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그들은 원래부터 솔직하지 못했다.
제50장 그들은 원래부터 솔직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왕궁에선 최전선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사망자들의 장례식이 끝나고, 부상자들의 치료가 어느 정도 끝난 시점에서, 최전선으로 파견될 왕자와 에반을 위한 파티이기도 했다.
구석에서 연주되는 악기들의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나뉘어서 서로 이야기하며 잔을 나눴다.
나 역시 에반과 함께 잔을 들어 승리를 축하했으며 에반의 경우엔 술이 아니라 오렌지 음료로 잔을 들었다.
“이런 날에는 술이어도 괜찮잖아.”
“안 돼요! 아직 상처도 제대로 낫지 않았는데 술이라니요! 당신도 술을 마실 몸 상태는 아니거든요?!”
에반의 동료인 힐러누님은 내가 에반에게 술을 건네려하자 그것을 빼앗고는 나까지 혼냈다.
“좋겠네~이렇게 내조 잘하는 여자친구도 있고.”
“여, 여여...여자친구...?!”
힐러누님이 몸을 떨며 부끄러워하자 그 뒤에서 궁수누님이 볼을 부풀리며 나를 노려봤다. 에반은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을 집어먹으며 그것을 삼키자 내게 말했다.
“너도 좋겠네~약혼자가 공주님이라.”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리고 만약 내가 없었으면 네가 마왕을 물리치고 공주님을 아내로 삼았을 거잖아? 물론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허, 마왕은 내가 쓰러트릴 거거든? 넌 하루빨리 은퇴하고 귀족으로서의 자세를 배워. 이 나라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마왕을 네가 쓰러트려준다면 땡큐지.”
“어?”
“하지만 네가 마왕을 쓰러트리더라도 나도 마왕 얼굴을 봐야겠어. 그 자식하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거든.”
“그래. 목을 들고 와서 너에게 보여줄게.”
내가 그런 말을 하며 다시 잔을 비우자 에반은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는 식겁하며 공주님의 곁에서 떨어지려하지 않는 내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야.”
“히익?!”
이고희는 내 얼굴을 보자 마나의 뒤에 숨었다. 물론 이고희가 체격이 더 커서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았다.
나도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며 뒤통수를 긁었고 그 모습을 본 카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였으면 왜 그런 거예요.”
“그치만...! 으으....”
“하아, 바보.”
나는 슬금슬금 마나의 뒤로 다가가 몸을 돌리고 있는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눈을 질끈 감으며 날 보려고 하지 않았다.
“왜 네가 부끄러워하는데. 첫 키스도 아니면서. 이쪽은 처음이었다고.”
“그...그건...! 잠깐! 내가 첫 키스가 아닌 거 어떻게 알아?! 야!”
그녀가 눈을 뜨자 나는 그녀를 잡은 손을 놓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하였다. 곧 이고희에게 옷을 잡힌 나는 그녀가 중3 때 그녀의 첫사랑과 집 앞에서 키스한 걸 몰래 지켜본 것을 들켰다.
“으으...짜증나...왜 그 때 네가 내 집 앞에 있었던 거야....”
“네 집 바로 앞이 내 집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헤에~에리씨는 다른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군요. 그 분과는 왜 헤어진 거예요?”
“아, 그거....말해도 돼?”
나는 흥미롭게 쳐다보는 카린과 레이첼에게서 고개를 돌려 이고희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2년 전, 중3이 된 이고희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가는 길에 갑작스레 내린 비를 피하기 위해 한 건물로 피신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준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2살 연상의 잘생긴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이고희 자신의 말로는,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아파트 앞까지 바래다준 그에게 그녀는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 둘은 번호를 교환했다.
다음 날, 이고희는 내 옆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고 여자들은 꺄꺄거리며 로맨틱한 상황에 흥분했었다.
처음엔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었다. 남의 일이니까.
“야~조오성! 감독님이 너 부르셔.”
“오키~다음 시간 이동이지?”
“아~빨리 점심시간 됐으면 좋겠다~!”
“이제 2교시거든?”
책과 필통을 챙겨 교실 문을 나간 나는 즐거워보이는 이고희를 한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교무실로 향했다.
“어, 왔냐. 슬슬 대회야, 알지? 당분간 합숙할 건데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 여기, 통신문. 잘 설명 드리고 허락받아와. 이번 대회 중요한 거 알지? 너 여기서 눈에 잘 띄면 고등학교도 좋은 대로 추천받아 갈 수 있어. 알겠지?”
“넵, 감독님.”
당시 축구부였던 나는 감독님의 말대로 부모님께 통신문을 드리고 걱정섞인 잔소리와 응원을 듣고 합숙 때 챙겨갈 짐과 방을 정리했다.
창문 밖을 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단지 내에선 한 커플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망할 커플....응?! 잠...!
익숙한 교복에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것은 이고희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었다.
“이고희가 말한 남자가 저 사람인가?”
둘은 손을 흔들며 헤어졌고 이고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다시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도 만난 거야?!”
“응! 톡으로 대화하다가 마침 학교가 가까운 걸 알았거든, 어제 같이 떡볶이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 그 오빠 친구도 만났고.”
그 날도 어김없이 그녀는 그와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또 내 옆자리에서.
“아아~외롭다~커플 죽어라.”
“뭐래. 아직 안사귀거든? 그리고 너네 엄마아빠도 커플인데?”
“와~패드립도 치시네?”
“이게 뭔 패드립이야? 그렇게 외로우면 내가 아는 애 한명 소개시켜줄까? 걔 운동하는 남자 좋아한데.”
“됐어. 어차피 오늘부터 합숙임.”
“합죽이?”
“합숙. 뭔 합죽이야. 미친.”
“““아하하하하하하하!!!”””
여자들은 웃어댔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자 우린 늘어난 훈련량으로 밤에도 운동장을 뛰며 훈련했고 몸을 씻고 잠자리에 누우니 휴대폰에 메시지가 와있었다.
‘훈련 힘내. 또 공에 얼굴 맞아서 눈탱이 밤탱이 되지 말고.’
이고희가 토끼가 치어리딩을 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톡을 보낸 것이었다.
‘ㅋㅋㅋ알겠다.’
그렇게 답장을 보낸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야’
‘?’
‘너가 소개시켜준다는 애 있잖아’
‘ㅇㅇ 사진 보여줘? 걔는 너 괜찮다던데’
‘ㅇㅇ 보내줘봐 연락은 해보게’
‘ㅇㅋ 일단 애한테 먼저 물어보고 올~웬일이래?’
‘ㅋ나도 여자 만날 줄 알거든? 못 만나고 있던 거임’
‘ㅋㅋㅋㅋㅋㅋㅋ알았엉’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려 하였다.
‘야, 니가 만난다는 남...’
하지만 문자를 보내려다 지우고는 휴대폰을 끄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훈련을 마치고 등교한 내게 옆자리의 이고희가 말을 걸었다.
“야, 너 왜 내 톡 씹냐?”
“피곤해서 잤어.”
“그럼 아침에 일어나서 대답해주면 좋잖아.”
“일어나자마자 훈련이었어. 미안. 뭐라고 보냈는데?”
“아, 그...미안. 그 애가 만나는 사람 생겼데. 너보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뭐 됐어. 나도 어차피 대회 끝날 때까지 걔 못 만나고. 야 그...”
“응?”
“...아냐. 아무것도.”
“뭐야 싱겁게. 뭔데~이야기해봐~.”
“아냐, 역시 나중에 국가대표가 되면 그때 예쁜 여자 만날려고.”
“그래~운동선수들이 아나운서나 걸그룹 많이 만나잖아? 지금은 일단 운동만 하고 그때 가서 연애하는 거야. 그때가 되면 이 누나에게 말해라?”
“예~그럽죠.”
나는 날 보며 웃는 그녀를 보고는 마찬가지로 웃어줬다. 그리고는 내가 하려던 말이 딱히 중요하지 않은 말임을 깨닫고 교과서를 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린 전국대회에서 아깝게 4위를 하였다. 비록 3위 안엔 들지 못하였지만 최선을 다해 작년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고 우린 기뻐했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부모님과 이야기도 하고 내 방에서 편하게 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기뻐하며 컴퓨터를 키고 컴퓨터가 켜질 동안 밖을 보니 또 다시 익숙한 남녀가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고희를 쓰다듬던 남자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덮어버렸다. 그 후 입을 뗀 남자는 손을 흔들며 이고희에게서 멀어져갔고 이고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치며 침대 위로 누웠다.
“쳇, 커플 뒤져라.”
나지막이 뱉으며 난 이불을 덮었다.
다음 날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선 나는 건너편에 사는 이고희와 만났다. 하지만 그녀를 발견한 나와는 달리 날 보지 못한 채 멍하게 길을 걷는 이고희를 보자 그녀에게 다가갔다.
“뭐하냐.”
“어? 조오성? 아, 합숙 끝났다했지...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겠네?”
“밤새 뭐했냐? 얼굴이 왜 그래.”
분명 그 남자와의 키스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잤겠지. 그걸 알지만 나는 딴청을 피우며 그녀에게 물었다.
“어? 아하...잠을 설쳐서. 가자.”
오랜만에 그녀와 같이 등교하는 거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멍하니 걷다 넘어질 뻔한 그녀를 잡아끌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학교로 향했다.
“......쳇, 짜증나네.”
나는 그녀를 뒤따라 걸으며 교실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아침조회시간에 통신문을 나눠주셨고 그곳엔 수학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자~수학여행도 벌써 다음 주네. 다들 알겠지만 짧은 치마 금지. 술 금지. 담배 금지. 그리고 폭죽 터트린다고 라이터를 가져오는 애들도 있는데 라이터 역시 압수야. 알겠지?”
“““네~!”””
“그럼 수업 준비하고 말썽피지 마세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며 교실을 나갔고 그녀가 나가자 교실 안은 시끌벅적해졌다.
“야, 너도 가는 거지?”
“어. 축구부도 가. 흐엄~! 야 대식아. 1교시 뭐야?”
우리는 1교시 전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공항 패션이나 밤에 할 놀거리들에 대해 의논했고 그 중에는 술을 마시자는 의견도 있었다.
“비행기 탈 때 짐 검사해서 다 들킬걸?”
“그럼 거기서 사야겠지. 야 오성아, 너도 우리 방으로 올래?”
“아마 걸리면 나 축구부에서 해고될걸. 같은 방 안에 있기만 해도.”
“아, 그러네. 그럼 오성이는 우리 방에서 영화나 보자.”
“19금이지?”
“어어. 끝내주는 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자들은 작전을 짰다. 여자애들은 코스를 보면서 뭔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신나보였다.
그리고 당일,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우리는 섬도 가고 테마파크도 가며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수학여행의 꽃인 장기자랑을 본 이후 학생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자유시간을 가졌다.
“으아~더워! 나 먼저 씻는다?”
“오성아, 매점 가자.”
“야~아이스크림 사올 건데 너네 뭐 먹을래?”
숙소의 1층에 있는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방으로 올라가려니 숙소의 밖에서 전화를 하는 이고희를 발견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올라가라하고 통화중인 이고희에게 다가갔다.
- 작가의말
속보 : 과거편은 길것 같지만 다음 화에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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