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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님의 서재입니다.

네 로마 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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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y
작품등록일 :
2022.05.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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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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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신탁 해석

DUMMY

그날 저녁 나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안티오키아에서 델포이까지 나를 지켜주고 따라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신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절차는 신탁의 올바른 해석입니다.”


나는 신탁 석판을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옮겨 적었다.


-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 마차는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향하리라.


- 커다란 무쇠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솥발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을 경계하라. 모든 것이 끓어넘칠지니.


- 무덤에서 잠자던 신들께서 분노할 것이다. 단 한 명이 신들의 분노를 잠재울 것이니 나무로 만든 활과 풀로 만든 신을 주어 대비케 하라.


“쉬운 내용도 있고 어려운 내용도 있습니다.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말해보세요.”


아도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탁 해석에 앞서 신탁 해석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해석 기준이 무슨 말이야?”


“해석 기준은 건물의 토대와 같습니다. 토대가 들쑥날쑥하면 건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통일된 기준이 없는 신탁은 마구잡이로 해석되어 아폴론 신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런 뜻이구나. 신탁 해석에 어떤 기준이 있지?”


“보편적 기준으로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다. 신탁을 시간순으로 해석하고, 장소순으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그밖에 신의 의도 파악에 중점을 둔 목적론적 해석, 문자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는 문리적 해석 등이 있습니다.”


“아도니아는 어떤 해석 기준을 따르고 싶어?”


“시간순 해석입니다. 가장 보편적 해석 기준이며 실패가 적은 해석입니다. 왕자님의 신탁을 살펴보죠. 첫 구절은 근미래를 나타냅니다. 현재와 가까우니 상징과 비유의 대상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구절이죠. 반면 마지막 구절은 원미래를 나타냅니다. 알고 있는 정보가 적으니 상징과 비유 모두 어떠한 의미인지 파악이 힘듭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둥절한 풀로만 빼고. 주변을 훔쳐본 풀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풀로, 해석이 궁금하면 물어보도록 해.”


“헤헤 죄송합니다.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첫 구절 태양 마차는 아폴론 신의 태양 마차를 의미하며, 아폴론 신의 예언자인 왕자님을 상징합니다. 태양 마차의 움직임은 왕자님의 행보를 뜻합니다. 동쪽은 안티오키아, 남쪽은 이집트, 서쪽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 왕자님이 안티오키아를 떠나 이집트를 가고, 그 다음 로마로 간다구요?”


“네.”


에우메네스는 나와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셀레우코스 제국을 떠난다는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풀로가 불쑥 손을 들었다.


“이집트와 로마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지금은 신탁 해석이 우선이다.”


“앗차 죄송합니다.”


아도니아가 두 번째 구절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레 밝혔다.


“커다란 무쇠솥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모든 것을 삼키는 건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할 것이란 비유입니다. 둘째 문장에서 눈여겨 봐야 할 건 솥발입니다. 보통 솥의 솥발이 몇 개인가요?”


“셋입니다.”


“솥발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솥이 어떻게 될까요?”


풀로가 손을 뒤집으며 웃었다.


“발랑 뒤집힙니다.”


“그렇습니다. 둘째 구절은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는 걸 뜻합니다.”


“헉! 로마에 전쟁이 난다는 말입니까? 포에니 전쟁처럼 말인가요?”


“정확한 장소와 시기는 모릅니다. 시기에 대해 확실한 건 첫 번째 구절이 실현된 후가 되겠지요.”


지중해를 통일한 로마의 변란.


신탁은 생각보다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세 번째 구절로 향했다.


더 무시무시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들의 분노.


중요한 것은 복수형, 신들이었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왕자가 영웅적 행보를 보였던 것처럼 신들의 분노는 평범한 신의 분노와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헬레네가 나섰다.


“트로이 전쟁 이후 신들은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무덤에서 잠들었다는 말은 현시대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신들의 분노는 세계를 멸망시킬 자연재해, 혹은 신들의 전쟁 기간토마키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신들의 분노는 인간 세상 전체를 위협할 것입니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신의 분노가 기간토마키아로 나타난다면 영웅을 주목해야합니다.”


열두 시련을 이겨낸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부름을 받아 신이 된다. 이후 헤라클레스는 기간토마키아에서 맹활약하여 그리스 신 진영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헤라클레스처럼 여러 신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은 자를 영웅이라 부른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마지막 구절은 헤맬 줄 알았다.


여기까지.


나는 여기서 해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정확한 예언은 내 존재를 너무 드러내게 된다. 신탁을 의식한 상대방이 나를 의식하면 내 행동에 제약이 찾아온다. 또한 신탁의 미래가 정해지면 나는 미래를 신탁의 내용대로 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지금 예언 전부가 해석되어선 안된다.


나는 헬레네의 해석에 선을 그었다.


“확신은 금물입니다. 헬레네의 해석이 그럴 듯하게 보여도 시간을 두고 정보를 모으면 달리 보일겁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의 해석이 아니라 올바른 해석입니다.”


헬레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휴우··· 다행이다.


“... 갑자기 붕 뜬 기분이네요.”


“왕자님, 우리는 이제 무얼 해야 하나요?”


목표가 사라지니 혼란스러운가 보다.


나는 웃으며 첫 번째 구절을 가리켰다.


“우리 목표는 이미 신탁이 계시하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첫 번째 구절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 이집트.”


“우리는 이집트로 갈 겁니다. 이미 구체적인 진출 계획을 세워두었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이집트는 파라오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지방 권력은 사제 계급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렉산드리아 이시스 대신전을 찾아 정착촌 건설 허가를 받을 생각입니다.”


나는 이시스 신전 양어머니가 써준 소개장을 보였다.


보레누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왕자님께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집트 지방은 사제, 그리스계 군벌, 사막 유목 민족등 무장 세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착촌을 세우면 저들이 가만 있을까요?”


어?


듣고 보니 그러네.


“군대를 모으든 용병을 고용하든 파라오의 공식 허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왕자님께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이 생깁니다.”


교역항 자치권만 생각했는데 군사 방어를 위한 자위권도 챙겨야 한다니...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 무척 까다로운 일이었다.


어느 미친 왕이 외국인에 자치권에 자위권을 몽땅 맡긴단 말인가.


······


그런데 그게 가능한 놈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세계적 곡창지를 갖고도 나라 빚 늘리는 놈.


지방 반란이 터져도 호화 연회 벌이는 놈.


오죽하면 별명이 아울레테스(Πτολεμαίος 피리부는 자)일까. 그는 진귀한 음식과 비싼 보석이 오가는 연회를 열고, 아울로스(그리스식 두 가닥 피리)를 연주하였다.


역사적으로 흥청망청 노는 암군은 많다. 백제 의자왕, 촉나라 유선, 명나라 만력제, 조선 연산군··· 이들의 공통점은 나름 왕권이 확고했다는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놀았던 것인데···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왕위 계승부터 불안했다. 남매 근친혼으로 왕권을 계승하는 이집트에서 보기 드문 사생아 출신 파라오였다.


종교 국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이다. 그런데 정통성 없는 파라오가 신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크고 작은 불만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출신이 후달리면 정사라도 잘 돌봐야 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한 일은 로마 원로원에 막대한 돈을 뿌려 로마의 보호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모든 정치는 재상에게 맡기고 놀았다. 오늘도 열심히 피리를 불고 있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라면 허점을 파고들 수 있다.


“파라오가 음악과 호화스런 연회를 좋아한다면 맞춤 대응으로 간다.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할 때야.”


“하하 그런 수가 있었군요. 어쩐지 열심히 악기를 배우신다 했습니다.”


오히려 좋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집트 진출 계획을 수정하였다.


“에우메네스와 보레누스만 남고 다들 돌아가.”


나는 둘만 남긴 채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에우메네스, 보석 상단에 여유 자금이 얼마 있어?”


“신탁 비용을 내고 200만 데나리우스(100억 원) 가량 남았습니다.”


“... 그동안 많이 쓰긴 했구나. 미안해.”


“아닙니다. 양식 진주 사업과 샴페인 사업에 진출하면 얼마든지 돈은 벌 수 있습니다.”


“양식 진주는 4년 계획이잖아. 샴페인도 숙성 기간이 필요하고 말야.”


“올해 생산된 포도주는 창고에 가득 매입하였습니다. 탄산 발효중에 있으니 곧 시장에 팔 수 있을 겁니다.”


“아냐. 급히 팔면 가치가 떨어져. 최소 1년은 묵혀야 해.”


“일단 보석을 급매를 하는 게 어떨까요?”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저었다.


“잠깐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이것 좀 감정해줘.”


나는 에우메네스에게 가죽 주머니를 열어보였다.


투명한 보석이 반짝 반짝 빛을 발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반사된 빛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런 광채를 발하는 보석이 있을 줄이야.


“이런 보석은 처음 봅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보석이 아냐. 잘 봐.”


의아한 에우메네스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다.


“이, 이건··· 유리 구슬이군요.”


“유리 구슬을 빛의 굴절률에 맞게 깎으면 이런 광채가 나. 페르가몬 조각 학교 졸업생이 필론의 수력 절단기를 이용해 깎아본거야.”


“휴우··· 놀랍습니다. 이걸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홍옥(루비)과 청옥(사파이어)을 이렇게 깎으면 어떻게 될까?”


에우메네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상상이 안갑니다. 이런 광채나는 보석이라면 부르는게 값일 겁니다.”


“제대로 연마한 홍옥을 파라오에게 팔거야. 할 수 있겠어?”


“파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페르가몬 상단의 주요 고객이 파라오와 이집트 고위사제니까요.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홍옥과 청옥을 절단할 날이 없다는 거겠지?”


“유리는 쇠칼을 써도 되지만 홍옥과 청옥은 불가능합니다. 날만 망가지고 광택만 죽을 뿐입니다.”


“칼날 문제는 간단해. 금강석(다이아몬드) 칼날을 쓰면 돼.”


“.... 그, 금강석. 그런 수가 있었군요.”


역발상.


너무 단단해 가공이 불가능한 금강석을 칼날로 쓰겠다니···


에우메네스는 왕자의 기지에 웃음을 터뜨렸다.


“파라오와 친분맺는 건 내게 맡겨둬. 장사는 에우메네스에게 맡길게. 그리고 보레누스.”


“네.”


“조만간 카르타고 해적이 노예 2천명을 넘길 거야.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빈민가에서 정착민 2천 명을 모집할 거고. 이집트 원주민을 합하면 7천 이상은 넘어갈 것 같아. 방위 대책이 필요해.”


“어설픈 무장은 안하니만 못합니다. 민병대는 소모품처럼 쓰일 것이고, 인적 자원 고갈만 부를 겁니다.”


“흐음··· 제대로 된 무장이라···”


무장시키고 훈련시키고 밥 먹이고··· 이제부터 모든 게 비용으로 잡힌다. 내가 고민에 빠지자 보레누스가 강력히 주장했다.


“600명 1개 대대만 모집해주십시오. 제대로 키워보겠습니다.”


보석 판매가 확정되지 않은 지금, 정착 예비 자금을 감안해야 한다. 나는 에우메네스와 최대한 가용 예산을 쥐어짜냈다.


“현재 우리 형편에서 군대 600명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언제나 냉철했던 보레누스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평민 출신인 보레누스는 아무리 잘해도 백인대장을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대대장이 된다는 말은 신분 상승을 의미했다.


“보레누스, 기회를 주겠어. 스스로를 증명해봐.”


“감사합니다 왕자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는 델포이에 머물며 이집트 정착 계획을 최종 수정하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이집트로 가자.”


“두 달 남았군요.”


“로도스에 들러서 청동 거상 완공식을 주관할거야. 그 다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간다.”


“알겠습니다.”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나는 이집트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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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아프로디시아스 +11 22.07.01 3,051 121 12쪽
47 이주선은 사랑을 싣고 +9 22.06.30 3,121 117 13쪽
46 사라진 보물 3 +6 22.06.29 2,998 139 13쪽
45 사라진 보물 2 +15 22.06.28 3,015 109 12쪽
44 사라진 보물 +7 22.06.27 3,061 125 12쪽
43 하마와 악어 +12 22.06.25 3,101 115 12쪽
42 한 탕 해볼까 +10 22.06.24 3,071 123 13쪽
41 자숙 +7 22.06.23 3,046 134 13쪽
40 수문 공사 +10 22.06.22 3,091 136 12쪽
39 신병의 하루 +10 22.06.21 3,179 142 14쪽
38 정착촌 도착 +10 22.06.20 3,168 124 13쪽
37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11 22.06.18 3,245 132 13쪽
36 첫 이주민 모집 +14 22.06.17 3,281 131 13쪽
35 연계기 +6 22.06.16 3,267 135 13쪽
34 테베 +12 22.06.15 3,419 127 13쪽
33 프톨레마이오스 12세 4 +7 22.06.14 3,441 135 12쪽
32 프톨레마이오스 12세 3 +9 22.06.13 3,474 152 13쪽
31 프톨레마이오스 12세 2 +7 22.06.11 3,512 150 12쪽
30 프톨레마이오스 12세 +5 22.06.10 3,615 140 12쪽
29 이시스 대신전 +12 22.06.09 3,563 162 12쪽
28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3 22.06.08 3,640 156 12쪽
» 신탁 해석 +11 22.06.07 3,808 162 13쪽
26 델포이 신탁 +9 22.06.06 3,811 154 12쪽
25 페르가몬 도서관 +14 22.06.04 3,862 161 13쪽
24 식물학 백과 사전 +12 22.06.03 3,976 1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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