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99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21 21:30
조회
700
추천
9
글자
11쪽

60화

DUMMY

“···.”


입 밖까지 차올랐던 말이 다시 되돌아왔다.

무언가 말하려던 시연은 그제야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할 수 없었다.


-‘죽음이 왜 문제에요?’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이 문장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앵두 같은 입술은 차마 열리지 못한 채 닫힌 상태를 유지했다.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왜 설진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는지.


‘구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


몬스터에게 습격받은 사람들을 살린다.

좋은 취지였다. 누가 봐도 옳은 일이라 치켜세워 줄 만하다.


그러나 그다음은?

졸지에 피난민이 되고 과부가 된 사람들은?


당장 잘 곳조차 없거니와 음식을 입에 댈 수도 없다.

왕국의 지원이 있다면 가능했겠지만 지원은 오지 않았다.

여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 일이 빈번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지원이 오지 않는 것을 당연스레 여기는 듯했다.


‘···.’


아이들의 배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꼬르륵- 꼬르륵-. 굶주림에 겨운 소리였다. 입에 무언가를 넣지 못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싶었다. 여인들은 익숙하다는 양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문득, 떠올랐다.


왜 베드 엔딩인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왜 왕국이 멸망의 길을 걸었는지.


그 시작은 사람들의 원망이었다.

굶주림, 추위··· 인간을 피폐시키는 요소들이 뭉치고 뭉쳐 원망이 되었다.


원망이 원성이 되고 원성이 시위로 이어졌다.

왕국 수도로 들이닥쳐 미친 듯이 구원을 외쳤을 터였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왕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왕실 창고에 식량은 있었지만 왕국 인원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는 아니었고, 몬스터의 습격을 막을 힘이 있었지만 모든 마을을 보호할 정도는 아니었다. 왕국은 왕국 전체를 감쌀 능력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잃게 되었다.

그만큼 마법 금지령의 여파는 컸다. 당장의 안전은 보장될지라도 장기적으로 따지면 불확실하다 못해 퇴화까지 일어날 수 있는 정책이었다.


왕국이 포기한 마을은, 손이 닿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마을은 자연스럽게 도태한다.

도태의 끝은 곧 죽음이었다.

보호를 받지 못한 마을은 몬스터나 인간의 습격을 받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것이 왕국의 운명이되 흐름이었고, 추후 일어날 비극의 암시였다.


마을의 도태 ‘따위’보다 더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일의 암시.

돌연 떠오른 생각에 시연은 이마에 손을 올렸다. 밤 공기는 차가웠으나 이마에서는 열이 느껴졌다.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고 해도 될 정도의 열이었다.


“나중에···.”


결국 그녀는 대답을 유보했다.


“나중에- 알려줄게.”


차마 이런 참상 속에서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털썩-. 찬 공기를 맞아 서늘해진 나무에 등을 붙여 걸터앉았다.


그러고선 생각했다.


‘진짜, 이거.’


몬스터에게서 살아남았던들 살아남았다고 하기란 힘들었다.

거처가 불타버렸기에 편안하게 쉴 공간이 없었고, 식량을 약탈당했기에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것조차 버거웠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볼 수 있었다.

배를 부여잡고 있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를 감싸 안는 여인들이.

굶주림은 고사하고 추위조차 해결하지 못해 덜덜 떠는 이들이.


‘···더럽게 피폐하네.’


의식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이상에야, 산다고 한들 산 사람이 아니었다.

곧 쓰러지다 못해 죽을 사람이지.


20층. 첫 번째 에피소드의 후반부.

서두를 열었던 비극은 점차 그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알았어요.”


대답을 미룬 시연의 행동에 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의미를 가지고서 한 질문은 아니었다.

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과 남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을.


남들이 삶을 바랄 때 설진은 죽음을 바랐다.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본 적도 있었다.

목에 줄을 묶어 그대로 질식해 죽는, 그런 방법이었다.


스윽-.


망토로 가려져 있던 목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흉터 같은 느낌의 상처가 만져졌다. 아니, 실제로 흉터가 맞았다.

성대 부근을 감싼 흉터. 손가락을 갖다 대니 볼록하게 튀어나온 피부를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크게 튀어나오지는 않고, 아주 조금만 튀어나온 피부였다.


‘···.’


번지듯 튀어나온 흉터가 욱신거렸다.

아직 생을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살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리는 듯했다.


‘그때 실패하지 않았으면···.’


깊은 한밤중.

아무도 설진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공간에서 시도한 자살이었다.

거리를 두고 줄에 올라가 목을 매였을 때, 그리고 공중에 매달려 옥좼을 때.


‘···아팠지.’


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소리가 귀에서 아른거렸다.

줄을 잡아당기는 손의 감촉이 피부를 타고 전신에 퍼졌다.

서서히 줄을 기울여 목으로 향했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조였던 목에서 어떤 고통이 느껴졌었는지.


피가 통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호흡할 수 없어 답답했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었다. 사경을 헤맨 것 같았다.

몸의 체중이 아래로 내려가 목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짧지만 질겼던 줄이 목 피부를 생생히 조여든다.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발바닥은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어할 수 없는 몸이 항거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 채 방치된다.

그런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다만 영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자살 시도를 시작한 지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줄이 끊겼다.


털썩-.


한순간에 균형을 잃은 몸은 땅으로 곤두박질쳐지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얼굴은 바닥에 찌여 표정조차 만들 수 없었었다.

옥죈 줄이 풀린 목은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


죽음을 바라고 있되 시도하지 않은 이유.

아팠기 때문이다. 실패로 돌아간 자살 시도는 더 이상 설진의 행동을 막았다.

한 번 실패해서 생긴 감정과 불안은 그를 생(生)에 붙잡아놓았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억제 장치였다.

그것이 죽음을 바라되 살아있는 이유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설진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번 스토리 모드 클리어 조건이 변화를 확인하는 거였지.’


정신을 차린 설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클리어 조건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는 것.

그것은 곧 몬스터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이 원망을 품어 왕실에게 그 원성을 돌리는 것을 의미했다. 왕실 대 사람들의 대립 구도나 마찬가지였다.


‘슬슬 시작할 때기도 하고···.’


돌린 고개 너머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이야 굶주림과 추위 정도를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 곧 다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미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미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채 살아나가야 하는 미래.


그런 미래 속에서 행복한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인들은 생각했다. 이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밥은 어디서 먹고 잠은 어디서 자고 옷은 어디서 입어야 하는지.

아이들을 보며 한 번 더 생각했다.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은 바에야···.


“왜! 대체 왜 우리를 구했어!”


차라리 죽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고.


이지를 잃은 얼굴은 곧 이성마저 잠식했다.

마모된 이성이 평소 하지 않을 행동을 부추겼다.


빼앗긴 슬픔은 분노가 되었다.

오갈 데 없는 분노는 설진을 향했다.


본래라면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존재에게.

아니, 애초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구한 이유가 뭐야! 나와 아이는 살았지만 남편이 죽었어! 집이 불타 살아갈 곳이 없어졌어!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럼 죽도록 내버려뒀어야 했나?”

“그래! 차라리 그러지 그랬어! 아만드! 다 당신 탓이야. 다 당신 때문이라고! 당신만 없었으면, 최소한 남편과 같이···.”


눈을 감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 말하려던 여인은 돌연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눈앞 설진이 흡사 무(無)에 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하, 그럼 왜 도망쳤는지.”

“···뭐?”

“죽고 싶었으면 죽을 것이지, 왜 도망쳤느냐고 물었소.”


이곳에서 살아남은 스물 남짓의 사람들은 그냥 산 것이 아니다.

몬스터들을 피하고자 전심전력으로 달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설진이 물었다.

이런 말을 할 것이라면 왜 도망쳤느니냐고.

차라리 남자들이 죽을 때 같이 죽지 그랬냐고.


“그, 그건!”


성을 내던 여인의 말이 멎었다.

맞는 말이었다. 애초 죽고 싶었으면 도망치지 않으면 됐었다.


“몰랐다고! 남편이 죽은 지 몰랐단 말이야!”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비약적인 논리를 펼치는 것뿐이었다.

이성적이 아닌 감정적으로 행동한 결과는 논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금 설진이 보기에 여인은 그저 남편이 죽어 통곡하는 사람에 지니지 않았다.


그 통곡이 괜한 아집이 되어 작금의 상황을 불러일으켰을 뿐.


“왜 몰랐는데.”

“아만드! 너! 너라면 알 수 있어? 몬스터들의 습격에서 남편의 생사를, 너는 확신할 수 있냐고!”

“···네가 지금 무슨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 알기는 하나?”

“고집이 아니라고! 와, 왕실에서 지원을 보내준다면···! 모르는 일이었-.”

“···.”

“···.”


설진의 입이 멎었다.

동시에 여인의 입 또한 멎었다.


농부 아만드의 기억에는 최근에 일어난 몇 차례의 약탈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총 세 번. 그러나 그 세 번 동안 왕실에서의 지원은 오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몬스터 습격 소식을 듣자마자 마법사들을 보냈지만,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파견되는 마법사들이 적어지더니 이젠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이는 곧 왕국의 능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거주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라고 칭할 수 없었다.


“하아.”


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의 말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애당초 한쪽의 정신이 정상이 아닌데, 굳이 말을 섞어 가며 논리를 펼칠 이유가 존재치 않았다.


대신,


“아직도 왕실을 믿소?”


불을 하나 지폈다.

그것도 왕국에 반기를 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불을.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으나 오히려 더 좋은 일이라 여겼다.

지금 설진이 하려는 말이 얼마나 큰 파장이 되고 나비효과가 되겠느냐마는,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터.


‘···어차피 일어날 비극이라면, 빨리 끝나는 편이 낫겠지.’


20층의 클리어 조건은 스토리의 변화 인지.

그것은 곧 사람들이 시위하기까지의 과정을 뜻했다.


그래서 설진은 생각했다. 차라리 왕국에게 책임을 돌리자고.

어차피 일어나야 할 비극이라면 그 비극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딜 가든 플라임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 고통의 시간이 빨리 끝나도록 해주는 것이, 그녀에게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시위로 번지기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

고작 스물 남짓한 사람들에게 입을 놀려봤자 얼마나 줄일 수 있겠냐마는,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왕실이 이 마을에 병력 파병을 멈춘지도 벌써 석 달이 넘어가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바보는 아니잖소?”


마음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을 내뱉었다.


“왕국은 우리를 버렸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2 62화 22.01.23 714 9 11쪽
61 61화 22.01.22 673 9 11쪽
» 60화 22.01.21 701 9 11쪽
59 59화 22.01.20 682 9 11쪽
58 58화 22.01.19 702 9 12쪽
57 57화 22.01.17 699 11 12쪽
56 56화 22.01.15 713 10 11쪽
55 55화 22.01.14 718 11 12쪽
54 54화 22.01.13 713 10 11쪽
53 53화 22.01.10 739 11 12쪽
52 52화 22.01.09 777 11 12쪽
51 51화 22.01.08 799 11 13쪽
50 50화 22.01.07 832 10 12쪽
49 49화 22.01.06 777 12 11쪽
48 48화 22.01.03 841 12 11쪽
47 47화 22.01.02 807 11 11쪽
46 46화 22.01.01 834 11 11쪽
45 45화 21.12.31 849 11 11쪽
44 44화 21.12.30 897 12 12쪽
43 43화 21.12.27 920 13 11쪽
42 42화 21.12.26 892 13 12쪽
41 41화 21.12.25 914 14 12쪽
40 40화 21.12.24 972 13 11쪽
39 39화 21.12.23 947 14 13쪽
38 38화 21.12.20 945 15 12쪽
37 37화 21.12.19 961 15 12쪽
36 36화 21.12.18 1,023 15 12쪽
35 35화 21.12.17 1,050 15 11쪽
34 34화 21.12.16 1,027 18 12쪽
33 33화 21.12.13 1,040 16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