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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5,358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6.0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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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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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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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징검다리

DUMMY

기영은 재빨리 욕실에서 나온 후 누나에게 가서 말했다.


“누나, 나 피곤해서 일찍 잘 거니까 깨우지 마.”

“하루 종일 노는 애가 뭘 했다고 피곤해?”

“노는 게 더 힘들어.”

“하긴, 그건 맞네.”


대답하고는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는 누나의 방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자리에 누운 후 그는 도태영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이 녀석에게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린 후 일을 시키는 게 나을까 아니면 직접 개입해 볼까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게 가능할까?

한 번 해 보지 뭐.

기영은 도태영의 머릿속에 더 깊이 들어갔다.

백설이와 몸을 바꾸었을 때처럼, 욕조에 발을 담그듯 쑤욱 잠겨 들어갔다.

순간 곁에 있던 정신이 움찔하는 듯 잔 떨림이 느껴졌다.

잠들어라.

잠들어라.

생각대로 녀석은 잠잠해졌다.

도태영의 몸을 차지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111동이 바로 보이는 앞 동 현관 옆의 경사진 계단 근처에 앉아 있었다.

어두컴컴해서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 동 앞의 주차장들을 가로질러 도태영이 주의를 집중하고 있던 건너편의 검은 차량으로 걸어갔다.

검은 제네시스는 차창도 짙게 선팅되어 있어 아무리 해도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 그는 허리를 약간 숙인 후 유리를 두드렸다.

얼마 후 스르르 유리가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그를 바라봤다.

그 옆의 조수석에도 비슷한 복장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뭐야 이 녀석은?

-고등학생인가?


눈을 마주치자마자 생각이 읽혔다.

그는 바로 통제에 들어갔다.

사람의 정신이 혼돈 상태에 있거나 타의에 의해 조종되면 그 때부터 기억을 못하게 된다.

그와 설이가 시험해 본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그렇다.

각종 정신병이나 최면 상태에서 그렇다고 한다.

기영은 유리가 다 내려간 운전석 문에 팔을 얹고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서로 가까이 붙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을 번갈아 보는 게 번거로웠다.


-이 쪽은 내가 맡을게.


옆에 있던 설이가 조수석의 남자를 맡았다.

기영이 도태영의 몸을 지배하여 낯선 승용차에게 다가가 남자들과 마주하자 그와 연결되어 있던 백설이도 실이 바늘을 따라가듯, 혹은 징검다리나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듯 함께 낯선 남자들을 보게 되었다.

둘은 서로 소통하면서 각자 한 사람씩 맡아서 정신을 지배했다.

정신제어 상태이므로 상대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묻는 건 다 대답할 테지만 이런 차량은 블랙박스 또한 작동하고 있을 터이고 소리 또한 녹음이 되기 때문에 그냥 말없이 이들의 기억을 스캔하기로 했다.

두 사내는 창문으로 가까이 머리를 들이민 도태영의 눈길에 사로잡혀 움직일 줄 몰랐다.

그들의 기억을 읽는 것은 책의 목차를 보고 해당 페이지를 찾아가는 것과 흡사했다.


제1장, 당신들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


우리는 유원흥신소에서 일하는 팀장 김해명과 팀원 조상인이다.


제2장, 유원흥신소에서 주로 무슨 일을 하는가?


사람을 찾고 뒤쫓고 처리하는 일이다.


제2장 1절, 처리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계속 뒤지자 내용이 나왔다.


감금, 자백, 협박, 배상, 그리고 드물지만 살인도 있었다.


제2장 2절, 주로 의뢰를 받아서 일을 하나?


거의 그렇다.

해당 답변들은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듯 더 구체적인 내용을 읽을 수 있었으나 당장은 그게 급한 게 아니었다.


제3장, 여기서는 뭘 하고 있나?


이 아파트에 사는 천기영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


제3장 1절, 천기영은 왜 감시하나?


의뢰인의 요구 사항이고 이유는 모른다.


제4장, 의뢰인은 누구인가?


유명 법무법인이라고만 알고 있다.


제3장 2절, 의뢰인이 처음부터 천기영을 알고 감시하라고 했나?



유원흥신소에 처음 접수된 의뢰는 역시 동해안에서 백설이를 구해 병원에 데려다 준 남자를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흥신소 직원인 두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사실 경찰도 폭행 피해자를 병원에 옮기는데 쓰인 차량을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다만 범인들이 피해자에 의해 밝혀져 체포되었고 혐의 입증에 어려움이 없어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곧 처음에는 사건의 관련자나 참고인으로 찾으려 했지만 금방 찾을 수 없었고 응급치료 후 피해자가 깨어나 사건의 전모와 가해자들에 대해 진술하자 그녀를 병원에 데려온 인물은 부차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백설이를 납치해 폭행하려다 실패한 인물들, 특히 서문태는 달랐다.

자신의 일을 방해한 놈을 찾아서 잡아오라고 아랫사람들을 닦달했다.

그래서 의뢰가 이루어졌는데 의뢰를 받은 흥신소는 이상한 점을 파악했다.

서문태 일당이 백설이를 유인해 데리고 간 곳이 좀 외진 곳이었다. 우연히라면 모를까 일부러 찾아오기는 어려운 장소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남자는 바로 그들이 있는 걸 아는 듯이 곧바로 달려왔다. 그것도 싸울 준비를 하고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피해자가 휴대폰을 뺏겼으니 전화를 할 수도 없고 또 이미 입을 틀어 막혀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멀리서 그녀가 끌려가는 걸 지켜봤다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직접 달려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를 구해 병원에 데려간 뒤 신분을 감추기보다는 신고를 하는 게 더 간편하니까.

혹은 여자와 아는 사이여서 이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그녀가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뒤쫓아 갔다?

이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정황이긴 한데 그렇다면 왜 정체를 감췄을까?

어쨌든 그런 의문을 안고 며칠을 탐색한 끝에 피해자와 구원자를 싣고 병원으로 간 차량의 소유자를 찾을 수 있었다.

경찰이 공권력으로 일을 해결한다면 그들은 돈과 무언의 압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들은 사건 현장에서 병원까지의 이동 경로에 있는 모든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녹화물을 모두 사들여 뒤진 끝에 두 사람을 태워준 승용차를 찾아냈고 연인 관계인 남녀를 만났다.

물론 두 사람은 천기영과 한 약속도 있는지라 그의 정체를 굳게 함구했다.

하지만 돈과 협박 앞에서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의 신분 따위는 술술 흘러나왔다.

지금은 거의 은퇴한 것과 같은 야구선수 천기영이라는 이름을 의뢰주에게 전달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일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자료를 받아든 로펌의 변호인단은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계의 유망주요 톱스타인 천기영이 왜 흑기사로 행동을 한 직후 정체를 감추었는지 이해를 했다.

그가 언론에 노출되는 순간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온갖 구설에 휘말리게 된다.

단지 많은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한다면야 뭐가 문제이겠느냐만 그게 여론이 되고 여론이 커지면 정치권 및 경찰과 검찰 등의 권력기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문태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 동안에 천기영의 가족관계 및 백설이와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는데 후자는 분명하게 드러난 게 없었다.



약 30분에 걸쳐 여기까지 읽은 기영과 설이는 소름이 좍 끼쳤다.


-저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거야?

-그런가봐. 도태영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조차도 까맣게 모르고 지낼 뻔했어.

-네 누나하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까지 걱정해야 된다는 거네? 나 역시 엄마와 아빠의 안전을 신경 써야 하고.


둘은 도태영을 제자리에 데려다 놓은 후 둘은 대책을 강구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 도움을 청할 데도 없고······.

-태영이를 이용하는 게 어떨까?

-아직 어린애잖아. 미성년자를 우리 싸움에 끌어들이기는 좀······.

-1, 2년만 있으면 성인인 데다가 하는 짓들은 웬만한 성인 못지않지.

-뭐 이 녀석이 내게 관심을 갖고 계속 주변에서 얼쩡거리니까 이용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어···이거 한 번 해 보자.

-뭐?

-방금 들여다봤던 흥신소 사람들 머릿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는 거야. 어쩌면 그 사람들을 상시로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경보장치까지 심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야.

기영은 즉시 김해명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어이 뭐야, 깜박 졸았나?”

“그러게 말입니다.”

“설마 너도 그런 거야? 우리 둘 중의 하나는 깨어 있어야잖아.”

“시간을 보니 30분쯤 됐네요.”

“뭔가 이상하군. 한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다니 말이야.”

“아까 누군가 유리를 두드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을 열었고······.”

“맞아. 어린 녀석이 차창을 두드려 내가 문을 열었고, 그 다음엔 기억이 없어. 혹시 스프레이라도 뿌린 걸까?”

“마취제를 뿌렸다면 뭔가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없어진 것이라도······.”


그러면서 조수석의 조상인은 자신의 주머니를 모두 뒤적거렸다.

위아래 주머니에서 지갑과 휴대폰 등을 꺼내들고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해명 역시 자신의 옷 주머니를 샅샅이 뒤졌고 곧 손에 여러 물건들이 딸려 나왔다.


“그런데 말야, 아까 그 녀석 눈에 익은 거 같지 않던가?”

“글쎄요. 이 주변에서 여러 번 눈에 띄긴 했는데······.”

“여기 사는 놈일까?”

“그렇지 않을까요?

“한 번 알아봐야겠어. 다음에 보면 사진을 찍어둬. 아니, 블랙박스에 찍혔을지도 모르니까 이것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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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검다리 22.06.08 113 2 10쪽
24 타인의 시선 +1 22.06.06 134 2 9쪽
23 어떻게 싸울까? 22.06.04 125 3 10쪽
22 양동작전 22.06.03 143 3 10쪽
21 유인(誘引) +1 22.06.02 129 3 9쪽
20 체포 22.06.02 136 5 9쪽
19 대질신문 22.06.01 146 3 11쪽
18 재조사 22.05.30 14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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