 남북으로 잇는 만제키바시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저런 풍경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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