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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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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3,679

작성
22.05.2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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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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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읽혀버렸다

DUMMY

그/녀의 말에 네 명이 움찔했다.

벤치에 앉아서 상체를 숙인 채 서로를 바라보며 흘낏거렸다.

그들은, 특히 리더인 도태영은 불과 십여 분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 혼란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한눈을 팔거나 정신을 흐트러트린 적이 없는데 문득 자신이 꼬리를 내리고 앉아있는 강아지처럼 느껴진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을 포함해 지금 같이 있는 일진 네 명은 학교뿐 아니라 인근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상위 포식자에 해당했다.

어른이라고 자신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코다친다.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라 해도 지금까지 기가 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먹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니.


대학생 같은데 뭐하는 놈이지?

이걸 확 들이받아 버려?


몸은 좋은데 그 정도 체격은 만조 놈도 만만치 않고 그럼 둘만 있어도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안감이 싹텄다.

갑자기 후경이와 만조가 미친 짓을 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조종한다, 최면술이나 그와 비슷한 초능력일까?


“너!”


갑자기 천기영이 눈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입을 열자 그는 흠칫 놀랐다.


“먼저 나서서 주먹을 휘두르는 놈은 아니지? 매번 다른 애들 시켜서 때리고 빼앗고 괴롭히고 그랬지?”

“······?”

“어, 어떻게 아셨어요?”


최태만이 놀라서 물었다.


“그냥 알아 인마.”

“혹시······?”


이후경이 그를 계속 힐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가 바라보자 이어 말했다.


“형, 운동하세요?”


그가 계속해서 지긋이 바라보자 이어서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아서요. 야구선수 맞죠?”

“그래.”

“가만, 이름이 뭐더라, 많이 들어봤는데······. 천기영 맞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존경합니다, 형님.”


이후경이 쪼르르 달려와 천기영의 앞에 무릎 꿇고 손을 내 밀었다.

멤버 중 한 명의 갑작스러운 태세 변화에 나머지 녀석들이 입을 딱 벌리고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백설이 또한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해서 발아래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내미는 녀석을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야, 이분이 국가대표 야구선수 천기영 형님이야. 이리 와서 손이라도 한 번 잡는 영광을 얻어.”


이후경은 이미 은총이라도 입은 것처럼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가장 체격이 크고 몸이 좋은 김만조가 스윽 일어서서 천기영의 앞으로 다가와 뒷짐을 지고 섰고 그 뒤를 따라 최태만도 왔는데 그는 둘 사이에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했다.

혼자 남은 도태영은 이번에도 당황과 당혹감으로 바닥만 노려보았다.

앞에 선 세 녀석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너는 어떠냐는 듯 눈길을 보내자 도태영은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 진땀을 흘렸다.


-너도 이리 와.


갑자기 머릿속에서 낯선 명령이 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친구들 옆에 와서 서라고.


분명하고 또박또박 들리는 내용으로 보면 천기영이라는 사람이 말한 게 분명한 듯한데 왜 귀를 통해 들리지 않고 머릿속 저 안쪽에서 들리는 거지? 게다가 남자 목소리인지 여자 목소리인지 분명하지도 않았다. 두 목소리가 번갈아 들리는 듯도 하고 인쇄가 잘못된 글자처럼 겹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말한 데 맞느냐고? 그래 맞아.


어떻게?


-나는 네게 ‘직접’ 말할 수 있어. 흔히 알고 있는 텔레파시라고 할 수 있지.


그건, 초능력인가요?


그는 목소리에 대답하듯 생각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못하는 거니까 초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


그럼 형님은 내게 마음으로 말을 하고 그 말을 듣고 제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을 읽는군요.


-아, 역시 똑똑하긴 하네. 텔레파시가 독심술과 거울의 앞뒷면처럼 한 세트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다니.


그걸 저는 못하나요?


-그거야 네가 알겠지.


도태영은 철이 들면서부터 또래는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큰 사람들까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봤기 때문에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지금 같이 다니고 있는 일진의 세 친구도 겉으로만 친구일 뿐이지 실제로는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본인들은 그걸 명확히 깨닫고 있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발달한 생존 능력일 수 있겠지만 그의 타인에 대한 지배 능력은 상당히 탁월한 편이어서 동네의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 때로는 교장까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가 친구들을 포함해 여러 사람들을 지배하는 방법은 기본적인 힘이나 눈빛, 기세 등도 있지만 다양한 기교는 주로 말에서 나왔다.


애원, 부탁, 권유, 제안, 설득, 협박, 지시, 명령.


이들은 모두 다른 것 같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말을 듣게 한다는 점에도 모두 똑 같은 언어의 기술이다.

아무리 강하고 완고하며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이 여덟 가지 방법이 모두 안 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대 권력을 가진 제왕이라고 신하들이 모두 모여 한 목소리로 탄원을 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게 바로 애원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관건이고 그것만 맞아떨어지면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두 가지 이상을 적절히 배합하면 효과는 백발백중이다.

도태영은 이 이론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었으나 어릴 때의 경험과 천부적인 명민함으로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오늘 거대한 벽을 만났다.

단지 마음만으로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건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 및 사고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무엇보다 말로 상대를 넘어오게 하는 것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예를 들어 ‘부탁’을 이용하려 하면 상대의 인간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협박’을 하려면 상대의 약점을 알아야 한다. 권유나 설득을 하려면 상대로 하여금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상대를 한없이 추켜세워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텔레파시라는 정신 능력은 이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지배할 수 있게 한다.

경이로운 세계였다.

도태영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피었다 사라졌다.


“너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구나.”


천기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읽혀버렸다.


그리고 읽혔다고 깨닫는 순간도 역시 상대에게 포착되었다.

그 지경이 되자 그는 더 이상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천기영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숙이고 들어가는데 더 이상 뭘 어쩌겠느냐는 속셈이 없지도 않았으나 일단 숙이고 들어간 뒤 기회를 보겠다는 생각과 일단 가까이 알고 지내다 보면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생각들 모두가 다 읽혔다.

뭔가 기발하고 획기적인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 순간 그것이 읽혔다고 자책하는 게 반복되었다.


-흥미롭기도 하고.


그러면 다행이지.


원래 이 거대하고 낯선 괴물, 혹은 포식자 앞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자신을 가장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작이라도 빨라야 하는데 솔직히 이런 건 어떤 게 빠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데 흥미를 느낀다면 영락없이 붙잡힌 것일까?


“자, 너희들 생각만 읽혔지 내 생각은 전해지지 않았으니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너희는 사소한 시비가 붙은 사람에게 트집을 잡아 재미로 괴롭히거나 스트레스를 풀거나 아니면 돈이라도 뜯어내려 했을 거야. 아, 너희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들이 스트레스 따위를 받을 일은 없을 테니 두 번째는 빼고. 지금까지 해 온 걸 보면 대부분 성공한 모양이네. 그런데 재수 없게도 나를 만나게 되었네, 이를 어쩌지?”


약간은 빈정거리는 투로 기영이 말하자 넷은 묵묵히 그 앞에 부동자세로 서서 듣고만 있었다.

다른 셋은 그의 말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도태영은 상당히 깊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 버릴 걸.


“너희가 어디서 나쁜 짓을 하든 별 상관 안 해. 단 내가 모른다면.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제부터 너희가 하는 짓들을 내가 다 알게 될 텐데?”

“어, 어떻게요?”


여전히 천기영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는 최태만이 얼굴에 걱정과 물음표를 그리며 물었다.


“그냥 안다고 했잖아.”


그 말에 세 명이 천기영과 도태영을 번갈아 바라보자 도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태영, 남서초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일진치고는 공부를 잘하네. 전교 1, 2등? 여자애들도 여럿 만나고. 이후경은 집안이 좋은가봐. 재미있는 걸 찾아 심심풀이로 끼어들었는데 이제 빠져나가기도 어렵게 됐지? 김만조는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됐네? 격투기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모양이야. 그래도 힘이 좋으니까 아직은 먹히는 거 같은데 어디 가드 같은 걸로밖에 안 되겠고 뚱뗑이는······.”


천기영이 네 명의 이력과 특징을 줄줄 읊어대자 모두 귀신에 홀린 것처럼 놀라고 몸을 떨었다.

물론 도태영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어 얼굴을 굳힌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알겠지? 너희가 어디에 있는 내가 다 볼 수 있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굳이 번호 같은 거 말하지 않아도 돼. 너희는 코뚜레에 꿰인 고삐를 내게 잡힌 거야. 그러니 지금까지와는 달리 착실하게 공부하고 있다가 형이 부르면 냉큼 달려와.”


그리고 다시 그들을 하나하나 가만히 응시한 후 말했다.


“이제 가 봐.”


그렇게 말하자 네 명은 자신의 의지를 갖지 못한 로봇처럼 다리를 움직이며 걸어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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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어떻게 싸울까? 22.06.04 126 3 10쪽
22 양동작전 22.06.03 143 3 10쪽
21 유인(誘引) +1 22.06.02 129 3 9쪽
20 체포 22.06.02 136 5 9쪽
19 대질신문 22.06.01 147 3 11쪽
18 재조사 22.05.30 144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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