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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 님의 서재입니다.

뻐꾸기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우재
작품등록일 :
2018.09.03 08:59
최근연재일 :
2018.10.06 21:19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9,889
추천수 :
276
글자수 :
198,565

작성
18.09.20 08:46
조회
425
추천
7
글자
11쪽

#6. 혼돈 - 3

DUMMY

생각을 해야한다.

정신차려. 이효범.

그는 자신에게 외쳤다. 빠져나가야 한다. 불안한 생각만 들었다.

분명히 자신을 죽일 것이다.

정신차려. 정신차려.

팔목에 붙은 타이는 튼튼하다. 팔을 움직여 봐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시계는 다행히 벗기지 않았다. 시계에 달린 칼을 이용한다면 타이를 자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손이 묶인 상태에서는 칼을 나오게 할 수 없다.

그는 의자를 흔들기 시작했다. 상체와 하체를 움직이면서 의자를 흔들었다. 의자는 오래된 나무로 튼튼하지 않았기에 삐걱이며 흔들거렸다. 자꾸 눈두덩이에서 흘러내린 피가 시야를 가린다.

으으으.

눈을 감고 있는 힘껏 의자를 흔들어댔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의자가 부서졌다.

그는 의자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부서진 의자에서 손을 빼내려 하는 순간 누가 서 있었다.

가죽바지를 입은 사내가 그를 바라보며 총을 겨누었다.

“뭐해?”

“살려고.”

“일어나.”

“넌 집에 형도 없냐?”

“...”

“나 집이 영등포인데 너 어디 사니?”

“안양...”

“인간적으로 한번만 봐 주라. 니네 원하는 거 다 해줬잖아. 고문도 당하고 달라는 거 다 주고. 슬쩍 풀어주라. 부탁이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이 중국땅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말 맞지?”

“안됩니다. 일어납니다.”

“좀 봐 줘라.”

“안됩니다.”

“정말 너무하네. 같은 한국사람끼리.”

사내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총구를 좀 내린다.

“손 좀 잡아줘.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부서진 의자 때문에 일어날 수 없다는 듯 이효범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내밀었다.

총를 내리고 손을 잡았다. 이효범은 일어서면서 시계에서 튀어나온 칼로 사내의 허벅지를 찔렀다.

어...

사내가 외마디 탄성을 내지른다.

이효범은 손을 빼려는 사내의 손을 꽉 잡고 있는 체중을 실은 채 힘껏 잡아당겼다.

사내가 앞으로 중심을 잃고 그의 힘에 딸려왔다. 젖먹던 힘까지 쓰며 이효범은 발을 뻗어 사내의 배를 지지하며 뒤로 힘껏 넘겼다.

쿵!

사내가 시멘트벽에 부딪치고 떨어졌다.


사내가 정신을 잃은 것을 확인한 그는 문쪽으로 걸어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문틈으로 거센 겨울바람이 비집고 들어섰다. 팬티만 입은 그는 추위에 온 몸이 떨렸다. 맨발인 탓에 발바닥이 아렸다. 이가 저절로 상하운동을 시작한다.

문밖 두세걸음 앞에는 승합차 한 대가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이 차안 앞자리에 사람이 있는 듯 싶었다.

멀리 농지가 보이고 멀리 지평선쪽에 도시가 보였다. 날씨는 지랄같이 추웠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옷은 보이지 않았다.

있자니 총에 맞아 죽을 것이고 나가자니 얼어죽을 판이었다.

시간또한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상체를 숙이고 발을 옮겨 승합체 차체에 붙었다.

살펴보니 옆으로 하얗게 눈이 깔린 밭이 지평선 도시아래까지 펼쳐져 있다. 그는 발을 옮겨 그쪽으로 향했다.

발바닥에 작은 돌들이 밟혀 아파왔다.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차를 벗어나 창고 뒤로 걸어갔다.


하얀 눈이 깔린 옥수수 밭이었다.

멀리 도시외곽의 전경이 지평선 아래 유혹하듯 그를 기다리고 있다. 잘린 옥수수대들이 삐쭉삐죽 눈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메마르고 세찬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세상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이대로 몇분만 서 있어도 얼어죽을 것 같다.

상처난 피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서둘러야 했다. 살며시 둔덕을 내려가 밭에 발을 내렸다. 날카로운 잘린 옥수수대가 발을 찔렀다.

악!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그는 서둘러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도 들은 사람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발을 내딛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 비명이 터졌다.

악! 악! 악!

발이 불덩어리처럼 열이 나기 시작하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거기 서!”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사내 둘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이어 한 사내가 총을 뽑아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다행히 탄환은 그를 빗나갔다.

이효범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탕! 탕!

다시 총소리가 울렸다. 뭔가 등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앞으로 뛰어갔다.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터질 듯 했지만 살아야 했다.

으아악!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갔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팬티 하나 입은 반라의 사내가 겨울눈밭을 미친 듯 맨발로 뛰고 있었다.


수염이 제멋대로 난 노년의 농부가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봤다. 이효범은 덜덜 떨면서 농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눈을 덤덤하게 바라봤다.

“안 추워?”

농부가 역시 무덤덤하게 물었다.

“추워서 죽을 것 같습니다.”

“젊은이 미쳤어? 이 겨울에 옷 다 벗고 뭔 지랄이야?”

“강도를 당했습니다. 전화 한통만 쓸 수 없을까요?”

“전화? 나한테 맡겼어?”

“부탁드립니다.”

“...”

다시 쳐다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내밀었다. 농부는 흘끗 볼 뿐 말이 없었다. 시계의 LCD 화면을 튀어나오게 하자 농부가 표정을 풀었다.

“들어와.”

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본 노인은 신기하다는 듯 작은 LCD화면을 나타나게 하고 다시 넣고 했다.

마음에 든 듯 혼쾌하게 안 입는 외투와 운동화를 건넸다. 따뜻한 물도 한잔 주고.

이효범은 계속 밖을 살폈다. 혹시라도 신경철의 수하들이 쫒아오지 않을 까 걱정이었다.

반시간 후 장대풍이 한무리의 사내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누구 짓이냐?”

“그것보다 먼저 병원으로 가죠.”

“보니 그게 먼저겠구나.”

피범벅이 된 발을 보며 장대풍이 그를 부축했다.


허름한 동네의원이었다. 불독같은 오십대 여의사가 혀를 차며 등에서 탄환을 빼 냈다.

“운이 좋아요. 몇센티만 더 들어갔으면 골로 갔는데. 명줄은 드럽게 길겠어... 위험한 곳은 다 피했네. 장가 갔소?”

주사를 몇 대 맞고 사정없이 수십바늘을 꿰맸다.

두 발과 팔에 붕대를 두르고 부러진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병상에 눕자 장대풍과 김성철이 다가왔다.

“여긴 안전하니까 걱정말고 쉬어. 좀 살펴보고 올 테니까.”

그는 입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약기운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다.


정치범수용소 16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말귀를 알아들을 무렵 태어나지 말아야할 종자라고 수용소 경비인 선생님들이 말했다.

어린 그는 언제나 배가 고팠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강냉이 죽.

무 하나가 덩그러니 담긴 소금국.

어머니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어린 아들의 입에 집어 넣었다. 너만이라도 살아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뻤던 엄마는 가끔 저녁에 선생님과 함께 나가 돌아온 후 먹을 것을 입에 집어 넣어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빼빼말라가던 엄마는 항상 기침을 했다. 배고픔에 산을 뛰어다녀도 민둥산인 주변 돌산에는 나무껍질조차 보이자않아 먹을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쥐를 잡아 먹었다.

쥐도 들쥐는 안된다고 엄마는 누누이 강조했다. 괴질에 걸리고 피를 토하고 죽는다고 했다.

행여 집에 쥐가 보이면 엄마와 그는 모든 문과 창을 닫았다. 두 사람은 좁은 방안을 뛰어다니며 온 신경을 기울여 쥐를 잡았다.

잡고나면 조심스레 가죽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다. 천천히 물에 몇 번 헹군 후 불에 구우면 향기롭고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당겼다.

‘뼈까지 꼭꼭 씹어라. 쥐는 뼈가 부드러워 씹어먹어도 된다.’

뼈까지 꼭꼭 씹어라.

그뒤로 그는 언제나 음식을 꼭꼭 씹어 먹었다. 죽어버린 엄마가 남긴 수많은 말 중에 기억나는 건 그것 뿐이었기에.


김성철은 식판에 담긴 각각의 음식을 그는 국물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입맛이 문제가 아니었다.

체력을 확보하려면 뭐든 먹어야 한다. 침대가 네 개 전부인 병실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관통상은 꿰매기만 잘하고 약만 좀 먹으면 거뜬했다.

움직여야 한다.

근육이 다시 힘을 얻어 움직여야 상처도 빨리 낫는다. 두 사람을 살피느라 지혈을 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상처부위도 지혈하기 힘든 상체 부근이라 약 없이 힘들기도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팔다리를 움직여보니 상처부위가 조금 당길뿐 움직일만했다.

슬쩍 발을 뻗어 옆차기를 해 보니 할 만 하다. 이어 재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다른 한쪽 다리로 허공을 찔러 본다. 착지한 후 천천히 물구나무를 선다. 상처 부분이 아려오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 했다.

임무를 완수하기전에 죽어선 안된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금방 전신에서 땀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난 아직 살아있다.


“일어나.”

랜턴을 얼굴에 비추며 어둠 속에서 이름 모를 사내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김성철은 세명의 남자들이 병실문을 열기전 이미 알고 있었다. 미세하게 공기를 타고 흐르는 살의의 그 차가운 느낌을 알아차렸다. 새벽은 모든 감각을 매섭게 일으킨다.

그들이 움직일때마다 긴장된 근육들이 서로 부딪쳐 내 보내는 신호를 그는 잡았다.

그리고 권총을 잡은 그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시작할 때인가?

랜턴을 잡은 손을 잡아 손목을 꺽으며 침대 위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사내가 침대로 상체를 눕혔다. 김성철은 사내의 목을 이빨로 꽉 깨물었다.

윽!

그리고 권총을 든 다른 손을 비틀며 총을 뺏아 격발했다. 사내들 중 한명이 가슴에 총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다른 한 사내가 총을 침대 위로 쏘기 시작했다.

어두운 공간의 공기를 헤치며 총탄의 궤적들이 빛살처럼 오고 갔다.

김성철은 나머지 한 사내의 몸통을 향해 침착하게 격발했다. 사내가 속절없이 쓰러졌다. 동료가 쏘아댄 총탄 중에 맞았는 지 침대 위의 사내는 미동도 없이 엎어져있었다.

격발의 사나운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인 병실은 아무래도 다시 청소해야 할 것 같았다.

김성철은 처음 쓰러진 사내의 총을 집어 쓰러진 사내들을 한명씩 차례대로 죽음을 확인하듯 한발씩 머리를 쐈다.

생명이 없는 고깃덩어리를 쏘듯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죽음을 확인한 김성철은 천천히 병실안을 걸어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담배를 피우기 싶었지만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어 참았다.

서리가 낀 창문을 손으로 훑자 창문 밖 중국땅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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