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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자

천몽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도월씨
작품등록일 :
2023.05.19 13:49
최근연재일 :
2023.05.20 22:45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7,566
추천수 :
202
글자수 :
371,828

작성
23.05.19 14:30
조회
448
추천
3
글자
18쪽

태동(1)

DUMMY

마차 한 대가 매섭게 내리는 눈으로 앞길이 막혀 버렸는지 그대로 멈춰섰다.


“이곳부터는 걸어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낑낑 거리며 마차를 빼내던 인원들이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 고맙네.”

“형님, 아마 천도산에 가까워져서 날씨가 바뀐 것 같습니다.”


두터운 옷을 껴입은 방이 마차에서 내리는 진명을 부축하기 위해 옆에 섰다. 진명은 그런 방이 기특해보였는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는 내리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흐음.”


눈이 심하게 내리는 터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해가 떨어진 것은 확실했다. 지금은 당장 이동 할 수 없겠다 생각이 든 진명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아직 3일정도 남았으니, 오늘을 이곳에서 짐을 푸는 것이 좋을 듯 싶군요.”

“네, 도련님.”


진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이 진명과 방을 위한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형님, 벌써 황국을 떠나 온지도 열흘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천도산으로 쉬지 않고 달려오다 보니 꽤 고단하구나. 너도 이만 묵을 곳이 완성 되는대로 잠을 자도록 해라.”


진명의 말을 들은 방이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천막을 설치하는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툭. 저벅.


가볍게 튕기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잡음이 들려왔다.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 그것을 알아챈 구씨가의 수행자들의 머리가 일제히 쭈뼛섰다.


“무슨소리지?”


주변을 둘러보던 진명 또한 소리를 들었는지 동작을 멈추고는 한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련님, 이곳에서 벗어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수행자 한명이 진명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무, 무슨 일인가?”


갑작스러운 반응에 화들짝 놀란 방이 진명에게 다가와 물었다.


“누군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 속을 뚫고 한 사람의 모습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온통 갈색의 가죽으로 옷을 입은 사람. 나무 가면을 쓴 탓에 그의 성별은 구분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한 악취와 함께 풍겨오는 위압감이 사람들을 긴장시키게 만들기 충분해 보였다.


“네놈.. 지기의 수행자구나!”

“하늘을 거스르는 배은망덕한 자!”


그의 모습에서 지기의 기운이 나오고 있음을 눈치챈 수행자들이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의 목을 노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천기의 흐름을 읽는다더니. 네놈들은 상대의 수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이구나.”


약간 걸걸한 목소리가 그가 남성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공격해 오는 이들을 우숩게 보듯 몸을 돌려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경이롭고도 부드러운 곡선이 공중에서 멤 돌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실린 공격들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자 수행자들의 공격이 빈공간을 가르며 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울려퍼졌다.


“아니?!”


수행자들이 놀란 눈동자로 자신들의 머리위를 돌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미처 다물어지지 않은 입을 닫기도 전에 그가 내려오더니 검을 휘두른 두 사람의 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쾅!


“크윽.”


어찌나 강하게 붙잡았는지, 그의 손에 들린 두 명의 사내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목이 뒤로 꺾여 버렸다.


“이런, 네놈... 연청의 경지로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명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며 말을 꺼냈다.


“연청!”


방도 그의 말을 듣고는 놀랐는지,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금 진명과 방을 따라 나선 자들은 지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연청의 경지인 사내의 등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이제 알아 차린것이냐?”


순간, 가면 속 숨겨진 눈동자에서 불꽃같은 일렁임이 일어났다. 그는 달려오는 멧돼지 마냥 폭발하듯 진명과 방의 앞으로 매섭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진명도련님, 방 도련님 어서 도망치십시오!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수행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명과 방이 서로를 챙길 여유도 없이 뒤로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파앙!


진명과 방이 도망침과 동시에 무공이 충돌하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꽤 큰 파장이 공간마저 울렸는지 내리던 눈보라가 공중에서 작게 터져나갔다.


“크윽, 천기의 수행자가 고작 지기 따위한테..”


한손에 작은 문양을 그리던 수행자가 사내에게 팔 한쪽이 뜯겨져 나갔는지, 비어 있는 자신의 팔을 보고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너희 천기놈들은 오만 방자하기 그지없지. 그런 천기놈들의 수장인 천호에서 시험을 치룬다는데, 내가 그냥 지켜볼 것 같았느냐.”


사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수행자를 저 멀리 집어 던져버렸다. 이제 남은 건 단 한명의 수행자뿐이었다.


“이...이놈!”


수행자는 사내의 모습에 벌벌 떨면서도 작은 실금을 만들어 그의 앞에 대치했다.


“호오, 지금은 사라졌다는 주살공(紬殺功)을 부릴 줄 아는구나, 흐르는 공기를 실로 만들어 공격한다지?”


“평생을 수련해 얻은 무공이다. 네놈 정도는 토막 낼 수 있겠지.”


무거운 분위기의 침묵이 잠시 흘렀다.


“간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수행자였다. 손을 뻗어 팔을 넓게 벌리자 무형의 실이 허공을 가르며 사내에게 향했다. 갑작스럽게 시작 된 그의 공격에 뒤로 물러난 사내가 섬광처럼 몸을 숙여 땅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토공탄(土功彈)! 역시 연청이란 말인가?!”


쌓여 있는 눈을 뚫고 주먹을 받아낸 땅에서 가는 모래알들이 튀어 올라왔다. 굉장히 깊은 곳에서 올라왔는지 아직 살얼음이 껴있는 상태로 모래알들이 단단히 뭉쳐지는 것이 보였다.


“어디 한번 막아보거라.”


공중에서 바람을 타고 휘돌며 모래알들이 빠른 속도로 수행자를 향해 날아갔다.


“이크!”


수행자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며 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콰쾅.


“커헉.”


토공탄 과 주살공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굉장히 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로 작게 깔린 먼지들이 눈앞을 가려 방금 들린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툭.


먼지가 걷혀감과 동시에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자신의 기술로도 남자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는지, 온 몸의 상처를 입은 수행자가 끝내 몸을 떨며 거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이 끊어졌다.


“고작, 이정도의 경지로 천도산을 향하다니.”


사내는 널 부러진 현장의 시체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이내 자리에서 도망친 진명과 방을 붙잡기 위해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


북적북적한 소리가 시장 골목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물품을 선점하기 위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구씨가가 가져온 물품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열기가 뜨거운 것이 이유였다.


“흐음, 이 향신료는 은자 닷 냥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네, 알겠습니다.”


안은 소산과 함께 상권을 둘러보며 물품에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원래는 방이 도맡아서 해야 할 일이였지만 그가 진명과 함께 천도산으로 향했기에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중이였다.


‘형님들이 벌써 천도산으로 떠난 지 열흘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났으니 이제 곧 시험을 치루시겠구나.’


안은 손에 들린 향신료를 조심스럽게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진명과 방의 시험을 걱정했다. 그 모습을 보던 소산이 무엇이 궁금했던지 가슴 쪽에 끌어안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도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형님들이 언제 쯤 돌아오실지 잠시 생각하고 있었어. 그나저나, 이곳도 어느 정도 둘러보았으니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다.”


그의 말을 들은 소산이 내려놓은 물건을 다시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윽, 이게 왜.”


처음 들었을 때 와는 달리 물건이 무겁게 느껴졌는지 힘겨워 하는 모습이 안에게 보였다.


“무거운가 보구나?”


안이 그녀를 도와주기위해 손을 뻗었다.


“죄, 죄송해요. 들어 올릴 때 생각보다 힘이 안 들어가네요.”

“하하, 너와 나 사이에 이 정도는 괜찮다”


워낙 어릴 적부터 친남매처럼 지냈던 터라 소산의 모습이 안에게는 유달리 귀엽게 보였다.


“읏차, 어떠냐, 아무리 몸을 몸쓰는 도련님이라고는 하지만 이정도는 끄덕없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부분의 물건을 들어 올린 안이 자랑스레 말했다.


“뭐, 아무리 몸을 못쓴다고 해도 도련님도 남자라면 이정도는 들어올리셔야죠.”

“이놈이!”


장난스러운 대답에 안이 꿀밤을 먹였으나, 둘다 재밌다는 듯 실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이 망할 놈을 봤나? 왜 이렇게 안 따라와!”


안과 그녀가 슬슬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옆에 있던 골목 사이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저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본데요?”

“신경 쓰지 말아라, 아마도 도망쳤던 몸종 하나가 주인에게 다시 잡혀가는 중이겠지. 괜히 간섭했다가 이름 있는 집안이라면 되레 화만 입을게 뻔하다.”

“흐음...”


안의 말을 들은 소산이 가슴이 답답해졌는지 금세 얼굴이 일그러졌다,


“후우.”


안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이 바뀐 것은 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차갑게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다닥.


“악,”

“괜찮은거냐?”


소리가 들린 방향에서 체구가 작은 사람 한명이 튀어나와 소산과 부딪혔다. 그러자 들고 있던 물건이 땅바닥에 나 뒹굴고 소산 또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철푸덕 넘어졌다.


“.....도와주세요.”


소산과 부딪힌 누더기의 옷의 사람이 살포시 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가느다란 팔목과 여린 음성이 그녀가 여성이란느 것을 알려주었다.


“감히 손을 물고 도망을 쳐?”


산체만한 몸집을 가진 남성이 화가 많이 났는지 여성을 뒤 따라 나오며 말했다. 씩씩 거리며 팔을 걷는 그의 얼굴에서 강한 콧바람이 느껴졌는지 안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굉장히 과격해 보이는 인상이군.’


여성은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안의 뒤로 몸을 쭈그리며 자신을 숨겼다.


“무슨 일입니까?”

“공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니 그냥 가던 길 가시지요”


남자는 양쪽으로 짙게 뻗은 콧수염을 킁 하고 불며 말했다.


“어느 관리의 집안에서 도망친 몸종인겁니까?”


안은 콧바람을 맞은 것이 기분이 나빴지만 최대한 웃어보이며 말했다.


“아니오, 내가 길에서 빌어먹고 사는 게 안타까워 보여 몸종으로 데려갔소. 그런데 저년이 밥만 축내고 집안에서 일도 안하더니, 기어이 도망까지 쳤소이다.”


“사실입니까?”


안의 물음에 여성이 덜덜 떠는 모습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떨고 있는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거짓된 공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이한 느낌이 안의 감각을 파고 들었다.


“어어? 저년 봐라?”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치가 떨렸는지 남자가 소리를 높였다.


“아니, 듣다보니깐 저년, 저년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남자의 말을 들은 소산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지가 묻은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 섞인 얼굴로 안을 향해 바라봤다.


“도련님 해결해주세요.”

“뭐? 갑자기?”


말은 당황한 듯 내뱉었으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과 눈동자에서 보이는 미묘한 일렁임이 마치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다.


“혹시, 구씨가의 셋째 소문을 아십니까?”


결연한 의지를 다진 안이 기세 좋은 모습으로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알긴, 알다만 그건 왜 묻는 거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사람도 천한 출신인데 운 좋게 출세 했다던데.”


“뭐야? 지금 누구한테.”


남자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끝을 흐리자, 소산이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안은 오히려 차분하게 그녀를 제지하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구씨가의 셋째가 바로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의 얼굴이 확 굳어버렸다.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말실수를 한 듯 지금까지 보인 태도와는 다르게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그 방금은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남자가 손을 모아 벌벌 떨며 안에게 허리를 숙였다.


“뭐,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없소. 대신 오히려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어떤 제안을 말하시는지...”


“아직도 이 여인이 당신에게 소속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나?”

“황국의 법도로 따지면 제가 소유권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생각합니다.”

“흐음, 법도라... 황국에서는 시종드는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지금 당신의 행패로 봐서는 법도에 어긋나는 것 같은데? 정식적으로 신고를 한다면 처벌 수위가...”

“.....”


남성이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땅만 바라보고 있자, 안이 기회가 왔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지금 황국의 법도를 운운하며 거짓을 고함과 다름이 없는데, 이는 중죄인 것을 알고 있는가?”

“어이구,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남자가 안의 발바닥 밑으로 몸을 엎드린 채 벌벌 떨며 빌기 시작했다. 공주와 관련된 소문이 황국 내에서는 매우 유명했기에 그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 하고 있었기에 할수 있는 행동이였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목숨을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내가 이 여인을 데려 갈 테니 이 돈을 받고 이만 이곳에서 떠나게.”


사람들이 점점 주변을 감싸오더니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안이 재빨리 가슴에 손을 넣고 주머니 하나를 그의 얼굴로 내 던졌다.


“어이구, 이런 걸 다 주시다니,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남자는 황급히 주머니를 집어들고는 잽싸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후, 됐느냐?”


남자가 사라진 것을 본 안이 고개를 돌려 소산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를 본 소산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괜찮습니까?”


안이 자신의 뒤에 숨어있던 여인의 팔목을 가볍게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고맙습니다.”

“그런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앗!”


붙잡힌 팔목에 통증이 느껴졌는지, 여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안이 당황해 하며 재빠르게 손을 놓았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한쪽 손바닥으로 팔목을 붙잡으려던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눈동자에 익숙한 것을 발견했는지 안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팔목에 이상한 흉터가 있습니까?”

“아, 예...”


“잠깐,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여인이 작은 목소리를 내며 팔목을 슬쩍 보여주었다. 그녀의 팔목에는 흉터처럼 보이는 단풍 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안은 그 그림을 보고는 뭔가 애매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내가 착각했나봅니다. 나도 비슷한 흉터가 있기에 제 과거랑 연관된 줄 알았군요.”


안의 말을 들은 여인이 갑자기 얇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가볍게 지은 미소였기에, 안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응? 내가 잘못봤나.’


소산은 괴리감이 느껴지는 모습 이였는지 그것을 눈치 챘다.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애매한 표정을 짓는 여인. 소산은 그런 그녀를 잠시 의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봤으나, 곧바로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생각을 멈췄다.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 원하는 곳으로 떠나도 좋습니다.”


안이 그녀를 떠나보내려 하자, 그녀가 갑자기 안에게 되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 갈 곳도 없는데, 혹시 저를 공자님 댁에서 일 할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녀의 말을 들은 안이 생각하듯 허공을 잠시 바라봤다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좋아. 어차피 갈 곳이 없다면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안이 그녀를 향해 말을 낮추며 말했다. 안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연신 감사하다는 듯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도련님, 어르신께 말씀 드리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소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안이 괜찮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실거야. 피곤한데 이만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안과 소산, 그리고 여인은 한바탕 소란이 있던 곳에서 몸을 움직여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흐음, 그런데 저 여인이 가지고 있는 단풍모양의 그림은 정말 나와는 관련이 없는 건가?’


길을 나서면서도 여인이 가지고 있는 단풍의 모양이 신경이 쓰였는지, 그가 생각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여인은 그런 안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고, 모르겠다.”


안이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두어 번 휘저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소산이 물었으나, 안이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여인을 집에 들였으니 궁금한 것은 언제든지 물어 볼 수가 있었고, 만약 그 그림이 자신과 연관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억을 되찾을 기회는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굳이 별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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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비밀 23.05.19 170 3 11쪽
34 후계자 23.05.19 179 3 12쪽
33 조우 23.05.19 178 3 12쪽
32 천관으로 23.05.19 180 3 11쪽
31 수도자 부대 23.05.19 177 3 22쪽
30 소산 23.05.19 183 3 14쪽
29 구호방 23.05.19 170 3 15쪽
28 황국으로 23.05.19 175 3 16쪽
27 또 다른 세계 23.05.19 180 3 13쪽
26 집어삼키다 23.05.19 191 3 14쪽
25 깨어나다(2) 23.05.19 195 3 19쪽
24 깨어나다(1) 23.05.19 198 4 16쪽
23 시작(4) 23.05.19 226 3 18쪽
22 시작(3) 23.05.19 212 3 11쪽
21 시작(2) 23.05.19 219 3 9쪽
20 시작(1) 23.05.19 227 3 18쪽
19 움직이다(4) 23.05.19 242 4 10쪽
18 움직이다(3) 23.05.19 222 3 10쪽
17 움직이다(2) 23.05.19 238 3 11쪽
16 움직이다(1) 23.05.19 262 3 14쪽
15 발단(3) 23.05.19 253 3 11쪽
14 발단(2) 23.05.19 297 3 16쪽
13 발단(1) 23.05.19 293 3 11쪽
12 마관도주 그리고 천관 23.05.19 309 3 14쪽
11 태동(4) 23.05.19 356 3 12쪽
10 태동(3) 23.05.19 373 4 15쪽
9 태동(2) 23.05.19 400 3 12쪽
» 태동(1) 23.05.19 449 3 18쪽
7 천주와 동주 23.05.19 466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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