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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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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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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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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프톨레마이오스 12세 2

DUMMY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게 운명적 만남이 있다면, 그것은 이오니아 지방 유학일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의 왕권 다툼을 피해 코스섬 유학을 택한 그는 그곳에서 피리를 만났다.


누군가 그랬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라고.


프톨레마이오스 12세에게 피리는 운명이고 마약이었다. 유학 생활은 폰투스 왕국의 침략으로 포로 생활로 바뀌었다. 기약없는 포로 생활 속에서 그를 지탱한 것은 두 가닥 피리, 아울로스였다. 피리를 불며 시름을 잊었고, 피리를 불며 희망을 노래했다.


암울했던 상황은 파라오 적통 계승자가 차례로 죽으며 반전되었다.


파라오가 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자신의 꿈을 펼쳤다. 아울로스 합주단을 결성하고 매년 아울로스 경연 대회를 주최했다. 경연대회는 자신도 참가했는데 매년 입상(?)하는 놀라운 실력을 뽐냈다. 호화스런 연회를 매일 열었으며, 연회 중간 공연에 피리를 빼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아울레테스(피리부는 남자)라고 불렀다.


아울로스.


대부분 관악기가 그렇듯 아울로스 역시 배우기 힘든 악기다.


플룻 둘을 한 입으로 동시 연주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쪽 플룻은 멜로디를 연주하고, 다른 한쪽은 반주를 해야 한다.


아울로스는 엄청난 폐활량과 정교한 손놀림을 동시에 요구하는 까다로운 악기였다. 어설픈 초보가 아울로스를 불면 소음 공해만 일으킬 뿐이다. 지금 신전에 들려오는 저 미친놈 소리처럼 말이다.


삑 삑 삐익.


끽 끽 끼긱.


신년 제의로 조용한 사원 어디선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멜로디와 화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이건 아울로스에 대한 모독이었다.


당장 피리를 뺏고 몽둥이 찜질을 하고 싶었지만, 조상 파라오에 대한 제의가 이어지는 내내 파라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참고 견디는 것뿐이었다.


듣기 싫은 연주를 듣는 것만큼 고역인 일이 있을까.


마침내 신년 제의가 끝났다.


신경이 거슬렀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곧바로 이시스 대신관에게 항의했다.


“엄숙한 의식에 귀를 어지럽히는 소리를 묵과하다니··· 이 무슨 참람한 일이오?”


“파라오께 누를 끼친 점을 사과드립니다. 파라오의 연주를 본받고 싶어하는 손주 녀석이 연습을 한 모양입니다.”


씨근덕대던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멈칫했다. 하필 소란을 일으킨 범인이 대신관 손주 녀석이었다. 이집트 제 1신전으로 부상한 이시스 신전은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고, 왕권이 약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신전과 늘 타협하는 위치에 있었다.


대신관이 사과했으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관께서 따끔하게 혼을 내주리라 믿소.”


“손주 녀석 소원이 파라오께 연주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청컨대 어린 손주 녀석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리 하지.”


몽둥이를 들진 못하겠지만 따끔한 말 한 마디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라오는 대신관을 따라 사원 내실로 향했다.


채광이 잘드는 방, 햇빛에 반사되는 눈부신 금발 아이가 피리를 들고 서있었다. 파란 눈에 날렵한 콧대, 하얀 피부는 구릿빛 피부 이집트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였다.


누가 봐도 잘생긴 아이였다.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뵙습니다. 셀레우코스 제국 왕자 아폴로니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혼란스러워했다.


“셀레우코스 제국 왕자?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나는 대신관의 손주를 보러 왔다.”


“저는 이시스 신전 대사제를 양어머니로 모시고 있습니다. 대신관의 손자가 맞습니다.”


왕자는 침착하게 자신의 양어머니를 만난 사연을 소개했다.


“흐음··· 신기한 인연이로군.”


“지금 파라오께서 착용하고 계신 파시움을 제작한 사람이기도 하지요.”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자신의 파시움을 바라봤다.


광채나는 보석으로 제작한 파시움. 요근래 받은 예물 중 가장 멋진 놈이었는데··· 누가 바쳤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정도 물건이면 시종장에게 알현을 허락토록 했을 텐데··· 착오가 생겼나 보다.


“얼마 전 알현 신청을 받은 기억이 난다. 어째서 궁전을 찾아오지 않았느냐?”


“배로 먼 길을 왔더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파라오께서 내주신 안티로도스섬 별궁에서 몸을 추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외딴 섬에 머무르라 했단 말이냐?”


포로 생활 십 년 동안 눈칫밥 먹었던 자신이다. 아폴로니스가 좋게 포장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채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신년 제의가 끝난 후 너를 위한 환영연을 베풀겠다. 보름만 기다리거라.”


“파라오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허나 지금 파라오께서 이곳에 오신 용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용건? 아··· 가르침 말이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왕자가 미리 세팅해둔 드럼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울로스는 꼭 배우고 싶은 악기지만 숨이 짧고 손가락이 짧은 제게는 벅찬 악기입니다. 바라옵건대 제 북과 파라오의 피리가 합주하는 영광을 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북이 신기하군. 저 많은 북을 너 혼자 치는 것이냐?”


왕자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잠깐 시범 연주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칫 칫 칫 칫.


드럼은 기본 8비트로 연주를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에 조금씩 변주가 섞였다. 혼자서 많은 북을 치는 건 놀라웠지만 여러 명의 고수 역할을 할 뿐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아니다.


뭔가 있다.


왕자가 조금씩 박자를 쪼개면서 이상한 박자가 느껴졌다.


미묘한 감각이었다.


정박이지만 살짝 끌리는 느낌. 엇박이라기엔 좀 더 지켜보고 싶은 느낌이었다.


박자가 바뀌었다.


16비트에 악센트를 주어 강약을 조절한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딱칫 딱칫 치잇 칫칫


신기하다.


박자를 가지고 논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왕자는 즐거운 얼굴로 살짝 박자를 끌었다. 무언가 올 듯한 예감이 들었다.


32비트. 북을 두드리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갑자기 왕자의 북채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박자를 끌어모으는 느낌이다.


쾅! 쾅!


간질간질한 것이 폭발했다. 크래시가 터지면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전율을 느꼈다.


맙소사··· 북이 원래 이런 악기였던가. 이건 자신이 알고 있는 북이 아니었다.


이 리듬에 자신의 피리를 얹으면 어떻게 될까?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왕자의 눈이 마주쳤다.


왕자가 눈으로 말했다.


어서 들어오라고.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왕자가 물고 빨던 피리를 바라봤다. 보통 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일 것이다.


살짝 망설이던 그는 왕자의 피리를 입에 물었다.


아폴론 찬가 잼(즉석 합주)이 펼쳐졌다.


본래 아폴론 찬가는 신을 찬미하는 곡답게 감미로운 멜로디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이다. 하지만 둘이 연주하는 아폴론 찬가는 물 밖을 나온 고기 마냥 팔딱팔딱 뛰었다.


다이내믹한 리듬이 곡을 완전히 바꾸었다.


리듬이 멜로디와 화음을 이끌 줄이야···


하나 더 있다.


묘한 리듬.


아까부터 신경쓰였던 것이 엇박에 가까운 저 리듬이었다. 미세한 박자를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는데 코 끝을 간질이는 것 같다.


연주자 입장에서 당연히 기분이 나빠야 한다.


그런데···


정박으로 돌아오면 묘한 쾌감이 일어난다.


음악을 주무르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왕자의 그루브에 푹 빠져버렸다.


300행이 넘는 헌시를 연주하느라 땀범벅이 되었고, 부풀린 양볼에서 통증이 찾아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 * * * * * * *


시종장이 다섯 번째 탑문을 바라봤다.


궁정에서야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시종장이지만, 신전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이곳은 세속 권력이 닿지 않는 성역이었다. 탑문 안쪽 사원은 종교 직분을 맡은 이들만 출입할 수 있다.


불안했다.


신년 제의가 진작 끝났을 시간인데 파라오께서 나오지 않으신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사원 안에서 흥겨운 연주가 들려왔다.


정황상 파라오 같은데··· 평소 듣던 연주가 아니라 헷갈린다. 요상한 북소리 탓일까?


시종장이 지나가는 사제를 붙잡았다.


“신년 제의는 끝났습니까?”


“오직 대신관께서 아십니다.”


“한 가지만 확인해주십시오. 안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는 무엇입니까? 어째서 이집트 신전에서 아폴론 찬가가 들리는지요?”


“듣고 보니 이상하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


확인한다던 사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종장은 하릴없이 파라오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가사 300줄 짜리 아폴론 찬가 연주가 끝났다.


파라오가 돌아왔다.


응?


파라오 옆에 누군가 있었다.


금발 꼬맹이.


아폴로니스를 본 시종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땀범벅인 것으로 보아 함께 연주한 것이 틀림없다.


제길··· 이래서 둘의 만남을 막았던 것인데···


파라오의 총애는 오직 자신 한 몸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왕실 대사제, 근위대장, 재상, 수많은 그리스계 귀족을 제치고 2인자 지위를 굳혔던 것은 남들보다 한 발 빨리 파라오의 바람을 만족시키는 눈치 덕분이었다.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궁정의 변화를 주시하며 자신의 지위를 굳히는데 힘썼다.


한 달 전, 광채 찬란한 보석 파시움이 예물로 도착했다. 목적은 파라오 알현. 이오니아에 명성을 떨친 왕자가 이집트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간신 특유의 직감이 시종장을 불안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왕자를 본 순간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신을 닮은 외모와 놀라운 예언. 직접 만난 왕자는 누구든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매력을 가진 아이였다.


시종장은 왕자가 자신의 경쟁상대임을 직감했다. 시종장은 적당한 구실을 붙여 왕자를 외딴 섬에 쳐박아두었다. 안좋은 소문을 퍼뜨려 우호적 여론 형성을 막았다.


해결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왕자는 이시스 신전에서 나타난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파라오가 왕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 자신을 대하는 눈길이었다.


파라오가 시종장을 불렀다.


“오늘 저녁 아폴로니스 왕자 환영연을 열겠다. 사람을 보내 준비토록 하라.”


“파라오시여, 신년 제의가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멤피스, 테베, 헬리오폴리스 등 돌아야 할 도시와 신전이 많은 점을 유의하여주시옵소서.”


“오늘 할 일은 마치지 않았더냐? 내일 제의는 내일 신경쓰면 된다.”


시종장은 파라오의 말에 짜증이 묻어난 것을 감지했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면 위험하다.


“... 명을 받들겠습니다.”


“시종장, 허락도 없이 내 손님을 외딴 별궁에 보냈더군. 왕자 일행의 처소를 궁전 별궁으로 옮기도록 하라.”


뜨끔했다.


파라오는 이미 자신이 벌인 일을 알고 있었다. 파라오 살짝 뒤에 선 왕자가 미소지었다.


당했다. 저놈 짓이구나.


시종장은 입술을 깨물고 표정을 고쳤다.


“왕자님께 결례를 저지른 점을 사과드립니다. 사람을 보내 본궁으로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시종장.”


파라오를 따라나선 시종장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는 장소 협찬에 도움을 준 대신관께 감사를 전했다.


“제의 준비에 바쁘실 텐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전에서 함부로 악기를 연주해 죄송합니다.”


“괜찮다. 원하는 것은 이뤘더냐?”


“네.”


“네크로폴리스 빈민 지도자와 약속을 잡았으니 축제 기간에 한 번 들르렴.”


“감사합니다 할머니.”


“호호 언제 우리 손주 북치는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구나.”


“젖형제들이랑 멋진 연주를 보여드릴게요.”


오후 무렵 시종장이 왕실 전용선을 보냈다.


나는 왕실 전용선을 타고 왕실 전용 수로를 통과하여 알렉산드리아 궁전에 당당히 발을 디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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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주선은 사랑을 싣고 +9 22.06.30 3,116 117 13쪽
46 사라진 보물 3 +6 22.06.29 2,995 139 13쪽
45 사라진 보물 2 +15 22.06.28 3,012 109 12쪽
44 사라진 보물 +7 22.06.27 3,059 125 12쪽
43 하마와 악어 +12 22.06.25 3,099 115 12쪽
42 한 탕 해볼까 +10 22.06.24 3,069 123 13쪽
41 자숙 +7 22.06.23 3,042 134 13쪽
40 수문 공사 +10 22.06.22 3,087 136 12쪽
39 신병의 하루 +10 22.06.21 3,175 142 14쪽
38 정착촌 도착 +10 22.06.20 3,164 124 13쪽
3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11 22.06.18 3,242 132 13쪽
36 첫 이주민 모집 +14 22.06.17 3,278 131 13쪽
35 연계기 +6 22.06.16 3,263 135 13쪽
34 테베 +12 22.06.15 3,414 127 13쪽
33 프톨레마이오스 12세 4 +7 22.06.14 3,437 135 12쪽
32 프톨레마이오스 12세 3 +9 22.06.13 3,471 152 13쪽
» 프톨레마이오스 12세 2 +7 22.06.11 3,509 150 12쪽
30 프톨레마이오스 12세 +5 22.06.10 3,612 140 12쪽
29 이시스 대신전 +12 22.06.09 3,561 162 12쪽
28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3 22.06.08 3,636 156 12쪽
27 신탁 해석 +11 22.06.07 3,804 162 13쪽
26 델포이 신탁 +9 22.06.06 3,807 154 12쪽
25 페르가몬 도서관 +14 22.06.04 3,859 161 13쪽
24 식물학 백과 사전 +12 22.06.03 3,973 1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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