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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10,01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02 21:57
조회
807
추천
11
글자
11쪽

47화

DUMMY

“설진 경?”


되튕기듯 튀어나온 말이었다.

플라임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내뱉었다.


“예.”

“아니, 잠시. 무언가 이상한 것 같은···.”


화답한 설진에 보며 약간은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더니, 말을 흐린다.

꼭 말이 되지 않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처럼 눈동자가 슬쩍 치켜떠졌다.


‘그때와···?’


눈동자 속에 비친 설진의 모습.

그건 5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실이 엉키듯 머릿속이 얽혔다.

지금 상황에 쉽게 이해되질 않았다.


‘···어떻게 그때와 똑같을 수 있는 거지.’


어떻게 보자마자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나 했더니. 5년 전에 본 설진의 모습과 지금 본 설진의 모습이 똑같기 때문이었다.


수심이 드리워 캄캄히 내려온 눈동자가 눈에 밟혔다. 소위 미청년이라 불러도 될 정도의 외모는 여전했다. 세상과 연을 끊은 듯한 힘 빠진 손짓도 마찬가지.


비단 설진뿐만이 아니었다. 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철제 갑옷을 벗고 있기는 했지만 얼굴이 같았다. 플레임 왕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눈이, 그리고 길게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어깨까지 닿는 두어 움큼의 머릿결이 안쪽으로 말려 목과 가까워졌다. 똑같았고, 똑같은 광경이었다. 플라임은 둘을 응시하더니만 이내 입을 열었다.


“경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군.”


조금은 의문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이십 대로 접어든 여인의 음성이 힘이 실렸다.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해. 경들은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부럽구나. 비결이 있다면 꼭 알고 싶을 정도야.”

“왕녀 전하, 그건-.”

“농담이다. 관심이 없지는 않으나 너무 깊게 파헤치면 피차 곤란해지겠지.”


떠보듯이 말을 잇다가, 시연의 목소리가 천천히 깔리자 바로 말을 바꾸었다.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플라임은 그 비밀을 파헤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설진과 시연, 플라임의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사적으로 만날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나, 비즈니스 관계 정도는 확립이 되어 필요할 때 말을 걸고 공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플라임은 그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갖춘 것은 아니나 저들의 실력은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불법 투기장 습격을 의뢰하고 로이다스를 격퇴했을 때 저들의 무력은 이미 확인된 바였다.


신체 능력이 아닌 전투 센스. 그것이 뛰어났다. 둘이서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가며 적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모습이란.

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성장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나저나 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음? 무엇이지요?”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

관계의 약화를 감수하고서라도 꼭 해야 할 것이 있었다.

플라임 쪽에서도 대의명분이 있으니 물어볼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그날 루이다스의 처형을 마친 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겠나.”

“···.”

“분명 있었는데, 없어졌다. 사라졌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어. 그렇게 홀연히 사라지고 난 뒤 5년. 지금에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설진과 시연의 입장에선 그저 층을 클리어해 이동할 것일 테지만,

플라임의 입장은 달랐다. 그녀는 설진과 시연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한 경황을 물을 겨를도 없이 떠났으니 그녀로선 의문이 차오를 만했다.


둘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서서히 좁혀들어갔다. 다른 건 몰아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듯 응시하는 시선이 따가웠다.


하기야 그녀는 왕실의 최고 전력이자 천재일우의 마법사였다. 그런데,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사라진 인물이 있다? 그것도 D랭크에 위치에 있는 모험가가?


플라임에게 있어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대치하듯 마주 보고 선 세 사람의 눈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시연은 뭐라 말하려다, 이내 열려고 한 입을 닫았다.


“해야 하는 일이 있어 떠났습니다.”


시연보다, 설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명을 쳐다보던 플라임의 시선이 오로지 설진 한 명으로 그 범위를 좁혔다.


묵묵히 시선을 받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눈매가 못내 따갑게 느껴졌다.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 듯했다.


“다만, 왕녀님께서 걱정하시고 있는 그런 일과는 관련이 없으니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호오. 그 말에 거짓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직접 보고 판단하시지요. 제 말에 거짓이 섞였는지, 아니면 온전히 진실만이 들어가 있는지는 왕녀님이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하. 정말, 그때와 같은 기개로군.”


플라임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관조하듯 묵색의 동공을 천천히 바라봤다. 얼마 가지 않아 결정을 내린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나 묻지.”


옛날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

조금 더 낮은 음의 톤이 성대를 울렸다.


“경이 말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는가.”

“예.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말에 거짓이 깃들었을 경우는?”

“그것 또한 왕녀님이 판단하셔야 하는 문제가 아닌지 사료됩니다.”

“그래, 그런가. 경의 대답은 그러한가.”


우우웅.


플라임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저 마력을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땅이 찌르르 울릴 만큼의 진동이 사방을 휩쓸었다.

거짓 탐지 마법을 쓴 듯 푸른 눈동자에 색이 덧씌워졌다. 푸른 바다의 색에서 조금 더 짙은 파도의 색으로 탈바꿈한 눈동자는, 이내 진동이 멎음과 동시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방출했던 마력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왔다.

플라임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본 설진은 허리춤에 얹은 손을 내렸다.


“조금만 더 나아갔으면 싸움이 일어났겠군.”


손잡이 부분과 가까운 날이 조금이지만 올라와 있었다. 온전히 본능적으로만 빼든 검이었다. 탄성을 흘린 플라임과 함께 다시 내려갔다.


“그보다 홀연히 사라진 것 말고도, 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아니, 이 경우에는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주고 싶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이겠군.”

“말의 의도를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왕녀 전하.”

“어라, 잊어버린 것인가. 분명 이번 의뢰가 끝나면 왕실 대장장이가 만든 장비와 꽤 되는 액수를 챙겨주겠다고 말했거늘.”


다시 목소리를 낸 시연을 보고서 플라임이 말했다.


“그 말의 유효기간은 아직 지나지 않았으니.”


아까 마력을 방출했을 때의 싸늘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지금은 들뜬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입가에 자그마한 웃음을 게워낸 채 조금씩 움직이는 손가락이 보였다.


“어떠한가, 지금이라면 사용할 수 있다만?”

“···.”


그 말에 둘의 입이 멎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라고.


“계산이 끝났으면 따라와라. 모험가를 왕실에 들이는 건 오랜만이군.”


짐짓 미소를 터뜨린 플라임이 손짓했다. 설진이 알기로 현 위치에서 왕실까지의 거리는 약 30분 정도. 곧 도착하면 보게 될 광경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왕실로 들어가는 동안 보이는 광경은 아까 봤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화염 결정, 부모가 시행하는 안전 교육··· 그 외 안전을 제일 중시하는 듯한 정책 여럿이 펼쳐지고 있었다.


“왜, 조금 어색해 보이는가?”


그런 설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앞서나가던 플라임이 말문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하구나. 경들의 기억하고 있는 플레임 왕국은 지금이 아닌 5년 전의 광경일 테니.”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왕국의 존속과 관련된 일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대격변이라고 할 만한 일이 있었거든.”


말을 받은 시연에게 다시금 입을 연다.

대외비라고 하지만 둘은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일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펼쳐지고 도출되었는지.


반란이 있었다. 왕국을 재옹립하려던 세력이 있었다.

내분이 있었다. 왕실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세력과 왕실이 맞붙었다. 어찌어찌 귀보를 사용해 잠재우기는 했지만, 그 여파가 이것이었다.


“외부인에게 알려줄 만한 정보는 아니다만··· 아니, 로이다스를 처형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맡아주었으니 외부인이라고 하기에도 그러한가.”


저벅, 저벅.


걸음소리는 여전히 다를 바가 없었다.

여전히 규칙적인 걸음이었으며,

여전히 귀품 있는 걸음이었다.


“흠. 어찌 되었든 간에 공문을 보았으니 알 것 아니냐. 왕실에서 시행된 정책이 무엇인지, 무엇이 변하였고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


질문의 향이 섞인 어투를 사용했지만, 구태여 대답을 바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 생각이 맞았는지 플라임은 혼자서 말을 이어 나갔다.


“마력 억제, 식료품과 관련된 업종에 의무적인 행위 부과, 또한 자녀에게 의무적인 교육 제도를 시행했지.”

“···.”

“그뿐만이 아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 소위 문지기라 불리는 병사들에겐 조금 더 주기적으로 이상이 있고 없음을 보고하라 일렀다.”


식료품이 아닌 물건을 취급하는 상인들에게는 혹여 모를 사고를 대비해 화재를 빠르게 진압할 수 있는 마도구를 구비해두라 일렀으며, 정기적으로 귀족의 집에 방문해 수상한 짓을 꾸미고 있지는 않은지 관찰해두라 명했다.


정보 수집에 능한 도적들을 대대적으로 고용해 왕실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질을 늘렸고, 왕실을 비롯한 지역 전역에 퍼져 있는 도서관에서 관련성이 있는 역사책을 찾아오라 시키기도 했다.


“···조, 좋은 정책-.”

“쓰레기 같은 정책이지.”

“···.”


시연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 일로 시행된 정책이 결코 좋지 않음을 알고는 있었으나, 설마 그 정책을 만든 장본인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전혀 몰랐던 탓이다.


“경들도 알고 있지 않느냐. 마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총량이 늘어난다. 그런데 마법 사용 자체를 아예 막아버렸으니 성장이 뒤처질 테지.”


그것만이 아니다.

성장이 뒤처지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곳곳에 퍼져 있는, 왕실 외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왕실 외 세력들이라 하시면.”

“유목 민족, 혹은 부락.”


왕실 외 세력들.

왕국의 힘이 닿지 않는 땅을 점령해 살아가고 있는 세력들.


“수도 같은 중심 지역은 안전할지 몰라도, 항구 도시- 그러니까, 비교적 외곽에 위치한 도시나 마을들이 문제다. 그들은··· 쯧. 미안하군.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말을 하다 말았지만 플라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둘은 알 수 있었다.

유목 민족과 부락들의 기습.

플라임이 제한한 마력은 오직 왕국 내에서만 이루어졌다. 그 밖에 존재하는 세력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며 힘을 기르는 그들이, 서서히 성장이 정체되다시피 한 왕국의 외곽 지역을 노리는 것은 기정사실일 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설진은 짧게 혀를 찼다. 안타까운 탓이었다. 실제로 플라임이 한 말은 전부 미래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쁜 결과가 도출된다.


추후 일어날 여파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플라임은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도착했군.”


어느새 셋은 왕실 정문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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