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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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아울의 서재로 들어갔다.
아울은 들어오는 탈로스를 보더니 붉은 표지의 사자의 서를 던졌다.
한 손으로 날아온 사자의 서를 잡았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이 나올 거란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삼진매화를 일으키자 붉은 표지의 책에서 그을음이 일더니 불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탈로스는 책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될 때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잠시 둘이 사이에 말이 없었다.
"이렇게 뒤통수 맞는 것도 오랜만이군."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때론 실수도 하고 해야 그게 인간이죠. 매번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면 인간미가 없습니다. 그건 신도 하기 힘든 건데 교주님은 지금까지 너무 완벽함만을 추구했습니다. 가끔씩 한숨 쉴 일도 있어야 삶이 더 윤택해지는 겁니다."
"나 좀 화가 나는데?"
"이제 한 대 맞았습니다. 한 대 더 맞으셔야 하는데?"
"어? 한 대 더 남았어? 그래 어쩔수 없이 맞아야 한다면 시원하게 한 대 더 맞자. 뭔데?"
"금서는 용광로에 던져 넣어도 타지 않습니다. 땅에 묻어도 천년만년이 지나도 썩지 않죠."
"넘어가. 다 아는 사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뭐 있어?"
"그럼 가짜를 품고 있었던 놈은요?"
"설마?"
"에르제베트가 케이사르 밑에 있을 때 몰레이그와 같이 연구를 많이 했죠. 서로의 주술적 지식도 나누고 했으니 에르제베트만큼 몰레이크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몰레이그 목을 베었던 검을 에르제베트에게 조사시켰더니 몰레이그의 피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즉 금서도 가짜고 그것을 품고 있던 몰레이그도 가짜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몰레이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첫 번째 주먹도 아파서 눈물이 날 정도인데 이건 더 아프군."
"자세한 이야기는 에르제베트를 만나 보십시오. 저도 슬프군요. 모처럼 금단의 지식을 볼수 있다고 즐거워 했···."
아울을 급히 입을 닫았다. 탈로스의 표정이 사악하게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에르제베트는 바짝 긴장했다. 요즘은 주술보다 아이들과 놀아 주는 재미와 오렌시아와 함께 요리를 배우고 음식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나브 공주도 그녀와 친한 친구가 된 자기 딸 엘리제와 제시어스 왕자도 자기 요리를 맛있게 먹고 칭찬해줄 때의 소소한 기쁨과 행복은 절로 미소 짓게 했다. 에르제베트는 지난 고된 삶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 삶은 가져다준 것이 지금 눈앞의 사내. 마교의 교주이자 무려 황제인 아들인 테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해 네 명뿐이다. 메흘린 군사, 아드리안 경, 세렌 라메이트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사내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확실한 거야?"
그의 목소리에서 위엄이 흘러넘치다 못해 쏟아져 나올 지경이었다.
"뉘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다. 그는 몰레이그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림자의 왕 하츠 린네와는 전혀 다른 스킬입니다. 하츠 린네는 자신의 생령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스킬이지만 몰레이그는 저주술로 자신의 외형과 똑같이 변형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에게 저주를 걸어 자신과 똑같은 외형으로 만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메모라이즈는 반대되는 주술로 상대의 기억을 지우고 자신의 기억을 덧씌우면 완벽한 또 하나의 몰레이그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단 이 섀도 스킬은 제작하는데 수년이 걸리는 어려운 난도의 스킬입니다."
"흥, 녀석은 아마 오랫동안 자신의 분신을 만들고 있었을 거야. 그럼 애초에 테란 고원에서 설쳤던 놈은 몰레이그가 아니라 다른 놈이다. 이거였네?"
"그렇습니다."
"녀석의 성격을 보면 하나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을 거야. 예비로 한둘은 더 만들어 두었겠지. 어? 참, 그러면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어떻게 되나?"
"그건 시술자의 능력에 따라 다릅니다. 스킬을 부여할 수도 있고 그냥 외모와 생각만 같은 허수아비로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번 건 허수아비가 아닐 거야. 녀석은 스킬을 써서 포탈을 열었으니까."
"아마도 최고의 공을 들여 제작한 분신일 겁니다. 이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숙련된 네크로맨서라도 평생 만들 수 있는 숫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몰레이그는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자는 아닙니다. 앞으로 만들어 봐야 두 명이 한계일 겁니다."
"만약 몰레이그를 다시 만나면 정체를 어떻게 알아보지? 이번엔 나도 속을 만큼 감쪽같았어. 시간만 있었다면 도력으로 천천히 꿰뚫어 봤을 텐데."
"그래서 제가 포션 한 병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에르제베트가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작은 포션을 내밀었다.
안에는 우윳빛의 새하얀 액체가 들어있었다.
"몰레이그의 피를 섞으면 붉은색 아니면 초록색으로 변할 겁니다. 초록색으로 변한다면 가짜이며 피처럼 붉게 변한다면 진짜일 겁니다,"
"왜 진작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제겐 수 여러 가지 지식이 있고 그걸 전부 교주님에게 말씀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어제도 아울의 말에 아차 하여 떠올린 것인데···."
"그거 사자의 서에는 없는 지식인데?"
"음, 혹시 사저의 서에서 이모탈을 만드는 방법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이모탈은 불멸자다. 네크로맨서의 꿈이긴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것이지."
"어떻습니까? 교주님도 불멸자를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말이라고? 그건 만들 수가 없어. 재료가 없는걸. 설령 구한다고 해도 그건 말이 안 되는 재료지."
"저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영혼 수확은 그냥 한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에는 더 많은 비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첫째가 뭐라고 하긴 하던데···."
"한 번 알아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아르마할이 말하기를 마탄의 서 영혼 수확은 평범한 마법진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재료를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모탈 제작 방법을 변형해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케이사르 이놈이 계속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닐 거야. 뭔가 뒤통수를 칠 만한 그럴싸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겠지? 정말 제국이 어려움에 휩싸이게 됐어. 이브리엄에 마족에 네크로맨서까지 설쳐 대니. 이번 기간테스도 적절하게 개입하여 계략을 막은 것은 운이 따라 줬기 때문이야. 그 운이 항상 나를 향할 수는 없을 거야. 황제도 행운을 손에 쥘 수 있고 케이사르도 손에 쥘 수 있어. 그 운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제국의 판도가 변할 거야."
"부디 이 삶이 깨어지지 않기를···."
"케이사르에게 보고할 때가 다 되어 가지?"
"그렇습니다."
"아직도 너를 신뢰하나?"
"그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마음을 혼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보고해."
탈로스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그럼 그렇게 케이사르에게 보내겠습니다."
"조심해 절대 거짓이 들통 나서는 안 돼."
"누구의 명이라고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넌 그나마 흑마녀라서 요령이라도 있지 저 멍청한 현자 놈은 융통성이 전혀 없어서 문제야. 그저 입만 벌리면 지식 타령이니."
"그래도 그의 존재는 금서를 해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차라리 황제 쪽에는 거짓이 아닌 진실이 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리합니다."
"알아, 그래서 내버려 두고 있는 거니까."
에르제베트가 잠시 탈로스를 바라봤다.
"왜?"
"제가 배신하면 어떻게 하려고 절 이렇게 풀어 놓는 겁니까? 요즘은 감시도 하지 않더군요."
"하복의 계약을 맺었기에 네 주술은 주인인 나에게는 통하지 않지. 그리고 네 딸도 내 품 안에 있지 않으냐? 네가 날 배신할 만한 큰 동기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 하복의 계약을 맺자고 먼저 청한 것은 너야. 네가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자신과 딸의 안위를 내게 맡기겠다는 소리 아니었더냐? 그런데 갑자기 그런 질문은 왜 해?"
"지금까지 저는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나 자유롭고 편해 오히려 그것이 두렵습니다."
"편하게 생각해. 넌 마녀이기 전에 마교인이야. 요즘 오렌시아와도 허물없이 잘 지낸다며? 괜한 걱정 만들고 그것에 잠식될 필요는 없어. 삶에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 널 다그칠 사람도 옥죌 사람도 없으니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야 해.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지만, 미래는 네가 만들어가지 나름이니까. 행복한 미래를 만들길 원한다면 지금 그렇게 행동해도 충분해."
"말씀 감사합니다."
"여하튼 아울과 너 때문에 어긋한 것을 빨리 알아챘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해 너희 노고를 위로···."
품속에 있던 사령에 반응이 왔다.
"보자. 누구지?"
사령을 꺼내 놓고 피를 먹이니 살점이 부풀어 올랐다.
사령 쥐의 연락은 메흘린이다.
"메흘린 벌써 준비 끝났냐?"
"네 레베카님과 불사왕은 도착하자마자 성군을 이끌고 어반마르스로 돌아갔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현자 레노번은?"
"저녁 늦게까지 프랜시스라는 자에 대해 닦달하시다가 베틀 워락과 함께 동탑으로 돌아갔습니다."
"알았다. 곧 넘어가겠다."
탈로스는 트리스탄을 불러 엠버스피어 경비를 빈틈없이 하라고 말했다. 세렌과 칼멘 라그를 데리고 맨시티로 넘어왔다.
세렌과 칼멘은 라그를 데리고 시내 구경하러 나갔다. 라그는 인간이 북적대는 대도시는 처음이라 칼멘이 라그를 구경시켜 준다고 떼를 썼기 때문이다.
작전 회의실 탁자에 메흘린과 아드리안이 탈로스를 마주하고 앉았다.
테츠는 기간테스의 일과 몰레이그가 살아 있다는 것 가짜 금서 이야기를 먼저 해 주었다.
메흘린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수도 없이 쏟아냈다.
"준비하라 이른 소, 양 만 마리씩 준비했습니다. 레베카님에 들키지 않게 근처 산 아래 숨겨 놓았었습니다. 바로 떠나셔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인질로 잡은 케이사르 휘하 기사와 네크로맨서에게서 정보를 짜내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괜찮은 정보가 대거 나올 것 같습니다."
"황제의 움직임은?"
"어반마르스에 심어 놓은 인커전으로부터 이렇다 할 보고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칠무신 중 사신왕과 그림자의 왕 두 사람만이 바쁘게 움직일 뿐 이번 불사왕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어반마르스에 있거나 수련을 핑계로 수도를 떠나 있습니다. 야생왕은 조금 있으면 아칸 시티로 들어갈 것 같고 태성왕은 제국 남쪽 올렉 바닷가 부근에서 수련 중입니다. 풍신왕은 테일리아드 국경 근처 마을에서 모험가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
"황제는 웅크리고 있어.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거지? 테란 고원에도 성군이 아닌 베틀 워락을 보내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레베카를 보냈어. 황제는 가만히 있어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모두 꿰고 있어. 그게 가장 무서운 점이지."
"하지만 큰 계획을 진행할 때마다 번번이 교주님에게 깨어져 무산되고 있으니 어쩌면 그 노여움이 여기로 미칠까 하여···."
"걱정하지 마. 그 늙은 영감이 생각 없이 맨시티로 마교를 들어 앉힌 것 같아? 언제든 내 숨통을 잡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라고 저번에 혼자 왔을 때를 생각해봐 맨시티 정도면 나 혼자 충분하다고 보여준 것과 같지."
"그런데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정말 난제를 던져 주고 갔어. 영감이."
"칠무신 중에서 배신자가 있다는 말은 그 말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맞아. 과거 레베카도 말했지. 칠무신은 성황의 성력을 나눠 받았어. 즉 칠무신은 성황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이어져 있어. 누구 하나 불손한 감정에 빠지면 성황은 물론 나머지 칠무신도 모두 알수 있어. 그들에게 배신은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거야. 그런데 배신자라니. 그 영감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거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칠무신은 절대 황제를 배신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최악의 종복 계약이라는 하복의 계약보다 더 심한 것입니다. 칠무신은 성력 때문에 절대 황제에게 검을 겨눌 수 없습니다,"
"그걸 풀어야 황제의 진정한 의도를 알수 있을 거야.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그날은 남겼다면 큰 의미가 있는 거라고. 칠무신 중 배신자가 있으니 나더러 찾아 달라고? 왜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남겨 둔 거지 단서를 찾을 수가 없어."
"마왕과 관련이 있던 불사왕을 의심했지만, 역시 아니었죠. 칠무신은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냈다.
"군사님 터렛입니다. 마녀의 정원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테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교의 교주 테츠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테드가 아닌 50대 마교 교주의 모습으로 말이다.
"가자. 만 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할아버지들한테 약주라도 한 사발 따라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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