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464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10.22 21:29
조회
2,618
추천
50
글자
9쪽

잘하자

DUMMY

산사태로 인해 많은 양의 돌과 흙이 쏟아진 곳에는 각종 바위와 나무들이 꺾이고 엉망으로 널린 채 쏟아져 있었다.


그런 돌과 흙 무더기를 헤치며 올라가던 헤리오스가 이동을 멈춘 것은 중간쯤에 큰 바위에 깔리고 흙 속에 파묻혀 숨을 헐떡거리는 트롤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넌 뭐냐?”


바로 앞에 선 헤리오스의 물음에도 트롤은 탈진한 상태인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이거 뭘까? 그냥 한 마리 잡았네. 그러면...”


다시 품 속으로 손을 넣은 헤리오스는 작은 병을 꺼내 헐떡이는 트롤의 주둥이에 안의 액체를 집어 넣었고, 곧 트롤은 잠이 들었다.


“야!”


헤리오스의 외침에 곰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제 끝이야?”


그 물음에 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이제 가봐. 만약 너 사람들 잡아먹었다가는 내가 직접 와서... 알지?”


으르렁거리는 헤리오스의 말에 곰은 화들짝 놀라 두 발로 서서 고개를 젓고, 앞발을 마구 휘저었다.


“좋아. 한 번 믿어보겠어.”


헤리오스가 시선을 돌리자 곰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속도로 급하게 산 아래를 향해 달렸다.


“빠르네... 그럼 나도 가 볼까?”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헤리오스가 향하는 곳은 바로 처음 출발했던 마을. 아마도 돌아온 영지군으로 인해 반은 잔뜩 긴장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다리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땅을 찼다.


그 시각 마을에서는 기사 반을 시작으로 영지군와 경비대의 모든 전력이 초긴장 상태로 숲을 바라보며 완전 무장을 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반 기사님. 아무리 그래도 오늘 아침에 가신 분이 오늘 중으로 내려오실까요?”


영지군 하나가 슬쩍 물었지만 반의 표정은 여전히 잔뜩 굳은 채로 숲을 노려보고 있다.


“기사님. 언제까지...”

“닥쳐.”


평소 병사들과 웃고 떠들며 함께 움직이던 기사였던 반이 지금 병사를 향해 험한 말을 내뱉었다.


“공자님께서 오셔서 너희들 목을 치지 않으면 내가 자를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아니... 저희는...”


영지군들은 이제 반에게 더 이상 말도 붙이지 못하고 속으로 투덜대며 숲을 쳐다보는데 숲 속에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가고, 각종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셨군.”


긴장하는 반과 그런 그들의 기사를 보고 무슨 소리인지 감을 못잡는 병사들의 앞으로 작은 점이 공중에서 점점 커지더니 백금발의 잘 생긴 청년으로 변해 마을 어귀에 쿵 소리와 함께 섰다.


“반!”


헤리오스의 외침에 반이 미친 듯이 달려 헤리오스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모든 것이 공자님의 뜻대로 되실 것입니다.”

“지랄...”


반의 엄숙하고 정중한 말에 헤리오스가 내뱉은 말이었다.


“전원 집합시켜. 가서 트롤 끌고 와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몸을 돌려 가려는 반에게 헤리오스가 그를 멈춰세웠다.


“아까 나랑 숲으로 갔던 새끼들은 완전 군장 챙기고 오게 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새끼들은 삽도 가지고 오라고 해.”


헤리오스의 지시로 잠이 든 트롤을 마치 번데기처럼 쇠줄로 꽁꽁 묶어서 질질 끌고 오는 병사들은 불평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이 새끼들 인상 쓰지? 어? 영지 후계자가 지시내리는 것이 꼽냐?”

“아닙니다!”

“그럼... 아니꼽다는 소리냐?”

“아닙니다!”

“아니면 군생활 끝나냐?”

“아닙니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 밖에 없어?”

“아닙니다!”

“웃기네? 끌던 줄 내려놓고 집합. 차렷. 머리 박아. 기상. 인생 참 더럽지? 어린 새끼가 귀족이라고 유세떨고... 응?”

“아닙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영지의 후계자가 말하는데 아니야?”

“...맞습니다!”

“돌았냐? 영지 후계자가 그냥 어린 귀족새끼냐? 어?”


마을에서 출발해서 다시 트롤을 끌고 산에서 숲까지 내려오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갈굼과 얼차려를 당하는 영지군들.


“성질 많이 죽으셨네.”


중얼거리는 반의 얘기는 경비대 전원의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죽은 성질이 저 정도면...?”

“반 기사님도 예전에 엘프의 숲에 가셨었잖아. 그럼...?”


웅성대는 경비대를 향해 헤리오스의 노려보며 소리쳤다.


“경비대 심심하냐? 응?”

“안 심심합니다.”

“잘하자. 응? 새끼들 트롤 다리쪽이 쳐졌잖아! 똑바로 안들어?”


이제 산사태가 일어난 곳에 박혀있던 트롤을 삽으로 퍼서 꺼내고 쇠줄로 말아 머리에 이고 오던 영지군들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는데 헤리오스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포기하고 싶은 놈은 빨리 말해. 영원히 편안하게 해줄테니... 내일 트롤에게 줄 먹이가 지금 없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응?”


해가 저물어가는 숲을 지나 마을로 돌아온 영지군은 이른 아침에 했던 행동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어 눈물만 흘리는데 경비대의 선임병사와 기사 반의 대화가 그들의 대화에 들렸다.


“영지군들이 불쌍한 것도 불쌍한 거지만 언제까지 저렇게 피를 말리실까요?”

“내가 북쪽의 숲으로 파견 나갔을 때의 일인데...”


제이크와의 시합에서 지고 반강제로 뽑혀 숲에서 중형 괴물을 토벌하기 위해 선발대로 끌려나가 며칠을 잠도 안자고 미친 듯이 칼질만 해대며 숲을 헤매고 다녔다.


다행히도 제이크의 실력이 뛰어나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지만 방심하거나 집중력이 흩어져 괴물들에게 순간적으로 공격을 허용해 중상을 입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괴물에게 당해 쓰러진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지만 중상을 입어 피를 토하고 살이 심하게 갈라진 상처를 가지고 토벌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기사들을 데리고 제이크는 헤리오스 앞에 가 말없이 고개를 숙여보이고 한쪽으로 비켜섰고, 헤리오스는 중상을 입은 기사들을 쭉 훑어보고는 씨익 웃었다.


“안죽었네?”


그리고 진행되는 헤리오스의 치료. 어떤 풀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풀을 태워 흡입하게 하자 몽롱해지며 모두들 정신을 놓아버렸고, 품속에서 매우 날카로운 작은 칼과 바늘, 실이 들은 가죽 두루마리를 꺼내는 것까지 확인하고 의식을 잃은 기사들은 다음 날 아침 치료가 모두 끝나고 말끔해진 상태로 다시 숲 깊은 곳으로 울면서 검을 들고 떠났다.


“죽지만 않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실 정도로 의술 실력도 뛰어나시지.”

“...그럼?”

“그래. 죽으면 돼. 그럼 고통스럽지는 않아.”


오싹.


경비대는 어느 덧 떠오른 달빛에 비춰지는 백금발의 영롱한 초록색 눈을 가진 차기 영지의 주인이며 자신들의 지배자가 될 소년티를 모두 벗겨내지 못한 청년의 미소가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다.


“도전정신을 가져라? 그거 개소리야. 절대 도전하면 안되는 것도 있는 걸 난 알아버렸지.”


묵묵히 잠든 트롤을 줄로 받치고 어깨로 짊어진 경비대원들은 도움을 갈구하는 영지군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마을로 들어섰고, 반 역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경비대원들에게 트롤을 집어넣을 튼튼한 이동식 감옥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경비대가 움직일 수 있는 감옥을 만드는 사이 영지군은 마을 밖에서 트롤을 한쪽에 놓아두고 헤리오스 앞에 줄을 맞춰서서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하체지? 안그래?”


그리고 한쪽의 놓아둔 트롤을 어깨에 짊어지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경비대의 감옥이 완성될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아침 헤리오스는 후크 백작령을 향해 말을 타고 떠나며 영지군들에게 숙제를 안겨주었다.


“하루에 트롤 한 마리당 고블린 5마리 씩 식사를 할 수 있게 잡아다가 입에다 쳐 넣어. 알겠어?”

“예!”

“잘하자. 응?”


그리고 헤리오스가 떠나고 영지군은 숲으로 들어가 고블린을 찾아다녔지만 헤리오스가 쓸고 지나간 숲 속에서 고블린을 찾는 것은 정말 바다 속에서 코끼리를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영지군은 마을 근처 숲 뿐만 아니라 떨어진 다른 곳까지 고블린을 잡기 위해 토벌을 강행해야만 했고, 벨로시아 영지에 사는 고블린이나 놀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9 어찌되던 상관없다 +5 21.11.07 2,218 47 11쪽
118 아래층 방이라고 했잖아 +3 21.11.06 2,042 48 12쪽
117 나는 기사다 +4 21.11.03 2,168 47 11쪽
116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4 21.11.03 2,120 42 12쪽
115 어떤 새끼가 동부는 밥이라고 했어 +4 21.11.01 2,112 45 11쪽
114 결국 우리가 약해서 편법을 쓴다는 이야기로군 +6 21.10.31 2,187 49 11쪽
113 당연히 허세지 +3 21.10.30 2,248 51 12쪽
112 그냥 여자가 아니야 +6 21.10.27 2,479 50 9쪽
111 이건 아주 많이 과한 겁니다 +3 21.10.25 2,582 51 10쪽
110 나 잘한 걸까 +6 21.10.24 2,596 48 8쪽
109 차라리 바람둥이가 나아 +4 21.10.24 2,557 46 11쪽
108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고민해야 하는 거야 +4 21.10.23 2,604 46 11쪽
107 영주가 만들어 주어야 하는 거지 +4 21.10.23 2,576 49 10쪽
» 잘하자 +3 21.10.22 2,619 50 9쪽
105 고생하면 고생한 만큼 굴리면 되니까 +3 21.10.20 2,744 56 11쪽
104 소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더럽단 말이다! +3 21.10.19 2,786 53 10쪽
103 제가 숲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3 21.10.18 2,942 58 11쪽
102 여기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4 21.10.17 2,929 52 12쪽
101 방랑기사라... 좋구나 +5 21.10.16 3,056 55 10쪽
100 헛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네 +6 21.10.16 3,188 56 11쪽
99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다 +4 21.10.14 3,247 63 12쪽
98 안해봤겠어요 +4 21.10.13 3,379 58 12쪽
97 현명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4 21.10.12 3,458 63 13쪽
96 어떤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5 21.10.10 3,425 63 12쪽
95 왕께서 우리 성으로 오셨습니다 +4 21.10.07 3,617 63 9쪽
94 왜 못하지 +7 21.09.25 3,789 76 9쪽
93 인사드립니다 +8 21.08.27 4,477 91 10쪽
92 첩자들이 하는 거 아냐 +5 21.08.21 4,431 92 11쪽
91 왕이 되려면 말이다 +5 21.08.20 4,506 82 10쪽
90 정보가 필요해요 +5 21.08.16 4,684 8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