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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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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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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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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숙

DUMMY

알렉산드리아 저택.


저택에서 가장 넓은 내 방은 수직으로 선 청동관 다발로 가득하다. 영화속 파이프 시티를 보는 것 같다. 방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은 크세티비우스의 기존 설계도를 아득히 벗어난 사이즈였다. 이 정도면 유럽 대성당 파이프 오르간과 맞먹는다.


단순히 크기만 키운 건 아니다. 고래 울음소리 극저음부터 익룡 비명소리 초고음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4단 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겐 고마운 녀석이다.


웅장하고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 덕분에 내 유압기관, 방적기, 방직기 부품도 끼워넣기 제조가 가능했다.


“이 시끄러운 게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습니다.”


“잔소리 말고 팍팍 밟아.”


“네에 네에.”


풀로가 툴툴거리며 페달을 밟는다. 커다란 관을 진동시키려면 입으로 부는 힘으론 어림도 없다. 풀무 역할을 하는 페달을 힘껏 밟아야 소리가 울린다.


역시 힘쓰는 건 풀로가 딱이다.


부우웅.


낮은 도(C)가 방 안을 울린다. 나는 한 옥타브 올려서 높은 도를 눌렀다.


신기하다.


파이프 길이 절반을 줄이면 한 옥타브 높인 도(C) 소리가 난다. 2/3로 줄이면 제법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 솔(G)이다. 정수비에 따라 파이프 길이를 조절하면 5음계를 찾아낼 수 있다.


피타고라스 음률이다.


조율을 위해 초청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수학자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완벽합니다.”


“어디 한 번 연주해볼까나···”


5음계에 알맞은 곡조로 아리랑을 택했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웅장한 백그라운드에 구슬픈 선율이 연주되었다.


나는 스톱퍼를 눌러 페달 공기 통로를 바꿨다.


사운드 이펙트처럼 소리가 달라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페달을 밟던 풀로가 감탄했다.


“끝내주네요. 이게 이런 악기였습니까?”


“먼훗날 사람들(중세 사람)은 신전(대성당)에서 이 악기로 신을 찬미할거야.”


조율이 끝났다고 제작이 끝난 것은 아니다. 파라오 품격에 맞게 악기를 장식해야 한다. 나는 왕실 장인들을 불러 외관 장식을 의논하였다.


“청동관은 금세공 장인이 맡도록 할게요. 아폴론 찬가를 주제로 금박 조각을 새기세요. 건반은 목공 장인이 상아를 깎아 제작합니다. 건반 넷은 호루스신, 오시리스신, 아몬-라신, 이시스 여신의 음계로 지정합니다. 신에 맞는 조각을 새겨주세요. 아, 연주석 사방으로 스핑크스를 배치할 겁니다. 석공은 대리석 조각을 부탁해요.”


왕실 장인들이 내 주문에 따라 세공 작업에 들어갔다. 한 달 후 투박한 외관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악기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재탄생했다.


파이프 오르간은 커다란 물소 여덟 마리가 끄는 초대형 수레에 실려 궁전으로 보내졌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어지간히 악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연회 시작하자마자 연주석에 앉았다.


폭넓은 음역대.


막강한 사운드 이펙트.


동시 연주가 가능한 건반.


커다란 청동관을 울리는 파이프 오르간은 관악기 특성을 가진 건반 악기다.


웅장한 사운드를 위해 왕실 피리 합주단을 창설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니었던가. 혼자서 합주단 출력을 내는 악기가 주어지자 살판났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힘센 풀로가 페달을 밟아 출력을 맡고, 내가 사운드 이펙트에 해당하는 스톱퍼를 맡고, 파라오는 편하게 건반만 누르면 되었다.


나는 파라오의 현란한 건반질에 맞춰 정신없이 스톱퍼를 바꿔야 했다. 새벽 무렵 견디다 못한 내가 쓰러졌다. 파라오는 풀로를 붙잡고 밤을 꼴딱 샜다 한다.


다음날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다크써클 가득한 눈으로 어전에 나왔다. 관리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나를 치하하였다.


“아폴로니스 수고많았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늦게나마 파라오의 기대를 부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하라. 이루어주겠다.”


이 아저씨··· 로마에 돈 바치느라 국고도 텅 비었으면서 생색내네. 하긴··· 돈 아낄 생각이 있었다면 흥청망청 노는 습관부터 고쳤겠지.


“시대를 이끄는 음악인과 연주할 수 있는 영광을 얻어 기쁠 따름입니다.”


“하하하 나 역시 자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기교만 갖춘 그저 그런 음악인으로 남았겠지. 그렇지 않나 시종장?”


흘끔 옆을 쳐다봤다. 시종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시종장이 소개한 음악가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마음 같아선 내 딸을 주어서라도 자넬 궁전에 계속 붙잡아두고 싶어.”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


프톨레마이오스의 자식은 현재 딸 둘이다.


8살 베레니케, 6달 갓난아기 클레오파트라.


베레니케.


클레오파트라 언니 베레니케 미모 역시 역사에 기록될 만큼 예쁘다. 나랑 한 살 차이니 나이도 적당하다.


하지만···


베레니케는 위험하다.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축출하고 파라오로 추대되었을 때, 그녀는 간섭받기 싫다고 남편을 독살하고 정권을 독차지하였다.


아버지처럼 사치와 허영으로 매일 연회를 벌이고, 보석과 사치품에 펑펑 돈을 썼다.


베레니케는 피해야 한다.


클레오파트라.


솔직히 클레오파트라는 욕심난다. 세계적 미인을 걷어찬다면 씹선비 아니면 고자 둘 중의 하나겠지.


외모 말고 능력을 봐도 그렇다.


11개국어를 말하는 외국어 능력. 파탄난 이집트 경제를 회복시킨 사업 능력. 합병을 바라는 로마로부터 이집트를 지켜낸 외교력.


권력 지향적인게 살짝 옥의 티지만 언니에 비하면 천사다. 교육에 따라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지금 내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날 가능성은 0이다. 왕실 법도에 따라 공주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멀리서라도 모습을 보려면 멤피스 대신전 사제 교육을 받으러 갈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아차!


지금은 김칫국 드링킹을 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쌔한 분위기의 궁전을 바라봤다.


아직 아들을 낳지 않은 파라오가 딸을 준다는 의미는... 이집트 유력 후계자 후보에 올라선다는 말이다. 몇 년 후 아들(프톨레마이오스 13세)을 낳으면 지금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신하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눈빛이 바뀌었다. 최소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조차 날 보는 시선이 달라질 만큼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발언은 위협적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 모를 9살짜리 외국계 왕족에게 차기 파라오를 넘긴다면, 이집트 고위 귀족들이 환영할까?


귀족의 반발은 당연한 일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지만 박힌 돌이 수십 개가 되면 이야기가 다른 법이다.


파라오 아저씨가 너무 오버했다.


멋진 수염을 기른 그리스 귀족이 앞으로 나섰다.


“파라오시여,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신성한 피는 보존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거두어주옵소서.”


“아폴로니스는 셀레우코스 제국 왕족 출신으로 사윗감으로 모자람이 없는 신분이다. 또한 이집트에 귀화하여 이집트인이 되었다. 문제될 것이 있는가?”


“귀화하였다고 다가 아닙니다. 아폴로니스가 이집트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거짓 예언으로 왕실을 혼동시킨 일 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헛소문을 퍼뜨리고 사사로이 이익을 취한 자를 가려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취지가 옳다 하나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예언 증명 과정에서 왕실 권위가 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죄없는 많은 관리들이 겪지 않아도 될 혼동을 겪었습니다.”


왕실 기만.


예언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실을 기만한 자체가 죄라는 논리였다.


상을 논하는 자리가 처벌을 논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왕이 왕을 벌할 수는 없는 법.


유탄이 내게 튀었다.


“왕실을 기만한 아폴로니스를 처벌해야 합니다.”


같은 파벌인 왕실 서기관이 반박했다.


“예언은 맞았고 왕실의 권위는 손상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께서 축복을 더해 아름다운 공주님을 낳으셨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 전의 거짓 예언이 문제입니다. 헤라클레스 같은 왕자를 낳았다는 거짓 예언은 명백한 왕실 기만입니다.”


“선후 관계부터 따지시죠? 왕실 기만은 거짓 소문으로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킨 관리들이 먼저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아폴로니스는 어떤가요? 예언이 맞았다고 그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빨 딸리는 근위대장은 씨근덕댈 뿐 반박도 못하고 얼굴만 벌개졌다. 왕실 서기관 홀로 다수의 귀족들과 싸우기엔 중과부적이었다.


반박해야 할까?


나는 고민 끝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사위 발언은 너무 앞선 발언이었고, 내가 나서면 전체와 싸우겠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적을 늘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오늘 모인 이유는 내 공을 논하기 위해서다. 상황 논리에 따라 처벌을 주장하더라도 큰 피해는 없을 것이란 것이 계산이었다.


지금은 가드를 올리고 방어할 때다. 3년만 주어져도 나는 이집트 어느 지방 총독과 맞서도 꿀리지 않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힘도 약한데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클레오파트라도 당장 욕심낼 필요없다.


십 년 후 반란이 터진다.


로마 상납금을 버티지 못한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파산을 선언하고, 로마가 키프로스를 합병하면 반란이 터진다. 힘을 모은 내가 허약한 이집트 반란군 상대로 질 리 없다. 전차를 몰고가 반란군 대가리를 깬 다음 클레오파트라를 받아들여도 늦지 않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눈이 마주쳤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미안한 눈빛으로 사과한 뒤, 아몰랑 그냥 없던 일로 해’를 시전하고 빤스런 쳤다.


“악기를 제조한 아폴로니스의 공과 지난 예언 사건의 과를 상쇄하겠다. 이에 대한 논란은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도록 하라.”


시종장 파벌이 불만을 품었지만 도망간 파라오는 돌아오지 않았다.


······


그날 저녁 우리 파벌이 내 저택에 모였다.


근위대장이 자리에 앉마자자 샴페인 뚜껑을 따더니 원샷을 때렸다. 한 병 까고 마시고, 또 마시고··· 다섯 병을 마셨다. 이쯤 되면 샴페인 마시려고 온 것이 아닐까 싶던 차 입을 열었다.


“크으··· 붙들려 갈 땐 찍소리도 못하던 것들이···”


“근위대장, 진정하고 대책이나 마련합시다.”


“쳇! 알겠수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의 대책은 간단합니다. 조용히 넘어가면 해결됩니다.”


왕실 서기관이 이유를 물었다.


“가만히 있는 게 대책이라니?”


“파라오의 저에 대한 총애가 너무 두텁습니다. 관료들과 귀족들의 반발을 살 만큼 말이죠.”


“근본 원인이 총애 자체였단 말이구려.”


“당분간 영지로 물러나 조용히 자숙할까 합니다.”


“당분간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는 말은 동의하오. 허나 직위는 왕의 친구 명예직 하나뿐이고, 영지는 개발 안된 습지대인데 괜찮겠소?”


“영지를 둘러볼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왕실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방문한 정착촌은 온통 공사판이었고 습지대 갈대밭만 나부끼던 곳이었다. 영지에서 힘을 기르는 것도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근위대장이 나섰다.


“갈 땐 가더라도 아무 것도 안하면 우릴 물로 보는 녀석이 나올 것이오. 실력 행사도 병행해야 하오.”


“실력 행사라면?”


“영지에 하마와 악어가 많다 하지 않았소? 내 근위대 훈련겸 해서 가리다.”


파라오가 피진남이면 근위대장은 사진남(사냥에 진심인 남자)이다.


도움 주겠다는 핑계로 사심 채울 마음이 가득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수로 터줏대감 악어와 하마를 몰아내지 않고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왕실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이 강하게 가면 한쪽은 유하게 가야지. 내 중립 파벌을 방문해 오해를 풀어보리다.”


다음날 아침 나는 궁전을 방문해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알현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크흠. 미안하게 되었네. 내가 좀 성급했어.”


“아닙니다. 신의 뜻을 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의지를 개입시킨 제 불찰입니다. 당분간 영지에 조용히 머물까 하오니 허락해주시옵소서.”


파라오가 탄식하였다.


“하아··· 함께 연주하고 싶은 게 산더미 같은데 이런 시련을 받아야 하다니···”


······


이 아저씨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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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아프로디시아스 +11 22.07.01 3,046 121 12쪽
47 이주선은 사랑을 싣고 +9 22.06.30 3,116 117 13쪽
46 사라진 보물 3 +6 22.06.29 2,995 139 13쪽
45 사라진 보물 2 +15 22.06.28 3,012 109 12쪽
44 사라진 보물 +7 22.06.27 3,059 125 12쪽
43 하마와 악어 +12 22.06.25 3,099 115 12쪽
42 한 탕 해볼까 +10 22.06.24 3,069 123 13쪽
» 자숙 +7 22.06.23 3,043 134 13쪽
40 수문 공사 +10 22.06.22 3,087 136 12쪽
39 신병의 하루 +10 22.06.21 3,175 142 14쪽
38 정착촌 도착 +10 22.06.20 3,164 124 13쪽
3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11 22.06.18 3,242 132 13쪽
36 첫 이주민 모집 +14 22.06.17 3,278 131 13쪽
35 연계기 +6 22.06.16 3,263 135 13쪽
34 테베 +12 22.06.15 3,414 127 13쪽
33 프톨레마이오스 12세 4 +7 22.06.14 3,437 135 12쪽
32 프톨레마이오스 12세 3 +9 22.06.13 3,471 152 13쪽
31 프톨레마이오스 12세 2 +7 22.06.11 3,509 150 12쪽
30 프톨레마이오스 12세 +5 22.06.10 3,612 140 12쪽
29 이시스 대신전 +12 22.06.09 3,561 162 12쪽
28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3 22.06.08 3,636 156 12쪽
27 신탁 해석 +11 22.06.07 3,804 162 13쪽
26 델포이 신탁 +9 22.06.06 3,807 154 12쪽
25 페르가몬 도서관 +14 22.06.04 3,859 161 13쪽
24 식물학 백과 사전 +12 22.06.03 3,973 1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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