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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396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5.18 22:41
조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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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9쪽

협박

DUMMY

분명히 그 놈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문자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스미싱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저런 걸 스미싱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누가 봐도.

적어도 자신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자신의 일정을 잘 알고 있는 자가 보낸 것임은 확실했다.

아주 짧은 내용이었지만 많은 걸 함축하고 있었다.

놈은 자신이 병원에 통원치료를 다니는 걸 알고 있으며 그걸 매일 감시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월수금, 일주일에 세 번 가는데 오늘 천기영과 접촉하느라 미리 연락도 빼먹었다.

그걸 알고 문자를 보냈다는 건 지금까지도 주변에서 감시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문득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문태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이며 한 번 찍은 여자는 절대 놓아주지 않아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고.

그렇다면 저건 명백한 협박이 분명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당연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상의를 해야 하는데······.

첫째 아빠.

둘째 엄마.

셋째 담당 형사.

넷째 친구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꼽아 보자 새삼 자신의 삶의 영역이 이렇게 좁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빠는 알아야 했다.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 놓겠다고 했으니. 그리고 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해도 무남독녀의 일에 소외되었다고 여기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머지는 애매했다.

관심을 가져줄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조언이나 해결책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인물이 없었다.

아빠조차 경찰에 좀 더 강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 외에 더 대책이 있을까?

그리고 가장 늦게 알게 됐지만 가장 가깝게 느껴진 사람.

어떨까?

지금 또 접촉을 하면 자꾸 들이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같은 또래라서 말이 잘 통할 것 같고 잘생기고 유명하고 게다가 정의감도 강한데 옛말에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최고의 벗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심전심이라든지 염화시중? 간담상조?

어, 내가 이런 말을 다 알고 있어. 어떡해, 정말 학창시절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했나봐.

하여간 그런 말들과 지금의 상황이 맞아 떨어지는 건가?

그러면서 그녀는 인터넷에서 비슷한 말들을 찾아보았다.

염화미소(拈華微笑),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심심상인(心心相印).

같은 뜻의 말들이 많은데 거의 다 불교에서 유래한 것들인 것 같았다.

대부분 말보다 마음이 통하는 경지를 나타낸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불교에 정말 신통력이 존재할까?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례들은 많이 나오던데.

특히 예수.

아, 이런 거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녀는 시계추처럼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흔들리는 걸 잡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해야겠다.

다시 마음을 집중하고 그를 찾았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그가 있다.


-저기, 기영 씨······?

-기영 씨?

-예 왜요?


다행히 바로 대답이 왔다.


-자꾸 불러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상의할 게 있어서.

-상의할 거?

-우리 둘 다 관련된 일이에요.

-둘 다라면······설이 씨를 폭행했던 그 사람들?

-예, 맞아요. 협박 문자가 와서······.

-협박 문자요?

-예, 직접 볼래요?

-그러죠.


그러자 설이는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열고 조금 전에 본 문자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걸 옆에서, 혹은 어깨너머로 누군가 보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병원에 안 갔네? ㅋㅋ’


기영이 그걸 차분히 읽었다.


-어때요?

-글에서 느껴지는 게 기분이 나쁘네요. 혹시 병원 다니는 거 친구나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죠?

-그럼요. 저희 부모님과 병원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몰라요.

-수사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제가 동해안의 병원에 수술 받고 입원해 있을 때 피해자 진술 두 번 하고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빠 말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서울에 주소를 두고 있어 저희 집 근처로 관할지를 옮긴다고 하는데 그게 한두 주 걸린다고 하고, 사건의 주범인 서문태는 보석금을 내고 지금 풀려나 있는데 뭐라더라?

-불구속이요?

-예. 그러니까 저한테 이런 협박 문자를 보냈겠죠. 왜 보냈을까요?

-지금 경찰서 이관 중이라면 앞으로 검찰 수사가 남아 있고 재판도 남아 있으니 갈 길이 머네요.

-그렇게 되나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지금 같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더라고요.

-그러면 제가 겁을 먹고 진술을 제대로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럴 가능성도 높죠.

-아, 그 쪽에서 합의금을 10억이나 제시했다고 하더라고요.

-돈이 많은가 보네요. 아, 사채업자라고 했죠?

-무슨 캐피털 회장이라고 하니 10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보죠.

-전형적인 화전 양면 전술이군요.

-그거, 앞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뒤로 뒤통수칠 계략을 꾸미는 거?

-거의 그래요.

-게다가 서문태라는 놈이 여자를 밝히는데 한번 찍으면 놓아주질 않는 걸로 소문이 났다고 해요.

-저런······.

-저 어떡해요?

-아버님은 뭐라고 하세요?

-아빠는 밖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몇 달 후에 유럽으로 유학가라고.

-······그것도 한 방법이겠는데 아무도 모르게 가면 모를까 외국이면 그들이 더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아, 그렇구나.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네요.

-돈 있는 자들에게는 외국이 오히려 더 마음 놓고 행동할 수 있을 거예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후 설이가 다시 말했다.


-저 이런 말 하면 너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예······.


기영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시 텔레파시로 연결해 들어와 그 얘기를 꺼낸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물에 빠진 걸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하는 것처럼 뻔뻔할 수도 있지만······.

-예.

-절 지켜줄 수 있나요?

-예.

-정말요?

-예.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게요.

-그러면?

-이미 우리 둘은 세상 누구보다 가깝게 연결되었잖아요?

-예.

-그건 설이 씨 옆에는 항상 제가 있다는 말과 같아요. 뭐든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는 게 낫겠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 진행되는 거 보며 어떻게 할지 대책을 세워도 될 거 같아요.

-알았어요. 그럼 기영 씨와 제가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으니 당분간 실제로 만나는 일은 없어야겠네요. 그 사람들이 기영 씨를 찾고 있기도 하고 또 우리가 둘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아, 맞아요.

-그래도 실제로 보고 싶은데······.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정말요?

-예 정말요.


사실 천기영은 운동선수로 있는 내내 뛰어난 성적과 준수한 외모로 교내외에서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팬이라고 자처하는 여자들도 많았고 그 중에는 캠퍼스 퀸 등 학교의 대표 미인들도 있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이다 보니 가까이 다가오는 미인들을 다 내칠 수는 없고 또 어느 정도는 사귀어 줘야 막무가내로 접근하는 광팬들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다고 장난이나 심심풀이는 아니었고 또 마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위치가 항상 주목받는 곳이다 보니 깊이 사귀지 못한 채 가벼운 데이트나 하다 끝나는 정도였다.

물론 그런 와중에 한 번에 인생을 결정할 만큼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었으면 바로 내 사람이라고 선언을 하고 골인을 했을지 모른다.

대학 시절 사귀었던 두어 명의 여자 친구들도 딱 ‘스타의 여친’ 정도에 만족하는 듯해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면도 있었다.

그의 성격에 처음부터 상대에게 마음을 다 주지는 않아도 상대 여성이 좋다고 달려들면 거절하지 못하고 선을 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이번에 만난 백설이는 모든 면에서 특이했다.

사건의 피해자와 구원자로 만났고 그것도 그가 가장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만남이 이루어졌다. 또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방식으로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는데 그녀가 적극적이기까지 하니 흥미를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접촉 없이 대화와 만남, 그리고 서로의 지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놀라움이요 신비로움이었다.

그 비밀을 엿보고 파헤치는데 같은 경험을 하게 된 여성과 함께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의 정신에 빙의해 얼핏 보니 처음 얻어맞아 엉망이 되었던 얼굴과는 달리 상당히 매력이 있었다.

이 정도는 되니까 그 돈 많은 미친놈이 잡아먹으려 했겠지.

그녀와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허리를 치료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이 막막한 시기에 해야 할 일이 생겨버렸다.


첫째 우연히 발견된 정신적인 능력을 파헤쳐 보는 것.

그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자를 지키는 것.


어쩌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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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보세요 / 누구세요? 22.05.15 254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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