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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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있던 태양이 지고 다시 떠올라 머리 위까지 올 동안 백작성에서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오히려 헤리오스가 이끌고 온 벨로시아 병력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간만에 정말 푹 잤네.”
“그런데 쟤네는 왜 반응이 없어?”
“쫄았잖아. 딱 봐도 견적 안나와?”
“쟤 원래 둔했잖아. 칼질만 몇 번인데 분위기 딱 보면 답 나오지 않아?”
그간 수레에 올라 급속 행군을 하며 마을을 휩쓸고, 병력을 모조리 박살내며 달려 영주성까지 왔다.
잠은 수레에서 쪽잠을 자고, 밤과 낮의 구별도 없이 무조건 이동을 하여 이 곳에 도착했을 때 기사들과 병사들 모두 피로와 졸음으로 서 있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헤리오스가 성 앞에서 큰 소리를 치고 뒤돌아 병영을 세우게 하고 지시한 내용은
“불침번도 필요없다. 모두 하루 동안 푹 쉬고 몸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아라.”
그리고 헤리오스는 닫힌 성문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하루 밤낮을 꼬박 지키고 있었다.
물론 내공을 운용하며 머리를 맑게하고 피로를 지우는 헤리오스에게 혼자 성문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힘든 일도 아니었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의 차기 주인이 모두의 휴식을 위해 스스로 지키고 서 있었다는 것에 사기가 올랐다.
또 겁을 집어 먹고 자신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성벽 위의 병사들을 모습과 머리 위에 해가 떠 있음에도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팔미크 백작의 태도에 없던 전투력도 생기고 있는 중이다.
대답을 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반응이 없는 팔미크 백작의 우유부단함에 혀를 차고는 말에 올라 성문이 있는 곳으로 슬슬 나아갔다.
그런 헤리오스의 뒤를 키사가 수행했다.
“공자님. 정말 이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전원을 다 태워버리실 예정입니까?”
“응.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
전투도 못하는 노인과 연약한 어린아이, 여자들까지 모두 태워버린다는 말에 키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키사가 안타까워 헤리오스를 말려보려고 하는데, 성벽 위에 팔미크 백작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난 이 성의 주인이자 이 땅의 주인인 드뷔쉬 르 송 팔미크 백작이다. 넌 무슨 이유로 나의 땅을 짖밟고 이제 나의 성까지 태우겠다고 하는 것이냐?”
팔미크 백작의 등장에 헤리오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그럼 어쩐다...?”
중얼거리던 헤리오스가 화살이 날아오는 사정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바깥쪽까지 말을 몰아 간 후 성벽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팔미크 영지는 같은 동부의 영지임에도 불구하고 오크로 힘들어 하는 벨로시아를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은 채 오크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고 살아왔다. 그러나 서부와 중부에서 지원을 한 것과는 달리 팔미크 영지는 어떠한 존중의 표시도, 지원도 없이 안락함만을 추구해왔기에 벨로시아는 분노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헤리오스의 말에 팔미크 백작은 화가 치솟았다.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도 않고, 또한 우리 역시 중부의 견제를 받으며 버티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트집을 잡아 이렇게 야만스러운 짓을 벌리다니 신께 벌을 받을 것이다!”
“너의 지금 그 말은 성 안의 모든 이들이 불에 타도 상관없다는 말로 받아들이겠다.”
헤리오스의 잔인한 말에 겁을 집어 먹는 팔미크 백작.
“잔인한! 어째서 죄도 없는 영지민들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이냐?”
그 말에 비웃음을 날리며 소리쳤다.
“그 영지민을 책임지는 자는 너다! 그리고 넌 지금 영지민 모두를 우리의 칼과 창, 화살과 불의 저주 속에 집어 넣겠다고 외쳤고 말이다. 너의 영지민을 너가 죽이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죽일 뿐이다!”
헤리오스의 말에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겨우 버티고 서서 뒤를 돌아보자 성벽 위에 자신을 겁에 질린 채 떨면서 바라보는 영지민들과 싸우고 버텨야 한다고 주장한 가신들의 멍한 얼굴, 그리고 의지도 없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병사들과 기사들.
결국 고개를 떨구는 팔미크 백작.
떨어진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진다.
개국 이후 영지를 다스리며 가끔 씩 숲에서 숨어사는 고블린이나 놀 무리 등과 싸운 것 말고는 전투라고 할 것도 없이 지낸 왕국의 사람들. 병사들은 전투를 위하기 보다는 방법과 절도를 막기 위해 있었고, 기사는 귀족의 권위를 살리기 위한 비싼 장식품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 영지가 만들어지고 지금 껏 오크와 트롤과, 심지어 오우거까지 나타나는 곳에서 항상 전투를 벌이는 병사들과 기사들이 지금 흉흉한 기세를 품으며 노려보고 있다.
백작령의 병사들과는 그 눈빛과 기세부터 다르고 그들의 피에 절어 있는 방어구와 흉터, 근육, 그리고 군기...
싸워도 무조건 진다는 생각이 들자 고개를 흔든 팔미크 백작의 행동에 병사들은 기뻐하며 소리를 죽여 손을 번쩍 들었고, 기사들도 다르지 않아 성문을 열고 항복의 깃발을 올린다.
이러한 팔미크 백작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바로 헤리오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성의 첨탑 가장 높은 곳에 백작가의 가문을 상징하는 기가 내려가고 하얀 기가 올라가자 벨로시아의 병사들과 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성 안의 영지민들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벨로시아 병력은 성 안으로 진입하여 귀족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팔미크 백작령의 기사들과 병사들의 무장을 해체하였다. 성 안에 거주하는 영지민들을 통제하며 라이비아가 내린 점령군으로서의 지침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팔미크 백작성의 회의실.
평소 영주가 앉던 자리에는 헤리오스가 앉아있고, 그 뒤를 키사와 제이크가 수행하였으며, 문 앞에는 기사단장이 창가 쪽에는 영지군 대장이 그리고 기사 8명이 간격을 벌이고 둘러 싸고 선 테이블에는 팔미크 백작령의 영주와 가신들이 침울하게 앉아있다.
무혈입성(無血入城)으로 승리를 한 헤리오스는 침울하게 있는 팔미크의 백작들보다 더 심란한 얼굴로 앉아있으니 누가 승리를 한 쪽이고 누가 패전을 한 쪽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벨로시아는 후크 백작령과 함께 만든 라이비아 동맹으로 오늘 이 자리는 승리한 라이비아 동맹군의 대표로서 앉아있는 것임을 알린다. 또한 동맹의 영향하에 들어오게 된 팔미크 백작은 이 시간 이후로 통치에 관여할 수 없음은 물론 추후 별도의 공간에서 보호를 받으며 지내게 될 것임을 알린다.”
의기양양하게 말을 해도 될 것도 같지만 헤리오스는 침울한 얼굴로 발표하고 바로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팔미크 백작령의 귀족들은 묘한 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키사 역시 침울한 헤리오스의 뒷모습을 보며 성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 이번 전쟁은 벨로시아가 매우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매우 잔인하고 무자비하다는 것을 알려서 추후 중부와 서부, 국왕령과 싸우게 될 경우 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소문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거야. 그런데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이렇게 점령해버리면 나중에 우리 병사들이 전쟁에서 많이 죽게 될 거 아냐?
하지만 나중의 일로 힘도 없고, 죄도 없는 평민들을 모두 태워죽이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는 의견을 내자,
- 난 내 영지의 사람 한 명이 다른 영지의 사람 천명보다 더 소중해. 내 영지의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난 더한 것도 할거야.
헤리오스가 나간 회의실의 문을 보며 키사 역시 작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얼마 후 팔미크 백작령을 흡수한 라이비아 동맹은 동부에 있는 유일한 세 개의 영지가 합쳐진 대영지가 되었고, 그 규모는 왕국의 최대, 국왕령의 두 배에 가까운 면적을 가지게 되었다.
팔미크 백작령에 살고 있던 인원은 북쪽 벨로시아로 이주되어 그 곳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후크 백작령의 병사들은 벨로시아의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훈련을 받으며 단련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왕국의 영지를 가진 영주들에게는 ‘라이비아 동맹’이라는 말 대신 ‘동부 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소식을 알렸고, 추수를 하게 될 때를 맞추어 왕국의 대부분의 귀족들을 벨로시아로 초대하는 큰 행사를 준비했다.
카밀레아는 그 동안 만들어 놓은 유통망을 통해 영주들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라이비아는 연합의 재정을 모두 총괄하며 귀족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했다.
가장 바쁜 것은 헤리오스였다. 카밀레아와 라이비아는 헤리오스의 기억을 통해 여러 독특하고 아름답거나, 특이하고 신기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고 생활 양식이나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듣기를 요청하여 그 때마다 긴 시간을 이야기해주었고, 때로는 그림을 그려주거나 글로 써서 남겨놓기까지 하였다.
또한 병력의 훈련을 계획하고 전투력의 향상과 실전을 위한 작전까지 수립하여 진행하였고, 동쪽에 차 쿰 라하의 오크들까지 전투에 필요한 훈련을 시키는 등의 일을 계속 해나갔다.
약간 씩 남는 시간에는 성장한 작은 클라라에게 약초를 이용한 의술과 독술을 가르치고, 암기술과 무공을 가르쳤다.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약초학에 대해 사왕비인 클라라 왕비까지 관심을 보이며 작은 클라라와 함께 자리했다는 것이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되자 대장간과 탄광, 목재를 생산하는 북쪽의 숲이 가장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예가 된 엘프들은 인간들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생산하였고, 벨로시아의 북쪽의 숲에서 기사들은 중형, 대형 괴물들을 잡으며 수련을 하였다.
병사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헤리오스가 기획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사격, 체력, 전술 및 개인의 작전 수행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이한 것은 헤리오스가 훈련을 시키는 선임 병사들에게 빨간모자를 씌워주고 호루라기라는 것을 만들어 ‘연합군, 강한 연합군, 자랑스런 연합군’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정없이 굴렸다는 것이다.
연합 안에 마을간의 교류를 위해 축구를 활성화 시켜 새로 이주한 이주민들과 현지민들과의 단합을 꾀했으며, 축구 시합이 진행될수록 점점 과격해지는 응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봄이 되자 왕국 전역에서 벨로시아의 영주성으로 직접, 혹은 대리인을 보내 파티에 참석을 했다.
먼 길을 오던 귀족들은 벨로시아 영지로 들어서며 만들어진 대로를 마차가 달리자 너무도 편안한 승차감에 놀라게 되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마을의 모습에 또한번 놀라게 되었다.
- 작가의말
오늘은 할로윈데이입니다.
저에게 사탕과 쵸콜릿을 주지 않으면... 장난을...치지는 않겠죠.네... 제가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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