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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 님의 서재입니다.

뻐꾸기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우재
작품등록일 :
2018.09.03 08:59
최근연재일 :
2018.10.06 21:19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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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
추천수 :
276
글자수 :
198,565

작성
18.09.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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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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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4 얼어붙은 땅으로 - 1

DUMMY

#4. 얼어붙은 땅으로


동토의 땅 신의주는 언제나 깨어나지 않는 신비에 싸여 있다.

단동(丹東)시 끊어진 압록강 단교 옆 강가에 살을 저밀듯 북풍이 불어온다.

오전 아홉씨 날씨는 추웠다.

코끝과 입술이 시려 가죽 외투위의 목덜이를 추스르며 이효범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다른 한쪽 손은 외투 주머니의 핫팩을 주물럭거렸다.


압록강은 얼어붙어 여기저기 얼음이 솟아 그 광경이 마치 조난자들의 아우성치는 손들처럼 보인다. 강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이 준비한 계획과 준비물들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체크해 나갔다. 압록강을 건너면 어떤 상황이 기다릴 지 예측불가능이었다. 언제나 돌발상황은 임기응변으로 대처해나갔지만 그런 상황은 너무 위험천만했다. 중국인 사업가 신분으로 비자를 받아 도경한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이고 북한쪽에서 간첩혐의를 씌울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문서위조범과 국경무단도강이 된다.

단지 몇백미터 앞의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에. 비극이 아닌가?

그 자신이 해야할 일이기에. 그는 담배꽁초를 강에 던지고 껌을 씹기 시작했다. 긴장 때문에 껌이라도 씹어야 했다. 언제나 북한 땅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살얼음을 걷는 것과 같았다.


대련에서 발생한 여자의 시신은 신원이 확인됐다고 했다.

안전국 진수위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누군가의 제보로 신원확인 됐다고 했다. 신경철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마약복용과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사로 밝혀졌으며 피살자의 주변을 샅샅이 훑고 피살 당일의 행적을 추적중이었다. 그가 그날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오기까지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보였다. 당장 달려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싶지만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희박했다. 밤을 같이 지냈고 거기다 마약까지 발견됐으니 빼도박도 못할 상황이 될 것이다. 마약 관련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 마약사범은 중범죄에 속한다. 심심치않게 마약사범의 공개처형도 이루어지는 중국에서 마약관련 사건은 재고의 여지조차 없다.

마약과 살인.

함정에 걸려도 아주 더럽게 걸리고 말았다.

누명을 벗어야 한다. 벗지 못한다면 십년 중국 생활은 끝장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첩첩산중이었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누가 나를 알아볼까?”

혼잣말을 한숨처럼 내뱉으며 이효범은 강변도로가에 세워둔 산타나2000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 창문은 전부 짙게 선팅 되 있어 안에서 무엇을 하든 자동차 옆에서 볼 수 없었다. 이제 한시간 뒤에 압록강 단교 옆의 중조우의교를 건너면 북한 땅으로 들어갈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하여 기사를 확인했다. 진수위로부터 들은 이야기외에 새로 밝혀진 기사는 없었다. 그는 장수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곧 익숙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진혜한의 천천궐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불렀던 노래였다. 멜로디가 가슴에 젖어드는 노래.

어리석은 눈물을 흘리는 나를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길 바래요...

“여보세요?”

“나야.”

“괜찮아?”

“걱정하지마. 잘 있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밥은 잘 먹고 다녀? 춥지 않아?”

숨도 안 쉬고 그녀가 물었다.

“걱정하지 마. 잘 있다고.”

“그래. 보고싶다.”

“돈 아껴 써.”

“알았어. 옷 하나도 안 샀어.”

“어디야?”

“친구집. 왕뤼라고 알잖아.”

“응. 빨리 대련에서 떠나고... 도도야.”

“응?”

“미안하다. 그리고 만약에 말이야. 뉴스에서 무슨 이야기 나와도 절대로 믿지 마. 알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나 한시간 뒤에 북한으로 넘어간다. 이 번호 연락 안되니까 그렇게 알고. 다시 말하지만 대련에서 떠나. 그리고 내 일은 일주일이면 끝날 거야. 아무 걱정말고 기다려. 알았지?”

“응. 사랑해.”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그는 한번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왜 그랬을 까?

자신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여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참 이상했다.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는 한번도 부모님에게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같이 살았지만 평생을 같이 지낼 여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일까?

그 자신이 이땅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틀전 당도한 이곳에서 세관의 수속과 비자 수속으로 하루를 보냈다.

북한을 합법적으로 왕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북한 내 화교신분과 중국인 사업가 신분. 역사적으로 북한내 화교(華僑)는 광복이후 수만의 인구수가 점차 감소됐지만 아직도 5000명 내외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신분으로 인정되어 북한과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북한은 3계층(핵심, 동요, 적대)으로 주민을 분류하여 철저하게 관리한다. 중국화교는 열외 계급으로 인정하여 출세 자체가 불가능하다.

60년대 북한화교는 북중관계의 악화로 적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생존했고 90년대이후 북중관계의 친밀화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북한 내부 시스템의 한계상 출세가 불가능한 그들은 대개 중국과의 사업으로 눈을 돌려 북한내에서 생존하고 있는 셈이었다. 또한 그들의 중국내 친척들또한 한해에 수십차례 북한을 왕래하면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이런 사사(개인)여행으로 북한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꺼린 북한 당국에 의해 한해 한번 15일간의 여행을 허락하고 있다.

이효범 또한 초창기 북한내 화교 친척으로 위장하여 두 번 북한을 오고갔지만 예상외로 감시가 심했기에 위장신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중국인 사업가는 비교적 북한왕래에 제약이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조선인민무역은행에 일종의 담보현금을 맡긴 후 북한내 기업과의 거래를 틀 수 있고 다시 찾고자 하는 중국인사업자에게 매번 지급보류를 해 와 그 담보금은 찾을 가망이 없었다. 그 또한 중국인사업자 신분을 얻기 위해 꽤 많은 돈을 투자했다. 화영광이라는 신분이 없다면 그의 입국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탈북사업 또한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런 이유또한 그의 몸가짐을 조심하게 할 수 밖에 없게 된 원인이었고 많은 의뢰를 받을 수 없었다.

평상시에 그는 북한내 거래처와 중국산이나 한국의 물건을 중개하거나 직접 운송했다. 그런 중간중간 돈이 되는 탈북자를 빼냈다.

어제 그는 신의주의 협력자에게 북한화물트럭기사를 통해 오늘 건너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예전에는 핸드폰을 이용하여 직접 통화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쪽에서 걸려온 전화는 도청당하고 이틀에 한번은 전화통화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북한 국경쪽에서 방해전파를 뿌려 핸드폰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적발되는 경우 북한내 통화자가 처벌을 받는다고도 했다. 김정일이 죽고 젊은 김정은이 북한의 왕이 된 후 감시통제는 더 심해졌다. 그렇다고 북한의 썩은 체제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전 10시 승용차를 출발시켰다.

압록강단교 옆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철도와 1차선도로로 이루어져 있어 오고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미 수속을 거쳤기에 한무리의 북한트럭이 들어간 후 그의 산타나2000은 간단한 월경증명서 검사를 마친 후 중조우의교 차선으로 들어섰다.

철교가 덜컹거린다.

창밖 아래 압록강이 북풍에 얼음을 품고 유유히 흘러내린다. 이효범은 긴장을 털어버리려고 목을 좌우로 돌려본다. 굳어버린 어깨와 목뒤 근육이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속에 들린다. 서서히 앞으로 북한쪽 세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창문을 조금 내리자 거센 북풍이 안으로 들어온다. 비릿한 강내음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감싸자 머릿속이 차분해진다. 동토의 땅에 적응하기 위해 싸늘하게 이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몇분 후면 북한이다.

북한 세관에서 비자 수속과 위생방역을 마치고 나오니 키는 작지만 덩치가 있는 중년사내가 산타나 차옆에 서 있었다. 사내가 콧대가 거의 안 보이는 졸망한 코를 킁킁대며 땅에 가래를 탁 뱉었다.

몇 번 같이 일을 하면서 안면이 있는 리석주라는 운전수였다. 돈 맛을 아는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 중국산 청색 오리털 외투에 토키털 털모자 그리고 가죽장갑을 끼고 먼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혈색 또한 추위에도 발그레한 것이 영양상태가 좋아 보인다.

“오랜만입니다. 화선생.”

먼저 어설픈 중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죠?”

그가 손을 내밀자 가죽장갑을 벗고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뜸하셨습네다.”

“이쪽에서 사업 제안이 없으니 좀 쉬었습니다.”

“요즘 조국이 좀 바빴지요.”

이효범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피워물고 그에게도 한 대 권한다. 담배를 받는 그의 손목에 일본산 세이코 시계가 반짝인다. 북한의 운전사들은 엘리트 직업으로 통하고 수입면에서도 무역쪽에서 종사하면 일반 운전사들보다 몇배 더 많다.

“사업할 차치고는 상태가 좋습니다.”

그에게서 자동차 열쇠를 받은 리석주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여기저기 차 안을 살피며 좋다는 표시를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효범은 다시 중국으로 차를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써 먹을 생각이었다.

이효범은 뒷자리에서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정비닐백을 끌어와 그에게 내밀었다.

“담배하고 술 한병 샀습니다.”

“역시 화선생은 통쾌하십네다.”

말은 그랬지만 태도는 당연하다는 듯 했다.

“화선생. 바로 만나실 겁니까?”

“네. 잘 계시죠?”

“뭐. 힘있는 형님이야 잘 먹고 잘 삽니다.”

그가 만나려는 북한 쪽 협력자의 먼 사촌동생이 리석주였다.

“이선생님 운전 사업은 잘 되십니까?”

이효범은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먹고살만합니다. 다 그렇지 않습네까.”

“그렇죠.”

“요즘 돈 되는 거이 하나도 없시오. 써비차 말고는 다 손만 빨고 있시오. 다들 눈깔만 시뻘게 뜨고 돈만 찾디만 검열만 늘어서리 땡전 한푼 구하기도 힘듭네다.”

차는 도로로 나서는 세관입구에 이르러 잠시 정차했다.

자동소총을 둘러맨 헐렁한 겨울 군복차림의 경비군인이 다가왔다. 리석주는 운전석 창을 조금 내렸다. 안면이 있는 듯 씨익 웃는다.

“야 추운데 고생한다.”

리석주는 손에 뭔가를 쥔 채 내밀었다. 군인이 슬쩍 손안에 있는 물건을 받았다. 고양이 그림 때문에 고양이담배라고 불리는 영국제 크레이븐A담배였다.

“차 검사했수?”

“아새끼! 검사해봤자 나올 거 없다. 검사는 무슨... 야! 나 간다.”

대답도 듣지 않고 리석주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경비군인은 아무런 제지없이 차를 통과시켰다. 이효범은 손목에 찬 시계의 시간을 한시간 뒤로 돌렸다.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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