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정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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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리아드에서 온 조사대의 단장은 레노번이라는 7서클의 마법사다. 현존 테일리아드에서 8서클 경지에 오른 자는 다섯 명뿐이다.
이번 세대가 마법사의 흉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세가 많이 눌려 있다. 그것은 60년 전 성황이 주신 제국을 통일한 시대 가장 중요한 레파렌스전투였다 .
악룡과 전투에서 고위급 마법사들 특히 8서클에서 9서클에 이르는 영웅급 마법사가 대거 전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승리를 가져 왔지만 대가는 처절했다.
8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모두 전사하는 비극을 맞았다. 테일리아드에서는 지금의 시대를 염제의 시대라 부르며 마법사들은 모두 웅크리고 있다. 사실 차원의 벽을 허물고 악룡을 불러낸 것이 마법사이니 그 책임을 오롯이 져야 했다.
레노번은 역학과 고문서에 해석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역사학자 겸 7서클 마법사이며 그의 마법은 폭렬 마법이 주가 될 정도로 화끈한 마법사다.
폭렬 마법은 마법 중에 가장 강한 마법이다. 익스플로전과 슬레이어류의 마법 등 광범위 폭발 마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성능이 강력한 만큼 단점도 치명적이다. 7서클 마법사가 익스플로전은 사용하면 충전하는데 종일 걸린다.
방어 기술은 아예 없고 한번 마법을 사용하면 다음 마법 사용 시까지 마나를 충전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폭렬 마법은 한 번에 가진 힘을 모두 뽑아내 적을 사멸케 하는 가공할 마법이지만 그 단점도 만만치 않아 균형을 원하는 마법사는 절대로 폭렬 마법을 익히려 하지 않는다.
전쟁이 나면 한번 써먹고 버리는 패가 폭렬 마법사다. 살면 오행이고 죽으면 그뿐인 마법사. 하지만 그 힘은 가공할 정도니 엠버스피어에서도 매우 소수다.
레노번은 탁자 위에 놓은 두 구의 사체를 아침부터 조사 중이었다. 마교의 교주 테츠도 있었고 아리스토틀도 있었지만, 레노번은 그들에게 곁눈질 한 번도 하지 않고 오롯이 마족의 시체를 조사하는데 몰두했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마법사가 단검을 쥐여 주었다.
"겨울이긴 하지만 이런 시간 동안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니 신기한 노릇이군요. 일단 속을 좀 들여다보겠습니다."
레노번은 거침없이 마족의 배를 갈랐다.
"음? 생각보다 가죽이 잘 잘려나가는군요? 마족의 신체는 쇠보다 단단하다고 했는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이 잉겔리움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레노번은 힐긋 곁눈질로 테츠를 보더니 다시 해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뱃속에서 빼낸 장기들을 옆 탁자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폐와 간, 심장 따위가 차례로 모습을 보였다.
"날개 달린 마족의 내용물은 인간과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만. 이 뱀처럼 생긴 놈은 폐와 아가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군요. 물속에서도 숨을 쉬는 데 문제없는 구조입니다."
"피 색깔이 왜 그러오?"
"검은 피는 마족의 특징 중 하나지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생명체입니다."
"마족의 신체적 특징에 대해 아는 데까지 설명해 보게."
레노번은 해부 중인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고문서에 의하면 인간보다 먼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던 토착민이라고 해야겠지요. 뭐 신화적 이야기지만 신 노덴스가 인간을 만들었지만 강력한 마족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요. 그들은 인간을 사냥하고 잡아먹기까지 했습니다. 노덴스가 인간은 실패한 생명체라고 버려뒀는데 신 니알라 토텝이 재미 삼아 인간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상황이 역전해 버렸죠. 니알라 토텝으로부터 받은 마법을 이용해 마족을 몰아내 버린 겁니다. 차원의 문까지 열어 버린 인간은 마족을 영원히 다른 차원으로 추방해 버렸죠. 그 힘은 계속 강대해져 점차 신의 권위까지 도전해 오자 노덴스가 마법의 힘을 뺏어 버려 비로소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죠."
레노번은 마족의 몸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차원의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마력을 빼앗겼으니 인간은 다시는 그러한 힘을 사용할 수 없었고 마족 또한 영원히 차원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저희는 그 힘을 잃어버린 그 힘을 페로니우스의 서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틀은 두 눈을 감고 말했다.
"고대 인간의 역사를 이룬 자들 말라키들이 쓴 책이라 전해지는 것이 페로니우스의 서입니다."
"말라키?"
"니알라 토텝으로부터 마법을 부여받은 신성한 마법사들이지요."
"음, 10서클 아크 위자드와 비교하면?"
레노번이 테츠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서클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서클이라고 해봤자 자연의 힘인 마나를 받아 쓰는 잡기술에 불과할 뿐이고 말라키들이 휘두른 힘은 그 자연을 지배했던 힘이었습니다. 신에 필적한 힘을 휘두른 권능의 화신들입니다."
"쩝, 깐깐하기는···."
레노번은 테츠와 아리스토틀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테츠가 신기하게 비쳤다. 아리스토틀이 누구인가? 테일리아드 제일의 대현자다. 그런 그와 반말로 대화하는 것은 물론 아리스토틀 또한 테츠를 상전 모시듯 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곳 마법사들에게 들은 바로 테츠가 카셈의 매직 오브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충격을 넘어 엄청난 대사건이다. 그 사실은 아리스토틀과 일부 측근 마법사 그리고 테일리아드 국왕만이 아는 사실이라 했다.
탁자에 누워 있는 마족보다 더 신기한 것이 테츠였다.
"영감 말라키는 대단한 마법사들인가?"
"고대 인류의 현자들이자 살아 있는 신으로 숭상받던 존재들입니다."
"그럼 페로니우스의 서란 책은?"
"말라키 중 한 명이었던 페로니우스라는 마법사가 집필한 책입니다."
"오, 그런 오래된 책이 있다니 마법 연구에 큰 도움이 되겠네."
"후후,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 책은 너무나 복잡한 문장과 알 수 없는 글들로 인해 지금은 풀지 못하는 암호와 같은 책입니다."
레노반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책에는 마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을뿐더러 차원의 문을 여닫는 방법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 그 뜻을 풀어내지 못할 뿐이지만요."
"음, 만약 천재나 우연히 풀어내는 방법이 유실되었다면?"
"참, 나 그런 책을 아무나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도서관에서 대여하는 책인 줄 아십니까?"
테츠의 눈꼬리가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다. 처음부터 레노번은 테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리스토틀에게 반말을 찍찍 쌀 때부터 테츠가 괜히 미웠다.
테츠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시비조로 툴툴대는 레노번이 눈에 거슬렸다.
아리스토틀은 웃으며 말했다.
"페로니우스이 서는 테일리아드 최고의 금서입니다. 그 책은 국왕의 허락하에 일곱 수문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볼 권리가 주어질 만큼 까다로운 책입니다."
"영감은 본 적이 있나?"
"네 그렇습니다. 마법의 연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책이지요. 킹덤 오브 소서러스의 직위를 받은 자라면 평생 한 번 그 책을 볼 권리를 가지게 된답니다."
"그래? 킹덤 오브 소서러스는 누구나 한번 그 책을 볼 권리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책을 보는 것은 잠시뿐으로 책을 본다는 의미보다는 자신이 킹덤 오브 소서러스가 되었다는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랍니다."
"저 사람도 킹덤 오브 소서러스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레노번이 그 소리에 쌍심지를 확 치켜세우며 테츠를 돌아왔다.
"저도 엄연히 킹덤 오브 소서러스의 일원입니다."
"영감 아크 위자드는 뭐요? 킹덤 오브 소서러스 보다 위인 계급인 거요?"
"하하, 아크 위자드는 마법사를 부르는 호칭 중 하나이지 계급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레노번은 가당찮다는 듯이 썩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교주라고 하셨나? 당신이 어떻게 카셈 매직 오브에게 선택받았나 모르지만, 마법에 대해 일자무식이라 들었소. 아크 위자드? 하하. 지금부터 꾸준히 수련해도 백 살 이전에는 도달하기 힘들 거요."
지금 테츠의 외모는 50대 중년인의 모습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레노번은 테츠에 대해 일도 모르고 있었다.
"대현자님.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지금 출발하면 테란 산맥까지 가려면 보름 더 걸릴 것이니 당장 준비를 시작 하겠습니다."
"하하, 그럴 필요 없네. 이곳까지 오느라 여독이 쌓였을 테니 쉬고 난 다음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이네. 마교 사람이 호위를 해 줄 것이고 테란 산맥까지 가는 데는 순간이면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일세."
레노번은 아리스토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현자가 저리 말하니 듣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사흘 뒤 조사관들과 마교의 경호대가 모두 테츠의 집무실 앞으로 모였다. 레노번은 살짝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아무리 엠버스피어가 마교의 소굴이라 할지라도 마법사들을 자신들의 거처로 부른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테란 산맥으로 가야 할 때다. 이렇게 모여서 궁상을 떠는 시간에 서둘러 출발하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모르는 것인가?
메흘린은 말했다.
"모두 완벽히 준비되어 있을 줄 알고 특별히 다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잉겔리움으로 만든 무기가 마족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저번처럼 궁지에 몰리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겁니다."
메흘린의 말에 레노번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미련한 용병 놈들 우리 마법사 덕분에 어쩌다 마족 한 마리 때려잡았다고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레노번은 그 마법사가 테츠인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마테니, 세렌, 테드버드, 엘빈, 알프레드, 로안의 장로 밑으로 당주 열 명이 따라붙었고 테일리아드의 조사관은 모두 열 세 명으로 총 파견 인원은 서른 명이 되었다.
"그럼 간다. 옷을 두둑이 여며 그곳은 지독히 추울 테니."
그 말에 장로와 당주들은 털옷을 목까지 여몄다. 이곳은 성안 교주의 집무실 앞이며 원래는 성주의 알현실이다. 주변 기물은 모두 치워져 있고 빈 곳만 널찍이 있을 뿐이다.
벽난로가 좌우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 공기는 훈훈하고 오히려 더웠다. 그런데 이들은 얼음 굴에 들어가는 모양 털옷과 털신으로 중무장을 한 채 몸을 꼼꼼 싸매고 있으니.
레노번이 살짝 비웃음을 날릴 때 자신이 서 있던 바닥에서 빛줄기가 올라왔다.
"앗!"
레노번이 깜짝 놀라 눈을 비볐을 때 미친듯한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어이구, 생각했던 만큼 춥네. 이곳은."
엘빈이 투덜거리며 털장갑을 낀 손을 깍지꼈다.
"뭐냐? 갑자기 이곳은?"
레노번과 마법사들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살폈다.
테드버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긴 어디요? 테란 산맥이지. 조사관이 뭐 그리 허둥대는 겁니까?"
"무슨 기술이요? 이건?"
"아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시고 그냥 따라나 오세요. 혹시 마법 중에 걸음을 빨리하는 마법은 없습니까? 보니 따라서 오려면 고생깨나 해야 할 듯 보이네요."
그때 테츠가 외쳤다.
"다들 저번에 뱀 몸뚱이 잡은 곳으로 일단 가 보자. 놈들이 서쪽에서 왔으니까 그쪽에서부터 시작하지."
-휙, 휘이익.
"어?"
사람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빠르게 눈 위를 지쳐 달려간다.
"저들 마법사였던가? 무슨 기술이지?"
레노번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눈 위를 달리는 마교인을 바라봤다.
"우리도 가자."
푹푹 빠지는 눈밭 움직이기도 힘들다.
"레노번님 저 뒤를 보십시오. 저거 메테오 흔적 아닙니까?"
마법사 일행은 가는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거대한 구덩이가 사방 곳곳에 움푹 패 있었다.
"저게 메테오 흔적이라고? 설마? 10서클 정도 될 것 같은 구덩이인데?"
"메테오가 아니면 저런 흔적을 내는 기술이 어디 있겠습니까? 익스플로전은 저런 구덩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메테오만이 저런 구덩이를 만들죠. 보십시오. 마력 측량기가 요동칩니다. 제가 측정해본 기록치 중 최상급입니다. 이건 10서클에 해당하는 마력치입니다."
"현시대에 10서클이 존재할 수 있는 수치냐? 뭐지 이 마력치는?"
"단장님 벌써 마교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눈 위를 달리는 마법을 사용합니다. 눈 위에 발자국의 흔적도 없습니다."
"저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냐? 서두르자 조사하러 나왔다가 길을 잃어버리겠다. 가이세릭 마족의 흔적은 잡았나?"
가이세릭이라 불리는 마법사는 의미 모를 중얼거림과 함께 작은 완드를 손위에 뛰어 놓았다. 그 완드는 손바닥 위에 떠서 빙글빙글 돌다 뾰족한 부분이 한쪽을 가로 꼈다.
"그들이 움직인 서쪽입니다."
"허, 우리를 짐짝처럼 던져 놓고 자기들끼리 먼저 갔구나. 저런 기술은 도대체 뭐지? 어떤 마법이기에 단번에 테란 산맥으로 순간 이동을 한 거지?"
"제가 잠시 마력을 측정했는데 잔존 마력이 측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동해온 기술은 마법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들 눈 위를 날아가는 저 솜씨도 마법이 아닙니다."
"뭐라고?"
레노번은 깜짝 놀랐으나 지금은 누구를 붙잡고 물어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서 가자 이러다 저들 놓치겠다."
그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 키보다 높은 눈밭을 헤쳐나가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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