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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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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7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5.15 23:52
조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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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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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여보세요 / 누구세요?

DUMMY

강원도의 동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경찰 수사마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백설이는 서울의 집 가까운 병원으로 치료시설을 옮겼다.

처음 진단을 내릴 때 전치 4~6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서울의 병원에서 좋은 시설로 치료를 받았는지 그녀는 4주가 되기 전에 퇴원을 했고 그 후 한 주 정도 통원치료를 받았다.

그 동안에 그녀는 줄곧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구했을까?

그녀를 붙잡고 폭행한 남자들은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마주치는 젊은 남자들 가운데 상위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처음 선량해 보이는 인상으로 자신을 꾀어낸 남자조차도 굉장히 강한 느낌을 주었다.

수술을 받은 지 2주쯤 지난 후 경찰에 체포된 그들이 폭행범들이 맞는지 조사실의 편면경(片面鏡: 특수거울)을 통해 확인했을 때 그들이 보통 불량배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키가 180에서 190에 이르는 건장한 체격인 데다가 강퍅한 인상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도 그 중의 둘은 조직폭력배라고 했다.

말로만 듣던 조폭이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싸워서 물리치고 자신을 구해냈다고 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강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일행이 더 있었을까?약한 여자가 외진 곳에서 성폭행을 당하려 하는데 그곳에 달려들어 구해낸 것은 좋다. 그리고 자신의 신원을 숨기려 한 것도 좋았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구해낼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폭행범들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었다.

유전무죄를 증명이라도 하듯 쟁쟁한 변호인단의 입회하에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해 그쪽에서 계속 집은 물론 아빠의 개인 전화 및 회사에까지 연락이 온다고 했다.


“저쪽에서 10억을 제시했더구나.”

“엑?”


아빠의 말에 설이는 입을 딱 벌렸다.


“정말이에요?”


백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얼마를 받는데요?”

“단순 폭행 건이라면 몇 십만 원에서 몇 백 정도고 그보다 심각한 건 천만 원 단위로 올라가지. 특히 살인에 가까운 집단 폭행, 도구를 사용한 것들은 그보다 더 커지고.”

“저 같은 경우는요?”


부녀는 둘 다 강간미수 폭행이라는 용어를 배제했다.


“그것도 특수폭행에 해당하니까 합의금 규모가 크긴 할 거다. 하지만 십억이라면 관례나 예상보다 훨씬 큰 금액이긴 하지. 더구나 성공하지도 못했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뭐하는 사람이래요?”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문태의 부친이 무슨 캐피털의 회장이라고 하더구나.”


서문태는 백설이를 직접 꾀어 데리고 간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강간미수 사건의 주동자로 여겨졌다.


“캐피털이요?”

“요즘 제3금융권에 등록된 회사들을 그렇게 부른단다. 옛날로 치면 사채업자지.”

“아······. 그런데 사채업자는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 아니에요?”

“그렇다고 할 수 있구나.”

“그런 사람들이 10억이나 합의금으로 제시했다면 뭔가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보통이 아닐 것 같은데.”

“맞다. 우선은 우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각서이고 두 번째는 너를 병원에 데리고 온 청년에 대해 정보를 내 놓으라는 것이다.”

“그건······보복을 하겠다는 뜻인가요?”

“아마 그런 것 같다.”

“저런 미친놈들이······.”


그녀는 홧김에 욕을 해 놓고는 아빠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빠는 씁쓸히 웃기만 했다.


“우리도 알지 못해 찾으려고 애쓰는데 그걸 우리보고 알려달라고요?”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하더라. 아무래도 우리가 감춰놓고 안 내놓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럼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아무 합의도 해 주지 마요. 감옥에 갇혀 고생해 보라지.”

“사실은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아니 왜요?”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괜히 전관이나 쟁쟁한 로펌을 쓰는 게 아니거든. 어떻게든 법의 맹점을 이용해 빠져나가려 할 것이다. 지금도 주범인 서문태는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고 판결도 실형이 선고된다 해도 집행유예로 끝날지 모른다는구나.”


아버지인 백종현도 명문대를 나와 국내 중견 기업의 상무로 있는 만큼 법조계에 동창을 비롯해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들의 중론에 의하면 대개 그렇게 재판이 흘러갈 것이라는 얘기였다.


“아우 씨, 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빠 이거는 변하지 않는 거예요?”

“네게 할 말이 없다.”


오십대 초반의 중년으로 그 정도면 꽤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도 피해를 당한 입장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합의를 안 해 주면 그 놈들이 너나 우리 가족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그게 걱정이구나.”

“해코지요?”

“지금이야 여론이 그 놈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것이지만 사법부가 그렇게 할 리 없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서문태란 놈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여자를 스토킹하다 강간, 폭행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더라. 한 번 찍은 여자는 놓아주지 않기로 소문이 났고.”

“그런데도 처벌을 안 받았대요?”

“대부분 돈으로 무마했다지 아마. 협박도 곁들였고.”

“아우 씨.”


이번에도 그녀의 입에서는 거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녀가 그들의 모습을 상세히 그려 모두 체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다 잘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요? 곧 있으면 졸업식인데.”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 놓을 테니까 당분간은 별 일 없을 거다.”

“당분간요?”

“두어 달 정도······?”

“그 다음엔요?”

“이번 기회에 유학을 가는 게 어떠냐? 그림 공부하러 유럽에 가는 것도 생각했었잖아.”

“그건 정말 공부를 하러 가는 거였지, 이렇게 도망치듯 가는 건 아니었잖아요.”

“어차피 결과는 똑 같은데······. 일단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진행되는 걸 지켜보며 결정하도록 하자.”

“어휴, 알았어요.”


대화를 끝낸 아버지가 그녀의 방을 나갔다.

일이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나 이제는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중이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밖에 나가는 것도 망설여졌다.

그 놈들이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도 우리에 갇혀있지 않은 채 밖에 나돌아 다닌다고?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핏불테리어 같은 놈이 버젓이 활개치고 다니는데 밖에 나가기가 꺼려졌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자신을 구해낸 정체불명의 남자가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곤경에 처한 약자를 구해 주고 사라진 정의의 기사.

영화나 소설, 그리고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에서 너무 흔하게 등장하는 캐릭터였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교통사고나 기타 재난의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구해주고 홀연히 모습을 감춘 이들에 대한 기사가 훈훈하게 지면을 장식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젊고 키가 큰 남자가 그녀를 업고 동부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놓고는 자신의 친구 이름으로 접수를 하고 모습을 감췄다.

담당 형사의 말로는 그녀가 폭행을 당한 현장이 병원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니 차를 타고 왔을 것이라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택시뿐이었을 텐데 당시 그 근처를 운행 중이었던 모든 택시를 다 조사해 봐도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없었다.

그렇다면 승용차였을 텐데 그 시간대에 폭행 현장에서 병원까지의 CCTV에 포착된 모든 승용차를 다 찾아 보았······다, 가 아니라 그러려다 중단했다고 했다.

범행의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일 뿐인데 그렇게 기를 쓰고 찾을 까닭이 없을뿐더러 보복을 하려는지 범인들도 애써 찾으려 한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굳이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기려 했을까.

그녀는 그래서 더 오기가 났다.

나중에 자신이 폭행을 당한 현장을 찾아가 봤을 때 그곳이 우연히 발견될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취조 과정에서 드러난 대로라면 그 중의 한 명은 그 외진 곳 바깥에서 누가 접근하는지 감시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 흑기사는 그곳에서 자신이 변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자신은 소리를 내지를 형편이 안 되었다.

놈들이 자신의 입 안에 브래지어를 쑤셔 넣어 꽉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냥 마음속으로만 간절하게 외쳤을 뿐이었다.

누구든 제발 와서 구해달라고.

그렇다면 이, 마음으로 외친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마음으로 부르는 소리.

텔레파시.

그녀는 눈을 감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물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무력한 상태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에도 놓지 않은 오직 하나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제발 대답해 보세요.

그녀는 그 때와 같은 마음이 되어 그 누군가를 부르고 불렀다.

강한 염원으로.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었을까.

침대에 놓인 그녀의 휴대폰이 여러 번 울리고 몇 번의 문자가 찍히느라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런 어느 순간 낯선 목소리가 그녀의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들렸다.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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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응급실에서 사라진 남자 22.05.14 267 11 9쪽
2 야구선수 천기영씨 아닙니까? 22.05.13 285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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