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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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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14,085

작성
21.10.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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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2쪽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DUMMY

슬슬 따뜻한 기운을 품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 헤리오스가 혼자 격렬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손 모양을 발톱을 세운 범의 앞발처럼 만들어 휘두르자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고 또 격렬했다.


온 몸에 땀이 흐르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가 번들번들 해질 무렵 저 만치서 재잘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아리따운 두 명의 여자...


카밀레아와 라이비아 공주였다.


“역시 여기에 있었네요.”


이제는 잘 발달하여 균형이 잡힌 헤리오스의 몸을 대놓고 보는 카밀레아와


“수련이라는 게 이렇게 매일 해야 하는 건가요?”


연무장까지 오는 것이 귀찮은 라이비아 공주가 툴툴댔다.


귀족적이고 교양이 어쩌고, 아름다움이 어쩌고를 떠들던 카밀레아는 현란한 말솜씨와 빠른 계산으로 상단을 맡으며 한 겨울에도 영지와 영지를 돌며 죽을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산적이나 고블린의 습격으로 또는 악천후로 인해 고립되어 죽을 뻔한 경험과 가진 것이 많은 귀족가의 여인들의 텃새와 남성 귀족들의 음흉한 눈길과 저질스런 손버릇등으로 세상의 쓴맛과 더러운 맛을 모두 맛보고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헤리오스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많이 바뀌었는데, 이제는 사업 파트너 내지는 고용주 정도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라이비아 공주는 왕족의 품위나 귀족적 소양을 나타내는 예법을 고수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그녀의 콧구멍에는 헝겊조각이 구겨져 과로로 인해 터져나오던 쌍코피를 틀어막고 있었으며, 제대로 씻지못해 번들번들해진 머리카락과 푸석해진 피부는 그녀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었으나 그것도 어느정도이지 몇 달을 제 때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하다못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최대한 참았다가 몰아서 갈 정도였으니...


“할 얘기 있으니까 빨리 이리와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라이비아 공주의 말에 헤리오스가 재빨리 앞에 와 섰다.


“호호호호! 공주님의 일솜씨가 영지에 없으면 안되기는 하나봐요. 이렇게 번개처럼 움직이시다니... 호호호호!”


카밀레아가 듣기에도 좋은 소리로 웃었지만 라이비아 공주는 이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카밀레아를 재촉했다.


“빨리 이야기 해요. 나 지금도 행정관들이 각지에서 올리는 보고로 머리 속이 지끈거리니까요.”

“알겠어요.”


셋은 연무장 근처에 마련된 탁자에 둘러 앉았다.


“그러니까 제가 에스워프 자작령으로 갔을 때에 들은 이야기에요. 그 당시 저는 얼굴에 붙이는 천과 신제품을 팔기 위해 영주성을 방문했었죠.”


눈길을 헤치고 온 카밀레아를 반기며 에스워프 자작 부인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길이 험했을텐데 이렇게 오다니 신께서도 여기 오는 것을 원하셨나봐요.”

“어머! 자작부인 그러고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오는 동안 눈을 헤치면서 오기는 했어도 도적이나 고블린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어요. 어머~ 이거 정말...?”


인사 차 한 말을 카밀레아가 이리 말하자 자작부인의 기분이 왜인지 슬쩍 좋아졌다.


“오늘 가지고 온 것도 얼굴에 붙이는 천인가요?”

“후후후! 놀라지 마세요.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물건을 가지고 왔답니다.”

“특별한 거?”


카밀레아는 자작부인에게 따뜻한 물로 얼굴을 씻게 하고 침대에 뉘인 다음 얼굴에 풀같이 축축한 것을 바르기 시작했다.


“어맛! 차가워!”

“가만히 계세요. 이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찌꺼기를 빼주는 것이랍니다. 이걸 발랐다가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면 얼굴이 아기 피부처럼 반짝반짝 해지는 거에요. 그 위에 저번에 얼굴에 올렸던 천을 올려서 영양분을 흡수 시키면...”

“...그렇구나... 어서 해줘요.”


카밀레아는 말 없이 자작부인의 얼굴에 풀같은 것을 골고루 바르고 손으로 주물러 피부에 잘 스미게 한 후 깨끗한 천으로 닦아내며 천을 보여주었다.


“보이시죠? 이 검은 것.”

“세상에... 이런 것이 내 얼굴에 있었다고요?”

“이게 눈에는 안보이는 작은 것이 얼굴의 땀구멍 안에 숨어 있어요. 이런 것이 쌓이면 얼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화장도 잘 안먹고...”

“어쩐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작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런 것도 당분간은 못할 지도 몰라요.”

“어머? 왜요?”

“왜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그렇죠.”

“네? 전쟁이 일어나다니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카밀리에는 정말 큰일이라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카밀레아를 측은하게 보던 자작부인이 입을 열었다.


“나도 정확한 것은 아닌데 남편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어요. 왕이 사라졌대요.”

“네?”


왕이 벨로시아 영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카밀레아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자작부인은 그 속 마음까지는 모르고 계속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국왕령에서 사라졌는데, 사라진 곳 근처에서 네이아크 백작의 병사들을 봤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서부와 중부 귀족 연합에서 네이아크 백작령으로 배를 타고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그럼 네이아크 백작이 왕을 죽였나요?”

“설마 죽이기까지 했을까요? 하지만 길에 피가 뿌려진 것을 보면... 죽었을지도...”

“정말 무서운 세상이네요. 왕도 그렇게 죽고...”


카밀레아는 끔찍하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빨리 영지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자작부인의 얼굴에 천을 덮어주고 다른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정력제와 금화를 바꾸고는 영지로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은 헤리오스도 표정이 묘해졌다.


“왕이... 실종 되었다?”


라이비아 공주 역시도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왕국 전체가 왕의 실종에 네이아크 백작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왕은 정작 벨로시아 영지의 성에 콱 박혀서 움직이도 못하고 있다.

왕을 구금하고 있는 벨로시아는 누구도 입에 올리지도 않고 네이아크만 입에 올린다는 것은 누군가 정보를 교란했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바로 영지성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이동을 시도했던 마부와 시종하나 시녀하나 총 세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세 명은 유모의 지시하에 지금 쯤 영주성이 있는 마을 밖 어귀에서 잡혀 얼어붙어있는 땅 속에서 자고 있을 것이다.

결국 왕국의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온 것은 벨로시아 영지였던 것이다.


“어... 이거 좀 난감하네요.”

“어쩌죠? 왕께서 여기 계시다고 밝히기도 애매하잖아요.”


라이비아 공주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했지만 카밀레아는 오히려 빙그레 웃었다.


“에스워프 자작령에서 바로 영지로 넘어올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나 잘못된 소문일지도 몰라

바로 위에 있는 유리켈론 자작령에도 갔어요. 거기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요.”

“눈 때문에 정말 힘들었을텐데... 고생 많이 하셨네요.”


헤리오스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에 제가 생각보다 큰 일을 한 거 맞죠?”

“그럼요.”

“그러니까 상을 주세요.”

“...상 말입니까?”


카밀레아가 즐거운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켜 헤리오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닿을 만큼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헤리오스의 코로 들어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 저...”

“상 주실거죠?”

“아... 드려야겠죠?”

“후후...”


헤리오스가 상을 주겠다는 말을 하자 카밀레아가 살짝 몸을 빼 자리에 앉았다.


“원하시는 것이 있나요?”

“음... 글쎄요? 뭘 달라고 할까?”


그러면서 카밀레아는 슬쩍 라이비아 공주를 보았다.

표정의 변화 없이 가만히 눈을 내리 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탁자 밑에 손가락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꼼지락 거린다.


“음... 생각나면 말을 할께요. 지금은 딱히 생각이 나는 것이 없네요.”

“알겠습니다. 생각이 나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최선을 다해 구해드리겠습니다.”

“그 말 꼭 지키셔야 해요.”

“물론입니다.”


헤리오스의 대답에 ‘훗’하고 살짝 웃은 카밀레아는 라이비아 공주에게 말했다.


“날씨도 쌀쌀한데 우리는 들어가는게 어때요?”

“그러는 것이 좋겠네요. 그리고...”


라이비아 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헤리오스를 보고 말했다.


“다음에는 아무리 반가워도 옷은 입고 반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몸이 좋아져서 보는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럼...”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고 뒤돌아 가는 라이비아 공주와


“이런 건 방에서 나만 보면 딱 좋은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살짝 다시고 내성 안으로 들어가는 카밀레아.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과 배를 쳐다본 헤리오스.


“아... 벗고 있었구나.”


내공의 쌓이고 육체가 단련이 되면서 한서불침(寒暑不侵)의 몸이 되어 저지른 실수였다.


카밀레아가 전해준 소식대로라면 전쟁이 일어나 아마 네이아크 백작령은 크게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서부와 중부가 과연 힘을 합칠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왕위의 계승일 것이다.

아직 어느 쪽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다. 그러니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왕위를 잇는 쪽의 왕자를 지지한 세력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테니까. 그리고 왕은 단 한명 뿐이다. 하지만 네이아크 백작은 왕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사실은 우리 영지만 알고 있다. 왕이 없다고 해도 서부와 중부는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네이아크 백작의 영지는 섬이니까. 섬을 수색하려고 해도 무려 100개가 넘는 섬이 모두 그의 영지이다. 그 섬들을 다 뒤져보는 것은 불가능.

직접 찾지도 못하고 내놓으라고 해도 받지도 못할테니 네이아크 백작령을 공격할 것이고, 반면에 백작은 줄 것이 없으니 없다고 할 것이고, 없다고 해도 믿지를 않으니 전쟁...


“무조건이네.”


헤리오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왕이 있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끼니 때마다 원래 양보다 몇 사람 치 밥 더 차려주고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정말 남는 장사네.”


그 해 봄 이른 파종이 끝나고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서부와 중부의 귀족들의 군대가 왕국의 두 후작가의 함대의 전투선을 타고 네이아크 백작령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그 수가 무려 100척이 넘었다.

“바다에서 생선만 처먹고 살더니 대가리에 드는 생각이 생선 수준이냐? 감히 국왕을 직접 건드려?”


이런 육지의 귀족들의 태도에 네이아크 백작령이 순순히 있을 리가 없었다.


“흥! 육지에서라면 몰라도 바다에서 감히 네이아크 가문에게 도전을 해?”


이미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누명을 씌운 후 침략해오는 땅강아지 같은 귀족들을 가만 둘 만큼 성격이 좋은 백작이 아니었다.


“영지의 모든 함대는 저 노린내 나는 땅강아지들을 바다 속에 집어 넣어라! 가라!”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통치를 하는 영주의 함대는 70척에 이르렀다. 하지만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정예중의 정예.


인간족의 왕국 라 바르 세이르멘의 바다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눈이 아프고 난 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저의 글이 너무 엉망이라는 것이 느껴져 진행을 해나가는데 정말 껄끄럽네요.

그런다고 이제와 고치는 것도 문제고, 댓글을 보니 창피해서 어쩔줄을 몰라 그냥 포기 해버리고 싶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 완결을 해야겠죠? 

저의 약속을 믿고 선작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을 생각하니 너무 모자란 글이지만 끝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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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어떤 새끼가 동부는 밥이라고 했어 +4 21.11.01 2,112 45 11쪽
114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6 21.10.31 2,188 49 11쪽
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8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9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2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7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7 46 11쪽
108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5 46 11쪽
107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6 49 10쪽
106 잘하자 +3 21.10.22 2,619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5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6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2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30 52 12쪽
101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7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8 56 11쪽
»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8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9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58 63 13쪽
96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5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8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9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7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1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6 82 10쪽
90 정보가 필요해요 +5 21.08.16 4,684 8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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