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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디페랑스
작품등록일 :
2022.05.13 00:31
최근연재일 :
2022.06.18 17:15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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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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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4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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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교환(交換)

DUMMY

이 사례 중에서 두 사람에게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텔레파시였다.

특정 사물을 접촉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없는 듯했다.

시야를 차단한 걸 뚫고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투시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는 천리안 등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영이 누나의 눈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얼핏 엿본 적이 있고 설이가 검사와 대화할 때 상대의 마음의 움직임을 간파하기도 했다.

오늘 경찰서에서 정기준 형사와 대화를 나눌 때도 더 확실하게 보였다.

그 다음 정신조작 역시 정기준을 통해 되는 것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

이쪽에서 권하거나 명령하는 걸 수행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가능한지는 지속적으로 시험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

가족을 상대로 하는 게 가장 안전하긴 한데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다.

뭐 앞으로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차분히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건 백과사전의 초능력 항목에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서 수없이 등장한 사례인 빙의(憑依)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그 많은 사례 가운데 한 사람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들어있는 건 빙의가 아니라 이중인격, 다중인격인 것으로 여겨졌다.

둘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빙의 가운데 천기영과 백설이가 안 해본 것이 육체교환이었다.

서로의 몸을 바꿔서 지내본다?

어떻게 생각해?

해도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바뀌어도 우리의 정신은 계속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바뀌었는데 되돌아가지 못하면?

지금 상태라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 않아?

지금도 얼마든지 상대방의 몸속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잖아.

그렇지.

그런데 우리 말이야.

응?

너무 잘 맞는 거 같지 않아?

너무, 라는 건 좀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 한 사람의 마음도 서로 두세 개가 나뉘어 갈등하고 싸우잖아. 그런데 우리는 명백히 둘이면서 하나의 마음에 다른 마음이 반대하지 않고 무조건 동의하니 말이야.

그래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느낌도 들어서 말이야.

그게 무서워?

아, 샴쌍둥이처럼 붙어 있는 우리 마음을 떼어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

너의 두려움이 나를 떨게 만들고 있어.

이미 되돌아갈 지점을 지난 건 아닐까?

그럼 아까 말한 하나만 해 보고 일단 분리해 보자.

그래.

그 순간 두 개의 마음 중에서 천기영의 것이 백설이의 몸에 들어왔고 한편 집에 있는 천기영의 육체에는 백설이가 들어가 자리 잡았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의식, 주체, 의지, 자아······.

그리고 나.

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애매하다.

그에 비해 몸은 확실하다.

이 몸은 그녀의 것이 분명하고 누구나 그녀의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백설이로.

그런데 궁금했다.

지금 그에 의해 움직여지는 이 아름다운 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지금도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은 여전히 백설이로 생각하며 대하게 될까?

기영은 버스 유리창에 비친 낯선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느덧 보광동의 집 근처에 다다라 그, 혹은 그녀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그에게 넘겨주고 떠났지만 의식의 연결은 되어 있는 상태라 그녀가 알고 있는 건 다 알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가는 길과 집 대문의 비밀번호까지.

혼자였으면 언제 발현되었을지 모를 에스퍼로서의 능력이 그녀, 백설이와 우연히 마주치면서 개화하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상호작용을 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는 짝이었으며 훌륭한 연습 상대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야구 선수로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 때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 때는 단지 감이 좋다고만 생각했다.

기본적인 오감과 거기에 더해 특히 예민한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육감(六感)이 발달했다고.

여섯 번째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다섯 개의 감각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감각이다.

사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예감이나 예지, 또는 영감일 수도 있는 이 여섯 번째 감각의 정체가 텔레파시이고 독심술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빙의까지 이루어지고 있을 줄이야.

그는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백설이의 육체를 다시 살펴보았다.

버스에서도 그렇지만 정류장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타인의 시선은 그도 수 없이 받은 적이 있다.

몇 년을 스포츠 스타로 보냈으니까 개개인의 시선뿐 아니라 카메라 세례도 수없이 받았다.

선망과 환호.

하지만 지금 받는 시선은 달랐다.

뭔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은밀함과 욕망이 느껴졌다.

물론 찬탄의 눈길도 있었는데 그건 주로 어린 사람들에게서이고 또 여성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보는 듯 안 보는 듯 힐끔거리는 게 가장 거슬렸다.

바로 저거구나.

훔쳐보는 것이란.

대문 안으로 들어서기 전 그는 슬쩍 뒤를 돌아다보았다.

자신이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방향을 바꿔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남자.

아마도 경호회사에서 붙여둔 사람일 것이다.

24시간 밀착 경호란 게 참 묘하다.

대상이 모르게 뒤따라가는 미행과는 달리 보호 대상이 알아도 상관없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한다.

보디가드로서 노골적으로 경호를 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면 웬만한 사람은 접근을 못하게 만드는 예방 효과가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치밀한 사람, 이를테면 암살자에게는 오히려 독이 된다.

한편 하루 종일 남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 쉬운 것 같지만 상당한 심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노동량으로 치면 웬만한 중노동 못지않은데 대부분 쉬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온 그는 하루 종일 비어 있던 거실과 방들을 대충 둘러보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얼핏 그녀의 눈을 통해서 봤던 방인데 직접 보게 되니 신기했다.

침대와 옷장, 책장, 화장대 등이 있는 방은 자신의 방과 비슷한 넓이인데 아주 깨끗하고 단정했다.

장식도 별로 없고 벽에는 그림이 몇 점 걸려 있었다.

이제 뭘 하지?

씻고 저녁 준비해야지.

저녁을?

응, 거의 혼자 먹는 편이지만 넉넉하게 준비하면 엄마 아빠가 식사를 하지 않고 들어올 때 같이 먹기도 하거든.

그렇군.

그는 목욕가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고 거울 앞에 서니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의 젊은 여자 모습이 드러났다.

사춘기의 왕성한 에너지를 운동으로 해소한 까닭인지 성적인 부분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그 피크를 지나서 세상 아름다운 여자의 육체를 직접 보게 되다니.

그게 그렇게 넋을 잃고 감상할 정도야?

잘은 모르지만 매우 아름다워.

네 몸도 멋있네. 실물로는 처음 봐.

그렇지, 우리 둘 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몸을 갖게 됐어.

무엇보다 신기한 게 키가 원래 나보다는 20센티는 크잖아. 눈높이가 훨씬 올라간 느낌이어서 세상이 다 내려다보이는 것 같다.

그런가? 어쩐지 좀 답답하더라니.

하하. 키가 크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알겠어. 이 몸의 키가 몇이야?

187인가, 그래.

난 166이니까 20센티미터가 넘는구나.

감상은 그것뿐인가?

음, 더 자유로워진 느낌? 막 달리고 싶고 팔다리를 휘둘러보고 싶고······. 이런 몸이라면 뭐든지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그래도 돼? 혹시 고장이라도 나면?

그럼 뭐 고치면 되지. 그렇다고 너무 함부로 굴려선 안 돼.

당연하지. 내 몸도 소중히 다뤄 줘. 난 이제 천하의 천기영 몸을 탐색할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접속을 끊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는 설이의 몸을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씻었다.

평소 자신의 습관대로 때를 밀기 위해 온 몸을 박박 미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런 아름다운 몸은 때도 없을 것 같지만 부드러운 샤워 타올로 비누칠만 하고 씻으려니 말끔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뭐 하루 이틀뿐이니.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알몸 그대로 나와 옷장을 여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맨몸으로 돌아다니면 안 되지.

아, 이런 건 좀 불편하군.

옷장에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입을까 생각하다가 방금 전 옷을 벗었던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그 반대로 팬티와 블레이저를 입고 반바지와 티를 걸쳤다.

그리고 일어서 주방으로 가려는데 또, 그러고 나서려고?

뭐가 또 있나?

화장도 해야 하고 머리도 손질을 해야 되잖아.

아니 집에 와서도 또 화장을 해?

누나 있다면서 누나 하는 거 보지도 못했어? 간단하게 비비크림이나 피부 보습제 정도 발라줘야 하거든. 주방 일 하려면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야 하고.

그런가? 하지만 난 해 본 적이 없어서 쉽지 않겠는 걸.

어쩔 수 없네. 내가 또 잠시 들어가 봐야겠어.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재빠른 동작으로 손등과 얼굴에 크림 한두 개를 착착 찍어 바르고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그가 어깨너머로 물러나 제대로 구경할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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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체포 22.06.02 136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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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재조사 22.05.30 144 3 9쪽
17 읽혀버렸다 +1 22.05.28 166 4 10쪽
16 일진 22.05.26 165 4 9쪽
15 빙의 (憑依) +1 22.05.25 18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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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심문(審問) 22.05.23 180 4 9쪽
11 융합(融合) 22.05.21 195 4 10쪽
10 반전(反轉) 22.05.20 178 5 9쪽
9 신변보호 22.05.19 185 4 10쪽
8 협박 22.05.18 200 4 9쪽
7 확장(擴張) +3 22.05.17 217 6 9쪽
6 텔레파시 22.05.16 238 6 10쪽
5 여보세요 / 누구세요? 22.05.15 255 5 10쪽
4 진술보다 정확한 그림 22.05.15 256 9 11쪽
3 응급실에서 사라진 남자 22.05.14 270 11 9쪽
2 야구선수 천기영씨 아닙니까? 22.05.13 290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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