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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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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1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6.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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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돌이킬 수 없는

DUMMY

그 날 엄마와 아빠는 부부동반 연회에 초대받았다며 저녁 때 같이 나갔다.

아빠의 회사 BZ 그룹이 동남아에서 도시 인프라 구축 초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연 축하연이었다.

아빠는 그룹의 임원이어서 당연히 가야 했고 엄마 또한 퇴근 이후여서 동반했다.

설이는 자신의 사건 항소심 공판이 코앞에 다가와 있어 그쪽에 신경을 쓰느라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어릴 때부터 회사 일과 직장 때문에 바쁜 부모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문직이라 바쁜 일 때문에 하나뿐인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었고 또 그 전후로 과도할 정도로 미안해했다.

그러면 또 그녀는 자신이 엄마와 아빠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들곤 했다.

어릴 때 육아도우미가 필요할 때부터 중고등학생 이후 그게 필요 없어질 때까지 줄곧 그랬다.

부모님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서울 한복판에 꽤 큰 단독주택도 마련했고 남들보다 훨씬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면 보상이 될 수 있을까.

그 대차 계산은 언젠가 하게 되겠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녁 아홉 시에 연회가 시작된다며 일곱 시 반에 떠났던 부모는 열두 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보통 그룹 차원의 대형 파티는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진행된다고 하므로 그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사건과 관련하여 새로 알게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정보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게 좋은지 골몰했다.

사실 누구 말대로 사소한 사건일 수도 있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냥 대충 사건이 처리되는 걸 바라보면서 모두에게 잊히기를 기다리고 그녀 자신도 모든 걸 잊고 지냈으면 훨씬 편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울컥한 마음에 두어 번 내지르긴 했지만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법이 조금 고르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그녀를 건들지 않았다면 대충 마무리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문태는 그러지 않았다.

한 번 찍은 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싸워줄 수밖에.

이전의 다른 여자들이야 아무런 힘이 없어 당했다면 지금 그녀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사흘 뒤에 있을 항소심 공판에서는 배로 때려주지.

감옥에서 이십 년쯤 썩으면 그 때도 여전히 남을 괴롭힐 마음이 남아있을까?

그런 결심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새벽이 밝아왔다.

아침이 밝아왔는데도 냉랭한 집안 공기에 그녀는 집 전체를 둘러보았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안 돌아왔나?

그녀는 서둘러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만 흘러나왔다.

엄마에게 한 번 더 하고 아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서서히 불안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파티를 밤새 했을 리가?

그녀는 초조한 마음에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영이 의견을 말했다.

그는 백설이의 마음에 심상치 않은 파동이 느껴지자 바로 접속해 들어와 있었다.


-일단 연회 주최 쪽이 아빠 회사니까 회사 내 관할 부서에 전화를 해 봐.

-어, 어디?

-기획 홍보실의 의전 관리 책임자야. 번호를 눌러. 황치균 이사라고 하네?


설이는 다시 휴대폰으로 기영이 불러주는 번호를 눌렀다. 아니 기영이 그녀의 손을 이용해 눌렀다고 볼 수도 있었다.

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여러 번 갔다.

날이 밝았다고는 해도 아직 새벽녘이어서 잠에서 깨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파티가 자정 넘어 끝났다고 치면 지금쯤 한참 곯아떨어져 있을 것이다.

신호가 스무 번 넘게 가자 겨우 쉰 듯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여보세요.”

“BZ 그룹의 황치균 이사님 맞나요?”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저 그 회사 백종현 씨 딸이에요. 아빠와 엄마가 어제 연회에 참가한 뒤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전화한 거예요.”

“백 이사님 따님이라면 최근에 어려운 일을 겪은?”

“예, 맞아요.”


대답을 하면서 상대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의 마음조차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었다.

황치균의 흐릿했던 잠기운이 달아나고 정신이 비온 뒤의 숲속 풍경처럼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연회에서 있었던 여러 모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데 전화를 통한 대화만으로도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구나.

그 이후 황치균의 말은 부연설명에 불과했다.


“연회가 열두시 반쯤 끝나고 모두 차례대로 회장을 떠났는데······.”


북한강변에 있는 그룹 내 리조트에서 그룹 내외의 귀빈들 천여 명과 함께 이루어진 연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연회의 총책임자인 그는 그룹의 고위 임원들과 정관계 귀빈들이 모두 떠나는 것을 본 다음에 최종 마무리는 실무자들에게 넘기고 그곳을 떠났는데 밤 두 시경이었다.

그 전에 중요 인물들은 그가 직접 배웅을 했는데 아빠와 엄마도 있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아빠와 엄마는 세련된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약간 불그스레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두 분은 팔짱을 끼고 나란히 뒤돌아서 멀어져 갔다.

그게 황치균이 본 아빠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시간은 한시 반쯤이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왔다?

술을 마셨으니까 직접 운전을 했을 리는 없고 대리운전 기사가 있었을 텐데?


“우리도 알아볼 테니까 걱정이 되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봐요.”


황치균은 본인이 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내고 잠시 멍해진 그녀는 아침 여섯 시가 되는 것을 보고 TV를 켰다.

지상파 방송은 때마침 정규 뉴스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그 날의 주요 소식을 제목만 우선 하나씩 앵커가 전달하고 있었다.


“······이어서 간밤에 있었던 사건 사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 경춘대로에서 자동차 추락 사고가 있었군요.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송래 기자······?”

“예, 이송래 기자입니다.”


반으로 분할된 화면에 마이크를 입 앞에 둔 여기자의 모습이 정면으로 비쳤다.


“전해주시죠.”

“저는 지금 경춘대로, 정확히는 북한강로 화도읍 제1금남교에서 서울 방면으로 1km 지점에 나와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강변 쪽 가드레일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서너 시간쯤 전인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서울로 향하던 차량이 도로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강으로 추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네 시경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고 현장 주변을 수색했는데 부서진 가드레일 주변에 흩어져 있는 차량 파편을 수거해 정밀 검사에 들어갔습니다만 아직까지 차종이니 탑승자에 대한 정보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언제쯤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까?”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적어도 대여섯 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추락이 확실한 만큼 연안 절벽을 포함해 강물 속을 탐색해 볼 예정입니다.”


설이는 TV 화면에 비치는 도로와 부서진 난간, 그리고 그 주변의 어지러운 파편들, 이어서 그 너머로 넘실대며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생각들이 피어올랐다.

아닐 거야.

아무리 자동차 사고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발생한다고 해도 그 당사자가 자신의 부모님이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 엄마 아빠가 없으면 세상에 나 혼자 남는다고.

내가 있잖아, 라고 기영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그녀와 가까운 것과 혈육을 잃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그저 말없이 그녀의 정신을 부둥켜안았다.

두 개의 몸이 가까이 있을 경우 가만히 손을 잡는다거나 뒤에서 백허그로 껴안는다거나 하는 몸짓을 이미지로 그려 보았다.

그러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녀는 기영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물리적인 신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으나 마음에 붙어있다 보니 정말 그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단 기다려 보자.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고요하고 텅 빈 가운데 시간이 흘러갔다.

하루 종일 TV의 뉴스전문 채널을 켜 놓았는데 매 시간 뉴스가 진행될 때마다 강변도로 추락 사고에 대한 속보가 전해졌다.

추락지점을 중심으로 여러 대의 해상구조대 보트들이 동원되어 잠수부가 물속을 수색하는 모습들이 화면에 나왔다.

그러기를 몇 시간,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가 추락한 차량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수중을 탐색중인 잠수부에 의해 수심 십여 미터 아래에 있는 승용차가 발견되었습니다. 차량 종류는 벤츠 c300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침몰한 벤츠 승용차 안에는 부부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 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잠시 후 차량 인양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자의 멘트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머리는 점점 더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부모님의 사고가 점차 확실해지자 그녀의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고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고 눈앞에 보이던 것들이 사라져 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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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킬 수 없는 +1 22.06.18 102 1 10쪽
30 지배자의 손길 22.06.17 90 2 10쪽
29 원격제어 22.06.15 89 2 10쪽
28 파장 22.06.14 104 2 9쪽
27 판결 +1 22.06.13 114 2 9쪽
26 변호인단 +1 22.06.12 124 3 10쪽
25 징검다리 22.06.08 113 2 10쪽
24 타인의 시선 +1 22.06.06 134 2 9쪽
23 어떻게 싸울까? 22.06.04 125 3 10쪽
22 양동작전 22.06.03 143 3 10쪽
21 유인(誘引) +1 22.06.02 129 3 9쪽
20 체포 22.06.02 136 5 9쪽
19 대질신문 22.06.01 146 3 11쪽
18 재조사 22.05.30 143 3 9쪽
17 읽혀버렸다 +1 22.05.28 165 4 10쪽
16 일진 22.05.26 163 4 9쪽
15 빙의 (憑依) +1 22.05.25 188 3 10쪽
14 교환(交換) +1 22.05.24 171 4 10쪽
13 시험(試驗) 22.05.23 171 2 10쪽
12 심문(審問) 22.05.23 179 4 9쪽
11 융합(融合) 22.05.21 194 4 10쪽
10 반전(反轉) 22.05.20 178 5 9쪽
9 신변보호 22.05.19 184 4 10쪽
8 협박 22.05.18 198 4 9쪽
7 확장(擴張) +3 22.05.17 216 6 9쪽
6 텔레파시 22.05.16 236 6 10쪽
5 여보세요 / 누구세요? 22.05.15 253 5 10쪽
4 진술보다 정확한 그림 22.05.15 253 9 11쪽
3 응급실에서 사라진 남자 22.05.14 267 11 9쪽
2 야구선수 천기영씨 아닙니까? 22.05.13 286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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