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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그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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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4.25 23:34
최근연재일 :
2015.05.14 17:4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21,916
추천수 :
459
글자수 :
318,833

작성
15.04.26 09:25
조회
267
추천
9
글자
9쪽

대마도와 부산은 가깝다

DUMMY

“하아······.”


하지만 막상 버스에 타고 나니 이것 참 아쉬웠다. 아리는 뒷좌석에서 좋은 구경 했다며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의 잠 오는 대화 소리에 눈이 감겼지만, 시마노 상의 덜덜 떠는 오른손을 보니 다시 불안해져 잠이 달아났다.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이기에 아리가 앉은 곳에서 운전자의 오른손이 쉽게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이다 보니 이젠 그 오른손만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차창 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중이었고, 하선 후 조금 환해졌던 대마의 하늘은 갑자기 밤이 온 양 컴컴해졌다. 그리고 주변의 경관은 뭐랄까? 진짜 뭐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 풀이 싱그럽게 파릇파릇 돋아난 것도 아니고 신록의 잎새가 반짝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헐벗은 누런 나뭇가지, 길가엔 누렇게 뜬 풀들. 그야말로 비수기의 정석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이런 날씨는 그냥 딱 늦잠이나 낮잠 자기 좋은 날씬데······.

아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았던 미우라 해수욕장을 뒤로한다는 긴 한숨을 토했다.


‘솔개라, 이런 위험한 복병이 있었다니.’


혼자 세상을 다 얻은 양 꺅꺅거리고 뛰어다닐 동안엔 ‘내일 하루는 이곳에서 진탕 소비하겠다!’ 그런 마음도 들었었는데, 저 무서운 솔개들을 보니 마음이 가셨다.

아무리 관광도 좋다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지 말이야. 그래도 못내 아쉬워 멀어지는 미우다의 작은 돌섬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졌다. 하지만 역시나 내일 혼자서 다시 이곳을 찾아와 혼자서 무탈히 야생을 즐길 자신은 없었다.


결국 마음을 접고 차분하게 앉아 있으려니 응? 등 뒤에서 한 할머니가 아리의 어깨를 콕콕 치는 게 아닌가? 그리곤 돌아본 아리의 얼굴에 찌링~ 한 냄새를 풍기는 쥐포를 한 장 들이미는 것이었다.


“함 무-바라. 마이따.”

‘깜짝이야!’


사투리를 보니 혼자서 이 팀에 끼었다는 부산 할머니인 모양이다. 등 뒤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더니 냉동실 냄새 가득 풍기는 쥐포를 다짜고짜 권해 왔다.

그 찌글찌글 구겨진 주름 가득한 손에서 아리는 저도 모르게 흠칫! 하고 큰 공포를 느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공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단순히 ‘늙음’에 대한 충격과 공포라고 생각했다.


버스 내에서 듣는 노인들의 대화 소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 같았다. 어쩐지 다시 잠이 올 것 같았지만, 버스는 금방 <미우다 캠핑장>이라는 곳에서 멈춰 섰다.


마치 문장을 쓰면서 스페이스 바 한 번씩 누르듯, 이곳의 관광 스폿이란 곳도 거기서 거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서 버스를 탔는가 싶으면 또 곧바로 내려야 했다. 그래서 아리는 부산 할머니가 주신 굽지도 않은 쥐포를 1/3 조각도 채 다 못 먹은 채 우물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우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다! 아리는 다시금 흥분해 패딩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쓰곤 아무것도 아닌 캠핑장을 또 저도 모르게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벼랑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의 틈 사이로 보이는 바다 외에는 대체 뭘 보란 건지 알 수 없는 곳이었지만, 해안가 절벽 위의 편편한 들판을 바보처럼 달리는 그녀에겐 그곳이 또 기가 막힌 ‘야생구역’인지라 그저 좋을 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거뭇한 바다. 그 해면과 만난 짙은 먹구름은 지금도 윙윙대는 바람에 시시각각 모습이 바뀌며 바다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이나믹한 풍경을 배경은 곧이어 굵은 빗방울로 하얗게 변해 점점 음산한 분위기가 되어 갔다.


그러자 좋다고 혼자 뛰어다니던 아리는 문득 자리에 멈추곤 저도 모르게 은정과 보았던 타로카드의 그림들이 떠올렸다. 특히 무너지는 탑에서 떨어지는 그림이 떠오를 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오싹해졌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한창 일본어 공부한다고 설쳐대던 시절, 줄 긋고 사전 뒤져가며 읽었던 아카가와 지로(赤川次郎)의 문고본 소설 <미열>이라는 작품도 떠올랐다. 그 작품에서도 뭔가 ‘떨어진다’는 느낌의 씬이 있지 않았던가?

오래된 책이고 읽은 지도 오래전인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쨌거나 분명 단체여행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지?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훅- 하고 벼랑 저 너머로 사라진 장면.


‘으어어······.’


아리는 그 옛날 소설 속의 장면이 떠오르자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져서 달려왔던 곳으로 휙 하니 뒤돌아섰다. 타로카드 중에 탑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그림이 무서웠던 소설 속 장면과 겹쳐지는 기분이 들어, 갑자기 노인들이 지금 어쩌고 있는지. 처음으로 일행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일행 노인들은 조용하긴 해도 음울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뭐, 그 소설 속에서 일을 치는 사람들도 음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지만― 게다가 이곳의 벼랑 끝은 난간도 튼튼하고 높게 잘 짜여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고 무엇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왔을 저 노인들.


‘가만있어도 그냥 죽어질 거 새삼 그런 짓 따위 할 리가 없잖아.’


모두 허리도 시원찮고 무릎도 좋지 않아 캠프장 입구 어딘가에서 주운 나무 막대기를 지팡이 삼아서 느릿느릿 거니는 저 노인들이 홀연히 떠올린 <미열>이란 소설처럼 몸을 날리려면, 난간을 뛰어넘기 위해 유격훈련에 버금가는 액션을 취해야 할 판인데······.


‘하!’


미스터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게다가 믿지도 않는 타로카드 따위는 왜 괜히 떠올라서 저 멀쩡한 노인네들을 걱정하는가 말이다. 어이쿠! 전주에서 왔다는 부부 노인 중 할아버지가 비에 젖은 누런 잔디를 잘 못 밟고 미끄러졌다. 그러자 주변에 할머니들이 깔깔깔 웃었다. 뭐, 그 정도다.


아리는 다시금 편안한 마음으로 음산한 야생을 향해 눈을 돌렸다. 어쩐지 오늘만큼은 이런 날씨조차도 마냥 유쾌하게 느껴졌다.


<미우다 캠핑장> 다음에 간 곳은 <한국 전망대>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나라 내 땅이었던 곳을 무려 전망대씩이나 찾아가서 본다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해상날씨가 엉망이라 부산은 흐릿하니 잘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는 마치 통일전망대처럼 만들어둔 한국의 정자식 건물이 있었고, 그 위에 올라가면 동전을 넣고 몇 분 구경할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다. 물론 오늘 같은 날은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시마노 상은 날씨가 좋을 때는 맨눈으로도 부산이 보인다고 했다. 살아 본 적 없는 부산이었지만, 내 나라가 딱히 신기할 것까지는 없는 아리로선 ‘그래서 뭐?’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 전망대가 관광 스폿인 이유는 한국 사람에게 신기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인 자기들에게 신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즉, 일본인 대상 관광 스폿이란 거지.

그래. 밤에 보는 부산의 훤한 야경은 아마 이 촌구석 섬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불야성의 신천지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


대마도에서는 곧 죽어도 일본 본토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날만 좋으면 부산은 훤히 보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 야생의 녹음이 지긋지긋한 촌사람들에겐 얼마나 부럽겠어. 그런 동경심이 이 전망대를 만든 것 아닐까?

인터넷 사진으로 보니 부산의 일상 야경도 멋지지만 불꽃 축제 시기엔 더 근사해 보이더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그게 뭐 대순가? 그냥 직접 부산에 가서 보면 될 일이니까.


어쨌거나 아리는 대마도에서 부산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크게 섭섭한 느낌은 없었다. 두어 시간 전에는 그냥 부산에 있었으니까.


이 아무것도 없는, 가진 건 야생의 환경뿐인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나가면 자기 나라보다 부산이 오히려 훨씬 가깝고 피부에 와 닿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섬에 찾아와 주는 외지인들도 대부분이 부산사람들이니, 말이사 자기들은 니뽄진(일본인)이다 해도 부산에 대해 자신들도 정체를 모를 어떤 향수 비슷한 감정을 지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애정이 있으면 애증도 있겠지만······.


아리는 혼자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그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결론은 그거다. 대마도는 부산과 무진장 가깝다는 거.


그래서 시마노 상도 이 비수기에 악천후까지 겹친 날, 꾸역꾸역 대마도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당연할 거라 여긴 부산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여기저기서 모인 일행이라는 말에 무척 놀라는 모습을 보인 걸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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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와 부산은 가깝다 15.04.26 268 9 9쪽
5 톰비(솔개) 15.04.26 390 8 9쪽
4 개뿔이 블랙 펄 호 +4 15.04.25 374 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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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로카드 +6 15.04.25 610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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