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장 그들은 물과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53장 그들은 물과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눈은 말똥말똥하니 감기지 않았다.
오랜만에...한국의 생각을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다. 아니...떠오르기 싫어했다.
떠올렸다간 오늘처럼 그리워져서 잠 못 이룰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난 집을 떠올리며 잠자리를 뒤척였다.
“....쳇...”
물을 마시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으니 누군가 내 방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카린이에요. 엘렌씨.”
카린의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렸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하얀 드레스의 잠옷을 입고 있는 카린이 미소를 진 채 서있었다.
그녀가 내 방으로 들어오자 나는 방문을 닫고 잠갔다.
“이 밤에 무슨 일이야? 그 옷은 또 뭐고?”
“헤헷~! 마나씨가 준 거에요. 제 나이 때 좋아하던 옷이었는데 버리기 아까워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아 그러냐.”
난 한바퀴를 돌며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았다.
“꺄악!”
그러자 온몸에 고통이 찾아왔다.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이 몸으로는 가벼운 여자아이 하나 힘겹게 들 수밖에 없단 사실이 슬퍼지고 아파서 빠른 걸음으로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허억...! 끅...! 으윽...!”
그 후 어찌저찌 침대로 가까이 이동한 나는 그녀를 침대 위에 조심히 던졌고 그 위에 올라탔다.
“허억....남자 방에...허억...여자가....허억....한밤 중에...몰래....허억...!”
“그럴 생각은 없거든요. 그리고, 아직 몸이 낫지도 않았으면서 뭘 하겠다는 거예요?”
“아냐...나...멀쩡...허억...!”
그녀가 내 볼을 꼬집으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내 몸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옆에 누웠고 그녀는 내 입에 무언가를 갖다 대었다.
“이게 뭐야?”
“약이에요. 마나씨가 가져온.”
“히익! 싫어!”
오전에 맛봤던 쓴맛이 머릿속을 스치자 나는 몸을 들었다. 그러자 누워있던 카린도 몸을 일으키더니 잔에 물을 따르고는 둥그런 약과 함께 내게 건넸다.
“애처럼 굴지 마시고요. 마나씨의 말에 따르면 아까 먹은 약은 상처를 빠르게 낫게 해주는 약이고 이건 마력 순환을 도와주는 약이에요.”
“마력 순환?”
“예. 마력이란 피처럼 온몸을 순환해요. 다른 점이라면 부상을 입었다고 마력이 빠져나가거나 하지 않고 피와는 달리 사람이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인데 마력순환이 빨라지면 피의 순환이나 상처의 회복 등 몸에서 작동하는 기능들이 향상돼요.”
그녀는 설명을 끝마치자 두 손을 내게 뻗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있는 파란 약과 물을 집어 들고선 약을 씹어 삼키고 물을 마셨다.
“으윽...이것도 겁나게 쓰네...”
“참으세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니까요.”
“그래도 하루에 두 번이나 느끼고 싶지는 않았어.”
아직까지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직 약이 위에 닿지 않아서인가?
“....어때요?”
“아직은....윽!”
그 순간 심장이 크게 한번 쿵하고 울리더니 이내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 후,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느껴지자 나는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두 팔을 뻗어 바라봤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내 몸에서 흐르는 마력인 거야?”
천천히, 그러면서도 거칠게 내 몸을 돌고 있는 마력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몸이나 정신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 신기함과 괴리감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 누우세요.”
카린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 자신의 다리를 툭툭쳤다.
“무릎베개?”
“마력을 공유하는 거예요. 제 마력을 조금씩 엘렌씨에게 흘려 넣는 거죠. 마력은 곧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는 몸이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니까요.”
“헤에~그럼 사양않고.”
나는 침대에 올라 머리부분에 다리를 펴고 앉아있는 그녀의 다리에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카린을 올려보자 그녀는 부끄러운지 머리카락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네가 해준다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거야?”
“그거야...저도 처음해보는 거니까요. 마나씨가 가져온 책에 그런 게 쓰여 있었으니까 확실한 건진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마나씨가 해보라고 해서 하는 거예요. 절~대 엘렌씨가 상상하는 그런 건 안 할 테니까요?”
“흐응~그런 게 뭔데?”
“으읏! 여자애의 입으로 말하게 하지 마세요! 하여튼...! 으으...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집중할 수가 없다고요?”
“그래? 그럼 이러면 어때?!”
“꺄악?! 저기 엘렌씨...? 왜 반대로 눕는 건데요..? 저기...엘렌씨의 입술이라든지 숨결이라든지 닿고 있으니까...저기...!”
“신경쓰지 마. 계속해.”
“으으....변태...”
내가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그 상황을 만끽하자 곧 그녀의 다리에서 흐르는 마력이 느껴졌다.
그녀의 다리에 흐르는 마력은 곧 내 얼굴과 손을 통해 내 몸으로 들어왔으며 깨끗한 마력이 내 몸을 흐르며 무언가를 정화시키는 느낌을 주었다.
내가 다시 뒤를 돌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녀는 붉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때요? 제 마력이 엘렌씨께 들어가고 있나요?”
“응. 들어오고 있어. 근데 이런 건 닿는 면적이 더 많은 게 좋지 않을까?”
“닿는 면적이요?”
“그래. 이렇게.”
“으앗?!”
나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 베개를 나와 그녀의 얼굴 밑으로 옮기자 카린이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화, 확실히 이러면 제 마력이 쉽게 엘렌씨에게 가겠지만 이건...”
“왜, 한두 번 이런 것도 아니잖아.”
“으으...저는 딱 두 번이었거든요? 흥....엘렌씨가 자꾸 이러니까 혼나는 거예요.”
“상관없어.”
“바보.....”
그녀는 두 팔로 내 팔을 잡고는 내 품안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팔과 상체에서 마력이 내게로 흘려들어오는 감촉을 느끼며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이야...카린의 마력. 맑고 깨끗해.”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에리씨가 그랬거든요. 엘렌씨는 속이 시커먼 짐승이라고.”
“하하하, 그거 말 되네.”
“화내지 않는 건가요?”
“남자들은 짐승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겉과 속이 똑같이 깨끗한 사람, 나는 그다지 못 봤어.”
“후훗, 지금 제 앞에 있는데요? 항상 똑같이, 언제나 엘렌씨처럼, 정의롭고 바보같은 사람.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앞에 서서 가장 먼저 싸워주는 사람.”
그녀가 날 웃으면서 올려다본다.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내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 보면, 카린에겐 아직 못 들었어.”
“뭔 이야기요?”
“날 좋아해?”
그녀는 내 말에 놀랐는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 옷을 잡고는 내 품 안으로 얼굴을 숨겼다.
“내 얼굴을 보고 말해줘. 카린, 날 좋아해?”
“읏...! 바보...”
내가 그녀의 두 볼에 조심스레 손을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려 날 바라보게 하니 그녀는 내 두 팔을 잡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자 곧 그녀는 몸을 일으켜 내 품에서 벗어났다.
“.....좋아해요.”
그녀는 침대 위에 앉아 소녀처럼 두 손을 모아 꼼지락대며 말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녀의 앞에 앉아 가까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을....엘렌씨를 좋아해요. 처음엔 아니었지만, 당신과 함께 있을수록 당신이 좋아졌어요. 엘렌씨에 대해 알아가고, 엘렌씨가 저를 사랑해줄수록 저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읏...고마워요. 저를 파티에 받아줘서.”
“나야말로 고마워. 날 치료해주고 내 파티에 들어와줘서.”
“고마워요. 언제나 제 앞에서 저를 지켜줘서.”
“나야말로 고마워. 언제나 내 뒤에서 날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이런 저라도...믿어주고, 함께해주고, 여기까지 이끌어줘서.”
나는 그녀를 안았다.
“나야말로. 언제나....고마워.”
그러자 그녀는 날 안더니 이내 내 어깨를 밀어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선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사랑해요. 엘렌씨만을 사랑해요. 바보같으면서도 믿음직스럽고, 변태같으면서도 신사적이고, 가끔 애같지만 어른스러운, 당신이....좋아요.”
나는 그녀의 볼에 내 손을 올리며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고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었다.
“나도 네가 좋아. 언제나 날 믿어줘서. 언제나 날 치료해줘서. 언제나 날 응원해줘서. 그리고...이렇게 내 앞에 있어줘서.”
그 날,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와 함께 잠들었다. 서로의 마력을 공유한 채 그녀의 마력을 받아들이며 나는 내 품안에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 작가의말
언제까지고 달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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