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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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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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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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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지배자의 손길

DUMMY

천기영과 백설이는 한 번 연결해 머릿속을 들여다 본 사람은 그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다시 찾아들어갈 수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정신제어가 가능했다.

처음엔 서로 대화를 하거나 눈빛을 교환한 후에 상대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그냥 보이기만 해도 가능해졌다.

타인의 몸에 빙의해서 그 정신을 잠재우고 자신이 그 몸으로 활동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사람의 머릿속을 징검다리 건너듯 옮겨 다니는 것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건너편에 앉은 사람과 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빙의를 하고 그 사람의 시선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다시 또 다른 제삼의 인물과 시선이 마주치면 그 제삼의 인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본래 자신의 몸은 잠든 상태가 되는데 의식의 끈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감각은 깨어있는 채 유지된다.

그런 징검다리 빙의가 몇 단계까지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몇 번 하다 보니 그다지 좋은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남의 정신을 읽고 몸을 자신의 것처럼 통제하는 게 처음이야 신기하고 지배한다는 생각에 좋을지 모르나 몇 번 해 보다 보니 불쾌한 감정이 많이 들었다.

우선 엄연히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격체를 도구처럼 부리는 게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남의 몸속에 드나드는 게 꼭 기생물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타인의 정신이란 게 복잡 미묘한 반면 온갖 감정의 찌꺼기가 다 있어 흡사 시궁창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의 설레는 마음은 꿀처럼 달콤하고 꽃처럼 향기롭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자신이 느껴야 할 부분이 아니어서 꺼림칙한 편이었다.

타인의 몸 또한 언제나 상쾌한 상태로 있는 건 아니어서 만성통증이나 지병이라도 있으면 그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쳐도 가족이나 친구, 혹은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주는데 동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그렇다고 몰래 할 수는 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강력한 능력을 사용하면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타인의 마음조차 들여다보는 걸 삼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절제도 곧 무너지게 된다.

굽히고 감추며 숨어 살아야 하느냐, 아니면 폭주해서 괴물이 되느냐.

선택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백설이가 기자 조진오를 마크하고 있을 때 천기영은 1심 재판의 판사 조판석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역시 유성캐피털 서장호의 손바닥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법관이 되기까지 끌어 쓴 학비와 생활비, 결혼 비용, 집값 등 대부분을 유성캐피털이나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저렴하게 받아썼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쓴 것이 공짜도 아니었고 단순한 대출금조차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상환하지 못한 까닭에 그 빚은 눈덩이처럼 더 커져 갔다.

물론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나 조금씩 스며들듯 호의처럼 물들여 온 까닭에 어느 날 갑자기 돌이켜 보니 그의 개가 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점점 큰 고기에 정신이 팔려 더 큰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들개가 된 꼴이었다.

그런 차에 큰 사고를 쳐 버렸으니 그의 법관으로서의 삶은 끝장난 셈이었다.

정신을 차린 후 부랴부랴 사표를 내고 잠적했으나 그것으로 마무리될 리가 없었다. 같이 골프라도 칠 때 본 서장호 회장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없고 아랫사람이나 자신의 채무자들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없이 게임만 즐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측근들은 그렇지 않았다.

여우처럼 간교한 자가 있는가 하면 늑대처럼 사납고 표범처럼 포악한 자도 있었다.

겉으로는 온화하게 웃고 대범하게 껄껄댔으나 간간이 속에 있는 저열한 본성을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 유망한 중견 기업의 대표가 서장호와 친한 척 했다가 그의 비서에 의해 온갖 수모에 뺨까지 맞은 일, 그리고 정부 기관의 차관급 관료, 국회의원 등이 서장호의 측근인 남 이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서도 굽신거렸던 모습을 슬쩍 보고 그는 진작부터 몸을 사리게 되었다.

빚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먹이사슬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이 죽으면 적어도 가족은 살게 놔두지 않을까.

마누라가 걸치고 있는 모든 옷과 장신구가 다 그들의 것이었고 자식들의 조기유학 비용 및 집도 거의 그들의 돈이었지만.

그는 여러 번이나 망설이다가 겨우 실행을 결심했다.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방의 높은 문들에 줄을 감고 목을 맸다.

하지만 얼마 후 버둥거리다가 힘껏 목에 걸린 밧줄을 풀고 바닥에 떨어졌다.

수면제나 독극물을 준비하지 못한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더 끔찍한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욕조에 물들 받은 후 들어가 손목을 긋는 것도 시도했다.

마지막 순간에 부들부들 떨며 약간의 상처만 입히며 칼을 떨어뜨렸다.

다음에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의 집은 강남의 대형 아파트 17층이었다.

옥상은 문이 잠겨 있어 올라갈 수 없지만 베란다 문을 열면 바로 뛰어내릴 수 있고 맨몸으로 뛰어내릴 경우 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두려움만 극복하면.

그런데 죽는 마당에 두려움 따위야 무슨 상관이랴.

베란다 문을 열고 난간 위에 올라선 그는 밑을 내려다보다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대로 바깥으로 떨어져야 했으나 어쩐 일인지 안쪽으로 떨어져 머리만 깨졌다.

한 동안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그는 자신의 결단력 부족을 한탄했다.

하지만 세 번 다 마지막 순간에 번복을 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뒤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천기영이었다.

서문태 등에 대한 재판에서 황당한 판결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 조판석을 백설이와 천기영은 유심히 지켜봤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 자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수그러들었던 여론을 다시 타오르게 할 가능성이 컸다.

그가 떳떳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판결을 했다고 공표한다면 피해자인 백설이에게 크게 불리할 것이 없지만 판결 직후 사표를 낸 것 자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해 피고인 서문태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졌다.

거기에 자살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 여론은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 뻔했다.


-고작 성폭행 미수 때문에 한 사람의 일생을 망치려 하다니 이런 극페미가 나라를 망친다.


이런 언급은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다.

그것이 댓글조작이든 아니든 점점 많이 눈에 띄기도 했다.

또 다시 성대결 싸움판이 벌어질 판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피해자 측의 합의금 10억 요구설이 불거져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녹음 파일과 주고받은 메신저도 첨부되어 있었다.

초기에 서문태의 변호인이라며 접근해 온 사람이 10억으로 합의를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었다.

전화와 문자를 같이 받은 백설이의 아버지 백종현은 너무 어이가 없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제대로 거절도 못하고 유야무야 넘긴 적이 있는데 그게 이쪽에서 요구한 걸로 둔갑되어 여론을 호도하고 있었다.

그 정도 조작이야 코딩을 배우는 초등학생도 할 줄 아는 걸 수많은 네티즌이 모를 까닭이 없었지만 언제나 여론은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쪽으로 휩쓸리기 마련이었다.

그러자 성폭행 미수 사건 자체가 주작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피해자의 10억 요구설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래저래 여론이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기영은 절망에 빠진 조판석의 의식에 직접 접촉해 설명해 주려다 상당히 번거롭고 설득력도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정신을 조종한 게 가능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사실 자체가 그에게 절망과 분노를 일으킬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빙의를 하거나 정신지배를 하려 하면 자신의 모든 관심과 시간을 조판석에게 쏟아야 하는데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효율적으로 통제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자꾸 고안하게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기영은 뜻하지 않게 조판석을 통해 자신의 정신제어 능력을 개발하고 여러 가지 수단을 시험하는 훈련을 하게 된 셈이었다.

우선 알람과 비슷한 경보장치를 상대의 마음에 설치해 놓고 그에게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심리적 문제는 과도한 분노와 경악, 좌절, 비관, 죽음에 대한 생각 등으로 설정했다.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는 상대의 꿈속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꿈이란 램수면 상태에서 일어나는 잠재의식활동이므로 이 때 그의 뇌지각 속으로 들어가 활동하게 되면 상대는 이를 꿈속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때 꿈의 내용을 조작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세 번째는 의식의 리셋도 가능해졌다.

망상증 환자가 자신이 생각한 것을 현실이라고 믿는 것처럼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는 것도 가능했다. 세뇌의 일종인데 그게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최면의 가장 강력한 형태인 혼수상태, 곧 외부에서 어떤 자극을 줘도 절대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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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원격제어 22.06.15 89 2 10쪽
28 파장 22.06.14 105 2 9쪽
27 판결 +1 22.06.13 116 2 9쪽
26 변호인단 +1 22.06.12 124 3 10쪽
25 징검다리 22.06.08 114 2 10쪽
24 타인의 시선 +1 22.06.06 134 2 9쪽
23 어떻게 싸울까? 22.06.04 126 3 10쪽
22 양동작전 22.06.03 143 3 10쪽
21 유인(誘引) +1 22.06.02 129 3 9쪽
20 체포 22.06.02 136 5 9쪽
19 대질신문 22.06.01 147 3 11쪽
18 재조사 22.05.30 144 3 9쪽
17 읽혀버렸다 +1 22.05.28 165 4 10쪽
16 일진 22.05.26 164 4 9쪽
15 빙의 (憑依) +1 22.05.25 188 3 10쪽
14 교환(交換) +1 22.05.24 171 4 10쪽
13 시험(試驗) 22.05.23 172 2 10쪽
12 심문(審問) 22.05.23 180 4 9쪽
11 융합(融合) 22.05.21 195 4 10쪽
10 반전(反轉) 22.05.20 178 5 9쪽
9 신변보호 22.05.19 185 4 10쪽
8 협박 22.05.18 198 4 9쪽
7 확장(擴張) +3 22.05.17 216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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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보세요 / 누구세요? 22.05.15 254 5 10쪽
4 진술보다 정확한 그림 22.05.15 256 9 11쪽
3 응급실에서 사라진 남자 22.05.14 270 11 9쪽
2 야구선수 천기영씨 아닙니까? 22.05.13 290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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