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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 님의 서재입니다.

뻐꾸기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우재
작품등록일 :
2018.09.03 08:59
최근연재일 :
2018.10.06 21:19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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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198,565

작성
18.09.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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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중국 대련 - 1

DUMMY

#2.중국 대련


앞니가 빠졌다.

간밤 꿈을 꿨다. 그는 일어나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꿈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아무 장면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가 빠지는 꿈을 꿨다는 인식외에는. 그저 머리가 멍했다.


여기가 어디고 난 뭐하고 있지?


요즘 들어 가끔씩 그는 자신을 향해 스스로 자문한다. 수정할 수 없는 답은 나와 있지만 실감이 나질 않을 뿐이다. 시차가 가져다 주는 아련한 시간의 휴유증처럼.

어디선가 참기 힘든 이국적인 냄새가 났다. 옆에서 익숙한 여자가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며 썩은 입냄새를 뿜어냈다. 고양이 오줌 냄새같은.

중국인과 한국인은 입냄새가 다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향신료를 다 먹어대는 중국인쪽이 더 자극적이다. 섭취하는 음식이 다르니 내뿜는 악취도 다른 것이다. 이 지구상에 얼마나 다양한 악취들이 존재할 까?

온갖 민족과 온갖 국가들...

후각이 예민한 어머니는 귀국하기만 하면 먼저 목욕부터 하라고 채근했다.

그래. 삶이 이렇다.

간밤 달콤한 섹스를 나눴던 상대가 이 아침에는 끔찍했다. 익숙하다는 건 모든 달콤함을 망각하게 한다. 그렇게 저 여자는 그에게 어찌 보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익숙한 사이였다. 익숙해서 그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도 이제는 헷갈렸다. 도대체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하지 않는 덜 떨어진 인간이 맞이한 아침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여섯시다. 한국시간 오전 다섯시. 그녀의 입냄새 때문에 잠을 깬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이 시간이면 눈을 뜬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떠야 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행여 그녀가 깰까 조심하면서.

세수를 하고 나온 후 주방 식탁에 앉아 빨간 단풍잎이 새겨진 우윳빛 머그잔에 커피를 탔다.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모닝커피는 정신을 일으켜 세운다.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벽걸이 텔레비전을 켰다.


앞니가 빠지는 꿈은 예지몽이다. 조심해야겠다. 전후관계는 생각나지 않았기에 꿈해석은 불가능해보였다. 제기랄. 어려서부터 이가 빠지는 꿈을 꾸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이가 빠지는 꿈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사고에 당한다고 했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미신같은 이야기이겠지만 그는 믿었다. 하여튼 그는 한참동안 이가 빠지는 꿈을 꿨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생각하며 다른 생각은 없었다. 이가 빠졌다. 그렇게 그의 아침은 멍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최근 북조선 무산시 근방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에 중국정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북조선 당국에 통보했고 이에 관련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주지했습니다. 또한 총격사건에 연루되 사살된 사망자들 중 중국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북조선 당국의 통보에 여러 경로에 걸쳐 사실확인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북조선 당국은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스파이및 테러활동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하여 두 나라에 대해 엄중 경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미국과 한국은 이 사건에 아무런 관련이 없고 북조선 당국의 모략이라고 대응 발표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중앙TV 1채널에서 단정한 얼굴의 여성 앵커가 자그마한 북한 인공기 배경 앞에서 소식을 쏟아냈다. 중국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채널이자 공식적인 정부의 입장을 아침에 들을 수 있는 시간은 그에게도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무래도 북동쪽의 국경지역의 경비가 삼엄해질 것이다. 당분간 북쪽일은 개점휴업상태가 안전해 보였다.

머그잔의 커피가 바닥을 보이자 비로소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소파 여기저기에 흩어진 옷과 쇼핑백. 그리고 소파 테이블에 남은 음식과 알 수 없는 소스가 말라버린 그릇들. 그리고 빈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놈의 여자. 만난 지 칠년이 되도록 어지르는 버릇은 도대체 고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커피를 더 마시고 싶었다. 다시 담배를 피워물고 화장실로 향했다. 장에 신호가 왔기에.


화장실에서 나와 부리나케 출근준비를 시작했다. 엷은 미색 와이셔츠에 슈트를 입는다. 노타이 차림에 외투는 갈색반코트. 전신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이 잘 맞춰진 레고블럭처럼 느껴진다. 그의 이름은 이효범(李孝範). 나이 34세. 하얀 얼굴색. 170이라고 우기는 키 169cm 몸무게 68kg. 아직 미혼이다. 얼굴에 살이 조금 올라 통통해보인다. 어찌 보면 북한의 살빠진 김정은 같다. 긴장 좀 하고 살자. 그래도 그는 거울의 자신에게 한번 웃어줬다.


침실 문을 조금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나 간다.”

“응. 통장에 돈 좀 넣어.”

눈도 안 뜨고 대답한다. 이름은 장수란(張秀蘭) 나이 29세 요녕성 금주(錦州)출신의 드센 동북 한족 아가씨. 사귄지는 벌써 칠년째였다. 뽀안 아기 피부같은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이목구비 뚜렷하고 각선미 괜찮은 164센티의 성질 드러운 현재 동거인이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괜찮은 얼굴인데. 언제나 그 점이 아쉬웠다.

“돈 좀 아껴 써.”

대답없이 돌아 누워 버렸다. 거기다 같이 사는 남자에 대한 존경도 없다.

“돈 좀 아껴 쓰라고.”

“알았다고.”

다시 돌아와 문을 열었다.

“나 오늘 늦게 들어와.”

“어디 가는 데?”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 아래 눈이 커지고 매섭다. 나이가 아홉살이나 어리지만 하는 짓은 중년 마누라같다. 나도 좀 너한테 잠시만이라도 벗어나고 싶다고.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입술에 침을 발랐다. 긴장하면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저녁에 모임 있어.”

“무슨 모임?”

“나 출근한다.”

잠시 그의 눈을 살핀다. 난 너의 눈을 보면 진실을 알 수 있어 그런 표정이었다. 진짜 그런 재주가 있다면 초능력자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잠시 의사 앞의 환자처럼 정지했다.

“술 많이 먹지 마.”

“...”

“너무 늦지마.”

그녀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이른 시각이라 엘리베이터 안은 혼자다. 약간 졸립기에 그는 목을 이러저리 움직였다. 목이 뻐근했다. 전날 술을 좀 마시긴 했지만 갈수록 몸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긋 엘리베이터 내의 스테인레스 벽에 비춘 자신은 그가 알고 있던 남자가 아닌 듯 느껴졌다. 생각보다 배가 더 나와 보였다. 그는 배에 힘을 줘 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쪽 팔을 들어 마치 뽀빠이처럼 포즈를 취해 본다.

갑자기 문이 열렸다.

잠옷 차림의 중년여자가 열대여섯정도되는 딸인 듯한 여자아이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었다. 가끔 보는 12층에 사는 까탈스런 모녀였다.

“딴 데로 새지말고 공부 끝나면 아빠가 기다릴 거야. 딴 생각하지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물 많이 마시고. 밥 먹고 변비약 먹는 거 잊지 말고.”

엄마답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고지를 사수하는 외로운 병사의 마지막 발악처럼 소리쳤다. 아이는 잔소리가 귀찮은 늙은 남편처럼 어서 들어가라고 손만 휘휘 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하강을 시작했다.

아이가 앞만 바라보다 문득 그를 발견했다는 듯 무미하게 쳐다봤다. 그는 살짝 웃어줬다.

“아저씨. 한국인 맞죠?”

되바라진 아이가 도발하듯 물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떤대?”

“응. 중국사람같기도 하고 일본사람같기도 하고 조금은 한국사람 같기도 해요. 헷갈려요.”

“한국사람 맞다.”

이 아이의 의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지만 알려줬다.

“뭐 좀 물어봐도 되요?”

“응.”

“곧 한국에서 전쟁 난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S4 오빠들이 걱정되서요. 정말 전쟁나요?”

S4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전쟁나면 걔들도 군인으로 끌려간다. 금방 죽을 테니 많이 봐 둬라.”

“정말이에요?”

여자아이가 신체가 최대로 가능할 수 있는 크기로 눈을 뜨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전쟁 안 나. 공부나 해라. 네 엄마가 너 죽이기 전에.”

주먹을 쥐고 노려봤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그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파트 앞 노상 주차장의 칠년된 애마 은회색 도요타 캠리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간밤 내린 눈으로 차 위는 얕은 눈이 잔디처럼 쌓여 있다. 시동을 건 후 나와 장갑 낀 손으로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대련은 눈이 많이 내리는 도시가 아니었는 데 올해는 눈이 많이 오고 있었다. 기온은 다른 도시에 비해 높았지만 바다 근처의 도시답게 차가운 바닷바람이 언제나 불어왔다. 그래서 체감온도는 낮았다.

손이 벌써 시렸다. 대충 치우던 그의 눈에 맞은 편 주차해 있던 승용차의 운전자가 눈에 띠었다. 젊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그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자신에게 머물자 그는 시선을 피했다. 사내의 차 위는 깨끗했다. 주차를 하지 않았거나 눈을 이미 치운 것이 분명했다.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차를 출발했을 텐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분명했다. 운전기사인가? 생각을 털어버리고 그는 차에 올라 출발했다.


대련 시내에서 구 시가지쪽으로 가다보면 예전 주택가가 나온다. 개방 이후 도시개발 초창기때 세운 오층짜리 아파트단지가 그 주택가 근처에 있다. 대련23아파트라는 빛바랜 금색 아치가 마치 성문처럼 서 있는 아파트 단지 출입구쪽 옆에 24시간을 영업하는 현대식 미니 체인 마트가 있다. 마트 옆 후줄근한 회색콘크리트 3층건물이 바로 회사였다. 신중한정보중심유한공사(新中韓情報有限公司)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언제나처럼 이효범은 마음이 뿌듯했다. 중국생활의 결실이고 그의 전부였다. 임대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건물 옆 공간에 차를 세우고 언제나처럼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들고 나온 가방을 챙기고 뒷좌석을 살펴 쓰레기를 모은다. 문득 시야에 몇미터 앞 도로가의 차가 들어왔다. 눈에 익은 차였다. 생각해보니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를 눈여겨봤던 차가 아닌가 싶었다. 운전석에서 아파트에서 봤던 그 사내가 그를 다시 주시하고 있었다.

뭘까?

그를 기다리고 따라왔다.

미행인가?

아니면 중국공안의 사찰인가?

씁쓸함을 가슴에 안고 이효범은 차의 시동을 끄고 내렸다. 꿈부터 시작하여 오늘 일진은 별로일 것 같았다.

회사 건물 입구로 걸어가자 입구에 서 있던 보안원인 장가(張家)가 긴장한 채 경례를 올려붙인다. 둥근 얼굴에 소의 눈을 닮은 눈. 깨끗하게 세탁한 후 빳빳하게 줄을 세운 보안복 여기저기 달린 금속휘장이 반짝인다. 대련 근처의 농촌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대련에서 나와 농민공(農民工)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그의 눈에 띠어 회사의 보안책임을 맡고 있다. 대개 회사의 보안원들은 일종의 경비원으로 회사출입자를 파악하고 24시간 보안을 책임진다. 그렇다고 회사 안에 중요한 기밀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중국의 사회통념상 필요한 직책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이 사내가 중국공안의 끄나풀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는 지 오래였다. 그로서 어차피 필요악이었기에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을 뿐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지만 낼모레이면 오십줄에 들어서는 장가는 긴장한 얼굴은 풀지 않는다.

난 당신에게 떳떳하지 않는 인간이야.

자책하는 얼굴처럼 느껴졌다.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그가 이 건물 입구에서 하루종일 있으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싶다.


회사 1층은 산동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인전용포털사이트 업무를 담당하고 이층은 중국및 북한 정보제공업무를 진행하고 삼층은 무인게임작업장이 위치하고 있다. 한국인전용포털사이트 대련한마음 사이트는 생활정보,구인구직정보,소식 그리고 허접한 온라인 오락거리를 제공한다. 수익은 광고로 충당하고 있고 이익은 크게 나는 편은 아니다. 겨우 월급주고 유지할 정도였다. 앞으로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지만 어떻게 될 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었다. 삼층에 위치한 무인게임작업장은 60대의 무인작업컴퓨터가 온라인게임상에서 사이버머니를 생산한다. 물론 담당 매니저들이 각기 할당된 수십대의 컴퓨터들을 24시간 모니터한다. 이 사업또한 사이버머니 시세가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통에 겨우 월급이나 주는 형편이었다. 컴퓨터 팔아봤자 똥값이라 망가지고 녹슬때까지 할 생각이지만 마음 한켠에는 벌써 사업을 정리할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장수란은 무조건 때려치우라고 하지만 대련 정착 초기 꽤 쏠쏠했기에 그로서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편이었다.

이층으로 향한다.

이층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엷은 하늘색 카페트가 깔린 안내데스크가 나타난다. 데스크 위에는 커다란 액자 속의 ‘實踐的 檢驗 眞理的 唯一標準’(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고 경험해보는 유일한 표준이다.)이라는 등소평의 명언이 오늘도 그를 자극한다. 데스크 옆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며 직원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인사를 건네며 걸어가면 사무실 끝 부분에 사장실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사장실이 보인다.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사장실 안은 철저한 방음이 보장되게 되어 있다. 업무 성격상 보안이 우선이었다.

붉은 갈색 옻칠의 넓은 중국식 책상위에는 세 개의 21인치 LED 모니터가 놓여 있고 키보드와 마우스가 놓여있고 그 뒤로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온갖 서적들과 서류철이 빼곡하다. 책상 위에는 빈 커피잔과 재떨이 그리고 서류철이 놓여 있다. 책상 앞에는 검정색의 육중한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갤럭시태블릿이 보였다. 그는 의자에 앉기 전 공기청정기와 전기 난방기를 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에 빠진다. 이렇게 일을 일찍 시작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자신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해야 했다. 세 개의 모니터에 윈도우 화면이 나타나자 그는 백신을 실행하여 컴퓨터를 점검한다. 혹시나 있을 스파이웨어를 잡기위해서였다. 책장 아래칸에는 언제나 교체할 수 있는 본체 몇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드포맷을 마친 가장 깨끗한 본체들이었다. 조금의 이상한 기미라도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본체를 바꾸었다. 그의 일은 철저한 보안이 우선이었다. 백신의 검색이 안전하다는 결과를 알리자 인터넷익스플로러를 띄웠다. 다음 사이트에 로그인한 후 메일을 확인한다. 다른 두 개의 모니터에는 각각 한국과 중국의 실시간 뉴스를 띄운다. 스팸메일과 광고메일 속에서 그는 ‘이시마루입니다’라는 제목을 클릭한다.

‘언제쯤 물건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나머지 금액은 언제든지 지불 가능합니다.’

‘물건 올리겠습니다. 결제 부탁합니다.’

답장을 보내고 그는 가방에서 손바닥만한 가죽 파우치백을 꺼냈다. 열고 그 안에서 손가락 반만한 검정색 USB를 꺼냈다. USB를 컴퓨터의 USB 포트에 꽂자 모니터 화면에 USB 안의 목록이 나타났다. 십여개의 동영상 파일이 나타났고 첫 번째 동영상 파일을 더블클릭하자 동영상 플레이어가 실행되면서 영상이 나타났다. 화면이 흔들리다 고정됐다. 영상은 깨끗하고 색 또한 안정적으로 보였다.


작은 마당이 보이고 뒤편으로 낮은 갈색 민둥산이 보였다. 마당에는 사람키만한 나무말뚝이 줄 지어 서 있었고 곧 사람들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 두 사람이 겨우 누더기 옷차림의 사내를 끌고 말뚝으로 걸어갔다. 이어 걷지 못하는 중년의 남녀와 십여세가량의 남자아이가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남자아이는 사방을 겁먹은 소의 눈으로 두리번 거렸다.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눈이었다. 군인들은 그들을 말뚝에 묶었다. 눈을 가리고 가슴과 배 그리고 무릎 세군데를 끈으로 말뚝에 고정했다. 이어 길게 말뚝에서 떨어져 도열한 그들은 소총을 들어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중년의 북한 군인 한 사람이 화면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화면에 등장했다. 군인들 앞에 선 그는 손에 든 종이를 펼쳐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동영상 플레이어의 볼륨을 죽인 탓에 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 소리를 알 수는 없었다. 그는 동영상을 조금 앞으로 전진했다. 중년 사내는 사라졌고 이어 말뚝을 향해 소총이 연속으로 격발됐다. 각각 3발의 탄환이 사람들에게 도달하자 말뚝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머리를 떨구며 앞으로 상체가 기울었다. 군인들이 말뚝으로 걸어가 사망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한쪽으로 수용자들로 여겨지는 남자 몇 명이 가마니를 가져와 시체를 굴려 대충 둘둘 말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확인한 이효범은 바탕화면의 전송프로그램을 실행하여 한국의 개인서버로 접속했다. 동영상을 전송한 후 다시 크롬브라우저를 띄운 후 로그인하고 구글드라이브로 이동했다. 구글드라이브에 동영상을 올린 후 그 폴더를 의뢰자의 아이디와 연결 공유했다. 한달전 북한내 협력자로부터 입수한 평안북도에 위치한 정치범수용소 한 곳의 동영상이었다. 보안 문제로 중국내 이메일이나 서버는 이용하지 않는다. 일본 방송사로부터 몇 달전에 정보 의뢰를 받았고 꽤 좋은 가격를 제시받았다. 재정적으로 최근 압박이 심했다. 중국내 임금 상승이 가파랐고 또한 생활비 지출도 만만치않게 늘어갔다. 모든 것이 예전만 못했다. 나이는 들어가고 집 한칸 없는 임대 인생이라...

다른 이메일을 클릭한다.

‘최근 북한 무산 총격사건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까?’

‘각 국 정부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각 국의 주장이 판이하여 정확한 사실 확인은 매우 어렵습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확신은 드릴 수 없습니다. 정보 파악중입니다.’

그는 계속 받은 이메일의 답장을 작성했다. 그 일이 끝나자 시간은 여덟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메일 창을 닫고 가방에서 캔커피를 꺼내 커피잔에 따른 후 한모금 마신 후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는 의자를 돌려 책장을 열어 안에서 넓적한 도자기 접시를 꺼냈다. 진녹색의 탁한 빛을 내보이는 그저 넓적하고 한쪽이 우그러진 청자접시였다. 그는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서랍에서 융을 꺼내 부드럽게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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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9 시작과 끝. - 1 +1 18.09.28 392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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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3 18.09.26 384 4 13쪽
29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2 18.09.26 386 7 9쪽
28 #8 베다 그리고 리혜옥 - 1 18.09.25 386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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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6. 혼돈 - 1 18.09.19 42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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