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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8,074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14 21:54
조회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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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2쪽

55화

DUMMY

“달밤이 어둡구나.”


먼저 간 설진을 따라 다시 스위트룸에 돌아온 플라임의 목소리였다.

린같이 어둡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에서는 침울한 기색이 묻어 나왔다.


린은 드래곤의 둥지로 간다는 말을 했으나 그건 곧 자신은 죽음을 바라니 죽으러 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당장 란도 손도 못 쓰고 당했는데, 그보다 약한 린이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아니, 애당초 드래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마안은 아티팩트지만 만능이 아니다.

지속 시간이 존재했고 마력이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사용자의 역량이 중요했다.

시험 사용조차 해보지 않은 린이 드래곤을 상대로 항전을 펼칠 수 있을지.

···솔직히 말해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플라임은 말했다. 달밤이 어둡다고.

유난이 깊은 밤이 상황을 탁하게 물들였다.

오늘의 기분을 하늘이 대신 설명해 주는 듯했다. 이젠 희미한 빛마저 없는 달빛은 완연히 구름에 가려 조금의 빛줄기조차 내보이지 않는 중이다.


“무엇이 그리 어두우신지요.”

“시연 경인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알아도 좋을 것 없는 이야기지.”

“···.”

“정 궁금하다면 추후 설진 경에게서 들어줬으면 좋겠군. 차마 내 입으로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투성이라,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어.”


플라임은 그리 말하고선 설진을 돌아보았다.

설진은 아무런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흡사 무표정에 가까웠다.

감정도 성정도 없는 얼굴이 묵묵히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진 경. 그대는··· 왜 그런 얼굴을?”

“슬픈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렇다면 슬퍼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그런 무표정한 얼굴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아. 오히려 슬픔 말고 다른 감정이 들어찬 건 아닌가 싶을 정도야.”


약간은 두서없이, 그녀는 입을 열었다.

하기야 아무리 왕녀라도 플라임은 아직 어렸다.

능력이 너무 뛰어났던 탓에 고난을 겪지 않아 어렸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러 가는 것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리하여 감정을 숨기는 것도 처음이라 제어가 힘들었다.

비극 하나 없었던 왕녀의 인생에 첫 번째 비극이 찾아왔다.


다만 타인의 비극이었다.

자신의 비극이 아닌 타인의 비극이었다.


“슬퍼해야 마땅하다라···.”


설진이 중얼거렸다.


“그렇죠. 근데 저는, 당사자 앞에서 그런 감정은 차마 못 내비치겠더라고요.”

“···?”

“이중적인 의미니까 이해하기 힘드실 거에요. 아까 왕녀님이 말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알아도 좋을 것 하나 없는 이야기.”


하나는 자신의 성정이었다.

워낙 좋지 못한 것들을 보고 당하면서 자라온 탓에 감정이 거의 사라졌다.

무뎌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감정이 무뎌진다. 이상한 말이지만 설진은 자신을 표현하는 문장 중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아까 말했던 것과 같이 당사자가 있고 없느냐의 차이였다.

린의 사연은 플라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데 큰 영향을 줄 터.

그걸 알고 있는데, 굳이 그런 감정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에요.”

“그런가. 그럼 더 파지 않도록 하지. 피차 곤란해지는 문제는 피하고 싶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자에 앉았던 플라임이 돌연 몸을 일으켰다.

시연이 의문 섞인 눈길로 바라보자 그녀는 경기장을 가리켰다.


“아, 끝났군요···.”


콜로세움은 모두 끝나 있었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상품 지급은 모두 끝났고, 인터뷰도 모두 마무리됐다.

빛을 머금은 수정구는 점차 꺼지는 중이다. 사람들 또한 어두워진 콜로세움을 빠져나가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걸음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진동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발을 구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래, 콜로세움은 모두 끝났지. 끝이 살짝··· 좋지 않기는 했지만.”


플라임의 말이 이어졌다.


“흠흠. 어쨌든 간에, 오늘은 어땠나. 재밌었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만.”

“재밌었습니다. 왕녀 전하. 충분히요.”

“입에 발린 말이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든. 어느 쪽이든 고맙게 들리는군. 그럼 우리도 일어나지. 밤이 깊었으니 슬슬 떠날 때가 왔다.”


[18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18층이 클리어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가렸다.

가린 눈앞이 채 열리기도 전에, 플라임의 입에서 또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아, 그리고 두 사람한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물론 거절해도 좋다. 이건 그저··· 온전히 내 개인적인 부탁이니까.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해다오. 그래도 짐은 전혀 그대들을 미워할 생각이 없다.”


[19층에 진입했습니다.]


“무엇이기에···?”

“그리 큰 건 아니다. 단지-.”


플라임의 말과 허공의 시스템 창이 겹쳐 들렸다.

목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시스템 메시지에 적힌 목표도 명확해졌다.


“내일, 나와 함께 병영에 한 번 들르지 않겠나. 원래라면 해선 안 될 일이지만 그대들은 노르담 출신이니 상관없겠지.”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설진 경. 그대들이 없었던 오 년 동안, 나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하나씩 쌓여갔거든.”


그런데, 하고 플라임이 말을 이었다.


“그게 너무 쌓였는지, 이젠 내보내지 않으면 성에 찰 것 같지가 않아. 슬슬 때가 되었다 싶기도 했고. 내버려두면 내 속만 타들어 갈 것 같아서 말이다.”

“그 비밀이란 건···.”

“내일, 날 따라온다면 알려주도록 하지. 비밀이 말 한마디에 쉽게 풀린다면, 그건 비밀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일부로 옅은 웃음을 지은 플라임의 목소리가 사근사근 이어졌다.

말이 끝을 맺음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완성되었다.


[목표 : 플라임의 부탁을 따라 병영에 방문하거나, 거절하십시오.]


선택지가 정해진 목표.

설진은 시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진에게 맡기겠다는 의미였다. 그 비밀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던 그는,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들었다. 올린 시야에 플라임이 들어왔다.


“그러죠. 시간은 언제쯤이면?”

“언제라도 상관없다. 내일 짐은 왕국을 벗어나지 않을 생각이니.”


그 말을 끝으로 플라임은 몸을 돌렸다.

몸을 완전히 돌리기 전, 설진은 볼 수 있었다.


“···.”


초연스레 표정을 세운 그녀의 얼굴을.

벚나무가 져 떨어지는 꽃잎처럼 낙화한 플라임이 보였다.

발길을 돌려 등을 들어낸 그녀의 어깨는 살짝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고난.

말 그대로 플라임은 딱히 고난이랄 것을 느끼고 살아오지 않았다.

능력이 뛰어났기에, 조금은 고전할지라도 그 끝은 항상 좋았었다.


“누나.”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 고전이 쌓이고 쌓여 해결하지 못할 정도의 비극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왕녀의 능력만으로는 턱도 없을 만큼의 비극이.


“다음은 플라임이에요.”

“알아···.”


언제나 행복할 줄 알았던 이야기의 막은, 선로를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행복과는 전혀 거리가 먼 방향이었다.


“···알아서 짜증나.”


* * *


다음 날.

점심때가 되어서야 둘은 플라임을 찾아갔다.

점심이라면 병사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할 때이기도 했고, 플라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부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와 줬구나. 일단 고맙다고 해야 하나.”


병영에 들어가기 전 플라임이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유 없이 어색해 보였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았다.


평소의 플라임이 미소를 섞어 가며 한없이 유하게 대해주는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달랐다. 얼굴은 드물게도 진중했고, 걸음걸이는 알게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규칙적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끊기듯 앞을 향했다.


서론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5년 전. 반란이 있었다.”


플라임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되 설진은 귀를 기울였다.

시연 또한 마찬가지. 플라임의 목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이야기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몰입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반란을 진압했지. 수도에 붙여놓은 공문도 그 일부 중 하나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한 선택.

자유와 안전 중, 지극히 안전만을 중요시하게 된 선택.

선택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5년은.


“최근 들어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군. 원래부터 보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심해졌어.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플라임이 손짓했다.

가리킨 것은 병사들이 있는 훈련장.

검과 창이 내질러지고 있는 훈련장 뒤에는 마법사들이 존재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만, 알면서도 강행한 것이었다만. 그 결과가 여실히 드러나자 마음이 찢어지는군. 경들, 한 번 봐라.”

“···.”

“이것이 안전을 선택한 결과다. 아니, 안전이라고 할 것도 없군. ‘일시적인 안전’을 선택한 결과라도 하는 게 더 어울리겠어.”


그 마법사들이 뿜어내고 있는 마력량이 현저히 적었다.

너무나도 옅었다. 손을 내밀고 주문을 외어 마법을 펼치고는 있긴 하지만, 만들어지는 불은 기껏해야 모닥불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수준.

거기서 그쳤다. 그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끝이 아니다.

그 좁쌀만한 마법을 대여섯 번 쯔음 외면 탈진하기 일수라, 마법사들은 땀을 줄줄 흘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흘러내리고 있는 땀이 흙에 묻었다. 진해진 흙의 색이 점차 영역을 넓혔다.


“왕녀님.”

“···왜 그러느냐.”

“왜 그러셨어요?”


마력이란 본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총량이 늘어나는 것.

어릴 때부터 마법 사용을 억제당한 왕국의 마법사들은 성장할 수 없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마법 성장의 정체와 퇴행.


“왜 굳이 이런 방법을 썼어야 했나요.”


설진이 물었다.

왜 이런 방법을 썼냐고.


“조금만 하다가, 끝내면 되지 않았나요?”


설진이 물었다.

알면서도 물었다.

왜 이런 방법을 썼어야만 했느냐고.


“그 질문에는 그저···.”

“···.”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군.”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은 아티팩트가 아닌 귀보였다.

인간의 손을 통해 계승된 것이 아닌 다른 영향으로 만들어진 보물.

그 힘은 감히 드래곤의 마법에 비견되나, 패널티 또한 존재했다.


“그런가요. 하긴, 그렇겠죠.”


아티팩트가 단지 인간의 풍요를 위해 만들어진 보물이고,

귀보가 대가를 바라는 보물이라면.

보통의 경우 후자가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다만 잃는 것이 존재했다.

잃는 것이 있었기에 적절한 시기에 끝내지 못했다.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을 멈출 방법은···.”

“경···? 대체 무슨 소리를···.”


귀보의 명칭을 말하자 플라임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설진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입을 열었다. 열고서 말했다. 말한 것을 다시 주울 생각은 없었다.


“오직 사람의 생명이니까요.”

“···설진 경. 그대가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겠다. 빨리-.”

“왕녀님.”


설진은 플라임의 말을 막았다.


“제가 예언 하나 해드릴까요?”


다만 자신의 입을 열었다.


“왕녀님, 곧 있으면 망가져요.”

“···.”


플라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설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시 그녀가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어제부터 참, 왕녀인 짐이 별소리를 다 듣는군.”

“···.”

“더럽게도 비극적인 이야기 하나, 그리고-.”


그리고.


“더럽게도 맞는 이야기, 하나.”


플라임이 웃었다.

린이 짓고 있었던 것처럼 메마른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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