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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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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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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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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프로디시아스

DUMMY

아프로디시아스 선택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인구 10만 도시에서 이주민 5천명을 한번에 소화할 수 있는 장소는 신전이 유일했다.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 한 켠은 불안했다. 항구 관리 뒤에 서있는 사제들의 뜨거운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나같이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예쁘다.


신관복도 달랐다.


다른 신전처럼 깨끗한 하얀 옷에 신성한 머리띠를 두른 것이 아니었다. 얇은 린넨 소재로 허리띠 주름과 가슴골 주름으로 간신히 치부를 가리는 아찔한 옷이었다. 연한 노란색, 하늘색, 연두색 등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깔은 신관의 머리색과 어울렸다.


의상 코디가 따로 있는 걸까.


풀로 녀석 헤벌쭉한게 넋이 나간 얼굴이다.


조심해야 한다.


장미가 예쁘다고 덥썩 잡으면 가시에 찔릴 것이다.


“아폴로니스 왕자님의 아프로디시아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아프로디테 신전 여신관 트리안테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트리안테. 쉴 곳을 제공해준 아프로디테 신전에 감사드립니다.”


트리안테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고혹적 웃음소리가 들릴듯 말듯 사람을 집중시켰다. 입을 열기 전 반드시 눈맞춤부터 하는게 예사롭지 않았다.


몸동작 하나하나 유혹 스킬이 배어있다.


“아프로디테 신전은 왕자님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아도니아와 헬레네가 미녀 군단 사이를 끼어들었다. 레이저를 쏘아댈 것처럼 눈빛이 이글거렸다.


“같이 가요 왕자님. 이보세요, 조금 떨어져주시겠어요?”


트리안테가 웃으며 끄덕였다.


“이오니아 지방 그리스 신전을 돌며 왕자님을 도운 사제분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여사제들이 아도니아와 헬레네에게 여자식 대화를 걸었다.


“두 분 다 피부가 고와요. 화장품은 뭘 쓰나요?”


“흐음 향유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무토 공방 제품이네요. 역시 향유는 무토 공방이죠.”


“머리에 입체감을 주면 더 예쁠 것 같아요. 숯불 화로 인두(로마식 고데기) 써볼래요?”


“옷도 너무 평범하다. 둘에게 어울리는 신관복이 있어요. 한 번 입어볼래요?”


아도니아와 헬레네가 서로를 바라봤다.


일에 치여 잊고 있었지만 둘은 십대 소녀였다. 사탕을 처음 먹은 아이 마냥 미용과 패션 이야기에 사르륵 녹아내렸다.


“저, 정말 입어봐도 되요?”


“제가 골라줄게요. 이쪽으로 와요.”


아도니아와 헬레네가 떨어져 나갔다. 뒤에 선 풀로도 이상했다. 기역자로 몸을 구부리며 걷는게 불편해 보인다.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여사제들이 까르르 웃었다.


“왕자님 호위는 어디가 불편한 모양이네. 이리 와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저, 정말입니까?”


풀로가 슬쩍 눈치를 본다.


“윽 윽. 하마랑 싸우고 오른쪽 어깨가 갑자기 쑤시네.”


기가 찼다. 구부정하게 걷는 거랑 어깨 아픈 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째려보니 재빨리 덧붙였다.


“그때 왕자님을 구하기 위해 무리했나 봅니다.”


슈발··· 목숨빚을 언급하니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에우메네스를 바라봤다.


“제가 풀로 대신 호위하겠습니다.”


“가서 치료(?)받고 와. 저녁때까지 돌아오도록.”


“감사합니다 왕자님.”


풀로가 신관을 안아들고 나는듯이 뛰어갔다. 어깨 아프다는 녀석이 잘만 뛰어가네.


한노도 벌개진 얼굴로 여사제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렇게 주변인이 떠나고 에우메네스만 남았다.


잠시 후 신전에 도착하였다.


보통 그리스 신전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짓기 마련인데 아프로디테 신전은 주변 경관과 조화를 추구하는 느낌이었다. 신전 앞 큰 인공 연못이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공원 같았다. 대리석 파빌리온(서양식 정자)과 나무 그늘마다 하늘하늘한 옷을 걸친 사제들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사제들이 많이 보여요.”


“아프로디테 신전의 특징이에요. 신전을 방문한 분들의 활발한 기부 덕분이죠. 어린 노예를 구입해 신전에 기부하면 신전은 사제로 키운답니다. 그리스 전성기 코린토스 아프로디테 대신전 사제 수가 천 명을 넘었다 해요.”


아프로디시아스가 막연히 클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을 훌쩍 넘는 규모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업소가 아닐까?


대사제가 마중나왔다. 천천히 세월을 겪은 기품있는 여배우 같았다.


“포파스 아프로디테 신전 대사제입니다. 아프로디시아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나는 예물을 꺼내 신전 제의를 준비했다. 제물로 드릴 암송아지 말고도 준비한 선물이 잔뜩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산 향유, 맥주, 도자기, 페르가몬 상단의 빛나는 보석과 샴페인. 무엇보다 쩌는 건 옷감이 가득 실린 수레였다. 이정도면 이주민 하룻밤 숙박비 10배는 될 것이다.


신전 사제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랍습니다. 이렇게 많은 옷감은 처음 보네요. 어디서 구하셨는지 여쭤도 될까요?”


“직접 만들었습니다.”


“네? 이 많은 양을 만드려면···”


“가정집에서 한 필 두 필 모은 게 아닙니다. 이주민 전체가 함께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쉽게 상상이 안가는군요.”


“제 정착촌은 여성도 노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가졌다는 점에서 아프로디테 신전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왕자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대사제가 신전 내부를 안내했다.


신전 중앙의 아프로디테 여신상 역시 크고 웅장하지 않았다. 대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크기 대신 아름다움을 택한 것일까? 그리스 전역을 돌며 수많은 예술품을 감상했지만 단연코 최고였다.


“피그말리온 고향이 키프로스섬이었지.”


자신이 조각한 상아 인형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피그말리온은 사랑의 여신께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감동한 아프로디테 여신이 아들 에로스로 하여금 숨결을 불어넣어 인형을 사람으로 바꿔준다.


피그말리온은 알고 있을까?


2천 년 후 자신의 후배 덕후들이 미소녀 베개와 사랑에 빠질 거란 사실을.


만찬 후 심포지온(그리스식 술연회)이 시작되었다.


나는 장의자에 누워 방석과 담요를 부탁했다. 키가 작은 내게 장의자는 맞지 않다.


“제가 대신할게요.”


트리안테가 장의자에 올라와 무릎 베게를 해준다.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고마워요.”


“왕자님처럼 잘생긴 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랍니다.”


심포지온은 즐거웠다. 문학과 철학, 정치를 오가는 높은 수준의 대화가 오갔다. 고전 철학에서 내가 주창한 신학까지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헤타이라가 떠올랐다.


가장 낮은 신분인 포르네는 에페수스 발자국 창관처럼 거리에서 일한다. 중간 신분이 무희들로 신전과 귀족가에 소속되어 일한다. 가장 높은 신분이 헤타이라로 이들은 지식과 용모를 모두 갖춘 인재다.


신전의 주요 고객이 상인과 뱃사람, 헤타이라의 고객은 정치가, 철학자. 하는 일은 같지만 고객이 달라 겹치지 않는다. 협력 관계가 되기 충분했다.


헤타이라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소속되어 신변 보호를 받았고, 신전은 헤타이라의 정치적 영향력과 주요 정보를 공유했다.


내 명성을 알고 있다면 오늘 자리에 헤타이라가 참석해도 이상하지 않다.


트리안테가 포도주 도기 주전자를 가져왔다.


“키프로스산 포도주는 이집트에서 많이 수입해요. 이 포도주는 아프로디테 여신께 봉헌한 최고금품이랍니다.”


“아··· 포도주하니 제 샴페인을 깜박했군요.”


나는 시종에게 샴페인을 가져오도록 했다. 맛을 본 여사제 모두 탄성을 질렀다.


“이런 포도주는 어떻게 만드신 건가요?”


“아테나 여신께서 주신 지혜 덕분입니다.”


“저희에게도 여신의 지혜를 알려주면 안될까요?”


“여신께서 자신의 지혜를 함부로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끊을 것은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트리안테가 곧바로 사과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해요.”


트리안테가 키프로스산 포도주를 권했다.


맛은 괜찮았다.


······


······


이상하다.


물 탄 포도주가 이리 셌던가.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발개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어느새 반쯤 옷을 벗은 트리안테가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자주색 히마티온이 벗겨져 있었고 튜닉도 풀어해친 상태였다.


트리안테를 말려야 하는데 몸이 나른하다. 취한 건지 졸린 건지 모르겠다.


······.


대화 주제가 옷감으로 바뀌었다.


이상하다.


아까 샴페인과 달리 비밀이 술술 나온다.


나는 방적기와 방직기 개념을 설명했다.


똑똑한 헤타이라지만 기계를 이해할 리 없다. 공학은 철학과 교양과 너무 다른 지식이었다. 열 번쯤 말했나. 말하는 나도 듣는 여사제도 지쳤다.


간신히 개념만 이해한 대사제가 말했다.


“... 왕자님의 공방은 개개인이 작은 베틀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큰 베틀을 돌려 작업 효율을 높인 것이군요.”


“그, 그렇습니다.”


“왕자님 베틀을 아프로디테 신전에 전수해주십시오. 일하기 어린 사제와 늙어서 은퇴한 사제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꺼이 그리 하겠···”


승낙하려는 순간,


쾅!


옆방의 에우메네스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박력있게 걷어차는 모습이 매일 열심히 운동하는 헬창답다.


에우메네스가 함께 누운 트리안테를 거칠게 몰아냈다.


“꺄아악.”


내 몸을 잡아 흔들었다.


“왕자님, 깨어나십시오.”


“으, 응?”


에우메네스가 날 업고 신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풍덩.


인공연못에 던졌다.


뽀그르르.


공기가 빠져나가고 연못물이 입 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 연못물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푸 어푸 살려줘.”


에우메네스가 바로 건져올렸다.


“괜찮으십니까?”


“콜록 콜록. 물에 빠트려 놓고 괜찮냐 묻다니..."


“농담하는 걸 보니 정신차리셨네요.”


“고마워. 정신차리는데 겨울 연못이 직빵이었어.”


빠드득.


이가 갈린다. 아홉살 어린애한테 약을 타다니··· 하마터면 내 지적재산권이 홀랑 넘어갈 뻔했다.


“풀로랑 호위대 전부 불러와. 데려와서 연못에 빠트려.”


잠시 후 연못 입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풀로, 정신드냐?”


“... 네.”


“가서 나뭇가지 좀 꺾어와. 무기 대신 쓴다.”


대사제와 고위 사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신전 고용인이 몰려들었지만 풀로의 상대가 될 리 없다. 풀로의 살기에 눌린 고용인이 뒷걸음질쳤다.


대사제가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왕자님.”


“죄송할 짓을 왜 해?”


······


“나랑 좋은 인연 이어가고 싶다며? 뒤통수치는게 좋은 인연이냐?”


“대사제로서 이번 일에 책임지겠습니다. 원하는 보상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멈칫했다. 화가 나는데 이성이 억누른다.


이건 기회다.


나는 문화를 전하고 문화를 팔아야 하는 사람이다. 단지 옷 팔고 끝날게 아니라 패션을 주도해야 하고, 트렌드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내 사업에 디테일을 더해줄 전문직이 필요했다. 패션 디자이너, 헤어드레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프로디테 신전은 내가 바라는 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화려한 신관복. 피부 미용. 유혹과 잠자리 기술.


이들이 가진 기술 모두 손에 넣을 것이다.


“사제 오백 명을 데려가겠습니다."


대사제가 눈물을 쏟으며 호소했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너무 많습니다. 오백 명이나 데려가시면 저희 신전은 굶어죽습니다.”


“현역 말고 은퇴 사제 위주로 보내요. 악기 연주 잘하거나 손기술 좋거나 옷감 보는 안목이 좋거나, 잠자리 기술이 뛰어나면 나이 관계없이 받아들입니다. 모자라면 이오니아나 그리스 아프로디테 신전에 부탁하세요."


“저, 정말입니까?”


대사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많은 아프로디테 신전 여사제가 고민한다. 나이가 들면 손님이 줄고 외면받는다. 결혼을 할 수 없는 특수 직종에, 배운 기술이 한정적이다 보니 은퇴 후 생계가 막막하다. 신전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갈 뿐.


왕자의 요구는 오히려 고마운 제안이었다.


“트리안테는 대사제로 데려갈겁니다. 헤타이라도 몇 명 데려갑니다."


아도니아와 헬레네가 끼어들었다. 나이 안어울리게 화장하고 머리 볶은 모습이 우스웠다.


“옷 골라준 사제랑 머리 볶아준 사제도 데려가주세요.”


“다 데려가.”


특수기술직 오백 명 확보.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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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베두인 족장 2 +12 22.07.05 2,894 123 12쪽
50 베두인 족장 +5 22.07.04 2,918 122 12쪽
49 농사 계획 +14 22.07.02 3,101 117 13쪽
» 아프로디시아스 +11 22.07.01 3,053 121 12쪽
47 이주선은 사랑을 싣고 +9 22.06.30 3,123 117 13쪽
46 사라진 보물 3 +6 22.06.29 2,999 139 13쪽
45 사라진 보물 2 +15 22.06.28 3,016 109 12쪽
44 사라진 보물 +7 22.06.27 3,062 1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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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자숙 +7 22.06.23 3,047 134 13쪽
40 수문 공사 +10 22.06.22 3,093 136 12쪽
39 신병의 하루 +10 22.06.21 3,181 142 14쪽
38 정착촌 도착 +10 22.06.20 3,169 124 13쪽
3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11 22.06.18 3,246 132 13쪽
36 첫 이주민 모집 +14 22.06.17 3,282 131 13쪽
35 연계기 +6 22.06.16 3,268 135 13쪽
34 테베 +12 22.06.15 3,421 127 13쪽
33 프톨레마이오스 12세 4 +7 22.06.14 3,443 135 12쪽
32 프톨레마이오스 12세 3 +9 22.06.13 3,476 152 13쪽
31 프톨레마이오스 12세 2 +7 22.06.11 3,515 150 12쪽
30 프톨레마이오스 12세 +5 22.06.10 3,618 140 12쪽
29 이시스 대신전 +12 22.06.09 3,565 162 12쪽
28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3 22.06.08 3,641 156 12쪽
27 신탁 해석 +11 22.06.07 3,809 162 13쪽
26 델포이 신탁 +9 22.06.06 3,813 154 12쪽
25 페르가몬 도서관 +14 22.06.04 3,863 161 13쪽
24 식물학 백과 사전 +12 22.06.03 3,977 1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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