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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 님의 서재입니다.

뻐꾸기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우재
작품등록일 :
2018.09.03 08:59
최근연재일 :
2018.10.06 21:19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9,907
추천수 :
276
글자수 :
198,565

작성
18.10.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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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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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0쪽

#10. 그리고... - 2

DUMMY

백색 환자복 아래 발에는 스테인레스 족쇠가 반짝거리며 가둔 자들의 염려를 나타낸다.

병실 안과 밖은 무장한 중국군인이 지키고 있다. 정면 벽에 달린 텔레비전에는 알 수 없는 중국어가 하루종일 흘러나온다.

그에게 중국은 너무 시끄럽고 분주하다.

병원에 들어 온지 한달이 다 가고 있다.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고 머리는 다시 복잡해졌다.


리선기 소장은 그에게 아버지와 같았다. 그의 가족은 평안북도 함흥에서 출신성분이 핵심군중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열살때 평안북도 안전부 간부였던 부친은 파벌싸움에서 밀려 종파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당했다.

1990년대 중반 김정일은 공포정치의 일환으로 매년 3000명정도를 숙청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와 함께 개돼지와 같은 생활을 했다. 모자는 이주자마을에서 가장 외진 산밑 움막에서 살았다.

배급되는 식량은 썩은 강냉이 몇줌이 고작이었다. 배고픔이 무엇이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가를 겪었다. 어린 그는 항상 배고팠고 먹을 만한 것은 모두 먹었다. 수용소내에는 쥐조차 다 잡아먹어 없었다.

밤이면 어머니는 어린 그를 안고서 울었다.

그가 일곱 살되던 해 머리가 이상해진 어머니는 배고픔에 지쳐 먹어서 안되는 들쥐를 잡아 먹었다. 곧 어머니는 병이 들었고 고열과 설사 그리고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진통제 하나 없는 수용소에 의사는 본래 존재하지도 않았다.

한달을 앓다 어느날 새벽 어머니는 겨울나뭇가지처럼 말라 죽었다. 어린 그에게 죽음은 그렇게 가까웠고 수용소 내에서는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아무렇게나 판 산의 구덩이에 어머니를 묻고 나서 어린 그는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를 묻고 반년 뒤 리선기가 그를 찾아왔다.

“살고 싶나?”

리선기는 그를 데려가 군대에 입대시켰다.

그가 몸 담은 군대는 일반 군대와 달랐다. 특수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정치학원 하부의 소조였다. 그와 같은 어린 아이들이 수십명이 됐는 데 일과는 정치학습과 군사훈련 두가지였다. 군사훈련은 대부분 실전 훈련이었기에 주검이 되 버리는 아이들도 흔했다.

스물한살이 되었을 때 그는 휴전선 임진강을 건너 남조선 군인의 목을 따서 돌아왔다. 스물두살 때 중앙당의 간부 한명을 원산에서 암살했고 스물 세 살때에는 아프리카 군사고문단의 일원으로 참여할여 반군지도자를 밀림에서 제거했다.

그는 공화국의 암살기계였다.


젊은 의사와 간호원 그리고 제복을 입은 중국공안들이 들어와 신체검사를 하듯 온 몸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대화를 하고 뭔가를 적고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설명하지도 않고 무작정 지장을 찍게 했다. 지장을 찍자 그들은 병실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간호원이 쟁반을 가지고 들어와 그에게 뭐라고 말하며 건넸다. 쟁반위에는 이효범과 같이 먹었던 컵라면이 보였다. 컵라면 옆에는 작은 쪽지가 보였고 집어 열어보니 한국어가 써져 있었다.

‘얼굴 한번 보자. 이효범’

김성철은 뜨거운 김이 삐져 나오는 컵라면의 덮개를 제쳤다.

김치 두조각 그리고 어묵 서너개가 보이고 감칠맛 나는 향이 코속을 간지럽혔다. 식욕이 입안에 돌아 침이 고였다. 옆의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

이효범 그가 생각났다.

그를 죽여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 일로 처벌받는다면 감수할 것이다.


몇시간 뒤 저녁 무렵 검정 가죽점퍼차림의 중년 사내와 젊은 사내가 그를 방문했다. 중년 사내는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를 내려봤다.

“야. 김성철. 이제 집에 가야디.”

오랜만에 들어보는 조국의 말이었다.

강압적인 말투가 보위부였다.

“한때 공화국의 영웅이 이거이 무슨 꼴이야. 사람 새끼가 돼지 새끼가 됬구만.”

“보위부하고 말할 거 없시오. 16정치학원 리선기 동지에게 연락하시오.”

“이야. 이 개쌔끼 보라. 리선기 그 새끼 공화국의 반역자야. 몰랐구만. 남조선으로 도망간 거. 너 그 반동새끼가 보위부 조지라고 시켰디? 안 그래?”

“...”

“민족반역자 리선기의 개 김성철. 잘 들으라우. 조국으로 돌아가서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와 널 키워준 조국를 배반하고 국경과 이 중국땅에서 분탕질 한 죄를 인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다. 기대하라우.”

“내는 평양 16정치학원의 공작원이오.”

“공작원... 이 개새끼 똥오줌 못 가리는구만. 내 말 못 알아듣겠서? 니는 개이자 반역자 리선기의 하수인이야. 야 김성철. 호강은 오늘로써 끝이다. 아가리 닥치고 잠이나 푹 잘 자라우. 아침에 출발하자고.”

중년사내가 코를 꿰는 흉내를 내며 일어섰다.


충격이었다.

맥이 풀렸다. 돌아가서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선기 소장이 남조선으로 가다니... 들었지만 믿지 않았었다.

그의 명령은 곧 당의 명령으로 생각했다. 그런 그가... 심장이 없어진 듯 가슴이 너무 아팠다.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

그가 반역자라면 자신 또한 반역자였다.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건만 남은 것이 없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의 반역자에 보위부원을 살해한 살인죄까지 살 여지가 없었다.

갑자기 팔다리의 힘이 다 빠져 나갔다. 갑자기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이가 떨렸다. 리선기...


밤새 김성철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침 식사도 먹는둥 마는둥 몇수저 뜨고 말았다. 오전 열시정도가 되자 한무리의 사람들이 병실안으로 들어왔다. 지역 중국 공안 책임자와 중국파견 북한보위부 조장이 서류에 사인하고 서로 주고받았다. 김성철을 북한측에 넘기기 위한 서류정리였다. 서류 작성이 끝나자 중국공안은 철수했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김성철은 몸수색을 당하고 북한쪽 사내들에 의해 병실에서 끌려나왔다. 발목에 찬 족쇠 때문에 걷기가 불편했지만 그들은 도주를 우려했는 지 풀지 않았다.

병원을 나온 그들은 승용차에 올라 병원을 빠져나왔다.

대련을 벗어나 북쪽으로 차는 방향을 잡고 대련고속도를 탔다.

뒷좌석 중앙에 앉은 김성철의 양쪽에 북한체포조 요원 두사람이 앉아 입을 다물고 있었고 조장인 듯한 중년의 사내가 운전석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사랑 타령인 남한의 가요를 흥얼거렸다.

“담배 한 대 합시다.”

김성철이 말하자 조장이 뒤를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김성철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조장이 그의 옆의 사내에게 눈짓을 하자 사내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줬다.

김성철은 수갑찬 손으로 담배를 급하게 피웠다.

“어디로 갑네까?”

“지옥으로 간다. 좋지 않아?”

조장 사내가 이죽거렸다.

“여기서 그냥 죽이시오.”

“아새끼. 배짱은 있다야. 야. 니 집이 어디니?”

“함흥.”

“함흥이라... 네 애비가 거기 보위부 출신이었나?”

“네. 맞시오.”

“많이 해 먹었겠네. 야. 김성철. 너 숨겨둔 폐 없나?”

“없습네다.”

“야 임마. 여기까지 나와서 폐도 못 챙겼서. 이 새끼 병신 짓거리했네.”

“내는 위대한 공화국의 군인입네다.”

“놀구있다.”

다들 그의 말에 웃었다.

김성철은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차는 고속도로를 나와 심양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심양시 근처 외곽의 2차선 도로를 달리다 차가 방향을 틀어 어느 알 수 없는 농촌 마을쪽으로 들어섰다. 비포장 도로를 타고 들어가 어느 삼층 콘크리트 건물 앞에 차가 멈췄다.

김성철은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심양 외곽의 안전가옥이 아닌가 생각했다. 철문이 열리고 차가 들어가자 넓은 자갈 마당에 승용차 한 대와 서너명의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싶었다.

“다 왔다. 내리라.”

조장인 중년사내가 차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던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한 사내가 검정가방을 조장에게 넘겼다. 조장이 가방을 열어 확인한 후 눈짓을 건네자 체포조 요원이 그의 등을 밀었다.

“김성철. 나중에 또 만나면 진짜 내 손에 죽는다.”

조장이 기분이 좋은 지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차에 올랐다.

북한 체포조는 차를 타고 떠났다. 누군가에게 그를 넘긴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사내가 다가와 그의 수갑과 족쇠를 열쇠로 풀었다. 그런 후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가리켰다. 무슨 일인지 김성철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차에 오르자 곧 차가 출발했다. 사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또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북한 체포조에 체포된 그를 넘겨받은 이들은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끝까지 가 보자는 생각이었다.

차는 몇시간을 서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도착한 곳은 어느 도시의 항구였다.

해는 이미 넘어갔고 어디선가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가 끝도없이 쌓여 있었다. 차는 멈추고 내리니 부둣가에 승용차가 보였다. 그 옆에 한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익은 뒷모습이었다. 다가가니 남자가 돌아봤다.

이효범이었다.

추위때문인지 움츠린 그가 더 작아보였다. 그는 작은 미소를 김성철에게 보였다. 두 손은 외투 주머니속에 넣은 채였다.

“고생했지? 몸은 좀 어때?”

“일 없습네다.”

환자복 차림의 그에게 이효범은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에게 걸쳤다.

“내한테 왜 이러는 겁네까?”

“우린 죽음을 넘은 사이지. 우린 공통점이 많아. 안 그래?”

“...”

김성철 또한 부정하지 않았다.

“리선기 소장이 한국으로 망명한 거 알지?”

“들었시오.”

“나도 너도 그 인간한테 빚이 많잖아.”

이효범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 내밀었다.

“한시간 후에 한국으로 가는 화물선이 있다.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너나 나나 빚은 갚아야지.”

김성철이 권총을 받았다.

“형님한테 들었던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말입네다.”

그리고 웃었다. 이효범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1부 끝.


2부는 좀 쉬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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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9 시작과 끝. - 2 18.09.29 403 8 16쪽
32 #9 시작과 끝. - 1 +1 18.09.28 392 11 13쪽
31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4 18.09.27 348 8 9쪽
30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3 18.09.26 384 4 13쪽
29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2 18.09.26 387 7 9쪽
28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1 18.09.25 386 8 9쪽
27 #7 정체 - 2 18.09.23 407 6 12쪽
26 #7 정체 - 1 18.09.21 430 7 9쪽
25 #6. 혼돈 - 5 18.09.21 410 8 10쪽
24 #6. 혼돈 - 4 18.09.20 400 5 12쪽
23 #6. 혼돈 - 3 +1 18.09.20 426 7 11쪽
22 #6. 혼돈 - 2 18.09.19 410 6 10쪽
21 #6. 혼돈 - 1 18.09.19 427 5 13쪽
20 #5. 압록강의 탈북 - 2 +1 18.09.17 436 6 11쪽
19 #5. 압록강의 탈북 - 1 18.09.17 407 5 9쪽
18 #4 얼어붙은 땅으로 - 5 18.09.17 377 6 12쪽
17 #4 얼어붙은 땅으로 - 4 18.09.17 415 4 10쪽
16 #4 얼어붙은 땅으로 - 3 18.09.17 444 6 15쪽
15 #4 얼어붙은 땅으로 - 2 +1 18.09.16 440 8 15쪽
14 #4 얼어붙은 땅으로 - 1 18.09.16 440 6 11쪽
13 #3 살인 - 4 18.09.14 447 4 11쪽
12 #3 살인 - 3 18.09.14 466 4 13쪽
11 #3 살인 - 2 18.09.14 492 3 8쪽
10 #3 살인 - 1 +2 18.09.13 548 6 15쪽
9 #2.중국 대련 - 6 18.09.12 559 9 9쪽
8 #2.중국 대련 - 5 18.09.12 536 10 12쪽
7 #2.중국 대련 - 4 18.09.11 621 6 9쪽
6 #2.중국 대련 - 3 18.09.11 629 6 12쪽
5 #2.중국 대련 - 2 18.09.10 704 7 11쪽
4 #2.중국 대련 - 1 18.09.10 907 10 19쪽
3 #프롤로그 - 3 18.09.09 1,048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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