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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10,01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15 23:02
조회
713
추천
10
글자
11쪽

56화

DUMMY

“설진 경. 시연 경. 내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하시지요.”

“지금 내 얼굴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가.”


정해진 수순을 밟듯, 곧 다가오게 될 미래를 예지한 자의 얼굴은.

암흑으로 둘러싸이다 못해 처참할 정도로 어두운 미래를 안 자의 얼굴은.


“···일그러졌네요. 근데도 웃고 있고요.”


놀랄 정도로 모순투성이였다.

웃고 있는데 일그러졌다니.

그 말을 들었음에도 플라임의 얼굴을 변하지 않았다. 변할 기색이 없었다.


설진의 말에 그저 메마른 웃음만을 띄워내던 그녀가 팔을 올렸다.

화륵-. 불꽃이 타올랐다.

계속해 타오르던 불꽃이 영생하는 것처럼 거세게 타오르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점차 화력이 낮아졌다.

화력이 줄어들었을 즈음 올렸던 플라임의 팔이 내려왔다.

손바닥과 땅이 마주 보았을 때는 불꽃이 꺼져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졌는지라.

설진은 바라만 보았다.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경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나.”

“···.”

“내가 지금 맨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 같아서 말이다. 꼴사나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믐달이 드리우기라도 한 듯 음영이 진 낯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19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20층으로 이동하기까지 남은 시간]

[5 : 00]


시스템 메시지는 클리어를 선언한 채 다음 스테이지로 인도하는 중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위태롭게 일렁거리는 플라임의 정신은,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고즈넉하게 흘러갔다.


눈가가 괜히 촉촉해져 그녀는 몸을 돌렸다.

돌린 채 소매를 올려 눈매를 닦았다.

그러고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들은···.”


로이다스를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영들이구나.”


설진과 시연은 사라져 있었다.

그때와 같이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있었다는 사실만이 뇌리에 깊게 남아 뇌를 파먹을 뿐.


“···그리고 나는,”


인간은.


“덧없이 나약한 존재로구나.”


한계에 봉착하는 존재였다.


스윽-.


다시금 눈물을 닦은 플라임은 걸음을 옮겼다.

징조는 느꼈되 아직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었다.

그녀는 최소한의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서둘러 왕성 회의실로 향했다.


* * *


[20층에 진입했습니다.]

[20층은 스토리 모드입니다.]

[플레이어의 상태창이 모드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목표 : 스토리를 끝마치십시오.]


[아만드(lv.9)]

[직업 : 농부]

[보유 스킬 : 농법, 소작농, 능숙한 괭이질···.]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띠링-.

[빙의한 존재가, 본래의 당신보다 낮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치가 조정됩니다.]


[유설진(lv.20)]

[직업 : 도적]

[보유 스킬 : 기민한 발걸음, 암습, 학살, 신체 강화, 함정 해체, 마력 단검, 차분한 마음, 참살.]

[장비 스킬 : 은신]

[장비 고유 스킬 : 구천을 떠도는 혼의 염원은 바람이 되어 흩날리고]

[체력 : 17(+5) 근력 : 14(+2) 민첩 : 25(+9) 마력 : 19]

[잔여 스텟 포인트 : 4]


아만드라는 이름의 농부로 빙의했다가, 돌연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힘이 쭉 빠졌는데 다시 복구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느껴지던 탈력감에서 충만하게 차오른 힘을 느끼고서 주먹을 쥐었다.


잔여 스텟 포인트는 4개나 남아 있었다.


‘이건 조금 있다가···.’


잔여 스텟 포인트의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바로 전투를 하고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상황을 따라 능동적으로 능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하여 설진은 상황을 보아 가장 적절한 능력치를 올릴 생각이었다.


‘마력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러 생각을 하며 상태창을 껐다.

지금 중요한 건 상태창이 아닌 상황 파악이었다.


“누나, 있어요?”

“어 여기 있어. 그런데, 이번에 빙의한 거 맞아? 이번에는, 그냥 넌데?”


시연을 불렀더니 그녀는 의문 섞인 표정으로 물음을 건네왔다.

이번에는 그냥 너라니.

설진은 의문을 느끼면서도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허리에 달린 검집. 그리고 그 안에 보관된 고풍 사자의 검이 만져졌다.


‘능력치 조정이 설마 모습마저 원래대로 바뀌는 거였나?’


[빙의된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조정됩니다.]

[그동안 획득했던 아이템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플레이어가 아닌 타인은 당신을 ‘아만드’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때마침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읽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시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작은 방패를 가지고 있었고 갑옷을 껴입었으며 청록색 수정이 박힌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있었다.


“누나도 원래의 모습이에요. 능력치가 낮으면 이렇게 조정되는 건 처음 봐서, 신기하긴 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설마 아이템까지 그대로 사용하게 해 줄 줄은 몰랐어. 아, 설진아. 이거 한 번 봐줄래?”


시연은 청록색 반지를 자신의 몸에 가져다댔다.

순간 반지의 보석이 밝게 빛나더니 갑옷 또한 흰빛으로 변했다.

이윽고 갑옷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흐물흐물해진 갑옷이 보석에 흡수되더니, 이내 갑옷이 벗겨진 시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

“···.”


옷이 흐물흐물해진 것이 꼭 탈의를 떠오르게 하는 모양새라.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찾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먼저 입을 연 쪽은 시연이었다.


“부, 부끄럽냐?”

“아니, 그건 아닌데요···.”

“어우, 정말로. 겜에서 써본 적이 없으니 이팩트를 알아야지. 벗겨지는 줄 알았네 진짜.”


시연의 시선이 설진을 향했다.

그는 침묵을 지킨 채 앞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설진아.”

“네?”


그 모습에 장난끼가 돌았는지 시연의 얼굴에 옅은 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고혹적인 목소리를 섞여 시를 읊듯 말을 이었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 것이 흥분한 듯 보이기도 했다.


“보고 싶어?”

“···.”

“정 원한다면···.”

“와요.”

“응? 뭐가?”


자신과 설진의 말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바로 그때였다.

시연은 아쉬운 기색을 보이면서도 앞을 바라보았다.


“어?”


설진과 같은 방향을 쳐다본 그녀의 눈앞에는 차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때거지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남아있긴 하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듯싶었다. 대검과 방패를 빼든 시연의 팔을, 설진이 다시 잡았다.


“응? 왜 그래 설진아? 몬스터잖아. 일단 싸워야-.”

“···시스템 창 좀 읽어볼래요.”

“시스템 창? 빙의된 인물의 능력치가 낮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갔다는 거 빼고 또 있어?”


고개를 끄덕인 설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시연은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러자 보였다. 그것도 꽤 긴 글이 나열되어 있었다.


“누나.”


[왕녀 플라임의 정책은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마법 사용 금지령은 일시적인 안전을 보장했지만, 이제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국 외곽 마을 사람들의 전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몬스터를 상대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왕실 마법사들의 지원이 점차 뜸해졌습니다.]

[일정 주기로 몬스터가 습격하는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벼랑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개중에서도 마을 ‘아른’은 피해를 극심하게 입은 곳입니다.]


“여기가 지금 피해를 극심하게 입었다잖아? 일단 도와줘야···!”

“···누나.”

“어?”

“끝까지 봐요.”


[지금, 몬스터가 습격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아른 마을에 왕실의 지원군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몇 차례나 습격을 받은 탓에 비축해두었던 식량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저희끼리는 저희의 모습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농부로 알아요.”


[당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방치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사람을 구한다? 의심의 눈초리를 사게 되는 건 당연지사고, 수상함을 느낀 왕실이 직접 방문해 경위를 물을 거에요.”

“지금 그게 문제인거야···?”

“아니요, 정확히는-.”


스토리 모드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습을 바꿀 수 없었다.

농부를 맡았으면 농부가, 모험가를 맡았으면 모험가가 된다.

그리하여 설진과 시연이 몬스터를 죽이도 타인은 우리를 농부로 알 것이다.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농부인 줄 알았는데 사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모순.

설진이 알기로 아만드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농부였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긴다.


“생긴 문제는 플라임에게 곧이곧대로 전달되요.”

“그렇다는 건···.”

“플라임이 느낀 절망이 더 커지게 된다는 거죠.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은 채 새로운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으니-. 절망은 더 커지고, 더 오래 가요.”

“아니, 설진아. 아무리 그래도···! 플라임이 느끼는 절망보다 지금 이 사람들이 죽는 게 더 큰 문제잖아···!”

“누나.”


플라임이 한 말은 지극히도 맞는 말이었다.

다만 전제가 잘못되었다.


“죽음이 왜 문제에요?”


적어도 설진은 죽음을 불행이라 생각지 않고 있었으니까.


“죽는 게 왜 문제라니? 죽으면 끝이잖아! 끝! 더 이상 못 산다고!”

“그러니까 그게 왜 문제가···?”

“설진아. 너, 너 설마.”


한참동안 중얼거리던 시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런 말다툼이 일어났는지.

애초부터 설진은 시연과 동급이었던 거다. 절망을 겪고 무뎌질 대로 무뎌져, 다신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사람들.

다만 시연보다, 설진이 느낀 절망이 조금 더 비극적이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이기에 이런 말다툼이 일어난 것뿐이다.


“아니, 아니야.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아, 정말···!”


억눌린 말이 터져 나왔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누나.”


그런 시연의 모습을 본 설진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저희로서는 바꿀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가 이 마을의 몬스터들을 막아낸다고 해도 다른 마을의 몬스터마저 막아지는 건 아니에요.”

“···.”

“힘이 있어서 타인을 도와주는 것을 용기라 불러요, 힘이 없음에도 나서는 것을 만용이라 불러요. 몬스터의 습격으로부터 모든 마을을 지켜내지 못하는 이상, 지금 우리가 하는 건 만용에 불과해요.”


그렇다면 차라리-.


“눈으로 봐 둬요. 플레임 왕국이 어떻게 멸망의 길을 걷는지, 플라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눈으로만 봐 둬요. 직접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더 잘 들어와요. 지휘관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설진이 입을 열었다.


“이게 끝이 아니잖아요. 알아요 저도. 저희는 이런 엔딩을 보고 싶어서 탑을 오르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 지···?”

“네. 다음이 있어요. 우리에게는 다음이.”


지금 보는 건 다음을 위한 초석.

다음 기회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


“그 다음을 위해, 봐두도록 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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