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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님의 서재입니다.

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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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수상함
작품등록일 :
2024.07.29 13:23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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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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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불타는 하늘

DUMMY

스산한 분위기가 함교를 뒤덮는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마치 칼날처럼 얼굴을 스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멀리서 아군 항공대와 폭격기가 교전하는 비행운이 보였다.


“나는 제2함교로 내려가지.”


철모를 쓴 류시원 제독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함을 부탁하네.”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내려가는 제독.

나는 결의를 다지며 대답할 뿐이다.


이제 시작이다.


심호흡을 하고 통제실과 연결된 수화기를 들었다.


“통제실, 상황 보고해.”


<적기 다수 격추! 약 10여 기가 함대 상공으로 접근 중입니다!>


항공전은 이쪽의 우세다.

조기 경보가 성공한 덕분이다.


레이더가 아니었다면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몰랐겠지.

전투기를 저만한 고도까지 띄울 시간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폭격기의 숫자는 대략 30기.

고작 8기의 전투기로 요격하기에는 너무 많다.


절반 이상의 적기가 격추되거나 방향을 돌려 달아났지만, 나머지 절반이 그대로 함대 상공에 도달했다.


“좌현 견시 보고! 적기 다수! 방위 300! 거리 1만! 고도 5,000! 본 함으로 지속 접근 중!”


나는 대공 함교 뒤, 함교 위에 설치된 사격통제실을 돌아보았다.


“포술장, 조준 좋으면 쏴.”


조준은 이미 끝난 상황.

사격통제실에 앉은 포술장이 호령했다.


<쏴!>


천둥소리가 갑판을 울렸다.


현측에 도열한 152mm, 105mm 포대가 일제히 불을 뿜는다.


바다를 뒤흔드는 포성과 새빨간 포연.


현측마다 12문씩 장비된 대공포대가 연달아 발포하고 멀리서 포탄이 작렬하며 공중에 파편을 흩뿌린다.


검은 폭연이 수십 개씩 피어오르지만 격추되는 비행기는 없었다.


하기야 벌써 명중탄을 바라는 건 무리겠지. 아직 포대가 레이더와 연동되어 자동화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공포의 본목적은 탄막을 펼쳐서 비행기의 접근을 막는 것.


수많은 포화가 번쩍거리며 공중에 파편을 뿌리자, 적기가 대형을 흐트러트리고 방향을 돌렸다.


여전히 적지 않은 수가 꾸역꾸역 다가오지만 마침내 그중 하나에서 불꽃이 터져나왔다.


“적기 하나! 화염을 보이며 추락 중!”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 불을 뿜으며 고꾸라지는 폭격기.


이순신함의 첫 전과다.


“해냈습니다, 함장님!”

“이제 겨우 1기다.”


환호성 소리가 함교를 채운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쌍안경을 들었다.


적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다.


마침내 이순신함의 머리 위로 접근한 폭격대.

고도가 높아서 어지간한 중소구경 화기는 닿지 않는다.


“적기, 폭격 개시!”


1기가 추가로 화염을 보이며 추락하고 나머지는 일제히 폭탄을 투하했다.


나는 전성관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키 오른편 비상타!”


<키 오른편 비상타!>


조타사의 손길 아래 이순신함이 움직인다.


잠시 갑판이 흔들리나 싶더니 거대한 함수가 파도를 부수며 방향을 돌렸다.


큰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는 이순신함.


머리 위로 휘파람 소리가 다가온다.

폭탄 소리다.


“함장님, 옵니다!”


손원일 항해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첫 실전이라 그런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게 그걸 표출한 권리는 없다. 지휘관의 무게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이 배에 탑승한 3,000명의 승조원을, 더 나아가 13기동부대의 수많은 목숨을 살려 보낼 권리는 있다.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운이 나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착탄―!”


쿵!

거대한 물기둥이 연달아 솟아오른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맹렬히 울부짖으며, 연달아 치솟은 물기둥이 벽처럼 이순신함을 가린다.


착탄 구역은 함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다였다.


“···전탄 회피했습니다.”

“기동하는 목표에 수평 폭격이 명중할 리가 없지.”


고고도에서 투하한 폭탄은 그야말로 던진 쪽도 어디 맞을지 모르는 수준이다.


명중률이 1%도 안 나올 정도니 여기에 이순신함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그건 산술적인 얘기고.

실제로 당하는 입장에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몰래 식은땀을 훔치며 나는 항해장에게 말했다.


“제2함교에 보고해. 전탄 회피 성공.”


공습은 무사히 끝났다.


복귀하는 폭격기의 꽁무니에도 아군 전투기가 따라붙었고, 추가로 2~3기가 불을 보이며 추락했다.


적 항공대의 피해가 크다.

호위기도 없이 온 탓이지. 우리에게는 다행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미리 요격 편대를 띄울 거라곤 생각 못 한 모양. 레이더 관제 시설의 존재를 잘 모르니 그럴 수 있다.


어쨌건 첫 공습은 우리의 완승이다.


“어쩌면 적 항공대도 별거 아닌 모양입니다.”


항해장도 자신감 붙은 얼굴로 말하지만 나는 안도할 수 없었다.


“적기의 파상 공습이 예상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레이더 감시 더욱 철저히 하도록.”


<예, 함장님!>


조금 긴장한 목소리다.


첫 실전인 데다 책임이 막중하니 부담 가질 만도 하지.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잘해주었다.

애초에 믿고 데려온 녀석이지만.


이어서 제2함교에서 제독이 연락을 걸었다.


“예, 함장입니다.”


<자네 말이 옳았어. 일본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오고 있네.>


수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온 첫 마디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전쟁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전화기로 참모진이 소란스레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필시 저들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부산항이 폭격당하고 있네.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해와 필리핀에도 대규모 공습이 시작된 모양이야.>


역시 그런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물어봤다.


“선전포고문은···.”


<해본에서는 연락이 없네.>


결국 여기서도.


씁쓸한 감정과 동시에 조금씩 분노가 차오른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

하지만 막상 직접 당하니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미국에서 왜 그렇게 진주만의 복수를 부르짖었는지 나도 조금은 알 거 같다.


<비열한 새끼들···. 어쨌건 전쟁이라는 건 확실하네. 제13순항훈련전단은 현 시간부로 전시 상황에 돌입. 작계 1592에 따라 현 시간부로 13기동부대로 재편성하여 작전을 수행한다.>


해군도 개전이 머지않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대한 작계도 준비되어 있고.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당장 우리에게 당면한 크나큰 위기가 있으니.


“곧 추가 공습이 이어질 겁니다.”


<항공모함의 공습 말인가?>


“예, 혹시 671함과 연락이 두절되지는 않았습니까?”


침묵하는 제독.

이윽고 한숨과 함께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네. 어쩌면 지금도 공격대가 다가오는 중이겠지.>


“제주 항공대는 원호가 가능합니까?”


<그쪽에는 미리 연락을 넣어두었네. 어쨌든 공습 한두 번은 큰 피해 없이 막을 걸세.>


곧이어 그는 안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 덕분이야.>


한시름 놓았다는 분위기.


첫 공습을 무사히 넘긴 덕에 장병들은 두려움보다 투지로 불타고 있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제주 항공대의 주력 기체는 구식 복엽기인 호크 전투기에 38년도에 수입한 버팔로가 일부 있을 뿐.


신형 와일드캣은 정운함에 배치된 단 4기뿐.


반면 적의 항공대,

특히 전투기는 아주 막강하다.


‘제로센.’


태평양 전쟁 초기, 무려 12 대 1의 교전비를 올리며 활약한 일본 해군의 상징.


적어도 이 시점에선 태평양 최강의 전투기다.


“항공모함을 뒤로 물려야 해.”

“예?”

“이순신함이 적의 공격을 받아내야 한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항해장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방어력이 약한 정운함에 폭탄 한 발이라도 떨어지면 함대는 항공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꼴이야.”

“그렇지만 이순신함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항공모함이 침몰하는 거보다는 나아.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전투배치 중인 갑판을 내려다보았다.


“본 함은 그 어떤 공격에도 견디도록 만들어진 배다.”


불침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순신함을 격침하는 데는 놈들도 다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 점을 통해 변수를 만드는 게 지휘관의 몫이고.

결국 불침이라는 건 사용자의 역량에 좌우되는 법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선택지는 없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


<함교, 통제실! 긴급 보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마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걸까.

통제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확인 항공 세력 다수! 방위 020! 거리 105km! 본 함을 향해 지속 접근 중!>


시작이다.

나는 항해장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함에 알리고 우리 쪽에서 관제하겠다고 해.”

“예, 함장님!”


그리고 곧바로 제2함교에 연락을 걸었다.


“제독님, 정운함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뭐라고?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함대의 대공 진형을 정운함을 중심으로 편성해야 합니다. 이순신함은 몇 발 피탄당하더라도 이상이 없지만 정운함은 1발이라도 맞으면 위험합니다!”


<지금 진형을 허물었다가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뿐이네! 자네 이론대로라면 함대가 기동하지 않고 포화를 집중해야 방어율이 올라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정운함을 이렇게 노출시켜도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쪽 함장을 믿게. 항공대 출신이지만 조함의 명수야. 자네도 알지 않는가.>


제기랄.

시간이 부족한가.


이러는 와중에도 적기는 계속 다가오는 중이다.


더 실랑이 벌일 시간은 없기에 일단 대공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곧이어 통제실에서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적기! 거리 75km! 숫자 약 80··· 아니, 100기 이상입니다!>


제1항공함대의 공습이다.


역시 여기선 준비해 둔 수를 쓸 수밖에 없겠지.


“항공장! 당장 요격기 발진해!”


***


그 시각,

제1항공함대 1차 공격대 상공.


뇌격대 지휘관 무라타 대위는 저 멀리 구름 아래 보이는 항적을 발견하곤 코웃음을 쳤다.


“적 함대 발견. 약 10척.”


언젠가 도쿄만에서 보았던 연합함대의 위용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빈약한 전력이다.


듣기로는 놈들의 머리 위를 지키는 건 고작 항모 1척의 호위대가 고작인 모양.


반면 그가 있는 1차 공격대만 해도 신형 제로 전투기가 20기. 그 외 폭격기와 뇌격기가 각각 40기씩 있다.


전투기의 숫자가 적지만 신형 0식 함상 전투기, ‘제로센’의 위력이라면 충분하다.


승조원들도 이날을 위해 맹훈련을 거듭한 이들.


실패란 없다.


오늘이야말로 머리가 굳은 대함거포주의자들에게 그동안의 성과를 증명할 시간.


“편대, 반드시 대어를 낚는 거다. 무력화가 아니라 격침을 시켜버리자고!”


파일럿들은 각자 결의를 다지며 전장에 돌입했다.


<대장! 전방에 적기 다수! 12기! 전투기입니다!>


“벌써 요격기를 발진시켰다고?”


동료기의 무전에 무라타 대위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심지어는 기다렸다는 듯 앞을 가로막는 진로로 오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대만 항공대가 허술해서 당한 건 아닌 모양.

하지만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호위기가 상대한다!”


무라타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의 위로 흰색 전투기들이 날쌘 비행운을 남기며 앞서갔다.


성난 엔진음을 울리며 달려나간 두 집단이 공중에서 격돌하고―


“호위대, 교전 개시!”


수많은 불꽃이 하늘 위로 작렬한다.


대부분은 대한제국 해군의 것이었다.


“압도적이군···!”


구식 호크기부터 버팔로까지.

단엽기, 복엽기를 가리지 않고 불타오른다.


원을 그리며 선회하던 버팔로가 그대로 제로에게 뒤를 잡혀 격추되고,


기동전을 걸던 복엽기는 위에서 내려찍는 제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사냥당했다.


초전부터 압도적인 성과.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대장님! 적기가 폭격대에 달라붙었습니다!”

“저 자식들, 막무가내로 들이닥치는구만.”


일부 요격기들이 호위기를 무시하고서 공격대를 물어뜯은 탓에 폭격 부대에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벌써 몇몇 폭격기가 검은 연기를 흘리며 편대에서 이탈했다.


상황을 살피던 무라타는 강하 신호를 보내곤 기수를 내렸다. 적 요격기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폭탄을 장착한 폭격대와 달리, 그가 이끄는 뇌격대는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 어차피 고도를 내려야 하기도 했다.


“편대, 강하한다!”


수십 기의 뇌격기가 파도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


이순신함에서 날아오른 버팔로 전투기의 콕핏.

유리 소위는 조종간을 잡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첫 실전.

그다지 긴장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출격이 너무 늦어졌다는 것.


전장에선 이미 예광탄의 빛줄기와 비행운이 어지럽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전투 구역에 가까워질수록 무전망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우라질! 떨어트릴 수가 없어! 원호를···.>


<편대장님이 당했어!>


<도와줘! 적기에 꼬리를 물렸다!>


<여기 지원이 필요해!>


무전망은 아군의 비명으로 가득하다.

공중전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


곧이어 그녀의 눈앞에도 불타며 추락하는 잔해가 스쳐 지나갔다.


제주 항공대 소속의 복엽 호크 전투기다.


“···개새끼들.”


긴장감 따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일 뿐.


한발 늦게 전장에 진입한 그녀의 눈앞으로 아군 전투기가 쫓기듯 나타난다.


그 아군기의 뒤를 잡은 일본 전투기.


긴 유선형 동체가 인상적인 기체가 예광탄을 토해내며 버팔로를 쫓았다.


이대로면 격추당한다.

하지만 도와주러 가다간 다른 기체에 뒤를 잡힐 수 있다.


···알까 보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녀는 스로틀을 밀었고.


아군기에 정신이 팔린 제로는 너무나도 쉽게 뒤를 내주었다.


빨리 끝내고 이탈해야 한다.

그녀는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며 유리는 당황하며 입을 벌렸다.


분명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는데 누구도 그녀의 뒤를 잡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교신이 되는 상태라면 분명 공격 중인 기체를 봐주는 동료기가 있을 터인데.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50구경 기총을 몇 발 맞았을 뿐인데.


불붙은 종이마냥 날개에서 새빨간 화염을 토해내며 추락한다.


날카로운 기동력이 무색해질 정도의 내구력이다.


<도와줘서 고맙다!>


사지에서 벗어난 아군기가 감사의 말을 전하곤 황급히 기수를 돌린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주변을 살펴보았다.


전장은 여전히 아군의 열세.

뒤를 잡힌 채 쫓기는 아군기가 여럿 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이내 더 중요한 목표가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저 수면 아래,

함대로 다가오는 편대가 있다.


***


“견시, 저공비행하는 적기 찾아봐.”


고정식 쌍안경에 눈을 붙인 수병들이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수색한다.


노천식 대공 함교에선 상공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공중전이 선명히 보였다.


수많은 비행운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 가운데, 불타며 떨어지는 기체는 대부분은 아군기였다.


성능의 열세는 어쩔 수 없다.

되도록 시간이라도 끌어줬으면 좋겠는데···.


“우현, 견시 보고! 방위 150! 적기 약 20! 거리 8,000!”


우현의 수병이 다급하게 외친다.

고개를 돌리자 수면 위로 스치듯 날아오는 대편대가 보인다.


“우현, 쏘기 시작!”


원형진을 이룬 함대 전체가 천둥소리를 토했다.


허공에 벽을 이루듯 터지는 포연. 밀집해서 날아오던 항공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산개한다.


진형은 흐트러트렸지만 격추된 숫자는 얼마 없다.

이윽고 흩어진 편대 중 몇몇이 함수 쪽으로 빙 돌아간다.


“함장님, 십자 뇌격입니다.”


항해장이 눈가를 찌푸리며 말한다.


십자 뇌격은 말 그대로 두 방향에서 동시에 뇌격하는 전술. 한쪽을 피해도 다른 쪽에 옆구리를 보일 수밖에 없는 공격이다.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전술인데.

적들은 정예 항공대다.


이걸 파훼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


“진로 그대로. 함수, 함미 대공화기도 전부 우현으로 집중해.”

“함장님, 그렇게 하면 함수 방향은···?”

“조함으로 피한다.”


피탄 면적이 큰 옆구리보단 함수를 들이미는 쪽이 피하기는 더 수월하다.


나는 항해장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할 수 있겠지?”

“···예!”


경례를 한 항해장이 아래층 항해함교로 내려간다.


“적기, 투탄!”


함수에 8발, 좌현에 4발.


항적이 매우 곧다.

상당히 숙련된 조종사가 투하한 어뢰다.


이대로 가면 절반 이상은 얻어맞겠지.


“키 오른편 비상타.”


그렇게 둘쏘냐.


“키 왼편 15도.”


<키 왼편 15도!>


“135도 잡아.”


크게 흔들리는 이순신함의 갑판.


급기동에 밀려난 파도가 격렬히 춤추며 갑판 위로 넘실거리고 멀리서 새하얀 항적이 눈에 보일 만큼 다가왔다.


<135도 잡기 끝!>


수면을 갈라 세우는 창처럼 다가오는 항적.

나는 두 손에 주먹을 움켜쥔 채 그것을 바라보았고···.


“좌현! 어뢰 항적 다수! 본 함 함미에서 함수 방향으로 지나감!”


재빠른 항적이 아슬아슬하게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허나 안도할 틈도 없이 폭음이 들려온다.


“551함이 당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피한 거 같습니다.”


외곽의 구축함 1척의 옆구리에 큰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연기를 흘리며 멈춰 서는 구축함.

살아남기는 어려울 듯하다.


냉정한 말이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항모가 당하는 것보다는 구축함 한두 척 내주는 게 훨씬 나은 피해니까.


천만다행으로 적들도 이순신함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552함에 구조 실시하라고 하십니다.”

“신호 보내.”


그렇지만 아직 공습은 끝나지 않았다.


“적기 다수! 방위 200! 거리 3,000!”

“함수에도 다수 접근 중! 방위 015!”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몰려드는 뇌격기들.


두 번이나 급기동으로 피하는 건 무리인데.

조금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하나.


그런데 좌현 쪽에 돌연 전투기의 기총소사음이 들린다.


“좌현에 아군기입니다!”


대공포화가 번쩍이는 하늘 아래,

뇌격기를 향해 달려드는 아군 전투기가 있었다.


저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달라붙는 아군기라니.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유리.’


아군의 사격마저 무릅쓰고 달려든 전투기가 적 뇌격기 하나를 붙잡고 총탄을 퍼부었다.


뇌격기 하나가 불바다가 되어 떨어지고 나머지 항공기들이 혼비백산하여 어뢰를 던지고 도망갔다.


절반 이상이 불발된 어뢰. 좌현은 무시해도 될 수준이다.

다행히 유리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하지만 함수는···.


“적기, 투탄!”


십수 기의 항공기가 일제히 어뢰를 떨군다.

이순신함으로 접근해 오는 새하얀 항적.


나는 전성관에 대고 외쳤다.


“키 오른편 5도!”


<키 오른편 5도!>


새하얀 항적이 쏜살같이 다가온다.


“키 왼편 15도!”


<키 왼편 15도!>


몸을 돌리며 기울이지는 이순신함의 갑판.


어떻게든 선체를 돌려 항적 사이로 지나가려하지만 한발 늦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어뢰 항적.

1발은 맞는다.


“총원, 충격에 대비하라!”


쿵―!

새하얀 물기둥이 이순신의 좌현에 솟아오른다.


큰 충격은 아니었다.

항공어뢰의 작약은 그리 크지 않다.


“보수장, 피해 보고해!”


<좌현에 미미한 균열 발생. 초동 조치 중입니다.>


어뢰 방어용 장갑이 잘 작동했다.

침수가 발생했지만 보수장이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어뢰는 피했지만,


“좌현 대공 견시 보고!”


나는 아차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


뇌격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폭격기가 머리 위로 다가온 것이다.


“적! 급강하 폭격기 다수! 본 함으로 접근 중!”


수십 기의 급강하 폭격기들.


7~80도에 가까운 급강하로 함선 머리 위까지 다가와 폭탄을 떨구는 항공기다.


코앞에서 폭탄을 쏘듯이 떨구는 특성상 명중률이 높다.


결국 돌파당한 건가.


아군 항공대가 끝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제로센의 성능을 이길 순 없었나 보다.


어떻게든 피해 봐야지.

전성관을 열고 회피 기동을 명령하려던 때였다.


<대공 함교, 사령관이다.>


제2함교의 지휘부에서 직통으로 연락이 왔다.


“예, 제독님.”


<함장, 회피 기동 하지 말고 적 공격을 본 함으로 유도해보게.>


“예?!”


<폭격기가 정운함을 노리면 끝장이야. 어뢰는 몰라도 폭탄은 항모에게 치명적이지 않나. 차라리 이순신함이 맞아서 버티는 쪽이 나을 걸세.>


너무 위험하다. 아무리 이순신함이라도 함교에 맞으면 어쩔 수 없다.


물론 격침될 일은 없지만, 지휘부가 있는 제2함교는 경장갑이라 폭탄에도 피해를 입는다.


저렇게 많은 숫자가 공격해 오면 한두 발은 급소에 맞을 가능성이 있단 말이다.


“그러면 본 함이 위험해집니다. 우선 장갑 함교로 대피해주십시오.”


<나는 함대의 지휘를 맡아야 하네. 이순신함의 대공 성능을 믿어보지.>


단호한 목소리였다.


조금이라도 뜻을 굽혀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본 함 직상에서 강하 중!”


공습은 인정사정없이 닥쳐왔다.


기수를 80도 가까이 숙인 항공기들이 일제히 프로펠러 소리를 울리며 강하했다.


배면에 커다란 폭탄을 안고서.


가까워지는 프로펠러 소리.


포연이 머리 위에 구름처럼 펼쳐지고 불타는 항공기가 파편을 흩날리며 바다로 추락한다.


불타는 하늘을 뚫고 십수 기의 폭격기가 기수를 들이밀고 나타났다.


“투탄!”


이순신함에 가까워진 폭격대가 일제히 상승한다.


그들의 동체 아래서 해방된 폭탄이 휘파람 소리를 남기며 떨어지고―


“총원, 충격에 대비하라!”


쿠구궁―!

이순신함의 갑판 위로 새빨간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귀청을 울리는 폭팔음.


눈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자 함수 쪽에서 불타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대략 4발 명중.


그중 1발은 주포탑 위, 1발은 함수에 명중.

나는 곧장 함교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상황 보고해!”

“함수 갑판에 폭탄 명중! 소화방수 요원 배치 중!”


이 정도면 피해는 크지 않다. 세 자릿수 규모의 정예 항공단을 맞이한 것치고는 정말 싸게 먹힌 수준.


어떻게든 공습은 떨쳐낸 건가.


“하, 함장님―!”


그렇게 안도한 순간이었다.


“지휘부가··· 제2함교가 피탄당했습니다!”


머리가 멍해진다.

지금, 뭐라고···?


최악의 상황이다.

지금 내가 들은 게 정말인가?


하필 얻어맞아도 그런 장소를.

하필 이럴 때에.


“함장님!”


등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나를 흔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손원일 항해장이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외쳤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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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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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남방 수호자, 탄생 +29 24.08.22 12,440 421 13쪽
27 말레이 해전 (3) +22 24.08.21 12,309 447 15쪽
26 말레이 해전 (2) +25 24.08.20 12,165 412 16쪽
25 말레이 해전 (1) +15 24.08.19 12,214 391 14쪽
24 ABDA 함대 +17 24.08.18 12,262 400 20쪽
23 비밀 기지 +21 24.08.17 12,381 397 14쪽
22 웨이크 섬 +16 24.08.16 12,232 415 15쪽
21 추격 +19 24.08.15 12,545 422 11쪽
20 위대한 항로 +20 24.08.14 12,962 419 18쪽
19 운명의 5분 (2) +29 24.08.13 12,871 421 16쪽
18 운명의 5분 (1) +18 24.08.12 12,615 420 13쪽
17 폭풍 속으로 (2) +18 24.08.11 12,666 412 24쪽
16 폭풍 속으로 (1) +16 24.08.10 12,540 403 12쪽
» 불타는 하늘 +23 24.08.09 12,713 365 22쪽
14 This is not a drill +22 24.08.08 12,373 383 12쪽
13 폭풍전야 +17 24.08.07 12,400 390 14쪽
12 황제 (2) +15 24.08.06 12,530 366 12쪽
11 황제 (1) +13 24.08.05 13,166 373 14쪽
10 기동부대 (2) +11 24.08.04 13,277 368 15쪽
9 기동부대 (1) +11 24.08.04 13,997 381 12쪽
8 에이스 +19 24.08.03 14,504 394 13쪽
7 자진 입대 +12 24.08.02 15,082 397 13쪽
6 찾아라 드래곤볼 +19 24.08.01 16,065 396 14쪽
5 최고의 복지 +29 24.07.31 17,722 435 12쪽
4 안전운전 +18 24.07.30 19,757 469 15쪽
3 전함 이순신 (2) +27 24.07.29 21,398 515 15쪽
2 전함 이순신 (1) +29 24.07.29 24,998 557 12쪽
1 프롤로그 +47 24.07.29 30,954 58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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