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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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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0
추천수 :
138
글자수 :
133,679

작성
22.05.2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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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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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빙의 (憑依)

DUMMY

저녁 식사는 알아서 마련해 보라며 다시 몸을 맡기고 그녀가 나간 뒤 그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둘러보며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미리 생각해 두거나 준비한 것도 없이 특별한 요리를 하기는 어려워 냉장고 안에 있는 것으로 국과 찌개를 하고 계란찜과 나물 무침 두어 개를 했다.

그렇게 식탁이 하나하나 채워지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엄마가 돌아왔다.


“식사 준비하니?”


지나가면서 주방을 슬쩍 훑어보는 엄마의 눈빛이 이상했다.

힐끔 바라보니 의아한 얼굴로 그녀와 식탁을 번갈아 보는 것이었다.


“너 원래 이런 거 안 하지 않았어?”


그런 거였나?


“아, 제대로 한 번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러면서도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근래 들어 딸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나 보다.

역시 화장을 지우고 손발을 씻은 후 식탁에 앉은 엄마는 어디 우리 딸이 한 음식을 먹어보자, 하며 수저를 들었다.

국과 찌개 등을 떠먹어 본 엄마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리는 언제 이렇게 배운 거야?”

“그냥 인터넷 보고······.”

“맛있네.”


그리고 배고픈지 바쁘게 이것저것 입에 넣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맛있게 느껴진 걸 거야.”

“그건 어른들이나 하는 말인데?”

“그런가, 우리도 다 쓰는데? 시장이 반찬이다, 이런 말 다 알고 있거든요.”

“흠, 아무래도 이상해······.”


엄마는 수저를 손에 든 채 건너편에 앉은 그녀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하.

그는 역시 중년의 미인형인 엄마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딸의 몸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걸 알아챈 건가?

어차피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든 그녀가 쏙 들어올 수 있지만, 일단은 서로 몸을 바꾼 채 얼마나 지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니 들키지 않았으면 싶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을 슬쩍 외면한 채 음식을 먹으면서 어쩌면 아주 가까운 사이라면 알아챌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지켜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너무 가깝고 너무 익숙하면 식탁에 앉는 자세며 숟가락질 하나까지 다르게 느껴질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그냥 넘어갔다.

어쩌면 모르고 있거나.

이게 어쩌면 같이 지내는 사람의 친밀도나 관심 정도를 시험해 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경찰서에서 담당 형사를 만난다고 하지 않았니?”

“응, 점심시간 전에 가서 만났어요.”

“무슨 얘기를 나눴니? 검사와 했던 거랑 달라?”

“거의 같아.”


그는 오늘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 양혜련 여사가 담당형사인 정기준의 안이한 일처리를 딸이 질책했다는 대목에서는 눈을 치켜뜨고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정말 그랬어?”

“응.”

“네가 폭행범들을 다시 조사하라는 말을 했는데 형사가 고분고분 받아들였다고?”

“그렇다니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엄마에게도 같은 식의 설득, 혹은 카리스마를 써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엄마가 정신과의사라는 걸 깨닫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알아차릴지도 몰라.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아빠도 돌아왔다.

아빠 역시 저녁을 안 먹고 들어왔는지 식탁을 치우기 전에 손만 씻고 자리에 앉았다.


“못 보던 모습인데, 이건 누가 차린 거야?”

“당신의 재주 많은 딸.”

“예쁘고 재주 많은 딸이지. 그런데 우리 딸이 이런 정식의 가정식을 차렸다고?”

“그렇다니까.”


그녀가 밥과 국을 떠서 앞에 놓아주자 수저를 들고 먹어본 아빠가 감탄을 했다.


“맛도 훌륭하고.”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 물론 나는 안 보내겠지만.”

“왜 안 보내?”

“이제 겨우 이런 맛있는 가정식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벌써 보내면 어떡해?”

“겨우 그런 이유로?”

“아빠, 요리 잘해야 시집갈 수 있다는 생각은 좀 낡지 않았어요?”

“아, 그렇구나. 미안하다. 그런데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엄마한테 다 얘기했으니 엄마에게 들으세요.”

“그래. 같은 내용을 두 번 말하기도 피곤할 테니. 들어가 쉬어라.”


아빠의 말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왔다.

더 오래 있으면서 얘기를 하다 보면 딸의 몸에 생판 낯선 남자가 들어서 있는 게 들킬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럴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원위치하면 되기는 하다.

사실 지금도 천기영이 백설이의 몸을 제어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천기영이라기보다는 백설이가 일부 섞여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말투가 저렇게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책상 앞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거실에서 둘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방문이 닫혀 있고 거리가 멀어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는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눈을 감고 방금 떠나온 식탁 주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녀가 있던 장소.

서서히 그 이미지가 선명해지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습들이 드러났다.

식사를 끝낸 엄마와 아직 식사중인 아빠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신은 없었다.

그녀 자신이 없다면 이 모습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다시 가만히 집중하니 엄마가 조곤조곤 오늘 그녀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아빠는 국에 만 밥을 떠먹으면서 듣고 있었다.

엄마가 말하는 내용도 선명하게 들어왔다.

이건······?

투시인가?

투시도 가능한가 싶었다.

한참 동안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전달하고 난 뒤 엄마가 말했다.


“큰일을 겪고 난 뒤부터 우리 딸이 많이 변한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보통 그 정도의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변해도 나쁘게 변하지 않아?”

“그렇지. 트라우마라는 게 본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우리 딸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변한 것 같으니까 당황스럽군. 당신은 이런 사례를 꽤 봤을 텐데?”

“성폭행이나 데이트 폭행, 스토킹 피해 등을 당하고 내게 맡겨진 환자들이 꽤 되는데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긴 하지. 나도 설이가 폭행을 당했다고 하자 상당한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며칠을 빼고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니까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그러네.”

“좋아졌으니까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거지?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더.”

“당신은 그래도 되지만 내 입장은 안 그래.”

“지금까지의 임상 사례와 달라서?”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 수 없는 게 있으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불안하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불쑥 튀어나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거야.”

“반대의 경우라면?”

“이를테면 이런 거야,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있는데 분야나 종류는 다양해. 선천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사고 등으로 생기기도 해. 특정 분야에 있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거야.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거나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지.”


그 정도는 안다는 듯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게 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해, 대부분은 평생 유지되지만. 그럼 평범한 사람으로 되돌아오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

“아니면?”

“죽거나 바보가 되거나······.”

“거기에 의사나 과학자가 개입할 여지는 없는 건가?”

“거의 그래.”

“그건 마치 신의 장난 같군.”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가만 보면 의학의 영역에서는, 특히 정신과 분야는 당신이 말한 신의 장난 같은 일들이 꽤 있어.”

“그렇다면 우리 할 일은 분명하네. 다른 부모들처럼 조용히 지켜보는 것.”

“그게 정말 부모의 역할일까?”

“할 수 없는 일까지 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아빠와 엄마는 그녀가 있는 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 시간 건장한 남자의 육체를 뒤집어쓴 설이는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걸으며 그 육체의 에너지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드 티 트레이닝복에 마스크를 쓰고 낯선 거리를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나와 상가를 걷고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가볍게 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의 한편에서는 다른 채널을 구경하듯 보광동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속속 관찰했다.

이쪽에서 볼일이 많거나 하면 이쪽으로 집중했다가 다시 기영이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 쪽에서 파장이 느껴지면 그쪽으로 마음의 시선을 돌리니 정신이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진정한 멀티태스킹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투시도 가능한 거였어?

그녀는 두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고 또한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의 대화를 들으며 언젠가는 자신들의 능력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랬을 때 두 분이 얼마나 놀라고 걱정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걷는 중에,

“억!”

마주보며 걸어오는 사람들과 슬쩍 부딪쳤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큰 신음소리를 내며 가슴을 안고 주저앉았다.

그리 좁지 않은 길이었는데?

어쨌든 부딪쳤으니 사과는 해야 했다.

“어, 미안해요.”

그리고 지나쳐 가려는데 두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와, 이거 도둑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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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양동작전 22.06.03 14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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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체포 22.06.02 13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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