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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385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6.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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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대질신문

DUMMY

정기준이 지적한 대로 김질은 조직 생활 15년이 넘었다.

어디 가서 따까리나 할 정도로 말단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 10년은 후배인 최영만조차도 어딜 가든 중간 간부 이상은 할 짬밥이었다.

고작 성폭행 미수 혐의로 붙잡혀 들어온 게 쪽팔리기는 하지만 굳이 힘 뺄 필요 없이 대충 혐의 인정하고 넘어가면 변호사가 알아서 다 처리해 줄 것이다.

물론 같이 행동했던 서문태는 싹 지워버리고 말이다.

그러니 그가 휴대폰을 미끼로 살살 꾀어 데리고 왔을 때 바짝 쫄아서 긴장하고 겁에 질렸던 계집애 정도는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사나운 눈빛 한두 번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문이 열리고 형사의 뒤를 따라 들어온 여자를 본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같은 여자가 맞나?


그는 서둘러 옆에 앉은 최영만과 눈짓을 교환했다.

최영만의 눈에도 불신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들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 때도 여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

오히려 김질과 최영만이 마주치자마자 서둘러 눈을 내리깔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얼굴이 예쁜 것이야 서문태가 찍었으니 처음 볼 때부터 알고 있었으나 당시의 긴장하고 겁에 질린, 그래서 애처롭게 보였던 것과는 딴판으로 당당함과 위압감을 풍겼던 것이다.

그러니 둘 다 강원도 해안의 여자와 지금 조사실 안의 여자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백설이가 자리에 앉은 강화플라스틱으로 된 투명 칸막이를 통해 상대편의 두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김질과 최영만은 고개를 들어 슬쩍 보았다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정기준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인 둘을 인사시킬 필요가 없었으나 지금부터 촬영되는 녹화물은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이 되기 때문에 확인을 위해 모두발언을 또박또박 시작했다.


“지금부터 지난 가을, 2021년 10월 25일 강원도 K시 해변에서 있었던 백설이 씨에 대한 성폭행 미수 및 폭행 사건에 대한 피해자 백설이 씨와 가해자인 김질, 최영만의 대질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정기준의 옆에는 타자에 능숙한 형사팀 직원이 앉아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를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타이핑한 것을 인쇄한 뒤 해당 발언을 한 사람이 읽고 맞는다고 확인 및 서명하면 이 역시 증거 자료가 된다.

이어서 양쪽을 마주보고 앉은 정기준이 서류철을 앞에 두고 두 달 전에 있었던 일들을 묻기 시작했다.

먼저 백설이가 진술서와 수사보고서에 기록된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을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했다.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친구들과 함께 함께 해안가 펜션에 도착했다가 생활용품을 사러 밖에 나갔다가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서문태를 만났고 서문태가 그녀의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하며 한적한 바닷가의 솔밭 너머로 걸어가자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는 것,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외진 곳에 이르자 김질과 최영만이 나타나 그녀의 앞뒤를 가로막았고 그 두 사람이 그녀를 끌고 더 깊숙한 곳으로 갔다는 것, 이어서 셋이 그녀의 몸과 팔다리를 잡고 옷을 벗기며 강간을 시도한 일을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조사실과 붙어있는 참관인실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조사실을 비춘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성과 관련된 사건은 흔하게 발생하는 까닭에 이렇게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신문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당연히 자신의 담당이 아닌 이상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으니 해당 장면을 참관하는 이들도 한두 명에 불과한데 이번에는 형사팀장과 한창길뿐 아니라 형사과장을 비롯한 세 명의 형사들이 더 와서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은 그저 젊고 예쁜 여자라면 그저······.”

“그런데 여자가 어린 거 같은데 변호사나 여성단체 사람도 없이 혼자 왔네요.”

“더구나 피해자라면 가해자와 얼굴도 마주치지 못할 텐데······.”

“여장부네 여장부야.”


과장의 말에 다른 직원들이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백설이가 이전의 진술을 다시 반복해 말하는 걸 숨죽이며 듣고 나서는 다시 또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아니 말하는 게 왜 저래?”

“뭐가 어때서요?”

“너무 담담하고 때로는 냉정하게 느껴져서 정말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맞나 싶은데······?”

“정말 그래.”

“보통 저 내용대로 겪었다면 그 트라우마가 장난이 아닐 터이고 말할 때 격한 감정에 휩싸일 터인데?”


형사 생활을 오래 하면서 그쪽 방면으로 보고들은 게 많은지 잘도 떠들어대고 있었다.

잠시 후 조사실에서는 정기준이 김질과 최영만 쪽을 보며 진술을 다시 시키려 했다.

그런데 백설이가 잠깐만요, 하면서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그녀가 두 사람을 똑바로 쳐다본 후 낮고 분명하게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요.”


순간 김질과 최영만의 표정이 움찔했다.

그런데 그 말에 찌릿한 느낌을 받은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조사실의 정기준과 서기, 그리고 밖에서 모니터로 보고 있던 참관인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 수 없는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정기준이 두 사람을 보며 그 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라고 하자 김질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른 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날 낮에 도련님이,”

“도련님?”

“서문태 씨입니다.”

“지금까지 모르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나?”

“거짓말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 사이야?”

“저희 사장님이 모시는 회장님의 아드님입니다.”


갑자기 조직의 구조와 인맥이 등장하자 형사들이 오히려 당황했다.


“사장은 어디, 한일회관?”

“예.”

“그럼 회장님은?”

“그건······.”


이번에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김질과 최영만은 상당한 저항을 느끼는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실 그가 말하는 회장이 누구인지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다 알게 되기 마련이었고 담당자인 정기준은 서문태의 부친인 유성캐피털 회장 서장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남들이 다 보게 될 자료 화면에서 떠벌릴 경우 그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으로 아는 까닭이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럴 경우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공포 사이에서 그는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거 왜 저래?”


형사과장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조사실의 장면을 녹화하는 장비는 최신의 첨단 기술이어서 말을 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확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대화를 이어받으면 그 사람에게 초점이 자동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또 두 사람이 번갈아 대화를 나누면서 그 표정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화면분할을 통해 두 명, 또는 세 명까지 동시에 모니터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밖에서도 조사실 안의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조사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건 넘어가고 다음 거 말해요.”


백설이가 다시 말하자 정기준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김질은 막힌 숨이 트이듯 한숨을 쉬었다.


“아니 저건 또 왜 그러는데?”


이번에도 형사과장이 얼굴이 굳어져서 옆의 부하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대질신문의 주재자가 되어야 할 형사가 참고인이자 피해자로 온 여자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그의 시선을 받은 형사팀장을 비롯한 부하직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기준이 이어서 물었다.


“그래서 서문태와 그쪽 두 사람이 뭘 했는데?”

“서문태 도련님이 사냥감 하나를 찍었다며 한두 시간 후에 데리고 올 테니 바닷가 암석지대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여자를 데리고 오면 위협을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만든 후······.”

“도련님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봐주고 감시하고 뒤처리까지 합니다.”

“요리라니 뭐야?”

“······강간입니다.”

“그런 일들을 많이 했나봐?”

“······예.”

“지난 10월 25일은?”

“그 날도 역시 여자를 꾀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앞에 앉은 여성 맞아?”

“예, 맞습니다.”

“서문태가 데리고 온 후 어떻게 했어?”

“인적이 드문 곳에 끌고 가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앞뒤를 다 막고 넘어뜨린 후 옷을 벗기고 성폭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반항을 하자 얼굴과 가슴, 팔 등을 때렸습니다.”

“서문태가 직접 때렸어?”

“그렇습니다.”

“그 다음은?”

“한 동안 그러고 있는데 낌새를 느꼈는지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바로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막으러 갔는데 그가 돌을 주워 던지는 바람에 우리 모두 부상을 입고 여자도 놓쳤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나?”

“키가 꽤 크고 몸이 좋아 운동선수인 것 같았는데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형사가 묻는 그대로 술술 대답을 하는 까닭에 고성이 오가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가장 이상한 장면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신문이 끝나 진술서를 인쇄한 후 해당 발언에 대해 당사자들이 확인 서명을 하고 바로 마무리했다.

경찰서를 나서려는 백설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정기준이 물었다.


“뭐 찾아요?”

“형사님 윗분들 있었던 거 같은데?”

“예, 아까 신문할 때 옆방에서 모니터링하고 있었어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그는 혀를 내둘렀다.


“이왕 온 거 인사나 하고 가게 안내해 줘요.”

“그래요, 그럼 이리로.”


정기준이 백설이를 데리고 팀장의 개인 부스로 향했다.

그곳에는 팀장과 그 위의 과장이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들어서자 약간은 놀란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까 보셨던 백설이 씨입니다. 가기 전에 인사를 하겠다고 해서······.”

“그래요? 계속 지켜봤는데 매우 당찬 아가씨던데 만나서 반가워요.”


과장이 손을 내밀었다.

백설이가 자신의 아빠와 거의 비슷한 연배인 형사과장과 팀장의 손을 번갈아 잡고는 두 사람을 돌아가며 올려다보았다.

무언가를 탐색하듯 둘의 얼굴을 보더니 마침내 과장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말했다.


“수사 방해하거나 망칠 생각 마요.”


작가의말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실제 용산경찰서가 있고 

거기 형사과가 있으며 형사과 안에 강력팀, 마약수사팀, 형사팀 등이 있으니

당연히 형사과장, 형사팀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사실과 

이 소설의 내용이 저언혀 상관이 없다는 것은

소설 좀 읽어본 (전지적)독자님들이라면 당연히 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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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인(誘引) +1 22.06.02 129 3 9쪽
20 체포 22.06.02 136 5 9쪽
» 대질신문 22.06.01 147 3 11쪽
18 재조사 22.05.30 14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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