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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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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7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6.04 21:21
조회
125
추천
3
글자
10쪽

어떻게 싸울까?

DUMMY

정신적인 능력이 생기고 그로 인한 멘탈이 강해졌다고 해도 백설이는 20년 이상 사는 동안 제대로 힘든 일 한 번 하지 않고 규칙적인 운동도 고등학교 때 체력장 때 외에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움직이며 게으르지 않게 생활한 것이 좀 보기 좋은 몸을 유지했을 뿐 체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적용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중고등학교 이상의 남자와 힘싸움을 하게 된다면 무조건 깔리고 지는 체력 조건이라는 말이었다.

중학생도 저학년의 미성숙한 소년이나 겨우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라면 검은 그림자들 하나하나가 상대하기 벅찬 사람들이었고 잡히면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 했다.

물론 이들이 적이고 여기가 전쟁터라면 그렇다는 얘기고, 그렇지 않더라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닐 터이다.

한데 평범한 사람들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사람을 잡는 자들을 상대로 두 발로 달아나고 몸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사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팔다리나 머리끄덩이를 잡혀 땅에 처박혔어야 했다.

그런데 펄펄 날아다니는 정도는 아니어도 제법 날렵하게 장애물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아슬아슬하게 그림자들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그녀는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 곧 천기영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부웅 하고 긴 막대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 그가 몸으로 들어왔다.

그 전에는 기본적인 접촉 상태, 그리고 감각 공유로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으나 그의 의지로 그녀의 신체를 움직일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그렇게 되려면 저번에 했던 것처럼 빙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바로 들어와 그녀의 신체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둔하고 약했던 설이의 몸이 조금은,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해졌다.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가까이 왔으나 폐건물과 폐자재들, 그리고 어둠으로 인해 자주 막혔는데 갑자기 그녀가 도주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자 바로 들어온 것이었다.

자동차 한 대에 두 명의 운전자가 동시에 운전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몸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게 가능한 경우가 있다.

운전연수를 하는 경우엔 초보 운전자가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지만 강사가 옆에서 주의 깊게 지켜보며 비상시에 밟을 브레이크를 옆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지시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역할분담을 하면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행기의 기장과 부기장처럼.

설이는 그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 팔다리를 움직이자 바로 신체의 운동에 대한 제어를 놓아버렸다. 대신 감각에 집중해 정면에 나타나는 자들을 향해 정신통제를 했다.

짧은 순간의 접근이기 때문에 자세하고 길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고 비켜, 물러나, 이런 정도였지만 그게 통했다.

그 동안에 기영은 긴 막대기를 집어 들고 그림자들을 상대했다.

대부분은 피했지만 그럴 수 없을 때는 막대기 끝을 재빨리 상대방의 가슴이나 목에 찔러 넣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한 까닭에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건 자신 있었다.

비록 남의 몸이고 또 약한 여자의 몸이기에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나 가장 힘을 들이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은 처음 봤을 때보다 두어 배는 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들이 모이자 서른 명 가까이 되었다.

그들 또한 철거지대의 폐건물과 폐자재들로 인해 그녀를 완전히 포위하지 못한 채 간헐적으로 달려들었다.

이십여 명의 그림자들은 일부만 습관대로 자신의 연장을 사용할 뿐 나머지는 맨몸으로 그녀를 잡으려 했는데 물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들 중 가장 약한 막내 정도인 단 한 명만 나서도 충분히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십 명이 동원된 것 자체를 쪽팔려하는 게 정상적이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야, 빨리 잡아. 다른 파 놈들이 알면 우린 이 바닥에 못 있어.”

그런 말들을 하는 걸 보면 그들은 여전히 방심하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영은 그 빈틈을 정확하게 알고 파고들었다.

퍽!


“윽.”


휘릭.


하나의 몸에 들어간 두 사람의 협업 또한 유래가 없는 일이었고 처음 잠깐의 삐걱거림 이후에는 작동도 잘되었다.

어느 도구나 그렇듯이 그걸 잘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갖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사용을 못하거나 거의 안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몸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천기영은 몸을 아주 잘 사용하는 부류에 속했다.

한 명 또는 두어 명씩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막대기를 이용해 쿡쿡 찌르고 밀어내면서 점차 그곳을 벗어났다.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던 곳에서 멀어지면서 점점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멀리 시가지의 불빛에 주변이 밝아지는 지점에 이르자 바깥과의 경계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힘껏 달려서 천막이 펄럭이면서 그 사이로 불빛이 보이는 출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앞을 막아선 우뚝한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덩치가 큰 장년의 사나이가 팔짱을 낀 채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서 있는데 그냥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몸집이 기영의 몸과 비슷했지만 몸무게는 조금 더 나갈 정도로 듬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얼굴은 밤인데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는 없었다.

약 10미터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아니 그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백설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비켜!”


순간 사나이가 머리를 옆으로 젖히며 앞에서 날아오는 것을 피하는 몸짓을 했다.

몸이 약간 휘청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비키라고.”


다시 소리 높여 외치자 사나이는 천둥소리라도 들은 듯 움찔하긴 했으나 여전히 굳게 뿌리박은 두 다리는 움직일 줄 몰랐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면 효과가 없나?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아주 없지는 않고 상당히 약해진다고 할까.


설이의 생각에 기영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정면으로 마주친 채 한 동안 대치하고 섰다.

그러는 사이 뒤를 쫓던 사내들이 달려오다 멈춰 섰다.

“형님!”

멈춰 선 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설이의 뒤로 저벅저벅 다가오자 선글라스의 사나이가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다가오지 말라는 뜻인 걸 아는지 다시 멈춰 섰다.

마치 먼 산이라도 바라보듯 그녀를 응시하던 사나이가 선글라스를 벗고는 그녀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동네 주민에게 얘기하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른 힘을 갖고 있군. 백설이라고 했나? 오늘 일은 미안하게 됐네.”

“그건 무슨 소리예요?”

“자네가 누군지 몰라서 장난을 쳐 본 거야.”

“아니 무슨 장난을, 이 따위로······?”

그녀는 기가 막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큰 힘을 상대하는 게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싶었거든.”

“그럼 약한 사람은 맨날 당하고만 살아요?”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당해도 살만 하니까 당하는 거고 굽히는 거잖아.”

“······.”

“당하는 게 억울해서 맞서다가 죽기도 하고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 강해지려고 하기도 하고.”

분하지만 그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같은 사람은 강해지려는 사람, 그 중에서도 실제로 강해지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 특히 자네처럼.”

“댁 같은 사람의 관심은 흥미 없어요.”

“그게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지. 자네가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더 강해질 터이고 그럼 더 많은 인물들의 관심을 받게 될 거야.”


-과연 그럴까?

-도대체 어떤 자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

-우리가 정신적 힘을 사용한 자들 중에 우리의 능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을까?

-아, 적어도 한 명은 있지.

-고등학교 일진 애들 가운데 우두머리인 녀석?

-그래.


설이와 기영은 사나이와 대치하는 중에 빠르게 생각을 나눴다.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은 하겠지만 그게 우리의 힘이라고 여기지는 못할 거 같아. 왜냐하면 거의 믿기 어려운 현상이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도태영이란 녀석은 어린 까닭에 심리적 거부감이 별로 없을 터이고.

-게다가 텔레파시로 대화까지 했잖아.

-그러면 이 아저씨는 뭐야?

-글쎄.

-한 번 읽어볼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었을 때 상대가 알아 챈 적이 있었나?

-없는 거 같아.

-나도 누나의 마음을 잠깐 읽었는데 눈치 채지 못했어. 그렇다고 이 아저씨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잖아. 지금까지 말하는 걸 보면 뭔가 애매해.

-적인지 아닌지도 그렇고.

-만약 적이라면 처음으로 가장 강한 적을 만난 거네?

-그렇긴 한데 내 정신제어가 조금은 먹혀들어갔으니까······.

-일단은 여기서 그냥 넘어가자.

-그래.


“아저씨 이름은?”

“아, 나는 염제성이라고 하지.”


갑자기 이름을 묻자 사나이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뭐하는 사람이에요?”

“이것저것.”

“서문태하고는 어떤 관계죠?”

“그건 말해줄 수 없는데. 왜 그런지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거야, 꽤 똑똑하니까.”

“그럼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요?”

“네 엄마는 우리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 간단한 트릭인데 그거 하나 간파하지 못하고 달려온 것도 반성해야 할 거야.”

조언을 하는 건지 흉을 보는 건지 아니면 비꼬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상대가 대답하자 그녀는 괜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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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양동작전 22.06.03 14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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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체포 22.06.02 13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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