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상큼버터바 님의 서재입니다.

라르곤 사가 - 은색의 용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상큼버터바
작품등록일 :
2023.05.19 10:09
최근연재일 :
2024.03.05 15:10
연재수 :
197 회
조회수 :
11,943
추천수 :
75
글자수 :
1,230,655

작성
23.12.23 00:00
조회
31
추천
0
글자
17쪽

149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2) (대수술)

DUMMY

스발바르 평원의 두 번째 언덕을 마물들의 시체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다. 소환진에서 새어 나오던 검은 안개도 제법 흐려져 있었고, 소환되는 마물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형님. 형수님이 성공한 것 같소.”


로보가 지네처럼 생긴 마물의 위턱을 잡아 뜯어 달려드는 다른 마물을 후려쳤다. 라이칸 슬로프가 합류한 후로 전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안단트 님이 좀 대단하긴 하지. 너희들도 오랜만에 움직이는 걸 텐데 실력이 전혀 줄지 않았네. 기특하다.”


로보는 개장수의 칭찬이 쑥스러운지 마물의 위턱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형님. 에밀리아 님의 봉인은 신체만 봉인하는 것 같더군요. 그 오랜 시간 정신은 그대로 깨어 있었소. 신기한 거 하나 알려 드릴까?”


“뭔데?”


로보가 손톱을 높이 치켜들더니 그대로 내리그었다. 그러자 손톱이 지나간 자리로 마물 두 마리가 체액을 뿜으며 갈기갈기 찢어졌다.


“머릿속으로 수만 번 반복해서 이 동작을 그렸거든. 그랬더니 보시오. 군더더기가 사라지고 최적화된 힘과 동선이 완성되었소. 검성인가 하는 양반이 이야기했던 명상의 힘이 무엇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달까?”


의기양양한 로보였지만, 개장수의 표정은 뭔가 탐탁지 않은 듯했다. 개장수가 몇 걸음 앞으로 나서자 물소같이 생겼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거대한 마물 하나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개장수는 별로 긴장한 기색도 없이 고개를 돌려 로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 식으로 팔을 휘두르면 결국에는 네 팔이 버텨 내지 못할 거야. 앞으로 던지듯이 휘두르지 말고, 좀 더 몸 쪽으로 당기듯이 하는 게 효율이 높다.”


서걱.


개장수의 손이 부드럽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호를 그리며 지나가는 그의 손톱 궤적에 따라 마물은 마치 칼로 벤 것처럼 세로로 깔끔하게 잘려 무너져 내렸다. 손톱이 일으킨 기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선상의 마물 몇을 함께 잘라 버렸다.


‘봤지?’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개장수에게 로보가 역정을 냈다.


“형님이랑 나랑 비교하면 어쩌자는 거요! 쳇. 알겠소. 당기듯이 하라는 말이지?”


로보는 투덜거리며 다른 마물을 찾아 실습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개장수는 안단트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안단트 님은 잘하고 계신 듯하니 돌아왔을 때 깜짝 놀라시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자, 다들 힘내자!”


소환되는 마물의 수가 줄자 실리아노와 쥔은 한숨 돌리며 마나를 회복하고 있었다.


[확실히 전투를 위해 태어난 종족이라는 위명이 실감 나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러니 마족들도 병 같이 치졸한 방법을 쓴 거겠지.]


실리아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마족이요? 저는 저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치료법을 찾을 때까지 봉인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마족의 짓이었던 건가요?]


쥔이 흐트러진 그녀의 앞머리를 정리해 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알려지기는 그렇게 알려졌지. 그 무시무시한 전투 종족 라이칸 슬로프가 병에 걸려서 멸족 위기에 처한다는 게 더 웃기지 않니?]


[그건 그러네요. 오빠는 정령왕인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그야 내가 봉인을 도왔으니까···. 아.]


쥔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실리아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쥔에게 다가섰다.


[그런 중대한 일을 나한테 보고도 하지 않고 했단 말이에요?]


쥔이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너무 위험했단 말이야! 마나를 잡아먹는 병인데 네가 감염되면 안 되잖아···.]


[허···. 그래서 오빠는 무사히 해낼 수 있는 일을 이 정령왕 실리아노는 못 할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하셨다?]


[앗! 저기 아주 강력해 보이는 마물이 나타났구나. 거기 서랏!]


쥔이 마나를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여동생의 안위를 걱정해 자신이 나섰던 것이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비밀로 했던 일.


쥔은 마물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며 자신의 입을 쥐어박았다.


*


크로울리는 마법진의 활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더 이상 뻗어 나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발테이아의 심장에서 마나 뽑아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안단트. 약이 효과가 있긴 한 것 같아. 그런데 이걸 없앨 수는 없는 거야?”


멀리서 안단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못 해. 네바스카 님이라도 계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카이작의 심복 솜브라가 안단트에게 심어 놨던 데스 마크를 해제해 준 것이 바로 네바스카였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라면 카이작의 마법진을 해제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안단트의 생각이었다.


“네바스카가 돌아왔다는 건 들었어. 그런데 걔랑 연락할 방법이 없네.”


“드래곤끼리는 텔레파시라든가 그런 게 가능한 거 아니었어?”


안단트의 질문에 크로울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건 거북이가 등딱지를 벗고 산책 나오는 것만큼이나 허황한 말이다.”


안단트는 클레이가 네바스카와 통신을 하기 위해 귀걸이 모양의 아티팩트를 사용했음을 떠올렸다.


“아, 난 또 클레이 님이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해서 그런 걸 쓰는 줄 알았더니.”


“종속 관계라면 텔레파시가 가능하겠지. 종의 머릿속에 주인의 마나를 심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드래곤끼리 종속 관계가 있을 리 없잖아. 그리고 뭐, 연락이 된다 하더라도 그 얼음땡이가 날 도와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모든 뱀의 왕 이루아르크 마르와 빙하의 네바스카가 커플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미르의 왕립 도서관에 있는 드래곤의 이해라는 교양서적에도 둘 사이를 혼인 상태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남편이 위기에 처했는데, 아내로서 당연히 도와주지 않을까?”


안단트의 말에 크로울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히익!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 누가 그런 얼음땡이 남편이야!”


“응? 드래곤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긴데···. 이혼이라도 한 거야?”


“쯧쯧. 인간들은 그게 문제야. 인간들은 사랑싸움이라는 걸 하는 모양이더군. 그래서 그 얼음땡이랑 나랑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 자기들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지?”


“······.”


“드래곤은 인간과 다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지, 사랑싸움이라는 감정 낭비는 하지 않아. 애초에 물 속성의 나랑 얼음 속성의 네바스카랑 어울릴 리가 없잖아! 아휴, 그런 애랑 부부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안단트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느라 대답이 없다고 생각한 크로울리는 네바스카가 얼마나 흉폭하고 나쁜 드래곤인지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러다가 문득 밖에서 들리는 차가운 음성에 크로울리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나도 싫거든, 이 멍청한 드래곤 자식아!”


그와 동시에 새하얀 드래곤 한 마리가 구멍 위로 나타났다.


“네, 네바스카? 잠깐, 오해다!”


“오해는 개뿔. 일단···. 죽어라.”


[프리즈 - Freeze]


네바스카의 주변으로 눈부시게 하얀 마나가 모여들었다.


“잠깐! 마음의 준비가···.”


슈아아악.


네바스카의 마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크로울리를 휘감았다. 이내 크로울리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머리만 빼고.


“마음의 준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안단트한테 이야기는 들었다. 멍청하게 자기 몸에 마법진을 새기도록 놔두다니. 하긴, 드래곤일 때도 멍청했으니 인간이 된 다음에야 말할 것도 없지. 안단트의 현명한 판단이 멍청이의 제왕인 네 목숨을 구해 줬다고 생각해라.”


독설을 퍼붓던 네바스카는 크로울리의 왼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레드 드래곤의 기운에 살짝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은 그녀는 차갑게 내뱉었다.


“이빨 꽉 물어라. 아플 테니까.”


“응? 아니, 마음의 준비를 위한 시간 좀 달라니까?”


“시끄러워! 네놈에게는 시간도 아깝다. 클레이, 준비됐어?”


크로울리는 그제야 네바스카의 등에 올라선 클레이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손에 검을 쥐고 있었는데 검날 주변으로 새하얀 빛무리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준비됐어. 신호 줘.”


심상치 않은 클레이의 표정에 크로울리가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뭐 하려는 건지 알려 주고 해! 무서워! 무섭다고! 클레이, 얼굴 엄청 무서워!”


클레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러나 심각한 표정은 풀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 마르. 금방 끝낼게.”


“아니, 금방 끝내는 건 좋은데. 뭐 하려는 건지 알려 달라니까?”


네바스카는 크로울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천천히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지금!”


그녀의 신호와 함께 클레이가 검을 높이 쳐들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간다!”


“아니야! 오지 마!”


크로울리의 가슴 언저리에 다다르자 클레이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궤적을 따라 크로울리의 몸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서걱.


마지막으로 클레이가 횡으로 검을 그었고, 크로울리의 가슴살이 떨어져 나갔다.


크로울리는 볼 수 없었지만, 잘려 나간 자리에 펄떡이는 선홍색 심장이 드러났고 그 주변으로 잔뜩 퍼져 있는 검붉은 마법진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빛과 같은 속도로 날아든 네바스카가 마법진이 그려진 곳을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그녀의 반대쪽 발톱에는 잘려 나간 크로울리의 살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혀 깨문다. 이빨 꽉 물라니까!”


“으아악! 아프다고!”


“에잇, 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클레이, 지금!”


네바스카의 외침과 함께, 클레이가 허공에서 도약하더니 다시 검을 휘둘렀다.


[홀리 사이스 - Holy_Scythe]


네바스카의 손톱만큼이나 길쭉하고 날카로운 빛의 낫 수십 개가 나타나더니 심장 주변으로 뻗어 있던 마법진의 가지들을 잘라냈다.


우드득.


네바스카가 힘을 주어 마법진을 뜯어냈다. 그것이 새겨져 있던 살점까지 같이 뜯겨 나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살덩어리를 원래 자리에 끼워 넣었다.


살이 잘려 나가고, 심장이 드러나고, 다시 살점이 뜯겨 나가는 상황에 크로울리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생살이 잘려 나가는, 굉장히 낯설고 강한 고통에 이빨이 부러져 나갈 정도로 턱에 힘을 주고 있었다. 네바스카가 그런 크로울리의 턱을 붙잡고 강제로 벌렸다.


“샤먼이라는 인간에게 감사해라. 아니, 인간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벌어진 입으로 클레이는 자신이 휴대하고 다니던 샤먼 특제 회복약 수십 알을 쑤셔 넣었다.


“내가 부하는 잘 뒀지. 참고로 효과는 좋은데, 상당히 괴롭다더라.”


강제로 입이 벌려진 상태의 크로울리가 어버버하는 사이 샤먼 특제 회복약이 그의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스발바르 해협이 해빙이 된 이래로 가장 크고, 소름 끼치는 비명이 두 번째 언덕에 울려 퍼졌다.


*


에임노리의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그곳의 왕성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에임노리에서 드워프킹 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제1 장인 슬로카가 왕의 단상에 서 있었다.


“이와 같은 연유로 온에노프의 드워프킹 직위를 박탈하는 바이다.”


거친 목소리로 결의문을 낭독한 슬로카의 표정에는 선대 드워프킹이자 철의 영웅 도마노프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찌 되었건, 그의 아들을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일이었기에 수제자였던 슬로카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왕으로서의 종말이 고해지는 이 순간에 전(前)드워프킹 온에노프는 입을 헤벌리고 웃고 있었다.


엘람이 그에게 뭔가 손을 쓴 것 같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온에노프의 죄목은 엘프를 비롯해 살아 있는 생명체를 사용한 '금지된 실험', 자신의 안위를 위해 마그도론의 우리를 열어 수많은 드워프들을 위험에 빠뜨린 '배임'이었다.


물론 드래곤과 눈의 여제를 건드려 에임노리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앞선 두 항목보다 더 중한 일이었지만 당사자들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죄목에서 제외됐다.


마그도론 두 마리가 홀 중앙에서 슬로카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로카는 에임노리를 대표해서 그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드워프를 대표해서 약조하오. 앞으로 우리 드워프들은 더 이상 마그도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오. 사죄의 뜻으로 이곳 에임노리 전체를 비우고 떠나겠소. 단, 지상에 거주구를 건설해야 하는 만큼 유예의 시간을 주시길 부탁드리오.”


지하의 왕국을 버리겠다는 슬로카의 선언에 이를 지켜보던 드워프들이 술렁거렸다. 슬로카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클레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그도론은 드워프들이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뜻을 클레이에게 전했다.


클레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마그도론들은 그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대들의 마을을 부순 우리도 사죄의 뜻으로 드워프킹 온에노프의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드워프킹 한 명만큼은 죽이고자 했던 마그도론이었지만 다시 마주친 드워프킹은 자신들이 기억하던 이가 아니었다. 마그도론이 온에노프의 목숨을 붙여 놓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그에게서 그럴 만큼의 가치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로카는 허리를 숙여 마그도론에게 감사와 사죄의 뜻을 전했다.


자존심 높은 드워프가 다른 종족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드워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 옆에 선 은발의 드래곤이 ‘마그도론이 드워프들을 멸족한다 해도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그도론 둘이 마음만 먹는다면 드워프를 멸족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슬로카가 홀에 가득한 드워프들을 둘러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확성기를 통해 티아우 마을에 모여 있는 나머지 드워프들과 다른 주민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이곳을 버린다는 말에 걱정이 많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에임노리는 지하의 생활을 버리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슬로카가 마그도론에게 ‘이곳을 비우겠다’는 말을 할 때만 해도 다른 어딘가에 있는 지하를 떠올렸던 드워프들은 깜짝 놀랐다.


“제1 장인! 이곳 지상에서는 해빙 때문에 철을 제련할 물조차 구하기 힘든 것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오!”


한 드워프가 소리쳤다. 다른 드워프들 역시 그에 동조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다. 엘리오스의 축복이자 저주인 해빙은 이제 없으니까.”


다시 한번 드워프들이 술렁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드워프제(製) 물건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들렀던 상인들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에임노리에 있어서 천혜의 요새와도 같던 해빙이 없어졌다는 것은 다른 대륙에서 온 상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소식이었다.


굵직한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단이 속한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선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은 군권을 가진 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무리 드워프의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드워프 인구수 자체는 소수에 불과했다. 해빙이 지켜 주지 않는 에임노리는 주변 제국이 볼 때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와 같을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은 이때를 노려 한몫 잡을 생각에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산을 돌리고 있었다. 에임노리 제1 장인의 말이니 거짓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들이 막 자신들의 상단에 통신을 넣으려 할 때, 슬로카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계신 클레이 님, 네바스카 님, 그리고 크로울리 님. 세 드래곤께서 긴 세월 드워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엘리오스의 마력을 소멸해 주셨다. 또한, 향후 100년간 에임노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기로 약조해 주셨음을 알린다.”


드워프에게 험한 꼴을 당할 뻔했던 클레이는 드워프가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으려 했지만, 드워프의 세공품을 사랑하는 네바스카는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클레이가 드워프들을 멸족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 먼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던 그녀였다.


소녀 니에브의 모습으로 변신한 네바스카는 건조한 표정으로 서 있는 클레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고마워, 클레이.”


“고맙긴. 그래도 100년은 너무 길다. 50년 정도만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심드렁한 그의 반응에 네바스카는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클레이의 팔에 매달렸다,


“아잉!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하면 좋잖아.”


그녀의 팔에는 영롱하게 빛을 내는 팔찌가 채워져 있었는데, 드래곤의 가호를 성사시켜 주는 대가로 슬로카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물론, 클레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라르곤 사가 - 은색의 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7 166화 - 자유도시 에드란(16) (가짜가 진짜인 척하는 이유는?) 24.01.10 30 0 15쪽
166 165화 - 자유도시 에드란(15) (상드랑의 최후) 24.01.10 31 0 15쪽
165 164화 - 자유도시 에드란(14) (파드 vs 상드랑) 24.01.10 29 0 15쪽
164 163화 - 자유도시 에드란(13) (마물잡는 철갑상어부대) 24.01.06 33 0 15쪽
163 162화 - 자유도시 에드란(12) (감독 엘람, 주연 파드 ) 24.01.05 28 0 14쪽
162 161화 - 자유도시 에드란(11) (용사 파드) 24.01.03 33 0 14쪽
161 160화 - 자유도시 에드란(10) (상드랑의 정체) 24.01.03 32 0 14쪽
160 159화 - 자유도시 에드란(9) (오크가 범인이다?) 24.01.02 30 0 14쪽
159 158화 - 자유도시 에드란(8) (적화의 꽃잎) 24.01.01 25 0 13쪽
158 157화 - 자유도시 에드란(7 : 상드랑의 계획) 23.12.31 29 0 14쪽
157 156화 - 자유도시 에드란(6 : 가장 뛰어난 암살자란?) 23.12.30 29 0 14쪽
156 155화 - 자유도시 에드란(5 : 불신의 씨앗을 심다.) 23.12.29 30 0 14쪽
155 154화 - 자유도시 에드란(4 : 인간의 나라) 23.12.28 36 0 14쪽
154 153화 - 자유도시 에드란(3 : 세작) 23.12.27 30 0 14쪽
153 152화 - 자유도시 에드란(2 : 에드란의 치안대장) 23.12.26 29 0 15쪽
152 151화 - 자유도시 에드란(1 : 눈엣 가시) 23.12.25 40 0 15쪽
151 150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3 : 시므론의 정체) 23.12.24 33 0 14쪽
» 149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2) (대수술) 23.12.23 32 0 17쪽
149 148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1) (드래곤 중에 배신자가 있다?) 23.12.22 36 0 13쪽
148 147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0) (드래곤은 자살이 불가능하다) 23.12.21 30 0 13쪽
147 146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9) (드워프와 마그도론의 악연) 23.12.20 29 0 13쪽
146 145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8) (라이칸 슬로프의 부활) 23.12.19 29 0 13쪽
145 144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7) (깨어나는 스발바르의 지하) 23.12.18 30 0 14쪽
144 143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6) (카이작의 음모) 23.12.17 30 0 14쪽
143 142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5) (클레이의 분노) 23.12.16 27 0 13쪽
142 141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4) (폐위된 마태자) 23.12.15 28 0 13쪽
141 140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3) (투옥된 눈의 여제 유키) 23.12.14 32 0 14쪽
140 139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2) (케르베로스) 23.12.13 29 0 13쪽
139 138화 - 철의 왕국 에임노리(1) (드워프는 드래곤을 증오한다) 23.12.12 32 0 13쪽
138 137화 - 스발바르 평원(12) (상급 마물을 대하는 법) 23.12.12 3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