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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99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07 21:45
조회
831
추천
10
글자
12쪽

50화

DUMMY

-‘여기서 더 내려가지 마요.’


라고는 했지만, 과연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설진은 생각했다.

이미 한없이 밑바닥에 추락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내려가지 마요, 보다···.’


아마도.


‘내려오지 마요가 더···.’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하고.

내려가지 말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위에 있을 때를 의미했고, 내려오지 말라는 말은 그와 상반되게 자신이 더 아래에 있을 때를 뜻했으니.


‘···.’


한참 상념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던 설진이 정신을 차린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시연의 목소리에, 노력해본다던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한 정신이 반응했다.


“···네.”


짧게 대답하고선 창고 문을 향해 걸었다.

선택은 끝났다. 설진은 검을, 시연은 반지의 형태를 띠고 있는 아티팩트를 선택함으로써 서로의 전력은 상승했다.


다만,


“···.”

“···.”


문을 향해 걷는 동안 오가는 말은 없었다.

침묵. 잠자리에 든 것처럼 고요했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연을 이해하듯, 격려하듯 말하기는 했지만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누나.”

“···어?”


조심히 그녀를 불렀다.

단지 경험이 없고 과거가 흐려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흐려진 말의 조각들을 애써 주웠다. 천천히, 그럼에도 차곡차곡.


이윽고 준비가 다 되었는지 성대가 부르르 떨렸다.

이제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설진이 뭐라도 하고자 입을 열려는 찰나,


“설진아.”


되레 시연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네?”


한 차례 늦은 대답이 밀려왔다.

떠밀리듯 반사적으로 내던져진 대답과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을 맞췄다. 다시, 먼저 입을 연 쪽은 시연이었다.


“노력하랬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 그래야지. 나도 참 바보같이 살았었네.”


시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입가에서부터 새어 나온 자그마한 김이 창고 속 온도를 증명하듯 듯했다.

영하까지 내려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을 즈음, 입 밖으로 내뱉어진 김이 산화하듯 사라졌다. 위로 올라간 연기는 이제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스러져갔다.


연기가 스러져갈 때,

입가에 묻은 김이 완연히 그 모습을 감췄을 때,


“고마워. 감사 인사가 좀 늦었지?”


오므려진 입술에서 조막만 한 말이 튀어나왔다.

뺨을 발그레 밝힌 채 수줍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뇨.”


설진은 한동안 지켜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말할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입을 열어 본 자신에게,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도 감사하다고 말해준 시연에게.


“괜찮아요.”


내심 하지 못했던 말을 자그맣게 토해냈다.


단언컨대 삶을 살면서 지어본 미소 중 몇 안 되게 괜찮은 미소였다.

왜냐면 진심이 섞였으니, 나름대로 열심히 지으려 노력했으니.

거짓 하나 없이 순수한 물처럼 새겨진 웃음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아로새겨지듯 간직된 입가는 한동안 올라간 채로 시간을 보냈다.


“흠흠. 그보다 슬슬 나갈까? 아니, 나가자. 다 골랐으니까.”

“네, 지금쯤이면 플라임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창고와 왕실을 나눈 문을 가로지르는 걸음은 마치 나다니는 듯했다.

이쯤 되면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장비를 고르는 데 시간을 소요한 건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꽤 시간을 흘려보냈기에.


앞장서듯 걸음을 옮기는 시연을 따라 몸을 돌렸다.

끼이익-. 이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후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의 걸음걸이였다. 저벅, 저벅. 왕실 바닥을 지르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위풍 있게 느껴졌다. 좋은 변화라 생각했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물론 자신이 개입해 만들어낸 변화라 후회는 없지만, 정작 설진 본인이 바뀌는 것은 없었으니까.


플라임이 특이한 경우였고 시연이 특별한 경우였을 뿐이지, 여전히 말을 못 붙이는 성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타인과의 접촉이 싫고 대화가 꺼려졌으며 삶 그 자체에 미련이 있지도 않았다.


이것이 나쁜 것임을 아는데. 고쳐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는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 말이 적용되는 듯했다. 바뀌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제 몸은 여실히 떠내려감을 고수하는 중이다.


“으아. 드디어 나왔다. 창고 속은 추웠단 말이야.”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연은 어깨를 올리며 개운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옆에 선 설진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몇 마디 대꾸했고.


“누나, 그럼 이제 18층을···.”


와중 18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이야, 내일이 벌써 그날이지?”

“그러게 말이다. 이번으로 몇 번째더라?”

“스물한 번째. 난 솔직히 콜로세움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오래가더라고. 역시 왕족들의 지원이 있어서 그런가.”

“어디에서나 빽, 권력 같은 건 먹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너 내일 갈 거냐?”

“가기만 하겠냐! 이미 참가 신청까지 했다고.”


귀에 익은 단어가 들려왔다.

콜로세움.

마법 사용이 제한되고 안전에 관한 법률이 강화된 지금의 시대에, 유일하게 제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대회와도 같은 것이었다.


갈 길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병사들의 말을 들었는지 짐짓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진아, 콜로세움이라면 그거지? 참가자 전부 받고 싸움 붙이는 거.”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간추렸네요. 일단 그렇긴 하죠. 콜로세움이 워낙 참가자가 많아서 16명씩 묶어두고 단체전 치루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되게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네. 몇 년 된 거 같에.”

“실제로 몇 년 된 거 맞긴 해요. 이 에피소드를 플레이한지 3년 정도 됐으니까요.”


설진이야 귀에 익은 말이나 시연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녀는 25층까지의 내용을 반복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흥미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관심이 간다는 듯한 표정을 내비치고 있는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콜로세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나 했더니 그것이었는가.”


저벅, 저벅.


때마침 플라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품 있는 걸음걸이로 눈앞에 선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보다 장비는 모두 골랐나 보군. 시연 경 같은 경우에는··· 호오. 아티팩트라, 꽤 보는 눈이 있군. 그 정도면 상등품이지.”

“황송합니다. 왕녀 전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시연의 말에 플라임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기실 창고에 들어갔을 때부터 의문이 하나 생겼었다.

왕실 대장장이들의 장비만 있어야 할 곳에 왜 아티팩트가 존재했는지.


그런 시연의 얼굴이 보였는지 플라임이 말했다.


“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 것 같군. 흐음, 어디 보자··· 어찌 왕실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장비만 있어야 할 곳에서 아티팩트가 있냐 하면.”


플라임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져 올랐다.

왕녀라는 신분을 가진 것치고는 미소가 많은 듯했다. 게임에서 ‘왕녀는 잘 웃는다’ 같은 사소한 설정을 가르쳐주진 않았기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설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플라임의 말이 이어졌다.


“짐은 상벌이 확실한 편이거든. 공을 세웠으면 당연히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서로 간의 신뢰와 정이 생기는 법이지.”


공을 세웠으면 상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당연한 말이었다. 그건 군주와 부하 간의 사이에서 무조건적으로 지켜져야 할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왕녀 전하의 부하가 아님에도 말입니까?”

“그래, 일용직으로 고용되었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 그게 정치고 인맥이 되니, 나 같이 발이 넓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득을 위한 발판인 것이야.”


그런 불문율마저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플라임은 그 법칙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력한 것이 보였다.

성군이면 성군이었지, 폭군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럼에도 반란을 억누르고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런 정책을 결정한 것이 안타까웠을 뿐.


“으음. 설진 경은-. 음?”


플라임의 시선이 설진에게로 옮겨갔다.

시연이 고른 반지를 보고 몇 마디를 해줬던 것처럼 설진에게도 그러려는 모양.


그러나 반응이 조금 달랐다. 입가에 슬며시 어렸었던 미소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의문으로 바뀌었다.


“···미안하지만 무엇을 골랐는지 알려줄 수 있겠는가.”

“검입니다. 원래의 검에서 이것으로 바꿨습니다.”


설진의 말에 플라임의 시선이 허리춤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듯했다. 안 되겠다 싶어 눈에 마력을 불어넣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바람?”


미약하게 일렁거리는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검신을 잠시 볼 수 있겠나? 확인할 것이 생겨서.”

“···여기 있습니다.”


스릉-.


검집에 꽂힌 검을 뽑아 플라임에게 보여주었다.

의문에 찬 듯한 그녀의 반응에 더욱 의아하게 생각한 건 설진이었다.


‘대장장이가 만든 검이 아닌 건가?’


설진이 알기로 [고풍 사자의 검]은 아티팩트가 아닌 장비였다.

그것도 제작된 장비.

그렇기에 지금 플라임이 보이는 반응해 더욱 의문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검이 왕국이 만든 것이 아니라면 검의 정체는 더더욱 미궁으로 빠질 테니까.


“으음.”


그런 설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플라임은 모호한 비음을 흘렸다.


“뭐, 좋은 검이란 건 알겠으니··· 축하하지 설진 경.”

“이 검, 왕실의 것이 아닌가요?”

“정확히 말하면 발견한 물건이라 할 수 있겠군. 미궁을 공략한 뒤 얻은 고대의 물품 중 하나다. 고대라기에는 그 수준이 꽤 높아 이곳에 보관해뒀다만.”


음. 다시 말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잊은 모양이야. 이제라도 주인을 찾았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좋은 검입니다.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경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지.”


이로써 장비 배분은 끝났고, 슬슬 18층이 시작될 차례였다.

설진이 잠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플라임의 입이 먼저 열렸다.


“방금 병사들의 대화, 들었나? 언뜻 보니 관심이 좀 가는 얼굴이던데.”


병사들의 대화라면, 아마 콜로세움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일 터.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콜로세움은 왕실 측에서 후원하고 지원하는, 왕국의 축제 중 하나다. 정확히는 축제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군.”


하기야, 5년 전까지만 해도 콜로세움이라는 건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저 불법 투기장이라는 이름으로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었던 것뿐.


설진은 이어지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알고 있는 것과 크게 차이나는 건 없었다.

16세 이상의 사람들만 참여 가능하다는 점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생사여탈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점.


지구와는 다르게 왕국은 16세 이상의 사람을 성인으로 취급했다. 지구에 비하면 인구도 많지 않고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아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듣던 도중,


“콜로세움이 열리는 날은 내일이다만. 어떤가, 같이 한 번 가 보지 않겠나?”


느닷없이 동행 제안을 받게 되었다.


[목표 : 왕녀와 함께 콜로세움에 방문하십시오.]


그것도 18층의 목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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