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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알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우재
작품등록일 :
2018.09.03 08:59
최근연재일 :
2018.10.06 21:19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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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198,565

작성
18.09.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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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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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5. 압록강의 탈북 - 1

DUMMY

#5. 압록강의 탈북


마을 입구 도로턱에 서서 이십대 후반정도의 아가씨가 껌을 딱딱 씹으며 걸어오는 이효범을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위아래로 훑어봤다.

초가집과 양옥집이 모인 마을 뒤로 돌산이 보였다. 입구에 선 미사일같은 시멘트 탑에 새긴 ‘고난을 이겨내며 더 좋은 락원을 꾸리자!’라는 붉은 구호가 그의 눈을 사로잡는다. 여기저기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양이 뭔가 다른 곳이었다.

전화로 연락을 했을 때 받은 상대는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두꺼운 아디다스 츄리닝 바지, 핑크색오리털 점퍼를 입은 여자는 털장갑을 벗은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준비는 됐습니까?”

“이까짓 일 뭐 준비하고 말거 없습네다. 여긴 다 식구들이라 일 없습네다. 비로 줄 겁네까? 차로 줄겁네까?”

비는 중국돈을 의미하는 북한 은어였다.

장대풍으로 들은 이야기로라면 산타나2000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국경경비가 심해지고 무산 총격 사건도 터진 터라 도강비용이 평소보다 올라 부르는 것이 값이라고 했다. 지금의 그의 처지로서는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다면 충분한 돈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마을 초입에 멈춰있는 차를 가리켰다. 그녀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밀무역 중국대방인 장대풍의 소개로 온 이효범이기에 그녀 또한 쉽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서로가 합의하에 거래는 성립됐다.

“일행은 어디 있습네까?”

“뒤에...”

“데려오시라요.”

이효범을 뒤돌아 손을 들어 흔들었다.

멀리 산타나2000이 그의 신호를 받고 움직였다.

차가 다가오자 그녀는 마을 입구 옆의 빈 공터를 가리켰다.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 공터를 향해 나아가자 두사람은 차를 따라 걸어갔다. 차가 멈추자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차를 향해 걸어와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언제 넘어갑니까?”

“낮에야 눈들도 있고 그러니 어두워져야 하겠디요. 근데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중국사람입니까? 아니면 조선족?”

궁금하다는 듯 그녀가 껌을 딱딱 씹으며 물었다. 차에서 세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렸다.

“이 산 너머가 압록강입네다. 밥들은 하셨습네까?”

“아침부터 밥 구경도 못 했디. 야 여기 경치 좋구만... 여기 돼지고기 냄새 좀 맡는 가 보네.”

돼지고기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밀무역한다는 북한의 은어였다. 리석주가 마치 자기 고향에 온 듯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을은 북한의 여느 마을과 달랐다. 돌산 밑에 자리잡은 마을은 어딘지 모르게 활기가 느껴졌다. 십여호 남짓한 작은 농촌마을처럼 보였지만 상점 간판도 있었고 유리창 너머 안에는 제법 물건들도 많아 보였다. 상점 앞 평상에는 중년 남자 둘이 추운 날씨인데도 앉아 술을 마시며 그들을 본체만체 했다. 승용차와 트럭 그리고 트렉터도 보이는 꽤 부유한 마을로 보였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터에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옷차림 또한 북한 아이들치고는 고급스럽고 깨끗한 옷들이었고 영양상태도 좋아 보였다. 중국과의 밀무역으로 돈을 번 마을이 분명했다.

“야. 여긴 좀 사는 가 보네. 어이. 여성동무. 여기 뭐 가지고 이렇게 잘 삽니까? 내도 좀 배웁세다. ”

리석주가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바삐 걸음만 옮겼다.


상점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서자 상점과 연결된 시멘트 단층 집이 나타났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마당이 나타났고 기억자모양의 집구조가 보였고 늘어선 문을 보니 가정집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음식을 하는 지 기름냄새가 풍겼다.

문을 열자 하얀색 회칠을 한 방이 나타났다. 방안에는 중국식원형탁자와 의자들이 보였다. 아마도 식사를 하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여기서 기다리다 어두워지면 출발합시다. 참 여긴 전파방해가 심해 요즘 손전화 안 됩네다. 그 점 유념하시라요.”

그녀가 말을 마치고 잠시 후 마치 식당에 온 것처럼 음식을 가져왔다.

일행은 아침부터 굶었기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효범은 리석주와 방에서 나와 마당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리석주가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신호를 살핀다. 신호가 잡히지 않는 듯 툭툭 핸드폰을 쳤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셔도 됩니다.”

“아닙네다. 무사히 넘어가는 거 보고 갈 겁네다. 형님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단 말입네다.”

“약속대로 돈은 가시기 전에 드리죠.”

“감사합네다. 또 일은 언제나?”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습니다. 또 언제 이 일을 할 지. 아니면 그만 둘지 생각중입니다.”

“김정은이가 들어서서 아주 쪼여대는 데 이 일 그만둔 이들 많습네다. 위험하기도 하기도 하구요. 내도 이제 써비차 하나 굴릴까 합네다.”

“여기나 저기나 먹고 살기 힘들군요.”

이효범은 진심이었다. 북한이든 중국이든 대한민국이든 어디나 서민은 먹고 살기 힘들었다.

“어째 밥은 입맛에 맞습니까?”

도강을 도와줄 아가씨가 다가왔다.

“맛있습니다. 통성명이나 좀 합시다.”

“순이라고 부르심 됩네다.”

“순이씨. 화영광이라고 합니다.”

“화선생. 잠시 사업 이야기좀 합시다.”

“무슨 사업?”

“좋은 물건이 하나 있는 데...”

“이미 거래선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시 이문이 적어서리 남는 게 없습네다. 내가 싸게 넘길테니 화선생이 좀 소비하시라요.”

장대풍의 거래선에 손을 대는 건 위험한 짓이었다.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하더라고 남의 밥에 손을 대는 짓은 위험한 게 아니라 멍청한 것이었다. 장대풍에게서 소개받은 이효범 또한 무역업자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뭡니까? 물건이.”

“얼음입네다.”

흔히 빙두라고 하기도 하고 얼음이라고 하기도 하는 북한산 헤로인이었다.


이미 북한산 마약은 하향길이었다.

품질면에서 많이 떨어졌고 품질이 좋은 건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 북한내에서 소비된다고 했다. 외화벌이 목적으로 시작한 북한내 마약제조는 이제는 일반 대중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북한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외부로 나가는 마약은 도리어 북한내로 유통되기 시작됐고 이제 중국으로 넘어가는 물건은 대개 질이 떨어지는 물건들뿐이었다. 물론 이효범이나 장대풍은 마약에까지 손 대지 않았다. 돈 벌자고 잘 못 건드렸다 목숨이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한국마약업자들이 걸려 사형당하는 일은 간간이 있어왔다.

그는 생각했다. 이 젊은 아가씨가 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평판도 안 좋은데...”

“물건은 확실합네다. 품질도 최고입네다. 이거시 공장에서 직접 빼 온 거라 값도 싸단 말입네다.”

“생각 좀 해 봅시다.”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닌 애매한 태도가 제일이었다.

“양핀을 좀 드릴까요?”

양핀이란 샘플을 말하는 중국어였다. 순이가 투명한 헤로인 결정체가 든 작은 비닐봉투를 꺼내 눈앞에 흔들었다.

“아니. 나중에 한번 연락을 드리죠. 이 쪽 일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판매루트를 좀 봐야 하니까요.”

거절의 말로 알아들었는 지 순이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돈에 미친 젊은 아가씨.

그녀에게는 먹고 살아야하는 절박한 이유보다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보였다. 그 욕망이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이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약은 쉽사리 손 댈 물건이 아닙니다. 일단 순이씨가 취급하는 물건 목록을 주면 넘어가서 여기저기 알아봐 주죠. ”

“야. 화선생. 통쾌하십니다.”

그의 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금새 얼굴이 밝아진다. 악수를 하자며 손을 내민다.

물론 이효범은 그녀와 거래할 생각은 없었다. 작은 오해로 압록강 도강이 무산되는 것을 우려할 뿐이었다.

“야. 얼음 그거 좀 줘 봐라.”

“아바이는 무슨 좋은 사업 하십네까? 얼음 필요하십네까?”

리석주를 향해 그녀는 관심을 휙 돌렸다. 리석주는 고년 참 맹랑하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네 사람은 방안에서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진 지 한참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답답한지 리석주가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세사람은 아무 말없이 그저 공기만 마셨다. 어찌보면 나머지 세사람은 이런 기다림이 익숙하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 김성철은 느긋하게 주구장창 담배만 피워대고 있다. 초조해서가 아니라 심심해서일 것이다.

문득 든 생각이 이효범은 김성철과 별다른 이야기를 해 본 시간이 없었다.

왜일까?

살인을 했다는 이유때문일까?

김성철은 그와 달리 젊고 탄탄한 몸에 수컷으로서 월등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일까?

그런가? 그렇다.

그는 사실 김성철이란 수컷이 겁났다. 알 수 없는 표정과 언제든지 자신을 누를 것 같은 힘을 가진 사내. 바로 신경철과 같은 부류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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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압록강의 탈북 - 1 18.09.17 407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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