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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자

천몽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도월씨
작품등록일 :
2023.05.19 13:49
최근연재일 :
2023.05.20 22:4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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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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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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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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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수도자 부대

DUMMY

초록 물결의 빛을 내던 잔디들이 단풍마냥 붉게 물들었다.


풀들의 향은 마치 비난이라도 하는 듯, 비릿함과 뒤섞이며 안의 코를 연신 간지럽혀 댔다.


그러나 그는 아량곳 하지 않고 그저 멍한 눈망울을 보이며 마차로 걸어가기 바빴다.


“산아..”


마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은월의 무릎에 살포시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듯한 소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는 감정이 복받처 올라왔는지 안은 자신의 눈앞을 무엇인가가 가리는 것을 느꼈다.


툭.


걸음을 옮기던 안은 마차를 향해 떨리는 두 손을 뻗었다가, 이내 기운이 다 했는지 그대로 앞을 향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은월이 깜짝 놀랐는지, 재빨리 자신의 손에 기운을 모아 그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부드럽게 공중을 가로 지르며 안이 사뿐히 마차안으로 들어왔다.


‘마음이 상했구나.’


은월은 자신의 무릎에 낙원을 눕혔다.


그러자 소산과 낙원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보는 자세가 만들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은월의 눈에서 한줄기 물방울이 떨어졌다.


두 눈을 감고 있는 남녀의 손을 꼭 부여잡고 그들의 마지막 인사를 도왔다.


손을 맞잡은 안은 달콤한 잠에 빠진 듯, 표정이 슬프다가도 금세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 반복됐다.


그렇게 그들은 작은 마차 안에서 10년의 세월의 추억을 끝냈다.


***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그것이.”


왕준은 이마의 핏줄을 곤두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수많은 대신들이 몸을 엎드리며 그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태자마마 진정하시는 것이...”


“진정? 지금 진정할수 있겠소?”


“북남국의 행군속도가 예상을 웃돌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요. 생각을 좀 합시다.”


왕준은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북남국의 행군이 멈추질 않자,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약조와는 다르게 북남국이 점점 도성의 길목의 성들을 함락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진실. 멸망. 왕준이 두려워 하는 단어들이 조금씩 머리에 스물스물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대대로 이어온 나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설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점점 몸을 잠식시키고 있었다.


“장군, 그들을 막을 정예병력은 없는가?”


“저, 그것이. 복성에서 죽은 이월장군의 병사들이 최정예였습니다.”


“이런.”


왕준이 벼루를 집어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마마, 이왕 이렇게 됐으니, 다른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심이 어떠십니까?”


“이미 그 방법은 통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구씨를 풀어주고 그에게 도움을 받으심이.”


“말도 안되는 소리!”


왕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휘저었다.


여기서 구씨를 풀어줘 봤자 자신을 도울 일도 없을뿐더러, 이미 그 또한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꾸민 짓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을것이 뻔했다.


그런 그가 혹여라도 천관의 제자를 통해 동주의 변호를 받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께 뻔했다.


‘역시, 마마께서는 숨기고 계시는 것이 있구나.’


하루 아침에 권력의 중심이 옮겨진것에 대해 대부분의 대신들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애초에 천관의 제자가 진명과 함께 모략을 꾸며 왕준을 쳐낼려고 했다는 전제 자체가 말이 안됐다.


“일단, 오늘은 퇴궐하고. 이원 장군만 남으시오.”


“예, 마마.”


순식간에 물밀 듯이 빠져나간 사람들 틈에서 이원장군만 멍하니 남겨졌다.


“가까이 오시오.”


“예,마마.”


왕준의 손짓에 이끌려 이원이 코 앞까지 다가갔다.


“북남국에 있는 구방도 이 소식을 들었겠지요?”


“네, 맞습니다. 아마도 이번 일은 그자가 꾸민 것이겠지요.”


이원장군의 말이 맞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구씨가를 통째로 집어 삼키는 것도 굉장히 분노했지만, 그것보다 진명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의 아버지 또한 죽이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왕준이 다스리는 황국은 없어져야 맞다며 나라 자체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것 그, 마벽선생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자를요? 아무리 그래도 그자의 도움을 받기에는.”


이원이 작게 소곤거리며 왕준에게 말을 꺼낼 때 그들의 앞에 마벽이 순식간에 모습을 들어냈다.


“무슨 말들을 그렇게 하는가?”


“아, 안 그래도 찾아 뵐려고 했습니다.”


왕준이 체면에 맞지 않게 허리를 숙여 마벽에게 인사를 올렸다.


마벽은 진명의 깨끗한 기를 흡수해서 인지 그의 경지는 조금 승급한 상태였다.


“그래, 나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그, 선생의 제자가 지금 황국을 멸망시키려 하는데, 도움을 주심이 어떠신지.”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마벽의 대답은 왕준이 생각한것과는 다르게 날아왔다.


“아, 아니.”


생각지 못한 답에 당황을 한 이원이 그를 힐끗 처다보았다.


“음, 난 내 제자놈이 나의 뒤를 이어서 세상에 큰 분란만 가지고 오면 그것으로 됐지.”


“그럼,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난 애초부터 네놈을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왕준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믿고 있던 마벽조차 사실은 아무런 관심이 없던것이였다.


“그런데, 내가 작은 욕심이 하나 생겼단 말이지?”


마벽이 입을 열더니 손에 붉은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기가 흔들릴 정도로 웅축된 기운이 왕준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으윽, 갑자기 무엇을.”


손에 모이던 기운이 그대로 퍼져 왕준의 이마로 빨려 들어갔다.


“마마!”


이원이 재빨리 칼을 뽑아 마벽을 향해 겨눴으나, 그의 칼은 잘게 쪼개지며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자, 이제 네놈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겠느냐?”


“저, 저는 수도자 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금 정신이 나간 듯 흐리멍텅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왕준의 입술이 떨렸다.


수도자 부대.


황국은 수도자들이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게 그들의 행동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그런 황국도 유일하게 막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수도자가 군대에 입대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수도자가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강력한 군사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일반 백성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에 막아놓았다.


“수도자 부대라니!”


이원이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구나.”


마벽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수도자 부대는 황국의 법도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동주도 막아놓지 않았소? 수도자 부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대륙에 뻗어나가면 동주조차 천도의 제자들을 통해 황국의 입대를 막을것이요.”


“그렇다면 천기의 사용자가 아닌 지기의 사용자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지기라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을 황국에 들이려고 하다니!”


“뭐라?”


마벽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했다.


그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이원은 말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는 지기보다도 더 악질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순간 잊어버린 탓이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이원은 재빨리 우물쭈물 말을 돌려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 황국 내에서는 그를 막을 자가 존재 하지 않았다.


그가 죽으라 명하면 죽어야 했고, 기어다니는 벌레를 씹어 먹으라고 하면 그래야했다.


이미 그의 존재 자체가 황국의 황제 보다도 더 큰 두려움의 존재였다.


“됐다. 네놈이 쓸만해서 지금은 살려두겠지만, 다시 한번 그 혀바닥을 마음대로 놀리는 날에는 그대로 온몸의 근육이 찢겨 죽게 될 것이다.”


“예예.”


이원이 구차하게 고개를 숙이며 마벽에게 사죄했다.


마벽이 무슨 술수를 썼는지는 그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황제가 세상을 떠난 상태가 아니였기에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 나가야 될지 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

견목대사는 안의 일행이 떠나간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를 찾아냈다.


“이보게 견목, 오랜만일세.”


“동주의 목소리군요. 오랜만입니다.”


견목은 목소리가 날아들어오는 방향을 보며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 자네를 찾아 갔던 안이라는 사내에게 관심이 생겨서 그런데, 혹시 그 아이가 찾아가거든 나에게 바로 보낼 수 있는가?”


“셋째 공자를요?”


견목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동주, 그 공자는 제가 제자로 점찍어 뒀는데, 혹시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제자? 나는 그 사내를 내 후계자로 택했는데.”


“크흠.”


견목이 이번에는 마른 기침을 내뱉었다.


자신이 제자로 받아들이는것보다 동주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이 더 무게감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동주, 시간을 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어차피 그 공자는 지금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아니, 곧 다시 세화서고로 돌아갈것이네.”


“네? 그게 무슨.”


견목이 동주의 말에 질문을 던질 때, 자신의 뒤쪽으로 밝은 빛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자리에는 안과 함께 떠난 마차 한 대가 놓여있었다.


“스승님!”


어김없이 책을 들고 이야기를 받아 내던 세명의 제자가 황급히 견목의 자리로 달려왔다.


“스승님,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신지요?”


진가가 땀을 뻘뻘 흘리며 견목에게 물었다.


“난 괜찮다. 그나저나 저 마차. 셋째 공자의 것이 아니더냐?”


“맞습니다. 저게 왜 저기에.”


공란이 견목의 물음에 답했다.


마차는 조금 상한 듯, 여기저기 이상한 것이 묻어있었고, 구멍이 뚫려 정확히 분간하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안이 타고 떠난 마차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평아, 저기로 가서 마차를 살펴 보고 오거라.


“네? 아, 알겠습니다.”


조평이 견목의 말을 듣고 재빨리 마차로 향해 떠났다.


“동주, 설마 이 미래를 알고 계셨습니까?”


“모른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그러면 왜 진즉에 제게 말씀을 안하셨습니까?”


“저 사내에게 관심이 생긴지 얼마 안됐거든.”


“허어.”


견목은 동주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로 몇 번 저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제자는 커녕 그대로 동주에게 안을 보내게 될 상황이였다.


“그럼, 제안 하나 할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제안?”


견목이 말했다.


“이미 저 공자에게는 지기의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동주도 느끼셨겠지요?”


“그렇네.”


“그렇다면 이왕 이리된 것. 공자에게 지기를 먼저 수련 시키고 동주에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동주에게서 조금 고민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생각은 간단했다.


자신이 죽기전에 후계자만 만들어 놓고 세상을 떠나기로.


“좋군, 그렇게 하지.”


의외로 동주의 고민은 빨리 해결됐다.


지기와 천기의 뿌리는 같았고 활용 방법만 다른 무공이였기에, 그에게는 딱히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기와 천기를 동시에 수련하게 된다면,


이번 사건의 배후를 알아냈을 때 도움이 될것이라고 판단했다.


“고맙습니다 동주.”


견목이 짧게 인사를 올리자 더 이상 동주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스, 스승님!”


마차에 다가갔던 조평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목소리가 서고안에 들려왔다.


“무슨일이냐.”


“어, 어서 나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조평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마차안을 바라보며 드러 누워 버렸다.


“스승님.”


“그래.”


견목대사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작은 도약을 통해 순식간에 마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그 였기에 자주 볼수 없는 모습이였다.


“으윽.”


조평이 견목이 도착한 것을 보고는 재빨리 그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도대체 무엇을 봤는데 그러느냐?”


“보지는 못했습니다. 문이 워낙 단단히 잠겨 있어서, 그런데 비릿한 향이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여.”


겁이 많아 덜덜 떨고 있는 조평을 견목이 손으로 살짝 밀쳐냈다.


그리고는 마차의 문틈 사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어둠, 칠흙같은 어둠이 그의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같이 뭉쳐있는 것도 발견했다.


미세한 쇳가루의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조평의 말대로 피의 냄새였다.


“설마!”


견목이 두 팔을 펼치더니 술법으로 마차의 문을 강제로 열어버렸다.


“세상에.”


마차의 안을 본 견목과 조평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긴 침묵이 흐름과 동시에 먼저 말소리가 들린쪽은 오히려 마차였다.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게 무슨일이냐.”


“황국과 소연국의 국경에서 저희를 역적이라며 공격을 했습니다.”


은월은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말도 안되는일이.”


조평이 옆에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저 아이는 어찌 된 것이냐.”


“....”


견목의 물음에 은월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견목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이미 소산의 목숨이 끊어졌음을 진즉에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공자는 무사하구나.”


“네.”


정신을 잃은 듯, 쓰러져 있는 안을 잠시 흝어 보고는 견목이 진가와 공란을 향해 손짓했다.


“부르셨습니까.”


진가와 공란 또한 견목의 부름에 짧은 도약을 통해서 마차로 날아왔다.


“서고의 뒤편에 천기와 지기의 흐름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곳으로 저 아이를 묻어주거라.”


“묻어주다니요?”


공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마차안에 자는 듯이 보이는 소산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입술을 떨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들 중 가장 침착했던 진가가 견목에게 답했다.


“그래, 그리고 나머지 저 아이와 공자는 안으로 들이거라.”


견목의 말과 함께 진가와 조평이 재빨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세화서고의 작은 뒷방에서 안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은월이었다.


그녀에게 조금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린 견목이 허락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월은 그가 어서 빨리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했다.


이번에도 악몽을 꾸는듯한 모습이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전보다 더 슬프고 괴롭게 느껴졌다.


고스란히 그의 감정을 느낄수 있게 된 은월은 그가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길 바랄뿐이였다.


“으..산아..”


안의 입에서 미세하게 소산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견목의 말대로 그의 제자들이 땅에 묻어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소산.”


괴로워 하는 그의 모습을 보던 은월이 한쪽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소산의 감정과 기억을 모두 흡수한 덕분인지 자신이 마치 소산 같았고, 자신을 애타게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에 한 행동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은월이다.


안의 입에서 소산이 아닌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은월은 조심스럽게 그가 누워 있는 이불속으로 자신의 몸을 집어넣었다.


따뜻한 감촉이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


또 다른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는 자신의 주변인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이 큰 고통이였다.


그렇기에 그가 외롭지 않게 영원히 옆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은월의 가슴 한구석에서 작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떠날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사건의 진실을 그가 알게 된 다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오히려 원수로 생각하고 죽이려 들지 않을까?


갖가지 고민들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괜찮으냐?”


어느세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견목이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네, 괜찮습니다.”


은월이 이불속에서 짧게 대답했다.


“그래, 공자가 깨어 나면 내게 말해다오.”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짧은 대답이였다.


자신과 안의 시간을 방해 한 듯 한 기분이 들었는지, 뾰루퉁한 말투로 돌려 준 것이였다.


견목 또한 그녀의 대답이 무슨 의미였는지 눈치채고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언제까지 잠을 자는 거지, 설마 일어나지 않으려하나?’


그녀는 더 이상 고통 받는 현실을 거부하고 꿈속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낙원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그러자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는지 그녀가 의외의 행동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어머니 몰래 이런짓을 해도 괜찮을까?’


조금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조용히 안의 몸에 올라 탄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솟아 올라와 있던 그녀의 가슴이 안의 상체에 부딪히며 부드럽게 퍼졌다.


그리고 안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눈썹, 코, 입술.’


그의 진한 눈썹과 앵두같은 입술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심장이 미치도록 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강렬하고 빠르게 피가 돌기 시작했다.


쪽.


그 순간은 매우 짧았다.


은월의 입술과 안의 입술이 서로 부딪혔다.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삶을 무너트리려고 계획했었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이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잠시 멈춘 것 같았던 심장은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에서 작은 천기의 기운이 입술을 타고 안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으음.”


안의 입에서 또 다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개운해진듯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으음.”


은월 또한 작게 소리를 내뱉었다.


안의 몸에서 자신의 기운을 상상 이상으로 빨아들이자 조금 당황한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녀의 입술과 안의 입술사이로 혀가 움직이려 할 때.


먼저 몸을 뺀 쪽은 은월이였다.


“허억.”


매우 부드러운 감촉이 그녀의 오감을 자극했다.


자칫 잘못하면 그에게 중독되어 모든 기운을 건네줄뻔했다.


조금 위험함을 감지했는지, 그녀가 그의 몸 위에서 내려와 다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으윽, 여기는...?”


“일어나셨습니까?”


안이 갑작스레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은월이 건네준 기운의 효과가 바로 나타난 덕분이였다.


“여긴, 어디냐. 너는 왜 이곳에 있고.”


“세화서고입니다. 도련님은 정신을 잃으셨었어요.”


옆에 누워 있던 은월이 팔을 붙잡으며 토끼 같은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변화에 조금 거리감이 느껴졌는지,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을 떨쳐 냈다.


“내가 정신을 잃어? 왜.”


“기억 나지 않으십니까?”


“기억..산..산이!”


안이 고통스러운지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뇌리에 꽂인 소산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였다.


“산이는, 산이는!”


자신의 팔을 부여잡고 작게 흔드는 안을 보며 은월은 한층 슬픔의 잠긴 눈초리를 보였다.


그를 바라보던 은월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산이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안은 자신의 기억이 왜곡된 것이라 부정하고 싶었다.


소산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믿기가 너무 힘들었다.


“정신이 드셨군요.”


밖에서 기다리던 견목이 안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산이는 어딨습니까?”


“좋은 터에 잘 묻어주었습니다.”


견목의 말은 들은 안이 고개를 떨궜다.


“공자, 떠난 이는 더 이상 돌아올수 없습니다. 이미 놓친 것이 있다면 남은것이라도 잘 지키는게 중요합니다.”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다 또 잃게 된다면.”


“지금 공자 옆에 있는 아이도 결국 지켜낸 것이 아닙니까? 비록 오래 함께 하지는 않은 듯 싶지만, 그래도 공자의 사람입니다.”


견목의 말을 들은 안이 그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어찌 됐든 소산은 떠났고 은월은 지켰다.


“이제 저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안이 멍한 표정으로 견목에게 물었다.


“어르신을 구하셔야지요.”


은월의 대답이 견목보다 빠르게 나왔다.


“아버지? 그래, 아버지!”


안은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는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으윽.”


“조심하세요, 아직 부상에서 회복된 것이 아닙니다.”


몸을 바로 세우자 마자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을 은월이 붙잡아 주었다.


“공자, 서고로 날아오는 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구씨는 안전한 상태입니다. 그리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처형이 곧 진행될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어찌 있으라는 말씀입니까?”


“듣자하니, 황국의 황자가 수도자 부대를 만든다고 발표한 뒤 내부의 분란을 막기위해 구씨의 처형을 미뤘다고 합니다.”


“수도자 부대요?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하다니.”


안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오히려 막무가내인 태도로 황국으로 떠나려 했다.


그의 모습에는 지금 오로지 구씨만이 존재했다. 그를 바라보던 은월은 작은 서운함이 느껴졌는지 고개를 돌렸다.


“공자, 생각해보세요. 이번 국경에서의 전투에서 고작 평범한 사람을 상대 했을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수도자 부대를 만든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이대로 황국으로 돌아간다 한들 무엇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 그건.”


“그때 제가 말한 것을 기억 하십니까?”


안은 자신과 견목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자신의 기억을 찾게 될지 모른다는 상황에서 건넨 견목의 제자 제의.


“지금이 제 제자가 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떠신지요?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다음 황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수도자라..”


안은 왕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수도자의 병사들.


그를 부수기 위한 방법은 지금 오직 자신이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좋습니다. 견목대사의 제자가 되도록 하지요.”


안의 입에서 제자가 된다는 말이 떨어졌다.


“그래, 이제부터 내 제가 되었으니 말을 놓도록 하겠다.”


견목은 방안에 놓여있는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보고 안이 이마를 찧으며 절을 올렸다.


스승의 대한 예우를 보인 것이다.


절을 하면서 안은 한가지의 생각을 떨쳐버리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왕준을 베어내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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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몽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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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남매 23.05.19 174 3 11쪽
35 비밀 23.05.19 171 3 11쪽
34 후계자 23.05.19 180 3 12쪽
33 조우 23.05.19 179 3 12쪽
32 천관으로 23.05.19 181 3 11쪽
» 수도자 부대 23.05.19 178 3 22쪽
30 소산 23.05.19 184 3 14쪽
29 구호방 23.05.19 170 3 15쪽
28 황국으로 23.05.19 175 3 16쪽
27 또 다른 세계 23.05.19 180 3 13쪽
26 집어삼키다 23.05.19 191 3 14쪽
25 깨어나다(2) 23.05.19 196 3 19쪽
24 깨어나다(1) 23.05.19 198 4 16쪽
23 시작(4) 23.05.19 226 3 18쪽
22 시작(3) 23.05.19 212 3 11쪽
21 시작(2) 23.05.19 219 3 9쪽
20 시작(1) 23.05.19 228 3 18쪽
19 움직이다(4) 23.05.19 242 4 10쪽
18 움직이다(3) 23.05.19 222 3 10쪽
17 움직이다(2) 23.05.19 238 3 11쪽
16 움직이다(1) 23.05.19 263 3 14쪽
15 발단(3) 23.05.19 254 3 11쪽
14 발단(2) 23.05.19 298 3 16쪽
13 발단(1) 23.05.19 294 3 11쪽
12 마관도주 그리고 천관 23.05.19 310 3 14쪽
11 태동(4) 23.05.19 357 3 12쪽
10 태동(3) 23.05.19 373 4 15쪽
9 태동(2) 23.05.19 400 3 12쪽
8 태동(1) 23.05.19 449 3 18쪽
7 천주와 동주 23.05.19 46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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