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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10,009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10 22:20
조회
739
추천
11
글자
12쪽

53화

DUMMY

“드래곤의 날개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 채 귀환한 모험가죠! 그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모험가입니다! 이거 모두,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중계를 맡은 남자가 말했고.


“네, 그렇습니다! 천재지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왕국에 큰 피해를 끼치고 있는 드래곤을 상대로 대등한 승부를 펼친 모함가입니다!”


그 옆에서 여자가 거들었다.

설진의 시야가 돌아갔다.

보고 있는 것은 린.


가면이 벗겨져 떨어지고, 떨어진 가면이 땅과 부딪히며 산산조각났다.

우지직-. 그 가면을 누군가 밟았다. 린이었다.

오 년이 지난 지금 이십 대 후반의 나이가 된 그녀가, 세상에 회한하듯 고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면이 으깨지며 한순간에 이목이 쏠렸다.


얼굴이 드러나자 다른 선수들이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설진은 몰랐지만, 오 년이 지난 린은 지금 유명한 모험가가 된 듯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른 선수들의 표정이 저리 충격적일 리 없으니.


검을 들어 올린 한 검사의 손은 부르르 떨렸고, 마도서를 공중에 띄워놓은 마법사의 얼굴이 하염없이 흔들렸으며, 기다란 창을 쥔 창잡이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무기를 맞대지도 않았는데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다.


다시 선공을 취한 것은 린이었다.

아까와 같이 가히 쾌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속력을 낸 그녀가 창잡이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날린 마법을 피하며 지척까지 접근한다.


가까이 따라붙은 린이 대검을 휘둘렀다. 오른손에서부터 내뻗어지는 대검이 창잡이의 얼굴을 노렸다. 창잡이는 고개를 꺾어 겨우 피했다.

창백한 듯한 안색이 얼굴에 새겨지려는 찰나, 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검이 한 짓이 아니었다. 왼손에 있던 방패가 곧이곧대로 들이박아 난 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잡이가 쓰러졌다. 기절한 채 몸을 뉘었다.


“···있지.”


여덟의 선수 중 순식간에 넷을 탈락시킨 린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나왔다. 성대가 쉰 듯 저음이 흘러나왔다.


남은 세 선수.

검사와 마법사와 도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뭐?”

“세상이 좋다고 생각해? 행복하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얼굴의 검사가 칼을 들어올린 채 화답했다.

린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대검을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검사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예선전 통과 조건은 최후의 2인이 되는 것. 잘 구슬리면 어찌어찌 자신도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낸 목소리였다.


“그, 그럼. 행복하지 않겠어? 너는 어떤데? 무려 그 드래곤과도 대적한 강자잖아? 그럼 당연히 좋은 집에, 좋은 옷에, 고급진 음식을 먹을 거 아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린의 얼굴을 본 그제서야 의문을 느꼈는지, 검사가 되물었다.

검사의 입장에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느니, 세상에 의미가 있느냐느니.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구나.”


검사의 반응을 본 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다시금 돌진한다.


“어, 어- 자! 잠시만!”


그걸로 끝이었다.

린의 공격을 받아넘기지 못한 검사는 멀리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고개가 꺾이고 몸이 굽혀졌다. 흠집이 난 벽에 검사의 옷깃이 끼었다.


이걸로 다섯.

여덟 중 다섯이었다.


“···왕녀님.”

“왜 그러나, 설진 경.”

“저 린이라는 여자는 뭡니까.”

“미안하군. 나라고 모르는 게 없는 건 아니라···.”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설진이 입을 열었다.

플라임은 난처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흐트러졌습니다.”

“뭐라?”

“린이라는 여자. 가면이 베여 얼굴이 드러났을 때, 왕녀님의 얼굴도 같이 흔들렸습니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뜻 아닙니까.”


플라임의 표정이 흔들렸다.

다만 흔들린 것만으로 유추한 것은 아니었다. 10층에서, 범죄 조직 레지스탕스의 잔당을 소탕할 때 겪었던 일을 생각하며 한 질문이었다.


물론 플라임은 설진이 루이 로반델트로 빙의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테지만.

설진은 그때의 일을 알고 있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몇 초 동안 눈을 감고 있던 플라임은 이윽고 숨을 뱉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표정이 흔들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각했다라··· 역시 그대는 특이하군. 내가 알고 있는 모험가와는 많이 달라. 참, 감이 좋다고 해야 할지.”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알고 있다. 눈치챈 이상 숨길 것도 없지. 숨길 이유도 없고 말이야.”


미소와 웃음만을 짓고 있던 플라임의 입가에 처음으로 쓴웃음이 감돌았다.

그것은 아까 설진이 본 린의 표정과 같이, 회한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절대 좋은 표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짧게 말을 흐렸다.

설진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플라임의 입이 열렸다.


“···린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란. 그 또한 린과 같은 모험가이자, S급이라는 랭크에 도달한 모험가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있었다.

과거형이었다.


설진의 표정이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알 것 같아서. 대강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아서.


“개인사라 최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하고 싶었다만, 린에게는 병든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부산물이 필요했고.”


-“병든 어머니가 있습니다.”

-“희귀병이라는군요. 보통의 방법으로는 낫지도 않는.”


로이 루반델트로 빙의했을 때.

그때 란에게서 들은 말과 플라임의 말이 겹쳐 들렸다.


“드래곤의 숨결이라고 했나. 왕국 뒷골목에서 암암리에 거래된다고는 하지만 비싸고, 물량이 나오는 것 자체가 드물지. 일반인이 구하기는 힘들다.”


-“다만··· 기왕 꺼낸 말, 루이 님께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드래곤의 숨결이 필요하더군요. 어머님의 병을 낫게끔 하기 위해선.”


“그럼에도 린과 란은 드래곤의 숨결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았다.”


-“열심히 돈을 모으곤 있지만, 그럼에도 한참 모자랄 것 같더군요.”


“다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지. 아무리 모험가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돈을 벌어도, 정말 이례귤러가 아닌 이상에야 드래곤의 숨결을 사기란 어려워.”


-“애초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도, 어디에서 파는지도 모르는 실정이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드래곤을 토벌하자고요.”


“···그래서 그들은 생각했다. 차라리 드래곤을 토벌하자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드래곤같이 재앙급 마물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최소 S급 모험가 정도는 되어야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는 것도요.”


“어려운 일이다.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드래곤은 나조차 팔 하나쯤은 각오해야 할 정도로 강한 적수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결정했다.”


-“제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이유도, 돈을 모으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실적을 올려 언젠가 S급의 모험가가 된다면 드래곤과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또 돈을 악착같이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드래곤을 잡자고. 그래서, 그리해서 드래곤의 숨결을 구해 어머니의 병을 치유해 드리자고.”


플라임의 입이 잠시 멎었다.

그녀는 뜸을 들이고 있었다. 말하기를 주저하듯 성대를 억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설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열고선 물었다. 린과 란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알 것 같으면서도 물었다. 린과 란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느냐고.


“···.”

“어떻게 되었, 나요?”


말을 듣고만 있던 시연의 목소리까지 울리자, 그제야 플라임의 성대가 열렸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 가장 침울에 잠긴 목소리였다.


“둘 중 하나가.”


둘 중 하나가.

말인즉 린과 란 중 하나.


두 사람을 지칭하는 말을 쓴 플라임의 입이 재차 열렸다.

침울에 잠긴 목소리는 여실히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성대를 조이고 있었다.


“죽었다.”


담담히, 그러나 그 표정마저는 담담하지 않은 채 나직이 죽음을 고했다.

누가 죽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바로 앞, 콜로세움 속에서 결투를 벌이고 있는 린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으니까.


‘···죽었다, 라.’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담았다.

한 번 쓸린 얼굴이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죽었다. 그 말을 천천히 외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린이 왜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도,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도,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잃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죽음으로 인해 메말라버린 감정은 파도가 치지 않는 이상에야 나아지지 않는다. 치지 않는다면, 그저 건조해진 채 여생을 허무히 보낼 뿐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설진은 그저 상황을 지켜봤다.

어느새 예선전은 전부 끝나있었고, 린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채 진출했다.

다음도, 그 다음도, 그리고 또 다음도.


일대일 싸움으로 치러지는 32강도.

16강도, 8강도, 4강도.

그리고 마지막 2강도.


드래곤과 대적했다는 말과 걸맞게 린의 실력은 엄청났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조금 고전했을 뿐, 그럼에도 승리를 쟁취해 우승을 따냈다.

경기는 모두 끝났다. 푸른색이었던 하늘은 어느새 붉은 노을이 묻어 구름과 섞이고 있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 사라질 채비를 하는 중이다.


“우승자는 모험가 린입니다!!”


경기장 중앙으로 린을 포함한 다른 선수들이 들어섰다.

3등, 2등, 그리고 1등 순서로 이름을 나열하며 물품 증정이 시작됐다.


3등에게는 갑옷을, 2등에게는 무기를, 1등에게는 예의 아티팩트가.

마안을 손에 쥔 채 린은 콜로세움을 빠져나왔다. 우승자에게 소감을 묻거나 하는 그런 치레는 없었다. 답변을 거부한 채 그녀는 밖으로 향했다.


“···미안하군. 급한 볼일이 생겨서 먼저 일어나지.”


린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플라임이 사뭇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유리방을 빠져나왔다.


“설진아.”

“네, 누나.”


플라임이 자리를 뜬 것을 보고서 시연이 말을 걸어왔다.

설진이 화답했다. 어딜 가는지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린에게 가겠지?”

“그렇겠죠. 경기가 진행될 동안 린이게서 시선 한 번을 안 놓치던데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플라임의 시선은 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린이 나오지 않는 경기는 대충, 그러다 린이 나오면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해 관찰했다. 그랬는데, 플라임이 어딜 향하는지 모르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직 플라임의 모습이 보였다.

유리방을 빠져나간 그녀는 다급한 걸음걸이로 콜로세움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예상이 될 지경이라, 설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누나.”

“어?”

“시작이에요. 지금이 18층이죠? 오히려 조금 늦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예요.”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의 끝은 25층.

지금은 18층.

후반부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다만 여느 이야기와는 달리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연속된 불행만이 사슬처럼 목을 옥죄 끊임없이 괴롭힐 뿐이다.


“···부서지고 있어요.”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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