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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10,00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06 21:40
조회
777
추천
12
글자
11쪽

49화

DUMMY

저벅, 저벅.


발걸음이 앞을 향했다.

시선에 보이는 건 오로지 검 하나.

얼마 되지 않은 옛날을 생각하며, 탑이 아닌 바깥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스윽-.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느껴지는 것은 여전한 고풍.

높디높은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살랑거렸다. 손등이 차가웠다.


원래 쓰고 있던 검 대신 [고풍 사자의 검]을 들어 올렸다.

들어올린 순간 바람이 휘날렸다. 색 하나 없는 무형의 바람이 공기를 타고 넘실거렸다. 손등만이 아닌 팔 전체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검이었음에도,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검이었음에도.

어쩐지 익숙한 감각이었다. 꼭 바람이 형체가 되어 손을 잡아주고 있는 듯했다. 차갑지도 춥지도 않은,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후.’


무심결에 손을 움직여 상태창을 띄웠다.


[유설진(lv.18)]

[직업 : 도적]

[보유 스킬 : 기민한 발걸음, 암습, 학살, 신체 강화, 함정 해체, 마력 단검, 차분한 마음, 참살.]

[장비 스킬 : 은신]

[장비 고유 스킬 : 구천을 떠도는 혼의 염원은 바람이 되어 흩날리고]

[체력 : 17(+5) 근력 : 14(+2) 민첩 : 24(+8) 마력 : 19]

[잔여 스텟 포인트 : 2]


고풍 사자의 검의 추가 스탯치가 적용된 모습.


이것으로 되었다.

검은 이제 설진의 것이 되었고, 그 사실을 증거하듯 상태창의 스텟이 변했다.

장비 스킬 밑에는 장비 고유 스킬이라는 새로운 칸이 생겼다.


‘장비 고유 스킬···.’


장비 스킬과 장비 고유 스킬은 확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암살자의 망토]가 지닌 은신이라는 스킬이 사람이 습득할 수 있는 능력, 혹은 다른 장비에서도 볼 수 있는 능력이라면.


‘장비 고유 스킬은 하나뿐이야. 이 스킬은 여기서 말고 못 봐.’


[고풍 사자의 검]이 지닌 고유 스킬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어떤 귀보도, 아티팩트도 고풍 사자의 검이 지닌 스킬을 대체할 수 없었다.

오로지 이 검 하나만이 소유하고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습득의 가능 여부도 마찬가지.

아무도 검의 스킬을 습득할 수 없다.


‘여기서 이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상상 이상으로 좋은 수익이었다.

설진은 24로 급상승한 스텟을 바라보았다. 아직 채 20층도 넘지 않았는데 민첩 스텟은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탑에 들어온 모든 사람보다 높은 수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의문도 들었다.

플라임이 분명 이곳을 왕실 대장장이가 만든 장비가 있는 장소라 말했다.

그러나 달랐다. 드문드문 아티팩트가 뒤섞여 있었고, 어마어마한 성능을 지닌 검까지 얻게 되었다. 비고가 아닌 창고의 물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나 아티팩트라 한다면.’


아티팩트는 먼 옛날 고대의 사람들이 만든 귀중한 물건이었다.

부서지지 않고 예속되지도 않은 채 그저 세상을 떠돌며 계승된 물품이자,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그야말로 신비의 산물.


아는 것이라곤 아티팩트의 기능과 발현 조건. 지금의 사람들이 알아낼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 이상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 비밀이 밝혀지지만.’


서늘하게 뻗은 검의 손잡이를 잡은 채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결정을 내렸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있었다.


“그거 뭐예요?”

“아? 이거. 아티팩트. 장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티팩트가 있길래, 좋은 거 하나 챙겨왔어. 이거 봐.”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링(ring) 부분 위 조그마한 청록색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그 보석에서 방패 비슷한 형상이 보였다.

설명을 요구하듯 시연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짐작한 시연은 반지를 빼 자세히 보여 주었다. 청록색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창고 속. 그리 많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도 청록의 빛은 여실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양껏 내보내듯 흩뿌리고 있는 빛이 줄기처럼 뻗어나갔다.


“체력 5, 근력은 2개 올려주는 장비긴 한데, 진짜는 유동성이지.”

“유동성이요?”

“어. 지금은 수도 안이라 다른 데 맡겨놨긴 한데, 내가 입으려는 갑옷을 여기 이 청록색 부분과 마찰시키면 갑옷을 입지 않아도 방어력이 적용되는 모양이야. 움직이기도 훨씬 편해지고.”


굉장히 좋은 것을 얻었다는 듯 시연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 물론 곧이곧대로 적용되는 건 아니고, 80% 정도만 적용되긴 해. 그래도 무거운 갑옷을 두르지 않고도 그에 상승하는 방어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니까.”

“이거, 게임에서···.”

“맞아. 게임에서는 쓰레기 템 취급받는 아이템이긴 했지. 근데 참, 여기로 오니까 달라 보이더라. 말도 안 되게 좋은 아티팩트인 것 같은데 이거.”


툭툭.


반지를 툭툭 두드리던 시연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설진을 향해 끌어올린 입가를 천천히 열었다.


“흠흠. 뭐, 괜찮다면- 줄까?”

“네?”

“아니. 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들어봐. 너는 암살자인데, 거기서 방어력까지 챙긴다면 어떻겠어. 맞으면서 공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 아니야?”


굉장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왜인지 모르게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장미의 색을 그대로 투영시킨다면 저런 색이지 않을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연은 흠흠, 잇달아 목을 풀며 말문을 트는 중이다.


“층을 클리어하기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 그렇긴 하겠죠.”

“그치그치. 내가 뭐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를, 그- 더 하겠다는, 뭐. 그런 거긴 한데. 이 정도면 적절한 분배가 아닐까 싶어서.”


그대로 말을 마치며 반지를 내민다.

받으라는 듯이 설진에게 들이밀었다.


“누나.”


그러나,


“저 이거, 필요 없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못 써요.”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앞을 응시했다. 설진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퍼지고 있지만 미소라 할 만한 것이 아니었고, 다리는 곧게 편 듯 보이지만 살짝 접혀 있었다.


그 다리로 걸어온다. 시연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꽈악-.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리 말하며 반지를 내민 손을 포개어 접는다.

손 위에 얹어진 손은 반지를 감싼 채 안을 접게끔 만들었다.


반지. 쇠로 만든 듯한 서늘함이 접힌 손을 타고 퍼져 나갔다.

설진은 시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드물게도 진중했다.


“하나는 별것 아니에요. 그 반지, ‘조력(助力)의 반지’는 직업이 기사인 사람밖에 장착할 수 없거든요. 뭐, 제한이 없었다고 해도 안 받았겠지만.”

“어, 어?”

“···그것보다 누나, 그거 알아요?”


잊고 있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시연을 향해,

설진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열린 입이 천천히 목소리를 달음박질했다.

천천히 달음박질하다니, 모순이었다. 그러나 시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


그 모순적인 광경을 보는 지금의 순간에서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나 탑이나,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신념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누나, 지금 표정 완전 이상해요. 이런 표정을 짓고서 받으라 그러면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아···.”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긴 한데, 우리. 조금 비슷한 부류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가까워지게 된 거고.”

“···.”


그 말을 들은 시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굳이 메말라간다. 건조한 땅이 수분을 취하지 못한 채 퍼석거려 산산이 조각나듯, 시연의 얼굴 또한 그리되고 있었다.


“아. 그, 그게.”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사람에게 상처받았잖아요. 그건 같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도, 망한 후에도.

자신은 사람에게 상처받았었다. 이젠 웬만한 인신공격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묵묵히 넘길 수 있을 만큼.


‘나, 는.’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려고 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가세가 기울었고 한순간에 길거리에 나뒹굴게 되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느낀 무력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독립을 결정하고 난 후 공사장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누군가도 자신을 선뜻 도와주지 않았다.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이 두 번째로 느낀 무력감이었다.


그 두 번의 일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다. 단명하고 싶었다.

세상이 무의미했고, 무가치했고, 무익했다.


무력감을 느낀 몸은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그저 순응했다. 세상에게,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 그런 게···.”


그리하여 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극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의지하려고만 했다.

아티팩트를 넘기기만 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바니타스(vánĭtas, 공허).”

“···!”

“누나, 지금 엄청 공허해 보여요.”


무력감을 느낀 몸은 공허하다.

당연한 말이었다.

무력감을 느낀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공허히,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처럼 순응하듯 삶을 보낼 뿐이었으니까.


“공허···? 내가 지금 그렇게 보여? 정말로-?”

“네, 그것도 엄청요.”

“···아, 그래. 그렇, 구나.”


접힌 손에서 느껴지는 쇳조각의 감촉은 여전했다.

떨리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시선은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설진. 그 또한 여전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것이 달라지진 않았다. 아니, 달라져야 하는 것은 눈앞 광경이 아닌-


‘···.’


-자신이었다.


“누나.”


설진의 시야 내로 시연이 들어왔다.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더 내려가지 마요.”


부탁과도 같은 말이었다.

무심결에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텁-.


그제서야 접촉을 끝낸 손이 뒤로 내뻗어졌다.

잡고 있던 손을 떨쳐내자 감기었던 시연의 손이 천천히 열렸다.


열린 손이 서서히 평면을 되찾아갔다. 감겼던 손이 퍼지더니 이윽고 그 속에 들어있던 반지가 기울어졌다.

한 차례 꺾인 반지가 손바닥을 타고, 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반지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틈조차 주지 않고, 반지는 매정하게 내려와 바닥과 맞부딪힐 준비를 하는 중이다.


덥석-!


“···그래.”


그 반지를 시연이 다시 받았다.

오른손에서 빠져나간 반지를, 왼손으로 받았다.


잡은 반지는 더 이상 서늘한 느낌만을 내보이지 않았다. 체온과 맞물려 있던 반지는 이제 살결에 닿아도 놀라지 않을 만큼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그 반지를 다시 쥐어들며.

왼손으로 든 반지를 다시 오른손 손가락에 옮기며,


“노력할게.”


뇌까리듯 말했다.

처음 해 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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