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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8,08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17 21:54
조회
694
추천
11
글자
12쪽

57화

DUMMY

봐두도록 한다, 라.

시연은 그 말을 되뇌듯 중얼거렸다.

성대를 타고 흘러나온 단어가 못이 박히듯 뇌리에 남았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되레 의미를 이해했기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설진이 한 말은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보자는 것과 같았으니까.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생명이 끊어지는 광경을 곧이곧대로 눈에 담아두자는 것과 같았으니까.


“누나.”

“어, 어?”

“저기 봐요. 슬슬 오고 있어요.”


설진의 손가락이 마을 밖을 가리켰다.

입구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이제 곧 몇십 초 후면 몬스터들이 들이닥칠 듯싶었다.


고블린같이 약한 몬스터부터 시작해 심하면 리자드맨까지.

일개 마을이 막을 수 있을 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언뜻 봐도 백이 넘어가는 숫자. 그 수의 몬스터들을 막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것은 마을이 아닌 군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금 뒤로 가요. 아까 봐둔 곳이 있어요. 거기라면 몬스터가 잘 오지 않을 거에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어떻게 알아?”

“신체 강화로 눈을 강화해서 찾았어요. 다른 덴 몰라도 뒤편 산기슭은 안전할 거에요. 그곳에 다른 몬스터가 잠들어 있으니까요.”


다른 몬스터란 곧 오크를 칭했다.

몬스터도 겨울잠 같은 것을 자는지, 몇몇 특이한 몬스터들은 종종 깊은 수면 상태에 빠지곤 했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에요. 오크가 있으면 몬스터들은 쉬이 접근하지 못할 테고, 마을 사람들도 설마 이곳으로 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

“네. 슬슬 이동하죠.”


설진과 시연은 몸을 돌려 산기슭으로 이동했다.

시릴 듯이 차가운 햇빛이 겨울임을 증거하듯 번쩍거렸다. 곰팡이처럼 핀 이끼는 빛을 받아 옅은 색을 내비쳤다.

설진은 이끼와 풀을 털어내며 자리를 만들었다. 시연의 자리까지 만들고서 허리를 숙여 걸터앉았다. 표정은 여전히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은 채였다.


지켜볼 준비를 모두 마치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부가 설명이 아니었다. 20층을 클리어하기 위한 목표였다.


[목표 : 왕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확인하십시오.]


확인이라 함은 곧 보는 것.

그렇기에 설진은 자리를 마련했다. 게임에서는 그저 화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될 일이지만, 탑인 이쪽은 아닐 테니까.


“와요.”


들릴 정도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올렸다.

그러자 보였다.


크아아아-!


새된 괴성을 꽥꽥 질러대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몬스터들이.


시작은 고블린 하나였다.

고블린이 조잡한 단도를 쥐고서 휘두르자 바람 소리가 작게 울렸고, 소리가 끝날 무렵 황급히 마을 남자들이 무기를 쥐고 입구에 집결했다.

무기라 해봤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농사 기구들이나 광석을 캘 때 쓰는 곡괭이 정도. 드물게 장검도 있긴 했지만 얼마 되지는 않았다.


남자들 중 제일 앞에 선 사내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쪽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고함을 내지르고 있는 것이, 몬스터들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의 뒤에 선 남자들 또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집었다. 예의 사내가 격려하듯 몇 문장을 말한 것 같았다.

아주 잠깐의 소강상태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어서, 사내의 말이 끝난 지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몬스터들의 진격이 시작됐다. 발을 구르는 소리에 땅이 울렸다.


울린 땅이 연쇄적으로 진동을 뿜어냈다. 한 차례 진동이 울리고 또 울리면, 남자들의 투박한 손과 몬스터들의 괴이한 손에서 핏물이 묻어 번졌다.

번진 핏물이 과다출혈이라는 사인으로 이어질 만큼 다량이 될 즈음, 사상자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베인 살점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


뒤편에서는 마을 여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발을 놀리고 있었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 무게를 가볍게 하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마을 후문을 향해 달렸다.


아이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아직 여물지 않아 제구실을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실실 웃으며 어미를 바라보았다.

철이 든 아이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마을 앞문으로 향하는 것이 아비를 가리키는 듯 보였다.


다만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과 함께 달릴 뿐이었다.

그렇기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보지 못했다.

여기서 뒤를 본다면 자신들마저 남편을 떠올릴 것 같아서.

정말 소중하기 그지없었던 인연이 생각나 그만 발을 멈출 것 같아서.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서 달리던 어미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흘린 피가 한 방울 떨어져 옷에 묻었다.

겨울을 겨우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얇았던 천에 피가 묻었다. 수채화처럼 번져나간 방울의 피가 곧이어 후두둑 떨어졌다. 한 방울이 여러 방울로 화했다.


눈에서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흐린 눈물이.

입가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애써 씹은 자신의 입술이.


그리하여 그들은 피난을 시도했다. 짐은 가벼웠고 마음은 무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은 더욱 가벼워졌고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으아아아악!!!”


건너편에서는 쉴 새 없이 비명이 번지고 있었다.

남자들의 비명이었다.

그것은 곧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사내의 두려움이었고, 그럼에도 싸울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家庭)의 가장(家長)의 저항이었다.


그 가장의 몸에 피가 나고 있었다.

온갖 구멍이란 구멍에서 붉은 선혈이 흘렀다.


다섯의 고블린이 동시에 몸을 찔렀다. 눈, 목, 가슴, 배, 발목을 동시에 찍힌 남자가 비명조차 채 내지르지 못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툭, 투둑-. 쓰러진 몸 옆에 남은 것은 단지 괭이 하나였다.

끝부분에 녹색의 피가 묻어,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괭이였다.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시체가 강처럼 흘렀다면, 남자들의 시체는 바다처럼 흘렀다.

전력 차이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싸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그들은 엉성한 폼으로만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다.

하여서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없었다.


애초부터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몸부림 처도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었다.


“시스템이란 거··· 가끔은 참, 더럽게도 짜증 나는 것 같아.”


작금의 광경을 지켜보던 시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결과가 정해진 싸움을 보도록 하라니. 그것도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몬스터들끼리의 싸움인데.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옆에 설진이 없었더라면 당장이라도 구토를 했을 터였다. 그만큼 시연이 느끼고 있는 감정은 컸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어떤 남자는 고블린에게 살이 꿰뚫린 채 절명했다.

또 어떤 남자는 리자드맨의 창에 가슴이 박살났고, 맨 처음 앞에서 악이 받치도록 소리를 질렀던 사내는 코볼트에게 처참히 유린당했다.


“···시발.”


그런 처참한 광경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을 만큼 시연의 정신은 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시선을 잠시 돌렸다.


“아, 누나 거기-.”


보지 마요, 라고 말하려던 설진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시연의 눈이 옮겨 갔다.


그곳에는 남자들이 죽고 죽어 확보한 천금과도 같은 시간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무너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달리고 있던 여인의 등에 화살이 박혔다.

몬스터들이 쏜 화살이었다. 아무리 고블린이라지만 어느 정도 오래 산 놈은 조잡한 활을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박힌 화살이 몸을 관통했다. 등에서부터 시작된 화살촉은 오장육부를 뚫고서 배까지 나아갔다. 배에서 삐죽 튀어나온 화살촉이 보였다.

원래부터 붉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빨간 화살촉이었다.

장기를 찔린 여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등에서부터 시작된 상처가 목까지 올라와 가래 섞인 피를 내뱉었다. 털썩-. 몸이 곤두박질쳤다.


눈물을 흘리면서 여인을 몸을 흔들고 있는 아이를 보고서.

여인이 말했다. 입가가 달싹거리며 짧은 단어 하나를 만들어냈다.


혓바닥과 윗니가 한 번 맞닿았다가 벌어지며 달을.

안쪽에 있던 혓바닥에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려를.


달, 려.


그 짧은 단어를 겨우 내뱉은 여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후로 피가 흘렀다. 쏟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량의 피였다.


비단 그 여인뿐만이 아니었다.

샛길로 빠져나간 몇몇의 몬스터들은 이미 여인들의 뒤를 추격하고 있었다.

뭉툭한 실에 화살이 걸리는 소리가 귓가를 타고 울려 퍼졌다. 연달아서 쏘아지는 화살은 다섯에 한 번 목표를 맞췄다.


다섯 번에 한 번, 사람이 죽어나갔다.


죽음의 광경에서 시선을 돌린 설진의 눈이 수평선을 그렸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분명 게임할 때···.’


실제가 아닌 게임이었을 무렵, 설진은 이들을 구하는 선택을 한 적이 있었다.

돌아오는 건 감사 인사가 아니었다. 비난도 아니었다.

그저 공포였다. 마을 사람들을 구하면 구할수록 그들은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꼈으며,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머리를 숙이며 말하는 이가 존재했었다.


옆 마을에 아들이 농사를 도와주러···.

소를 빌려주기 위해 제 자식이 옆 마을에···.


두려움을 느꼈음에도 그들은 자식의 구원을 청했다.

하기야 이 마을과 바로 옆 마을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몬스터들의 습격을 걱정할 만도 했다. 실제로 옆 마을도 습격받았고.


다만 문제랄 것은 하나.


‘옆 마을에 들렀을 때,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어.’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옆 마을로 향했을 때, 이미 그들이 말한 사람들은 죽어 있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만큼은 아니었지만 최소 반절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대부분이 부상을 입은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말인즉 이것은 선택이었다.

둘 다 구할 수는 없었다. 구할 수 있는 마을은 하나였고, 선택받지 못한 마을은 회생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한다.


설진이 시연에게 나서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두 개의 구멍 중 하나만을 막아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서는 건 만용이었다. 해결되지 못한 채 상황에 끼어든 당사자들에게도 절망이 시사될 뿐.


“누나.”


시연을 부른 채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여인과 아이.

합해서 스물은 될까 싶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저 정도면. 저 정도라면 구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슬픔으로 절여진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연을 보고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죽음을 통탄스레 여기는 그녀가 너무나도 아파 보였다.


“어?”

“지금이라면 나서도 될 것 같아요. 아, 물론 어디까지나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 정도가 전부겠지만요.”

“정말로? 그럼 지금이라도···!”


그 말을 들은 시연이 몸을 일으켰다.

꽉 쥐고만 있던 두 주먹에 방패와 대검이 쥐어졌다.


큰 비극을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그 비극을 줄이고 줄여 작은 비극이 되었을 때.

그제야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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